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작가 서자가 다시 사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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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냑
작품등록일 :
2024.08.20 2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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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1 2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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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DUMMY

로시안은 몽롱한 정신으로 선생의 수업을 들었다. 왜 이렇게 오랜만인 것 같은 기분이 드는지 모르겠다.


이상한 꿈을 꾸었기 때문인가.


꿈에서 로시안은 지금보다 키가 컸고 나이를 먹었다. 그토록 바라던 성년에 다다랐고 숨 막히고 삼엄한 저택에서 나와 백작령 변방에서 평온하게 지냈다.


웬 괴한들에게 습격을 받기 전까지는.


그저 꿈이라고 치부하기에는 마치 한차례 겪은 것 같은 묘한 생동감이 일었다. 그 탓인지 꿈과 현실의 경계가 교묘해진 기분에 좀처럼 노곤하고 멍한 기분을 떨칠 수가 없었다.


착!


“집중 안 하십니까!”


돌연 눈앞에 회초리가 내리쳤다. 로시안은 눈을 끔뻑이며 성난 상대를 바라봤다.


선생이 눈빛을 이글거리며 로시안을 째려보고 있었다. 신경질적인 성격인지라 그의 수업을 듣고 있는 중에는 긴장의 끈을 놓은 적이 없었다.


선생이 무어라 불평을 토해냈다.


“이래서 서자는 안된다니까. 제가 누누이 말하지 않았습니까. 제발 체통을 좀 보여······.”


그러고 보면 그와의 수업은 대체로 이런 식이었다. 실상 수업 시간의 반 이상은 로시안의 험담이었다. 아주 사소한 것을 일일이 꼬투리 잡아 혼내는데 시간을 써버려서 정작 배우는 것은 몇 없었다.


‘이 수업을 왜 듣게 됐더라?’


분명 로시안이 원해서 듣게 된 수업이었다. 그는 눈앞에서 성질을 부리는 선생을 내버려두고 기억을 되짚었다.


‘아.’


떠올랐다. 귀족 자제들의 모임 때 있었던 일 때문이었다.


성에 오고 한동안 로시안은 내내 방에 틀어박혀 있다가 밥을 먹고 하릴없이 시간을 죽이고만 있었다. 백작이 쓰러지고서는 거의 방치 당하다시피 아무도 그를 신경 쓰지 않았었다.


그러나 숙부는 가끔 로시안을 찾을 때가 있었는데 주로 많은 사람들, 특히나 귀족, 가신들의 모임이 있을 때였다.


당연히 귀족들의 예법이나 어투에 무지한 로시안은 크고 작은 실수를 벌였고 빈번하게 놀림거리가 되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들이 가만히 있는 로시안에게 일부로 찾아와 물어뜯을 거리를 찾았던 것도 있었다.


그들은 간단한 예법 같은 귀족들의 기본 상식에 관한 대화를 주고받았다. 그렇게 서로 떠들다가 돌연 로시안에게 무언가를 물어보곤 했는데 내도록 평민으로 살아온 로시안이 알 길이 없는 것들 투성이었다.


애초에 그는 글도 읽고 쓸 줄을 몰랐다.


그들이 그 사실을 몰랐을 리도 없을 테니 짓궂은 질문은 로시안이 쩔쩔매는 모습을 보기 위해서 던진 것이라는 사실을 지금에서는 알고 있다.


어쨌거나 숙부는 로시안이 모임을 거부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고 더는 놀림거리가 되고 싶지는 않았던 로시안이 먼저 숙부에게 요구했다. 귀족으로서의 지식을 쌓을 수 있는 선생을 붙여달라고.


숙부는 의외로 그것을 허락했다.


그리고 붙은 선생이 바로······.


“듣고 있는 겁니까!!”


그 잠깐 사이에 얼굴이 발개진 선생이 입에 침이 튀도록 외쳤다. 오늘은 유독 화가 많이 나 보였다.


로시안은 이럴 때의 대처법을 알고 있었다.


그는 재빨리 눈을 내리깔고 어깨를 움츠리며 기어가는 목소리로 사과했다.


“죄, 죄송합니다. 집중하겠습니다.”


한껏 자신감이 꺾인 태도를 보이자 그제야 선생은 기세를 약간 누그러뜨렸다. 은근히 만족하는 표정이 그의 얼굴에 떠올랐다.


“흠흠, 오늘도 수업을 잘 못 따라오시는군요. 뭐, 늘 있었던 일이니까요. 갈 길이 머니 서둘러 진도를 나가겠습니다.”


그래도 하루 중에 배운 게 하나 정도는 있어야 하기에 선생은 두꺼운 책의 페이지를 넘겼다.


어디 보자 하고 선생이 책을 눈으로 훑었다. 가르칠 부분을 선별하고 있는 듯 보였다.


로시안은 기시감이 들었다.


그는 오늘 그가 배울 내용을 알고 있었다.


‘제국 건국사.’


“제국 건국사를 배워보죠.”


