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작가 서자가 다시 사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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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냑
작품등록일 :
2024.08.20 21:16
최근연재일 :
2024.09.10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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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6 2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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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19화

DUMMY

하마터면 욕지거리가 나올 뻔했다. 비록 피가 좀 튀었지만, 손의 감각만으로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너무 얕아.’


왜 아까 병사들이 한 번에 고블린을 처치하지 못했는지 알 것 같았다. 이 녀석들 보기에는 인간의 피부와 다를 게 없었는데 실제로 칼날이 들어가는 감각이 비교할 수 없이 묵직하다.


‘그리고 질겨.’


로시안은 칼날을 간신히 비틀었다. 다시 픽 하고 핏물이 튀었다. 얕기는 해도 날붙이다. 고블린이 고통스러운 신음을 흘렸다.


“캬아아아악!”


머리끝까지 열이 받은 얼굴로 비쩍 마른 팔을 마구 휘둘렀다. 로시안은 괜한 짓을 해서 분노를 산 것 같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는 서둘러 검을 회수했다. 쉭 하고 로시안의 볼에 손톱이 스쳐 지나갔다.


순식간에 하나둘 생채기가 생기기 시작했다. 그래도 무기가 있다는 안정감 때문일까 로시안은 위급한 상황에서도 지나치게 감정이 요동치지는 않았다.


그리고 나름 그동안 검 좀 휘둘러봤다고 자세를 잡는 것도 그다지 낯설지 않았다. 그덕에 로시안은 요행으로나마 어떻게든 고블린에게 일정 거리 이상의 간격을 허용하지 않고 있었다.


‘아벨루스의 덕분이라고 해야 하나.’


침착한 눈으로 흥분한 고블린이 마구잡이로 흘려대는 공격을 피했다. 그럴수록 고블린의 동작은 더더욱 감정적으로 그리고 단순하게 변했다.


하지만 아무래도 로시안의 운도 다한 모양이었다.


‘······!’


다리를 절면서 천천히 뒷걸음질을 치던 로시안은 미처 뒤의 움푹 파인 땅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그대로 중심을 잃고 말았다.


고블린이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발로 로시안의 다리를 뻥 들이찼다.


“윽!”


로시안의 몸이 거칠게 흙바닥을 굴렀다. 오른쪽 다리에 감각이 없는 기분이었다.


흙바닥에서 몸을 빠르게 일으키려고 했지만, 고블린이 어느새 올라타 발바닥으로 가슴팍을 세게 밟았다.


육중한 무게감이 느껴지자, 폐부가 강하게 압박되며 숨이 턱 막혔다.


“키키키.”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것처럼 고블린이 발바닥을 이리저리 쑤셨다. 여기서 조금만 힘을 더 주면 뼈가 부러질 것 같았다.


머리로 피가 잔뜩 쏠리는 기분이 들면서 당장이라도 눈알이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로시안은 잇새로 조금씩 침을 흘리면서 간신히 뿌옇게 변한 시야로 고블린을 찾았다.


즐거워 보이는 얼굴이었다.


마치 유린하듯이 질질 시간을 끌면서 고통을 주고 있었다. 그러다 로시안이 힘이 쭉 빠져 꼼짝도 못 하는 것 같자 고개를 갸웃하더니 심장을 향해 손톱을 세웠다.


“캬악!”


돌연 고블린이 거친 비명을 토해냈다.


정신을 잃은 줄로만 알았던 로시안이 검날을 고블린의 배때기에 박아 넣은 것이다. 촤악하고 피가 튀는 것이 이번에는 직전과는 전혀 다른 출혈량이었다.


“콜록.”


로시안은 흐릿해지는 초점으로 고블린을 쳐다봤다.


‘그렇게 가까이서 팔을 휘두르면 당연히 몸이 비잖아······.’


무언가를 알고서 한 일은 아니었다. 그냥 허여멀겋게 몸통이 텅 비어있었기에 온 힘을 다했을 뿐이다. 로시안은 거의 비틀거리면서도 조금씩 조금씩 더 힘을 주었다.


