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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24.08.08 2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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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3 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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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0 2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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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의 연회장

DUMMY

한 번 휘두를 때마다 한 명씩 쓰러졌다.

몇몇은 이미 이 지하 연회장에서 벗어나려 했지만, 위층으로 가는 문이 잠겨 있어 탈출할 수 없었다.


기사들은 이미 시체로 전락했고, 이제 남은 것은 귀족들뿐이었다.

나름, 용감했던 이들은 흑기사에게 맞서다 참혹한 최후를 맞이했고, 이제 남은 건 겁에 질린 쭉정이들뿐이었다.


“살려주시오, 가주!”


“가주님! 제발 자비를!”


잠시 이 쭉정이들을 살리는 것이 옳은지 고민했지만, 결국 그들은 모두 악마의 하수인이었다.


한현은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너희들은 자비를 외치는 자들에게 자비를 베푼 적이 있느냐?"


...


한현의 반문에 그들 누구도 대답할 수 없었다.

[데빌슬레이어]에는 악마들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 악마들에게 적극적으로 부역하는 자들도 있었는데, 그들을 악마의 하수인이라 불렀다.


말 그대로였다.


악마의 하수인.

그들은 같은 인간이면서도, 악마가 되기 위해 온갖 잔혹한 짓을 서슴지 않는 자들이었다.


영원에 가까운 영생을 얻기 위해,

거대한 재화를 쌓기 위해,

채워지지 않는 허영을 만족시키기 위해,

각자의 욕망을 위해 스스로 악마가 된 자들.


악마의 하수인이 되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악마의 하수인이 되려면, 그들 또한 악마가 되어야 했다.


악마가 되는 가장 쉬운 방법은 순수한 영혼을 바치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서는 순수한 영혼을 지닌 인간을 죽여야 했으며,

무고한 인간을 죽일수록 더 많은 악마의 은총을 받을 수 있었다.


한마디로, 자비를 베풀 필요조차 없는 자들이다.


“뭐해? 빨리 정리하지 않고?”


쿵!


흑기사는 느슨해진 대검을 다시 빠르게 휘둘러, 그들을 차례차례 도살하기 시작했다.


분명, [데빌슬레이어]는 청소년 이용 등급의 게임이었다.

하지만, 지금 현실이 된 이 상황은 도저히 그 등급이라고 할 수 없었다.


한현은 그 끔찍한 광경을 더는 마주할 수 없었다.

살육의 현장, 그것도 자신의 행동으로 인해 벌어진 일이라 생각하니,

마치 사이코패스가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쿵!


한현은 눈을 감고 계단에 몸을 기대어 누웠다.

먹은 것도 없는데 계속해서 메슥거림이 밀려왔다.


며칠 밤낮을, 땅을 파고, 물속에 잠수하며, 어두운 동굴을 헤매었으니 지칠 만도 했다.

몸 전체가 서서히 차가워지면서 현기증이 몰려왔다.

아무래도 약해진 몸에 잔인한 장면들이 겹치면서 쇼크가 오는 것 같았다.


쿵!-


한현은 애써 몸을 추스르려 하지 않았다.

그는 몸의 반응을 거부하지 않고 그대로 누워버렸다.


....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일어나려는 순간, 한현은 몸 위에 재킷 하나가 덮여 있는 것을 발견했다.


"어?"


“기침하셨습니까?”


집사 할배가 눈앞에 보였다.

그가 덮어준 재킷이었다.


“혹시, 살인이 처음이십니까?”


‘뭐? 살인?’


흑기사가 숙부와 가신들을 죽인 장면이 떠올랐다.


한현은 급히 일어나 앞을 바라보았다.

눈앞에 펼쳐진 것은 피로 물든 참혹한 광경이었다.


“우욱!”


구토감이 몰려왔다.

먹은 것이 거의 없어서인지, 푸른 쓸개즙까지 나오는 듯했다.


“우웩!”


"가주님, 괜찮으시다면 저 기사를 연회장 밖으로 치워 주시겠습니까?”