그 순간 누군가 찬물을 끼얹은 듯 퍼뜩 정신이 들었다. 로시안은 눈동자를 잘게 떨며 벙찐 표정으로 선생을 바라봤다.


선생은 눈치채지 못하고 수업을 이어 나갔다.


“본래 제국은 그 이전에 대륙의 곳곳에 존재하던 여러 왕국 중에서도 가장 약소한 왕국에 그 전신을 두고 있습니다. 이는 초대 황제께서······.”


뒤의 내용은 이미 다 알고 있다.


이건 전부 다······.


‘전부 다 꿈에서 본 내용이야.’


로시안은 겉으로는 수업에 집중하는 척하며 속으로는 딴생각했다.


‘단순한 꿈이 아닌 건가? 그럼 난 도대체 뭘 본 거지?’


짐작이 아예 안 가는 것은 아니었다.


‘······미래?’


그래, 미래를 본 것이라면 지금 자신이 선생이 말하는 내용을 기억하는 것도 말이 되었다.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내도록 몽롱했던 기분이 확 깨지며 제정신이 들었다.


만약 자신이 꾼 꿈이 단순한 꿈이 아니라고 한다면······.


그는 서늘해진 손끝으로 제 어깨와 배를 더듬었다. 등 뒤로 식은땀이 흘렀다.


그 끝에는 자신의 죽음만이 기다리고 있었다.


***


수업 시간 내내 떨리는 속을 숨기기 위해 평소 이상으로 긴장하고 있었던 탓인지 선생은 수업을 마칠 때 흐뭇해하며 나갔다.


예전에는 몰랐었고 이 시점의 이후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선생은 애초에 숙부에게 매수되어 온 사람으로 귀족 사회에 편입하고 싶은 욕망이 큰 사람이었다.


그러나 능력에 비해 과분한 욕심이었고 결국 귀족의 연줄이라도 만들고자 하위 귀족들의 가정교사를 전전긍긍하던 중에 숙부가 데려온 사람이었다.


귀족에 대한 선망이 큰 탓인지 서자인 로시안을 훈육할 때면 비틀린 충족을 얻는 듯싶었다.


어쩐지 기를 꺾을 때마다 기분이 좋아지는가 싶더라니.


새삼 자신이 이 모든 사실을 알고 있다는 점에 또 한차례 속으로 놀라던 로시안은 얼빠진 얼굴로 복도를 거닐었다.


그가 아는 건 더 있었다.


머지않은 시일 내에 선생은 잘리게 된다는 것이다. 이유는 단순했다. 칼루이덴에게 마저 숨기던 선생의 비밀이 들통나기 때문이다.


그의 머릿속으로 존재할 리 없는 기억이 떠올랐다.


어느 날 갑자기 칼루이덴은 로시안을 불러 더는 선생이 없다고 통보했고 로시안도 마침 그즈음에는 수업을 포기하고 싶었던 터라 겉으로 티는 내지 않았지만, 기쁜 마음으로 순순히 받아들였었다.


나중에 가신들이 숙덕이는 이야기를 듣고서야 왜 갑자기 선생이 잘린 것인지 우연히 알게 되었다.


‘하지만 그 사실을 알고 있다고 한들······.’


이 정보를 어떻게 써야 할 지 도통 모르겠다는 게 문제였다. 어차피 언젠가는 밝혀질 일이기도 하지만 애초에 누구한테 사실을 말해야 한다는 것인가. 숙부? 로시안의 말을 믿어 줄지나 모르겠거니와 로시안은 당분간 숙부를 마주하기 힘들 것 같았다.


원래도 그랬지만 꿈을 꾸고 난 이후로는 더욱 그랬다. 자신을 죽일 정도로 싫어하는 사람이랑 대화를 나누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로시안은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느라 옆으로 사람이 지나가는 것조차 알아차리지 못했다. 언제나 눈치를 보며 움츠러들기만 했던 그는 제 생각에 몰두하느라 제 행동을 돌이켜볼 여유가 없었다.


그 탓에 상대가 의아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리고 그건 방으로 돌아가서도 계속되고 있었다.


로시안이 저택에 오고서 가장 적응이 되지 않았던 것은 바로 시중이었다. 누군가 제 몸에 손을 대는 것이 불편했다.


태생이 먹는 것, 입는 것 등 생활 전반에서 받들리는 것에 익숙한 보통의 귀족들과 다르게 제 한 몸은 제가 알아서 챙겨야 했던 로시안으로서는 타인의 손길이 영 어색했다.


그는 자신이 가만히 있는데 하인들이 분주히 방을 오가는 것도, 청소하는 것도 불편했다. 하인들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는데 오늘은 무언가가 달랐다.


하녀들이 분주히 유리창을 닦고 이불을 갈고 있는데도 로시안이 의자에 앉아 멍하니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고개를 갸웃하며 저들끼리 눈짓을 주고받았는데 그조차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만큼 그는 지금 자신만의 심각한 고민거리에 사로잡혀 있었다.


‘만약 꿈이 아니라면.’


