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작가 서자가 다시 사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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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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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20 2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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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9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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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11화

DUMMY

이내 로시안은 작게 심호흡을 하면서 마음을 가라앉혔다. 침착하게 생각해 보면 문제 될 것은 조금도 없었기 때문이다.


로시안은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얼굴을 만들려고 노력하면서 말했다.


“그건 이미 저번에 다 설명해 줬잖아.”


아벨루스의 의심은 사실 지극히 타당한 것이었다. 성에서 고립된 거나 마찬가지인 상황에서 이토록 내밀한 선생의 비밀을 누구보다 빨리 알아차린 이유를 설명하는 것은 지금 생각해도 상당히 곤혹스러운 일이었다.


그렇기에 그는 약간의 진실과 과장된 거짓을 섞어 말했다.


선생의 기분이 유독 오락가락하는 시기가 있다는 것, 그 시기가 끝나면 유난히 관대해진다는 것과 그럴 때면 눈에 띄지 않는 부분에서 봉급 이상의 고가의 치장, 이를테면 반지와 장신구 같은 것들이 달라진다는 것 등등.


그리고 그 정도로는 납득이 어렵다고 생각했다. 확실히 제가 생각하기에도 지나치게 구멍이 많고 빈약한 설명이었으니까.


그렇기에 그는 예전에 상단 사람들과 대화를 나눈 경험, 불법 사업에 손을 댄 사람들의 특징을 적절히 섞어 이야기를 꾸며내기까지 했다.


로시안이 이를 악물고 글을 배우려고 했던 데에는 그가 제공하는 정보의 출처와 근거가 너무도 불확실하다는 이유도 있었다. 하지만 믿는 구석이 조금도 없는 것은 아니었다. 비록 도박수였지만 로시안은 아벨루스의 꼼꼼함을 믿었다.


성의 객식구의 헛소리를 진지하게 들을 필요는 없었다. 그렇지만 거슬리기는 했을 것이다. 조사해 봐서 나쁠 것은 없다. 사실이라면 좋고 사실이 아니라도 피해를 보는 일은 없었다. 그저 본래도 마음에 들지 않던 객식구가 조금 더 혐오스러워질 뿐이다.


‘그래, 겨우 내가 좀 더 싫어지면 끝인 이야기지.’


로시안 역시 아벨루스가 정말 자신의 근거를 다 믿지는 않을 거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딱히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닐 터다. 그야 로시안의 뒤를 아무리 캐보아도 나오는 것은 없을 테니.


아벨루스가 로시안이 미래를 꿈꾸었다는 사실을 알아내지 않는 이상 그 의문이 풀리는 일은 요원했다.


그렇기에 로시안은 조금 더 뻔뻔하게 굴기로 했다. 어차피 제가 무슨 말을 하든 상대를 완전히 납득시키는 것은 힘들 것이다. 다만, 중요한 건 결국 로시안의 말이 맞았다는 데 있었다.


그는 꿀릴 것 하나 없다는 얼굴로 아벨루스의 눈길을 피하지 않았다. 비록 등허리는 식은땀으로 축축하게 젖어 들고 있었지만.


“자자, 결과가 좋으면 된 것 아니겠습니까.”


정적이 길어지자, 테르베온이 분위기를 풀 겸 아벨루스의 눈치를 슬쩍 보면서 나섰다.


“덕분에 큰 도움을 받았잖습니까. 왜 애써 도와주신 로시안 공자님을 나무라고 그러세요.”

“······큰 도움이 됐나요?”

“그렇고 말고요. 도련님께서 가신들이 보는 앞에서 칼루이덴 님께 한 방 먹이셨습니다. 좋은 정보가 빠르게 손에 들어온 덕이죠. 도련님도 무척 만족하셨습니다.”


그 말에 아벨루스가 테르베온을 곁눈질로 노려보았다. 쓸데없는 소리 말라는 기세가 느껴졌지만, 테르베온은 못 본 건지 모르는 척하는 건지 계속 말을 이어 나갔다.