한현은 쓴 입맛을 다시며, 집사의 말을 듣고 슬쩍 흑기사를 살폈다.


흑기사는 여전히 연회장 전체를 경계하고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알 수 없었지만, 꽤 시간이 지난 듯했다.


‘저 녀석, 아직도 저기 있다고?’


한현은 눈살을 찌푸리며 노집사에게 물었다.


"내가 잠든 지 몇 시간이 흘렀지?"


노집사는 행커치프에서 꺼낸 손수건으로 자켓 안쪽에 있던 회중시계를 닦으며 시간을 살폈다.


"약 6시간 23분이 흘렀습니다."


뭔가 이상했다.

꽤나 시간이 흘렀기에, 더욱 이상하게 느껴졌다.


흑기사는 성자의 단검으로 테이밍한 악마형 몬스터였다.

다른 게임에서도 마찬가지지만, 테이밍한 몬스터는 일정 시간이 지나면 테이밍이 풀리게 된다.


비록 단검의 테이밍 마법은 비 타깃 마법으로 100% 성공률을 자랑하는 사기적인 아이템이지만, 분명한 조건과 한계가 존재했다.


조건은 오직 악마형 몬스터에게만 테이밍이 발현된다는 점이고,

게임 시간으로 대략 6시간 정도가 테이밍 마법의 한계였다.

이 시간이 지나면 테이밍된 악마형 몬스터는 공허로 사라져야 했다.


이 설정은 아마도 게임 밸런스를 유지하기 위한 장치였을 것이다.


그런데, 이미 사라져야 할 흑기사는 여전히 남아 있었다.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 밸런스 시스템은 지금 이 현실에는 적용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만하고 돌아와!”


척!


흑기사는 척 하며 대검을 어깨 위로 올린 채 한현의 옆으로 다가왔다.


노집사는 흑기사가 연회장 가운데서 사라지는 것을 보자.

허공을 향해 손뼉을 쳤다.


짝! 짝!


굳게 닫혀 있던 지하 연회장의 문이 열렸고, 수십 명의 사용인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이 피비린내 나는 연회장이 아직까지 청소되지 못한 이유는 흑기사가 계속해서 경계를 서고 있었기 때문인 듯했다.


흑기사는 한현이 내렸던 마지막 명령인 "빨리 정리하라(=다 죽여라)"를 철저히 이행하고 있었다.


분명 한현에게는 기꺼운 일이었지만, 흑기사를 이대로 두면 문제가 생길 것 같았다.

더욱이 흑기사가 사라지지 않고 계속 존재한다면, 앞으로 어떻게 명령을 내려야 할지 신중히 다시 고민해 볼 필요가 있었다.


쓱- 슥-


사용인들은 한 치의 말도 없이 조용히 청소를 시작했다.


문득 한현은 집사에게 물었다.


"그, 숙부는 죽었소?"


"네, 이 시체 중 하나입니다."


한현은 말없이 시체, 아니 혈편들을 살폈다.

워낙에 흑기사가 잘 다져놨기에 생전의 모습을 유지하는 녀석들은 없었다.


"망할..."


한현은 넋을 놓고 사용인들이 청소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불현듯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이 공동에 있던 사람들이 그 누구도 도망가지 못했다는 점이었다.

이는 흑기사의 공격이 시작된 시점에서, 연회장 밖으로 나가는 문이 막혔다는 의미였다.

즉, 밖으로 나가는 문을 누군가 막았다는 것이다.


쓱- 싹-

쓱- 싹-


사용인들은 말없이 난장판이 된 연회장을 아주 조용히 치우고 닦고 있었다.


기이했다.

거부감 없이 기계적으로 청소하는 사용인들의 모습이 약간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그들은 한현 혹은 흑기사에 대한 두려움이나 피와 시체에 대한 두려움도 없어 보였다.

더군다나 서로 잡담도 없었고, 아무도 명령하지 않았지만, 마치 하나처럼 통일되고 일관된 조직적인 움직임을 보였다.