고블린의 몸에 파고들면서 로시안은 그 너머에 또 다른 돌도끼를 든 고블린 두 마리가 마침내 완전히 쓰러진 것을 발견했다.


병사들은 무어라 소리를 치면서 바로 이쪽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키잇?”


고블린 역시 상황을 파악했는지 안간힘을 쓰면서 로시안이 박은 칼날을 빼내려고 했다.


그대로 도망치게 놔둘 수는 없었다.


고블린이 뒤로 빠질수록 로시안은 손에 힘을 주고 계속 파고들었다.


어차피 이 상처면 낫지도 않으니까 도망쳐도 소용은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고블린은 발악을 하는 것인지 몸을 잔뜩 비틀다가 이내 결단을 내린 듯 양손의 손톱을 마구 세웠다.


“오빠! 안돼!”


멀리서 아이의 비명이 들려왔다. 달려오는 병사들의 발소리가 들렸지만 아마 손톱에 꼬챙이처럼 꿰어지는 것이 먼저일 터다.


‘혼자서 죽지는 않겠다는 건가.’


로시안은 그저 손에 든 검에서 힘을 빼지 않았다. 그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렇게 엄습하는 고통을 예감하면서 천천히 눈을 감으려던 찰나.


휙!


아주 깔끔하고 경쾌한 소리가 머리 위에서 떨어졌다. 그리고 툭, 퉁퉁하는 소리가 그 뒤를 이었다.


‘······응?’


생소한 소리에 로시안은 정신을 다잡으며 고개를 들었다. 눈으로 보이는 상황이 의심스러워 그는 눈꺼풀을 끔뻑였다.


고블린에게는 목이 없었다.


로시안은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머리를 잃은 고블린의 뒤에 서 있는 사람을 바라보았다.


“테, 테르베온 경?”


처음 보는 날카로운 얼굴을 한 테르베온이 그곳에 있었다. 로시안은 피가 뚝뚝 떨어지는 그의 검신을 보면서 그 끝에 떨어진 고블린의 머리통을 찾았다.


‘왜, 저게······.’


로시안이 멍한 얼굴로 깔끔하게 잘린 목의 단면을 바라봤다.


“공자님. 이제 손에 힘을 푸셔도 됩니다.”


그제야 로시안은 제가 여태 검을 쥔 손에 힘을 바짝 주고 있었던 것을 깨달았다. 파지법이 잘못되었는지 아니면 필요 이상의 힘으로 검을 밀어붙인 탓인지 손바닥이 마구 쓸려 따가웠다.


테르베온이 능숙하게 로시안의 검날에 박힌 고블린의 몸통을 가볍게 빼냈다. 힘겹게 들어갔던 것과 다르게 몸체는 스르륵 유유히 빠져나갔다.


테르베온은 곧 고블린의 몸을 쓰레기 버리듯 아무렇게나 던져 놓았다.


“테르베온.”

“죄송합니다, 도련님. 너무 늦었습니다.”

“뭐가 어떻게 된 거지?”

“그것이······.”


어느새 가까이 다가온 아벨루스와 테르베온의 대화를 멍한 눈으로 듣고 있던 로시안은 돌연 머리가 울리는 것 같은 기분과 깊은 탈력감에 그대로 고개를 뒤로 젖혀 쓰러졌다.


“고, 공자님!”


쿵 소리가 나자 테르베온이 깜짝 놀란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 로시안은 끔뻑 눈을 깜빡이며 말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테르베온이 고블린의 목을 제때 베어준 덕에 살아남은 모양이었다. 도대체 어떻게 장정 넷이서도 한참을 힘겨루기했던 고블린의 목을 단칼에 무 자르듯 벨 수 있었는지는 차치하고서 로시안은 생각했다.


‘사, 살았다······.’


깊은 안도감이 밀려들어서 그는 뱃속에서부터 흘러나오는 숨을 내뱉었다.


***


테르베온의 이야기는 대충 이랬다.


