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작가 서자가 다시 사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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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냑
작품등록일 :
2024.08.20 2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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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0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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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31 2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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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13화

DUMMY

온몸이 물을 쭉 빨아당긴 것 같은 묵직함이 느껴졌다. 로시안은 팔다리를 허우적거리며 숨통을 옭아매는 감각을 떨쳐내려고 했다. 그러나 몸이 의지를 따라주지 않았다.


끙끙하는 신음이 잇새를 비집고 나왔다. 그렇게 한참을 씨름했던 것 같다.


“헉!”


로시안은 번쩍 눈을 떴다. 그는 익숙한 방 천장을 멀거니 바라보면서 정신을 차리려고 애썼다.


‘어제······ 씻고, 도서관을 가려고 준비를 하던 중에 잠깐 잠이 들었지.’


그러면서 도중에 잠깐 잠에서 깼던 것까지는 기억이 났다. 직후 다시 잠이 들었긴 하지만.


워낙 오랜만에 몸을 격하게 움직여서 그랬는지 생각했던 것보다 피로감이 들었었다. 목욕물에 몸을 한차례 푹 담그고 나니 순식간에 노곤함이 몰려왔기도 했다.


‘그냥, 정말 잠깐 눈을 감았던 것뿐인데.’


이렇게 머리를 대는 순간 잠에 빠져든 게 얼마 만인지 모르겠다. 로시안은 천근 같은 몸을 간신히 일으켰다. 안 쓰던 근육을 마구 쥐어짰으니, 근육통이 오리라고는 충분히 예상했었다. 잠을 자면서 불편했던 것도 근육통 때문이었다.


로시안은 몸체를 움직일 때마다 비명을 지르는 근육에 어정쩡한 자세로 침대에서 벗어났다.


‘큰일이네.’


오늘도 병사들과 훈련을 받아야 했다. 이런 몸이면 오늘 하루가 꽤 고난스러울 것 같았다.


하지만 그나마 다행인 것은 몸을 혹사했어도 정신없이 잠을 잤기 때문에 머리는 전에 없이 맑았다는 것이다.


확실히 여관에서 일할 때에 비하면 훨씬 나은 환경이었다. 거기서는 몸도 혹사하고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으니까.


몸과 머리는 언제나 피로에 짓눌려 무겁기만 했었다.


손님이 몰리는 날에는 새벽까지 고된 노동에 시달렸다.


요리, 청소, 짐 나르기 등등 손님이 많을수록, 밤새도록 술을 퍼마실수록, 새벽같이 떠날 때일수록 로시안의 잠 시간이 줄고 일 시간이 늘었다. 피로로 눈앞이 점멸하는 일은 꽤 잦았다.


그러고 보면 지금보다도 어렸을 적부터 일했는데 용케 일하면서 쓰러진 적이 없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특별히 아팠던 적도 없었던 것 같다. 그때는 차라리 크게 앓아서 일을 가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바람과는 달리 그 흔한 몸살조차 잘 걸리지 않았다.


이렇게 생각하니 나름 건강한 체질이었다. 먹는 것도 부실했는데.


다행히 그때와 다르게 지금은 충분히 잠을 잘 시간을 확보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피로는 금방 회복할 수 있다. 근육통 역시 갑작스럽게 몸을 많이 움직이면서 생긴 것이었으므로 적응만 하면 금세 사라질 것이다.


로시안은 억지로 조금이라도 몸을 최대한 움직였다. 지금 조금씩 풀어두어야 뒤에 있을 훈련에서 조금이라도 덜 힘들 것이다.


움직일 때마다 윽 소리가 절로 나왔지만, 로시안은 계속 방안에서 멈추지 않고 서성였다. 그리고 허기가 몰려오는 것을 느끼자 곧장 식당으로 향했다.


평소보다 늦잠을 자버리는 바람에 딱 지금 시간에 가면 마주칠 사람이 없었다. 그가 느지막하게 식당에 모습을 보이자 언제나처럼 부엌에 남은 빵과 염장 고기 그리고 치즈 몇 덩이가 보였다.


로시안은 바쁘게 식기를 정리하느라 정신없어 보이는 부엌에서 슬그머니 음식을 챙겨 들고서는 식당 구석에서 조용히 식사를 시작했다.


창밖으로 흘러가는 구름을 바라보면서 빵을 뜯던 로시안은 대충 시간대를 가늠했다. 밥을 먹고 조금 소화를 시켰다가 바로 연무장으로 가면 시간이 딱 맞을 것 같았다.


원래는 도서관에서 책을 좀 보다가 가려고 했으나 워낙에 근육이 땅겨와서 가만히 앉아 책을 읽고 있기는 힘들 것 같았다. 차라리 조금이라도 몸을 움직이는 게 맞았다.


그렇게 생각하니 아무래도 오늘도 오전 중에는 도서관에 들르기는 힘들 것 같았다.


