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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파는
작품등록일 :
2024.08.12 22:56
최근연재일 :
2024.09.12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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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2 2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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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현재

DUMMY

철썩이는 파도 소리가 몽롱하게 들려 온다. 희미한 빛과 울렁거리는 하늘이 그를 괴롭혔다.


“여, 여기 정신 차리는 것 같아요.”

“너무 느리네. 여자보다 느려도 되나?”

“이게 여자 남자 있나요?”

“뭐, 아님 말고.”


희미한 정신 속에서 어지럽게 들려 오는 두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깨질 것 같은 두통에 4786은 머리를 감싸고 천천히 상체를 일으키며 정신을 차렸다.


“여긴?”

“그려? 정신은 좀 들고?”


그의 눈앞에 나타난 털보. 험상궂게 생긴 얼굴을 보고 놀란 4786이 흠칫거리자 털보는 익숙한 듯 그의 어깨를 잡고 진정시키며 자리에 앉는 것을 도와줬다.


“뭔 재수 없게 상복을 입고 있어.”

“크크 애비라도 죽이고 들어 온 거 아니에요?”


나시 입은 문신 양아치 남과 그 옆에 붙어 깐족거리며 말하는 재수 없는 교복쟁이가 4786의 복장을 보며 조롱했지만 하나하나 상대할 정신이 없었다. 일단 이 현재 상황이 중요했다.


눈앞에 털보 아저씨 한 명과 그 옆에 평범하게 예쁘장한 여자 둘, 그리고 양아치와 교복쟁이 학생이 눈에 보였다.


그들이 있는 곳은 바다 위. 정확히는 작은 구명보트 위였다. 따사로운 태양 빛 아래 6명의 사람은 오늘 처음 본 사람들이며 모두 4786과 같이 마취에서 방금 깨어난 상태였다.


“자넨 뭘로 들어 온 겨?”


검은 정장에 상주 완장을 한 그의 복장을 유심히 보며 궁금해하던 털보가 4786에게 질문했다.


“···”


그는 아무 말 없이 이상한 질문을 한 털보를 훑어봤다.


“경계하지 마러, 우리도 똑가텨. 여기 전부 사형수여.”

“개 같은 세상. 뭐 했다고 사형을 때리나. X발것 진짜.”

“난 그냥 애들 좀 괴롭히고 물건 빌린 것밖에 없는데.”

“저는··· 사, 사채를 빌렸는데. 돈을 못 갚아서··· 사기로.”

“난 남자들한테 도움 좀 받았는데 꽃뱀이라고 아, 어이없어.”


2038년 계속되는 솜방망이 처벌에 대한민국의 재 범죄율은 매해 증가하였다. 하여 정부는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범죄자에 대한 인권 윤리 인식과 정의를 개정하고 형법 개정을 선포하였다.


“그 샹. AI 판사인지 뭔지가 문제라니까. 그냥 적당히가 없어, 적당히가.”

“그러니까요.”


양아치와 학생이 끊임없이 불만을 토로했다.


“뭐, 우리도 다 억울하지. 그래서 형씨는 뭘로 들어 온 겨?”

“··· 폭력이요.”

“이? 폭력? 어디 장례식장에서 처 싸웠구먼. 끌끌끌. 너희들 조심해야것다. 처맞을라.”

“크크 아저씨도 아가리 하세요. 나한테 처맞기 싫으면.”

“끌끌. 혈기가 좋구먼.”

“여기가 어디죠?”


아직도 상황 파악을 못 한 4786이 역으로 털보에게 질문했다.


“거참 자네도 교수대 밑에서 만났을 거 아녀. 저 봐봐.”


4786의 질문에 털보는 손가락으로 한 곳을 가리켰다. 그의 손가락을 따라 시선을 옮긴 4786 뒤에는 커다란 무인도가 보였다.

파도가 찰랑이는 해변가와 수풀이 무성하게 자란 거대한 숲. 그 뒤에 두 개의 봉우리를 가진 높은 바위산이 보였다.


“저게 그놈들이 말한 ‘미다스’ 인 거 같어.”


그제서야 주변이 제대로 보였다. 바다 위에 떠도는 여러 개의 구명보트. 따로 말하지 않아도 섬으로 들어오라는 듯이 그들을 끌어당기는 섬과 그곳을 향해 열심히 노를 젓는 보트들. 잊고 있던 기억에 4786은 다시 머리를 감싸 안았다.