아벨루스의 지시에 따라 혹여나 남아있을지 모를 마물의 흔적을 찾아 나선 그는 곧 한차례 기사단에 의해 파괴된 고블린의 서식지를 발견했다. 기사단의 보고대로 그곳에서는 살아남은 마물의 모습은 없었다.


하지만 곧 그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장소에서 생긴 지 얼마 안 된 흔적을 발견했는데 흙바닥에 난 발자국으로 그것이 살아남은 고블린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어디서도 고블린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서둘러 마을로 돌아온 짧은 사이에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이다.


“죄송합니다. 다 제 불찰입니다.”


테르베온은 진심으로 면목이 없다는 투로 말했다. 그는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마냥 네 잘못이라고만은 할 수 없지.”


아벨루스가 한데 모아둔 세 마리의 고블린 시체를 보면서 말했다.


“애초에 기사단이 제대로 섬멸하지 못했으니까.”


로시안은 땅바닥에 누운 채 몸에 난 상처를 치료받는 손길을 느꼈다. 그 역시도 아벨루스의 말에 동의했다.


아벨루스가 이 마을을 다시 찾아오지 않았다면, 그래서 한 번 더 테르베온에게 주변의 정찰을 맡기지 않았다면 언제고 그 고블린들은 다시 태세를 정비해서 마을에 내려왔을 것이다.


로시안은 조금 전 저를 가지고 놀 듯이 유린하던 고블린을 떠올렸다. 도구도 사용하고 약아빠진 구석이 있는 것이 꽤 영리해 보였다.


그러자 의문이 들었다.


왜 그 고블린들은 도망가지 않고 마을을 습격한 거지?


그의 의문은 금방 풀렸다.


“아무래도 기사단이 물러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돌아온 흔적이 그리 오래되지는 않았습니다.”

“고작 셋뿐인 고블린이 뭘 하겠다고?”

“기사한테는 문제도 아니지만 일반 사람에게는 한 마리도 위협적이니까요. 약탈이나 복수가 목적이었겠죠.”

“그래서 그대로 다시 마을을 습격한 것이다?”


테르베온이 고개를 끄덕였다.


“근처에서 동족들이 죽은 모습을 보고서도 멀리 떠나지 않았던 놈들입니다. 복수심이 강했던 게 아닐까 싶습니다.”


고작 고블린 세 마리. 다시 세를 불리기도 그리 쉬운 상황이 아니었으니 한 사람이라도 더 길동무로 데려가려던 심산이었던 걸까. 기사한테는 안 될 것 같으니 마을 사람들을 노려서?


고블린의 심리를 파악할 재주는 없었으니 대충 그렇게 생각을 마무리 지었다. 어찌 되었든 마을 사람을 포함해 아벨루스의 일행 중에서도 죽은 사람은 없었으니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래도 크고 작은 상처를 단 사람은 몇몇 보였다. 로시안은 조금 전 돌도끼에 맞아 검을 날려버린 병사가 마을 사람들의 도움을 받으며 머리에 약초를 바르고 있는 모습을 발견했다.


‘······그중에서 내 모습이 제일 엉망이긴 하지만.’


로시안이 바닥에 쓰러지자마자 정신을 잃은 줄 알고 아이가 놀라서 뛰어왔다. 옆에서 얼마나 엉엉 우는지 멍한 기분이 금방 돌아올 정도였다.


아이는 로시안이 가볍게 치료를 받는 지금도 옆에서 꼭 붙어 떨어지지 않고 있었다.


“이 일은 어떻게 보답하면 좋을지······.”


아이의 부모는 고마우면서도 미안한 얼굴로 로시안의 곁에서 정성을 다해 다리에 약초를 으깨서 발라주고 있었다.


“마리. 감사 인사는 드렸어?”

“오빠, 고마워!”


고블린이 죽어서 안심이 됐는지 아이는 눈물자국을 볼에 가득 묻히면서도 밝게 웃었다. 아까 공포에 빠져 그렇게 울고불고했으면서 벌써 괜찮아졌나 보다. 로시안은 어처구니가 없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웃기는 기분이 들어 픽 웃음을 흘렸다.