책 보는 시간도 충분히 확보하고 싶었는데 당분간은 훈련에 좀 더 집중하게 될 것 같았다. 혹여나 애써 길러놓은 글 읽는 실력이 퇴보하지는 않을까 걱정이 밀려들었지만 그럴수록 일단 조금이라도 빨리 견딜 수 있는 몸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결정을 내렸다.


***


오늘도 역시 연무장으로 향하자 먼저 와 있던 병사들이 보였다. 기분 탓인지 어제보다 우중충해 보였다. 피로로 눈가가 거뭇거뭇하거나 하품을 참지 못하는 병사들도 있었다.


아무래도 훈련을 마치고 저녁 근무까지 선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병사들 역시 로시안을 발견하고서는 그를 슬쩍 쳐다봤다. 어제와는 다르게 몇몇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 보였다. 로시안은 놀랐으나 반사적으로 그 역시 고개를 움직여 인사를 건넸다. 아무래도 하루를 함께 훈련하면서 얼굴을 봤다 보니 어제만큼 그가 신기하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곧 상관이 모습을 드러냈고 로시안과 눈이 마주치자, 생각보다 멀쩡해 보였는지 조금 놀란 얼굴을 했다가 곧 병사들에게 훈련을 시작하라고 지시했다.


한 번 해봤다고 로시안은 이번에는 당황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제 자리인 것처럼 병사들의 뒤에서 다리를 움직였다.


예상했던 대로 움직일 때마다 눈이 질끈 감길 정도로 근육에서 통증이 느껴졌다.


‘어제 열다섯 바퀴는 넘게 달렸었지.’


그 뒤로는 눈앞이 하얘지기 시작하길래 정확한 수를 세지는 못했다. 그만큼의 바퀴 수를 오늘 또다시 돈 이후에 근력 훈련도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확실히 부담되기는 했다.


둔통을 참으며 억지로 달리다 보니 겨우 두 바퀴쯤부터 다리가 돌덩이로 굳어가는 것 같았다. 무게감이 확 느껴지긴 했지만, 차라리 감각이 무뎌지니 통증은 조금 덜한 것 같아서 어떤 면에서는 버틸 만도 한 것 같았다.


그렇게 다섯 바퀴를 넘기고서는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고 달릴 수 있는 지경에 이르렀다.


몇 바퀴 남았는지 세고 있으면 괜히 다리만 더 무거워져 그저 앞만 보고 달리기만 했다.


그렇게 등에서 배어나기 시작한 땀이 옷을 슬쩍 적시고 있을 무렵.


“정지.”


상관이 병사들을 멈춰 세웠다. 로시안은 당황했으나 일단은 앞선 병사들이 다리를 멈추고 있었기에 그 역시도 속도를 줄였다.


로시안은 무슨 문제가 생긴 건가 싶어서 눈을 굴렸다. 그는 곧 다시 달리기가 재개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상관에게서는 그럴 기미가 없었고 병사들은 자연스럽게 목을 축이거나 숨을 고르고 있었다.


‘······끝, 난 건가?’


한 차례 일이 종료가 된 후의 분위기가 병사들 사이로 흘러나왔다. 로시안은 적응이 되지 않아 가만히 자리에 서 있었다.


힘들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당연히 어제만큼의 훈련량일 것이라 예상하고 있던 터라 마음을 강하게 먹고 있었는데 돌연 뒤가 붕 떠버린 느낌이었다.


약간은 허탈한 감정을 느끼면서 로시안은 땀이 흘러내리는 얼굴을 옷소매로 닦아냈다. 적당히 시간을 좀 죽이고 나서야 상관이 다음 훈련을 지시했다.


그러나 근력 훈련 역시 달리기 때와 마찬가지였다. 어제보다 확연히 줄어든 횟수에서 상관이 병사들을 멈춰 세운 것이다.


로시안은 어리둥절하며 여전히 해소되다만 기분을 느낀 채 흙바닥에서 몸을 세웠다. 대충 먼지를 털어내면서 다른 병사들의 반응을 보니 그들은 아무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 것 같았다.


‘······원래 훈련이 이런 건가?’


로시안은 잘은 모르지만 보통 훈련량이 이렇게 들쭉날쭉하지는 않으리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럼 어제와 오늘이 이렇게 다른 이유는 무엇이란 말인가.


‘설마.’


로시안은 상관이 있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혹시 어제의 그 훈련량은······ 나를 골탕 먹이기 위해서?’


아예 가능성이 없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그러고 보면 어제 분명히 검술훈련도 있다고 했었다. 하지만 병사들의 상태와 시간대를 가늠하더니 취소했었지.


그건 예상보다 훈련량을 늘리는 바람에 시간이 지체되어 버렸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병사들이 하루 종일 훈련만 하는 이들도 아니고 경비도 돌아야 했으니까.