죽음이었다. 아니 죽음과 가장 가까웠던 순간이었다. 교수대에 올라 떨어졌을 때 그 죽음 밑에서 그들을 만났다. 자신들을 검은 회사 직원이라 소개하는 검은 정장의 그들.

한 번에 숨이 턱까지 막혀 기침으로 호흡하는 자신에게 말도 안 되는 생존 게임을 설명하며 참여를 강요했던 그들. 그리고 그들이 말한 게임의 개최지.


미다스.


눈앞에 보이는 정체 모를 무인도가 미다스였다.


“어이? 괜찮은겨?”

“네, 괜찮아요.”

“뭘 얼타고 있어. 얼른 가방이나 확인하고, 노나 저어.”

“여, 여기요.”


머리를 감싸며, 기억을 회상하는 그에게 양아치는 다시 날카롭게 말을 날렸다. 4786은 그를 무시하며 작은 포켓 가방을 건네주는 사채녀에게 손을 뻗어 자신의 가방을 건네받았다.


물 한 병, 빵 하나 그리고 쪽지 한 개.


가방에 있는 내용물이었다. 부실한 내용물에 4786은 쪽지만 꺼내 다시 지퍼를 닫고 쪽지 내용을 살펴보았다.


-반갑습니다. 참가자 여러분. 이곳은 죽음의 문턱. 미다스. 여러분이 참여한 생존 게임의 개최지입니다. 각자의 자유를 위해 또 각자의 소원을 위해 부디 끝까지 생존하여 각자 원하는 것을 얻길 소망하겠습니다.


-이곳의 룰은 단 하나. 섬에 싸이렌이 울리는 순간.


“어떤 범죄도 허용되며, 끝까지 생존한 사람은 모든 것을 얻게 된다.”


털보가 말했다.


‘어떤 범죄도 허용된다.’


4786은 그들이 준 쪽지를 양손으로 구겨 바다에 던져 버렸다. 어설프게 경계하던 그들의 눈빛이 살아나며 누군가는 떨고, 누군가는 사냥감을 쳐다보는 살기 어린 눈으로 변해있었다.

아름답게 보이던 섬이 죽음과 공포가 가득한 두려운 섬으로 변해 보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방금 일어난 4786을 마지막으로 노를 잡으며 천천히 그리고 빠르게 미다스의 해변으로 다가갔다.

맑은 모래알들이 그들을 반기고 여전히 그들은 아무 말 하지 않았다. 서로의 눈치를 보며 사채녀가 먼저 숲으로 뛰어갔고, 뒤이어 학생이 그리고 양아치와 꽃뱀이 함께 협력하기로 한 듯 함께 숲으로 들어갔다.

이제 남은 사람은 4786과 털보 둘뿐. 주위를 둘러보니 해변에 정착한 수많은 보트에서 사람들이 뛰쳐나가며 해변으로 가고 있었다.


“저들을 만나면 죽일 건가?”


가볍게 사투리로 말하던 털보가 진지한 어투와 함께 사투리를 감추며 말했다.


“···.”


그는 아무 말 하지 못했지만, 다시 입을 열고 그의 질문에 대답했다.


“모르겠어요.”

“그럼 죽일 수 있나?”

“···”

“그래, 그게 자네 대답이군. 그 완장도 그렇고 자네는 사연이 진해 보이는군. 끌끌끌.”

“아.”


4786은 자신의 팔에 걸린 상주 완장을 어색하게 매만졌다.


“뭐, 너무 멍청하게 행동하지 말고 이제부터는 독하게 생각해. 살려면 그래야지. 끌끌끌.”

“아, 네.”

“자네랑은 저 안에서 만나지 않았으면 좋겠군. 먼저 갈테니. 알아서 허라고.”


그 말을 끝으로 그는 시원하게 웃으며 안으로 들어갔다.


‘살려면 이라···.’


혼자 남겨진 4786은 뒤를 돌아 해변을 넘어 바다 끝을 바라봤다.

알 수 없는 감정이다. 후회인가? 그리움인가? 그도 아니면 다짐인가? 알 수 없는 감정이 그의 마음을 흔들었다. 아니, 아니다. 그는 고개를 흔들고 검고 어두운 숲으로 첫걸음을 걸었다.

.

.

.


“4786. 이건 기회입니다. 기회.”

“글세. 안 한다니까. 목 아파 죽겠네. 그냥 한 번에 끝내자. 또 올라가서 저기에 달려야 하냐?”

“하··· 뭐가 문제입니까.”


검고 넓은 공간. 교수대 밑이었다. 자신들을 ‘검은회사’ 직원이라고 소개한 남자가 자신의 목을 어루만지고 있는 죄수, 4786에게 따져 묻고 있었다.