“어? 오빠 웃었다.”


그러자 아이는 아주 신기한 물건을 보듯이 로시안의 입꼬리를 쳐다봤다.


“뭐야, 웃으니까 훨씬 사람이 밝아 보이잖아!”


그러고는 방방 뛰자, 로시안은 공연히 머쓱해졌다. 다행히 아이의 부모가 엄하게 아이를 자리에 앉혀 소란은 금세 가라앉았다.


크고 작은 생채기에 약초를 바르고 출혈이 다른 데 비해 많았던 발목에는 천까지 감았다. 폐부가 압박돼서 타박상이 생겼는데 웃통까지 벗기는 뭐해서 약초만 넘겨받았다. 나중에 혼자서 바를 생각이었다.


그렇게 대략 치료가 마무리되자 테르베온이 다가왔다.


“몸은 좀 어떠십니까?”

“음. 살짝 따갑거나 통증이 있긴 하지만 큰 이상은 없는 것 같아요.”


로시안이 팔다리를 이리저리 움직여보면서 말했다. 테르베온이 유심히 그의 몸 상태를 살피면서 곧 안도하는 얼굴을 했다. 당장 큰 문제는 없는 것이라 판단한 듯했다.


그대로 시선을 돌리려는데 그 곁에서 가만히 그를 내려다보는 아벨루스와 눈이 마주쳤다.


‘음.’


아벨루스가 제 몸을 훑자, 로시안은 영 어색한 얼굴로 목덜미를 쓰다듬었다.


‘이거 아무래도 내 쓸모는 어느 정도 찾았냐고 물어볼 상황은 아니겠지?’


사실 이 시찰에 따라나선 데는 그 목적이 가장 컸던지라 아쉬웠다. 언제까지 시험이 계속되는 것일까.


그런데 돌연 아벨루스가 입을 열었다.


“레다폴로 돌아가면 바로 사제를 찾아가십시오.”

“응?”


로시안은 눈을 크게 떴다.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나 싶었던 것이다.


그의 안에서 사제에게 치료받는 일은 영 생소한 일이었다. 일반적인 평민은 가벼운 상처 정도는 치료사를 찾아가거나 방금처럼 약초를 바르면서 해결했으니까.


“그냥 가벼운 상처인데?”

“조금 전 폐부를 압박당하지 않으셨습니까. 방치해두었다 그대로 자는 듯 죽고 싶으면 상관하지는 않겠습니다.”


무심한 얼굴로 그렇게까지 말하니 조금 무섭기는 했다. 하긴, 그동안 살면서 고블린한테 짓밟혀본 적은 없었으니까 혹시라도 나중에 문제가 생길 수 있을지도 몰랐다.


병에 걸려본 적은 없는 몸이지만 마물을 상대해 본 것은 또 처음이니까. 가진 게 건강한 몸뿐인지라 이것마저 잃을 수는 없었다.


로시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그렇게 할게.”


대답을 들은 아벨루스는 말없이 팔짱을 끼었다.


“저, 저기······.”


그러자 로시안을 치료하느라 가까이서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마을 사람이 눈동자를 황망하게 굴리며 로시안을 불렀다.


“호, 혹시 뭐 하시는 분인지. 병사님이 아니었습니까?”


‘아.’


로시안은 조금 전 아벨루스가 자신에게 말을 높이고 자신은 아벨루스에게 말을 낮추었던 것을 생각해 냈다.


아이의 부모가 혼란스러운 얼굴로 로시안과 아벨루스를 번갈아 가면서 쳐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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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18화 24.09.05 70 1 13쪽
17 17화 24.09.04 61 2 13쪽
16 16화 24.09.03 66 2 13쪽
15 15화 24.09.02 75 3 13쪽
14 14화 24.09.01 92 4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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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12화 24.08.30 104 3 13쪽
11 11화 24.08.29 114 3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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