로시안은 그제야 조금 이해가 되었다. 그러나 딱히 따지고 싶은 생각이 없었기에 그는 대충 목을 축이고서는 숨을 갈무리하는 데 집중했다.


어차피 그가 자신을 환영하지 않는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기에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오히려 훈련 강도가 줄어들었으니 할 말도 없었다. 이런 훈련량이라면 금방 몸에 익을 것 같았다.


어제 한 번 끝까지 체력을 소진해서 그런가 오늘은 근육통으로 고통받는 것과는 별개로 체력이 꽤 남아돌고 있었다.


이번에도 짧은 휴식 시간이 끝나고 병사들이 재빨리 자리를 잡았다. 예정대로라면 이다음은 분명 검술 훈련일 것이다.


“검을 들어라.”


‘역시.’


로시안은 제 짐작이 들어맞았다고 생각했다. 병사들이 제 허리춤에서 검을 뽑았다. 하지만 로시안은 사전에 들은 바가 없었으므로 미리 검을 준비해 오지 못했다.


그래서 머뭇거리면서 덩그러니 서 있으니, 상관이 그를 발견했다.


“검술 훈련도 받으실 겁니까?”

“그게 훈련에 포함이 되어 있는 것이라면요.”


상관이 골치가 아프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검을 휘둘러 본 적은 있고요?”

“······없습니다.”

“검은 애들 장난감이 아닙니다. 어디 한두 군데 베이고서 우는소리 마시고 그냥 돌아가시죠.”


로시안은 상대가 저를 겁주려는 기색을 느꼈다. 사실 그게 아니더라도 검이 주는 압박감은 상당했다. 미래에 호신용으로 단검을 몇 번 손에 쥐어보긴 했지만, 검술을 알고서 들고 다닌 것은 아니었다.


로시안은 그 순간 정체불명의 사내들, 특히나 덩치가 커다랗던 사내가 장검을 휘두르는 장면을 떠올렸다. 그러자, 반사적으로 두려움이 몰려왔다.


······하지만 여기서 그대로 물러서면 지금까지 아벨루스에게 신용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한 일들이 한순간에 무너지고 만다. 그것이야말로 죽음에 이르는 무엇보다 빠른 길이었다.


그러니 당장 몸에 생채기 한두 개 생기는 것이 두려워 뒤로 물러나는 것은 너무나 악수였다. 그렇기에 로시안은 단호히 말했다.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꽤나 고집이 세시군요.”


상관은 어디까지 하는 지 두고보겠다는 듯 한 번 눈을 흘겼다. 그러더니 다른 병사 하나를 불러 무어라 지시했다. 그러자 그 병사가 곧 어디론가 빠르게 사라지더니 다시 돌아왔을 때는 웬 검 한 자루와 함께였다.


병사가 그것을 로시안에게 건넸다.


묵직함이 느껴지는 검을 받으며 로시안은 천천히 검집에서 검날을 빼냈다. 스릉 하는 소리와 함께 쇠붙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으음?’


검을 유심히 들여다보던 로시안은 무언가 위화감을 느꼈다. 그는 벌써 검을 빼 들고는 적당히 자리를 벌리고 있는 병사들의 검을 살폈다. 그들의 것도 로시안의 것과 다르지 않았다.


‘검날이······.’


단검을 쥐어본 경험이 있는 로시안은 방금 병사에게서 받은 검의 날이 뭉툭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무래도 훈련용 검이라서 그런 듯했다.


대충 보아하니 살상력이 높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위험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그래도 날이 서 있지 않다는 것만으로 조금 마음이 편해졌다.


아무래도 날 선 검을 들고 휘두르는 것은 생각보다 심력을 소모했기 때문이었다.


병사들은 허공에 대고 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무언가 순서가 있는지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로시안은 일단 저 혼자 손 놓고 있기가 뭐해서 검을 휘두르다가 그만 몸의 중심이 기울어질 뻔했다.


‘······생각보다 무거워.’


지니고 다니기 편하게 단검만 사용해 봐서 그런지 장검이 이렇게 힘이 많이 드는 줄은 몰랐다. 아무 생각 없이 휘두르면 몸의 균형이 간단하게 무너졌다. 특히나 로시안은 아직 채 성장하지 못한 몸이라서 더 그런 것 같았다.


괜히 앞선 훈련 중에 체력 훈련이 있는 게 아니었다. 체력과 근력이 받쳐주지 않으면 제대로 중심을 잡고 휘두르는 것부터가 일이었다.


로시안은 일단은 휘두르는 것을 멈추었다. 무작정 휘둘러서 될 문제가 아니라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로시안이 검을 들고 가만히 서 있기만 하자 상관은 그가 포기한 것이라고 생각했는지 한차례 비웃음 비슷한 것을 흘리면서 로시안에게서 신경을 완전히 꺼버렸다.


그 덕에 아무런 제재 없이 로시안은 다른 병사들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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