한현은 집사에게 물었다.


“당신들, 인간 아니지?”


한현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수십 명의 사용인들이 일제히 움직임을 멈추었다.


'뭐?'


쓱!


사용인들은 청소를 멈추고 허리를 펴서 한현을 지그시 노려보았다.

그들은 눈도 깜빡이지 않고, 미동조차 없었다.

알 수 없는 섬뜩한 기운이 느껴졌다.


척!


한현의 옆에 있던 흑기사가 한현의 앞에 나섰다.

한끝이라도 움직이는 자가 있으면 흑기사가 대검을 출수할 듯 보였다.


"왜? 한번 해보자고?"


잠깐의 묘한 긴장과 대치가 지나, 노집사는 손을 머리 위로 들어 올려 내저었다.

그제야, 멈춰 있던 사용인들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한현의 등줄기에는 어느새 식은땀이 흐르고 있었다.


"맞습니다, 가주님. 저희는 인간이 아닙니다. 오직 약속된 주인만을 모시는 죽지 못한 망령들입니다. 저희의 정체와 존재 이유는 적법한 가주만이 알 수 있습니다. 주인께서는 아직 가주 의식을 치르지 않으셨으니, 자세한 이야기는 다음에 해드리겠습니다."


“가주의 의식?”


한현은 처음 듣는 말이었다. 고인물인 그도 이 용어는 낯설었다.


한현이 알고 있는 이 공작가는 메인 퀘스트 후반부에 악마에게 점령당해 던전이 되는 곳이다.

더군다나 이 맵의 숨겨진 엔딩 보스는 [죽음을 기다리는 자] 즉 흑기사였다.


‘한데 악마에게 점령당하기 이전부터 뱀파이어가 등장했다고?’


게임에서는 나오지 않았던, 이 세상만의 오리지널 스토리 하나를 알게 된 듯했다.

이 세상에는 고인물인 자신도 모르는 스토리가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 가주 의식이란 거, 어떻게 할 수 있는 거지?”


노집사는 아쉬운 듯 입술엔 조소를 지으면 말했다.


“만월이 될 때 말씀드리겠습니다. 아직 때가 되지 않았습니다.”


‘만월이라···’


[데빌슬레이어]에선 달에 대한 퀘스트가 참 많았다.

더군다나 악마를 대적하는 설정이기에 그런 설정이 자연스럽게 추가된 듯했다.


한현은 신규 퀘스트에 약간의 흥미를 느꼈지만, 기진맥진한 몸으로 인해 선문답 같은 비밀스러운 말에 짜증이 났다.


'될 대로 되라지, 네 알 바냐.'



#


공작가의 지하 연회장을 피바다로 만든 지 며칠이 지났다.


후끈-


한현은 그날을 기점으로 죽을 듯한 열병에 시달렸다.


온몸에는 뜨거운 열기가 차올랐다.

불이 번지듯 한 열감이 호흡을 막아 숨쉬기 어렵게 했고, 뼛속까지 시린 추위가 온몸을 덮쳐왔다.


‘죽겠네···’


아마도 며칠간의 강행군에 한현의 몸이 견디지 못한 것 같았다.

일주일을 꼬박 앓고 나서야 열병이 진정되었다.


몸이 망가져도 감기 같은 잔병치레 한번 없었던 한현에게는 너무나 끔찍한 경험이었다.


하지만, 이 며칠간의 끔찍한 열병은 단순히 고통만 준 것이 아니었다.


‘이 몸의 기억인가?’


한현은 사경을 헤매며 많은 꿈을 꾸었다.


갑작스러운 아버지 공작의 죽음,

준비되지 못한 무능한 후계자의 데뷔,

그리고 난립하는 간신들.


마치 한 편의 드라마를 본 듯한 느낌이었다.


꿈속의 남자는 무능력하고 우유부단했다.

한 가문의 가주로서 결정을 내리고 책임질 강단이 없었으며, 누군가에게 싫은 소리 한 번 하지 못하는 바보였다.