자신의 목숨이 오가는 일만큼 중요한 일이 따로 있을까. 그 무엇도 죽음보다 두렵지는 않았다.


매를 때리는 선생도, 익숙지 않은 시중과 하인도 죽음 앞에서는 다 후순위일 뿐이다.


‘어떻게 해야 살 수 있는 거지?’


로시안은 자신을 죽인 습격자들을 떠올렸다. 그들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공포심이 치솟는 것 같았다. 그 마음을 억누르고 그들의 생김새를 떠올려보고자 노력했다.


한 사람은 몸을 꼭꼭 감추듯 망토를 뒤집어쓰고 있었기에 목소리 밖에 기억이 나지 않았다. 언뜻 듣기론 젊은 남자의 목소리였다.


그에 반해 다른 한 사람은 덩치가 크고 호전적인 인상이었다. 나이대를 가늠해 보자면 서른을 넘긴 것 같았다.


둘 다 모르는 사람이었다.


숙부의 사람인 것은 분명했는데 성에 그런 인상을 지닌 사람은 없었다. 그렇다면 자신이 성을 나가고서 새롭게 들어온 사람인 걸까? 아니면 따로 고용한 사람인 건가?


어찌 되었든 사람을 죽이는데 망설임이 없었고 오히려 지겨운 얼굴이었다. 이런 일이 익숙하다는 뜻이겠지. 덩치 큰 사내는 로시안이 생각하기에도 꽤 실력자 같았다.


‘그런 실력자에게서 도망칠 수 있는 걸까.’


로시안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그러다 곧 전제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둘에게서 도망치는 것이 문제가 아니다.


애초에 로시안을 죽이려고 드는 것은 숙부니까. 그 둘은 어디까지나 숙부의 명령을 수행하는 것뿐이다.


그렇다면 고민해야 할 것은 어떻게 숙부에게서 살해당하지 않을까이다.


조금 더 적극적으로 숙부에게 아부를 해봐야 하나? 숙부도 사람이라면 최소한의 정이 존재하지 않을까?


그러다 숙부의 시리고 경멸 어린 눈빛을 떠올리고는 곧바로 고개를 내저었다.


숙부는 애초에 그를 미워하고 있다. 이전에는 그것이 단순히 서자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그게 다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복동생인 아벨루스가 한 말이 있었기 때문이다.


로시안이 제 얼굴을 만지작거렸다.


생부와 닮은 얼굴이라고 그랬었지.


애초에 생긴 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죽이려 드는 사람이다. 이 얼굴로는 어떤 예쁜 짓을 해도 도리어 역효과만 날 것이 분명했다.


그렇다고 얼굴을 갈아치울 수도 없는 노릇이니 결국 제대로 된 방법을 강구하지도 못하고 깊은 한숨만 나왔다.


‘트레덴스 성에 온 것 자체가 문제였을지도.’


여관에서 그대로 지내다가 상단에 팔려 갔다면 적어도 죽지는 않지 않았을까.


차라리 지금이라도 성을 나가서 어떻게든 혼자 살아가 볼까 싶었다. 어차피 성년이 되기 직전에 성을 나서서 살해당하기 전까지는 나름대로 잘 살았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아직 어려.’


나가서 잘 살아갈 자신은 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었다. 그가 밖에서 입에 풀칠해 먹고 살 수 있었던 것도 몸이 성장하여 한사람 몫의 힘을 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금의 빈약한 몸뚱아리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게다가 성을 나간 이후에도 결국은 죽임을 당했으니 단순히 성을 뛰쳐나간다고 문제가 해결될 것 같지는 않았다.


‘······.’


막막했다.


죽음이 확정된 미래. 시간이 아직 남았고 자신이 죽는다는 사실까지도 알고 있음에도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좋은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스스로가 이토록 무력하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는 의자에 깊숙이 허리를 기댔다.


그는 정신을 놓은 사람인 양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며 눈을 깜빡였다.


‘······잠깐만.’


하녀들이 쳐다보든 말든 흐트러진 태도로 앉아 있던 그는 문득 든 생각에 천천히 허리를 폈다.


그러고 보면 숙부는 백작위를 물려받고서야 자신을 죽이려고 들었다. 그전까지는 상대적으로 자신을 신경 쓰는 것이 덜했었지.


왜 그랬을까.


답은 하나밖에 없었다.


‘후계자 경쟁.’


숙부에게는 아벨루스라는 경쟁상대가 있었다.


죽일 정도로 로시안이 싫지만, 자신은 언제든 손쉽게 쓸어낼 수 있는 존재였다. 그러나 아마 아벨루스는 달랐을 것이다.


로시안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어쩌면, 아주 어쩌면 로시안 자신은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미래에 관한 정보를 아벨루스라면 잘 사용할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만약 미래가 바뀐다면······ 숙부가 아닌 아벨루스가 작위를 물려받게 된다면? 어쩌면 자신의 미래도 바뀌지 않을까?


로시안은 급하게 방문을 나섰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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