“만일 외부에서 먼저 이 문제를 알아차렸다면 트레덴스 백작가가 공격당할 수 있는 문제였으니까요. 그 빌미를 어쨌거나 칼루이덴 님이 제공한 것이고 이를 사전에 차단해 버린 도련님께 가신들이 좋은 소리를 낼 수밖에 없을 테지요.”

“그렇다면 그건 후계자 싸움에서 유리하게 작용하나요?”

“그럼요. 한 번에 뒤집어엎을 수 있는 것은 당연히 아니지만 이런 일이 쌓이다 보면 가신들의 신뢰가 쌓일뿐더러 도련님의 능력은 높이 사고 반대로 칼루이덴 님의 능력을 의심하는 이들이 나올 겁니다.”


그리고 아마 명분이 되겠지. 로시안은 속으로 생각했다.


세세한 내부 경쟁 관계와 알력의 내용까지는 잘 알지 못했지만, 귀족들에게 있어서 명분이라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는 성에서 지내면서 잘 알고 있었다.


이런 일 하나하나가 서로를 공격하는 명분을 만들게 되는 것이다.


“테르베온.”

“아이쿠, 입이 방정이었네요.”


결국 아벨루스가 한 소리 하게 만들었지만 테르베온은 조금도 겁먹지 않은 투로 능청스럽게 굴었다. 그러면서 오히려 면박을 주듯 덧붙이기까지 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도련님은 로시안 공자님께 한 소리 하시려고 부르신 겁니까?”


테르베온이 생글생글 웃으며 아벨루스를 쳐다봤다.


그에 아벨루스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고서는 맥이 빠졌는지 등받이에 몸을 기대고서는 좀 전보다 예기가 사라진 눈으로 로시안을 바라봤다.


“마음에 걸리는 게 없는 건 아니지만, 당신이 준 정보는 분명 도움이 됐습니다.”

“······그럼!”

“하지만 저번에도 말했다시피 그것만으로 당신의 쓸모를 증명하기는 어렵습니다.”

“나, 이제 글도 읽을 줄 알아! 아직 엄청나게 유창한 건 아니지만 금방 그렇게 될 거야.”

“그건 당신이 멋대로 한 행동이잖습니까.”


로시안은 입을 다물었다. 그 말이 사실이기 때문이었다.


로시안은 혼란스러워졌다.


그럼 아벨루스는 자신을 왜 부른 것이지? 그냥 말 그대로 네 말은 사실이었다. 도움이 됐다. 그러니 이제 쓸모를 다했으니 썩 나가라.


이럴 생각이었던 건가?


“······.”


당혹스러워하는 로시안을 조용히 바라보던 아벨루스가 나직이 입을 열었다.


“······정말 진심으로 제 편에 서려는 겁니까?”

“응.”

“그게 무슨 뜻인지 제대로 알고서 하는 말은 맞고요?”

“응. 숙부님을 척지게 된다는 거잖아.”

“제가 패배하면 죽음뿐입니다.”

“그건 상관없어.”


왜냐하면 어차피 아벨루스가 살아남지 못하면 로시안 역시 죽음을 모면하기 힘들 것이기 때문이었다. 대답을 들은 아벨루스의 눈동자가 살짝 흔들렸다. 그는 생각이 많아지는 얼굴로 정말 이상한 사람 보듯 로시안을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잠시간 침묵하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솔직히 저로서는 당신을 완전히 믿을 수 없습니다.”


그 점은 이해할 수 있었기에 로시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 확인해 보고 싶습니다. 당신이 진심으로 하는 말인지 아닌지.”

“얼마든지.”


로시안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아벨루스가 무슨 말을 하더라도 진실되게 답변하고 행동할 자신은 충분했다.


로시안은 과연 그가 무슨 말을 할지 기다리면서 침을 삼켰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아벨루스가 나직하게 입을 열었다. 이야기를 들은 로시안은 눈을 휘둥그레 뜰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이 조금도 예상치 못한 것이기 때문이었다.