“난 기회고 뭐고, 살고 싶지 않다니까? 그러니까 다시 올려줘.”

“정말 답답한 분이군요. 남들은 끝까지 살기만 하면 뭐든 얻어갈 수 있는 이 게임을 참여하고 싶어서 난리인데.”

“난 필요 없어.”

“하···.”


그는 4786의 고집에 진절머리가 났는지 깊은 한숨을 내뱉었다.

사실 죽음은 두려웠다. 아직도 따끔거리는 목을 어루만지며 그는 생각했다. 까칠한 포승줄이 목을 감싸는 그 순간 춥지 않은 공간에 목을 감은 줄에서 냉기가 느껴지며 몸이 떨려왔다. 추운 걸까? 아니, 그건 죽음.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살고 싶지 않았다. 삶에 대한 미련이 없었다. 이제 자신이 사랑하는 것 그 어떤 것도 세상이 없다는 그 공허함이 삶의 의욕을 부러뜨렸다.


“됐고, 그냥 빨리 다시 진행하자.”

“하··· 당신이 이러는 이유 제가 모를 것 같습니까?”


검은 양복의 직원이 표독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너가 뭘 알겠어. 내 마음을···.’


“너가 뭘 알겠냐는 표정이네요.”

“!”

“알고 있습니다. 당신의 사정. 당신이 왜 사형수가 됐는지. 왜 죽고 싶어 하는 것인지.”


그는 승기를 잡은 듯 천천히 4786에게 다가와 한쪽 무릎을 꿇고, 그의 귀에 속삭였다.


“어머니에 대한 복수··· 하고 싶지 않으십니까?”

“이 X발새끼가!”

“진정하시죠. 저는 도와드릴 수 있습니다.”

“그 새끼는 죽었는데 뭘 도와줘!”

“그럼 당신은 왜 지금 살아있습니까?”“뭐?”

“당신은 지금 왜 아직 살아있냐고요. 방금 형을 집행 받은 사형수인데.”

“그건··· 설마···.”

“네, 아직 살아 있습니다.”


그는 회사 직원의 말이 솔깃했는지, 흥분된 마음을 진정시켰다.


“사, 살아있다고?”

“이제야 좀 관심을 가지겠군요. 아까 제가 말한 게임에 참여하여 끝까지 생존한다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


아까와 달리 그는 아무 말도 없었다. 정말 이제 세상에 미련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는 하늘에 난 구멍, 방금까지 자신이 떨어져 매달려있던 교수대에 밑바닥을 바라봤다. 검정밖에 없는 공간에 저 작은 빛이 희망처럼 느껴진다.


‘복수··· 정말 할 수 있는 걸까?’


그의 생각 정리를 기다려주는 듯 직원은 아무 말 하지 않고, 그의 대답을 기다렸다. 고민에 잠긴 그의 시간 속에서 점점 답을 찾는 듯 그의 표정이 변해갔다. 침묵을 지키던 직원이 4786의 결단한 표정을 읽고, 다시 질문했다.


“44-4786-E. 다시 한번 묻겠습니다. 게임에··· 참여하시겠습니까?”

“···.”


그는 조용히 그의 눈을 바라봤다. 어둠 속에 흐릿하게 보이는 광대 같은 그의 눈을, 그리고 그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참여하겠어.”

“훗. 좋습니다. 그럼.”


직원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은 후 자신의 안쪽 주머니를 뒤지기 시작했다.


-치이이익!


“켁! 이런 개 같은 새···ㄲ···가···.”


그는 주머니에서 호신용 스프레이처럼 보이는 물건을 꺼내 들고 4786의 얼굴에 뿌렸다. 강한 가스에 그가 벌떡 일어나 주먹을 쥐었지만, 밀려오는 졸음에 눈꺼풀이 금세 무거워지며 서서히 의식이 흐려져 갔다.


“조금만 주무십시오. 일어나시면, 도착해 있을 겁니다.”


흐려져 가는 의식 속에서 직원의 말이 느려져 갔다.


‘저··· 여우 같은 ···새···ㄲ.’


그의 두 눈이 이내 모두 감겼다.


“생존하십시오. 4786. 그리고 얻어보십시오. 그게 돈이든, 자유든, 복수든. 무엇이든 말입니다. 그러니 한 번 살아남아 보십시오. 그 미다스에서···크크크크.”


검고 무덤과 같은 공간 속에서 그의 웃음이 울려 퍼지며 4786은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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