만일 남자가 일반 평민이었다면 평범한 삶을 살았을지도 모르지만,

한 나라의 주인이자 대영지의 가주, 역사 깊은 대귀족의 자질로는 매우 부족했다.


그런 남자에게 숙부라는 인간은 하나의 해결책이 되었다.


이 숙부라는 남자가 언제부터 그의 곁에 있었는지, 정체가 무엇인지는 기억나지 않았다.

또한, 자신의 권한을 함부로 침해하는 그의 행동에 이상함을 느꼈다.


스스로도 이러면 안 된다는 것을 알았지만, 스스로 결정짓지 못하는 대부분의 일은 숙부가 해결해 주었다.

그게 너무 좋았다. 머리 아프고 힘든 일은 모두 숙부에게 맡기면 되니까 말이다.

그렇게 수많은 일이 숙부의 손을 거치게 되었고, 어느새 숙부가 가주인 남자에게 명령을 내리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어느 조직이든 최종 결정권자가 조직의 권력을 갖게 되는 게 진리이다.

설사 그게 혈족으로 이루어진 귀족의 가문이라 하더라도 말이다.


결국, 아무런 권한과 권력이 없어진 남자는 저택에서 쫓겨나 거지가 된다.

흔히 막장 드라마에서나 볼 법한 이야기다.


한현은 새삼스럽게 놀랍거나 충격적이지도 않았다.


‘그나마 얻은 게 있어서 다행인가?’


중요한 건, 게임으로는 얻을 수 없는 기본적인 중세 세계관의 상식과 귀족이 배울 수 있는 고등 지식을 얻을 수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꿈을 통해서 배운 것인지, 본래 육신이 가진 기억을 수습한 것인지는 엄밀히 알 수 없었다.


‘그게 뭐가 중요하겠어...’


현재로서는 게임 고인물의 공략보다는 중세 귀족의 지식이 더 필요한 때였다.


한현은 골치 아픈 생각들은 뒤로하고 침대에서 일어났다.

노란 수실로 예쁘게 꾸며진 레이스 셔츠가 축축하게 젖어 움직일 때마다 거슬렸지만,

무덤가에서 팬티조차 필요했던 순간을 떠올리면 지금의 상황은 장족의 발전이었다.


척!


강철이 부딪힌 소리가 한현의 골을 울렸다.


"아우.. 머리야..."


한현의 앞에 거대한 그림자가 졌다.

거기에는 흑기사가 그 커다란 몸으로 한현의 앞에 부복하고 서 있었다.

키가 워낙 컸기에 한쪽 무릎을 꿇은 상태에서도 침대에 앉은 한현을 가릴 정도였다.


“아오, 깜짝이야. 비켜봐.”


척!


흑기사는 일어나더니 옆으로 길을 터주었다.


“얌마, 넌 언제 없어지냐?”


“...”


흑기사는 대답하지 않았다.


“없어지긴 하는 거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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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오블레앙의 어둠 (2) 24.09.04 28 1 13쪽
15 오블레앙의 어둠 (1) 24.09.03 31 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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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동맹을 구하는 방법 (3) 24.08.30 31 1 18쪽
12 동맹을 구하는 방법 (2) 24.08.28 34 1 13쪽
11 동맹을 구하는 방법 (1) 24.08.27 31 1 13쪽
10 법과 질서를 위하여 24.08.26 38 1 13쪽
9 뜻밖에 등장 24.08.22 40 1 13쪽
8 리스폰, 끝없는 의심 24.08.21 39 1 12쪽
» 피의 연회장 24.08.20 38 1 12쪽
6 다시 만난 숙부 24.08.19 38 1 12쪽
5 경험치 그리고 퀘스트 24.08.15 48 1 13쪽
4 단검의 쓰임 24.08.14 49 2 14쪽
3 공략과 현실 24.08.13 54 1 15쪽
2 익숙함의 발견 24.08.12 69 1 12쪽
1 그곳으로 +1 24.08.08 105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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