***


로시안이 떠나가고 아벨루스는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듯 책상을 손가락으로 두드렸다. 그는 오늘 회의를 끝마치고 난 이후의 일을 상기하고 있었다.


한 방 먹은 칼루이덴이 불쾌한 기색을 숨기지 않고 먼저 자리를 뜬 이후 그 역시 집무실로 돌아가기 위해 회의장을 나가려던 찰나였다.


“아벨루스 공자님.”

“······고드릭.”

“선생의 밀수. 그 정보는 어디서 들으신 겁니까?”


아벨루스는 문으로 향하던 몸을 돌려 고드릭을 빤히 쳐다봤다. 그의 생각을 가늠하기 위해 금안이 미세하게 움직였다.


“로시안 공자님입니까?”

“······.”

“역시 그렇군요.”


아벨루스는 눈매를 좁혔다. 그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건만 이미 고드릭은 확신을 가진 상태였다.


“알고 계십니까? 로시안 공자님께서 최근 도서관을 자주 들르십니다.”

“······그게 어쨌다는 말씀이죠?”


몰랐던 사실이었으나 아벨루스는 여상하게 말을 받았다.


“일주일 정도 된 이야기입니다. 마치 자신에게 선생이 없어질 것임을 예감하기라도 한 것인지 홀로 공부하고 있더군요. 그리고 오늘 칼루이덴 님께서 데려온 교육 선생의 죄를 공고히 하는 회의가 있었습니다. 꽤나 시기가 공교롭다고 생각되지 않습니까.”

“······그렇군요.”

“그다지 놀랍진 않으신가보군요.”


고드릭은 중얼거리듯 말했다.


“그렇다는 건 글을 배우는 것도 아벨루스 공자님과 모종의 이야기가 오갔던 내용인 모양이겠죠.”

“금방 나가떨어질겁니다.”

“아뇨. 그건 아니었습니다.”


고드릭이 단호히 부정했다. 아벨루스는 한쪽 눈썹을 치켜뜨면서 그를 바라봤다.


“솔직히 공부머리가 빼어난 편은 아니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일평생을 평민으로 살아온 분 아닙니까. 갑자기 앉아서 공부하려니 쉬운 일은 아니겠지요. 보는 사람이 답답해서 절로 도와주게 되더군요. 그런데도 좀 느립니다. 하지만 포기하지는 않더군요.”

“······하고 싶은 말이 뭐죠?”

“마치, 하루아침에 사람이 달라진 것 같지 않습니까.”


그 점에는 아벨루스 역시 동의하는 바였기에 아무 말도 얹지 않았다.


“그 이유가 뭘까요.”

“글쎄요.”


고드릭과 마찬가지로 아벨루스 역시 그 점이 거슬리고 신경 쓰이긴 했으나 고드릭처럼 흥미가 생긴 것은 아니었다.


고드릭 역시 그에게서 대답을 들을 수 있을 거란 기대는 없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대충 아벨루스에게 들을 말은 다 들었다고 여긴 것 같았다.


그에 가만히 대화를 듣고 있던 테르베온이 고드릭에게 물었다.


“고드릭 님. 그럼 지금 로시안 공자님의 공부는 고드릭 님께서 봐주고 계신 겁니까?”

“그렇네.”

“이거 듣고도 믿기지가 않군요. 고드릭 님께서 직접 나서시다니·····.”

“아까 말했잖은가. 공부하는 꼴을 보면서 속이 터지는 줄 알았네. ”


그는 콧방귀를 뀌면서 질린다는 얼굴로 고개를 내저었다. 그러다 곧 햇살이 들어오는 밝은 창을 내다봤다.


“하지만 그뿐만은 아닐지도 모르겠군.”

“예?”

“······보면 볼수록 정말, 많이 닮았어. 그래서, 나도 모르게 도와주게 되었는지도 모르지.”


그렇게 말하는 그의 눈동자는 과거를 헤매듯 순간 온갖 감정으로 탁해졌다. 그 눈빛이 무슨 의미인지 알 것 같아 아벨루스는 순간적으로 주먹을 강하게 쥐었다.


“······도련님?”

“······.”


테르베온이 부르는 목소리에 아벨루스는 순식간에 상념에서 깨어났다. 핏줄이 서도록 주먹을 움켜쥔 제 손이 보였다.


“어쩐 일로 생각이 다른 데 가셨습니까?”


아벨루스는 그의 말을 무시하듯 숨을 고르면서 눈을 감았다. 테르베온은 익숙하게 대화를 다른 방향으로 이끌었다.


“그보다 진심이십니까?”

“뭐가.”

“그, 로시안 공자님께 하신 말씀 말이에요.”

“······.”

“혹시 아무 말이나 막 던지신 거 아닌가 해서요. 나가떨어지길 기대하시는 거죠?”

“그럼 나쁘지 않지.”

“아, 역시!”


테르베온이 질책하듯 말했다.


“어쩐지 이상하다고 생각했어요. 고드릭 님께서 하신 말씀 때문이죠? 도련님 기분 안 좋다고 아무렇게나 풀면 어떡합니까. 로시안 공자님은 진심으로 믿을 텐데요.”

“알 게 뭐야.”

“으, 성격이 너무 나쁜 거 아닌가요.”


아벨루스가 테르베온을 빤히 쳐다봤다. 할 말이 있으면 더 해보라는 얼굴이었다. 이 이상 깐죽대면 안 된다는 걸 잘 알고 있는 테르베온은 입을 합 다물었다.


그에 아벨루스가 여상한 얼굴로 말했다.


“애초에 트레덴스의 피를 이었다면 한 번쯤은 겪어야 할 일이잖아.”


그 말에 테르베온은 속으로 진짜 그렇게 생각하지도 않으면서 이럴 때만 잘 갖다 붙인다고 생각했지만 딱히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다.


대신 보다 논리적인 이유를 들면서 반박했다.


“그렇다면 제대로 된 사람을 붙여주는 게 트레덴스의 전통 아닌가요.”

“그러니까 시험이지.”

“불쌍한 로시안 공자님.”

“그럼 그렇게 말하는 테르베온 경, 자네가 맡을 건가?”


아벨루스는 한 번 해보라는 투로 권유하듯 말했다. 하지만 테르베온은 냉큼 고개를 내저었다. 이 이상 아벨루스의 심기를 건드릴 생각은 없었다.


아벨루스는 그러면 그렇지 하는 얼굴로 다시 서류에 집중했다.


***


로시안은 고개를 두리번거리면서 성문으로 향했다. 여기까지 오는 건 처음이었다. 그는 성에 들어선 이래로 성 밖으로 나선 적이 없었다. 미래에서 아예 이 영지 레다폴을 떠날 때를 제외하고는 말이다.


로시안이 홀에 들어서자 지나다니는 고용인들이 깜짝 놀라는 모습이 보였다. 로시안은 도로 방으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여기를 통해야만 밖으로 나갈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최대한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으면서 성문을 나섰다. 그러자 넓은 정원이 눈에 들어왔다. 숨을 들이켤 정도로 아름다운 모습이었지만 로시안의 눈에는 영 들어오지 않았다.


그는 곧바로 발을 재게 놀렸다. 그렇게 좀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기자 곧 그는 목적지에 다다를 수 있었다.


로시안은 떨리는 속을 가다듬으면서 천천히 사람들이 모여 있는 연무장에 발을 들여놓았다.


그가 모습을 드러내자, 스무 명 좀 안 되어 보이는 사람들의 시선이 로시안에게로 몰렸다. 한순간에 시선이 집중되자 로시안은 따스한 날씨에도 몸이 차가워지는 것을 느꼈다.


‘아벨루스, 이게 맞는 거야?’


로시안은 울 것 같은 기분이 되어 속으로 물었다.


그를 기다리고 있는 이들은 성의 병사들이었다. 그리고 오늘부터 로시안은 이들과 함께 훈련을 받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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