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작가 서자가 다시 사는 법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검냑
작품등록일 :
2024.08.20 21:16
최근연재일 :
2024.09.10 20:25
연재수 :
23 회
조회수 :
2,594
추천수 :
66
글자수 :
136,230

작성
24.09.10 20:25
조회
31
추천
3
글자
13쪽

23화

DUMMY

로시안은 그가 왜 저러나 싶어서 눈을 끔뻑거렸다. 그러자 고드릭이 한쪽 눈썹을 치켜세우고서는 물었다.


“글공부는 끝난 것이 아니었습니까?”

“예?”


이게 무슨 뜬금없는 소리냐, 생각하던 로시안은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그를 바라봤다.


“내기는 끝난 것이 아닌가요?”


로시안은 도대체 그가 왜 저런 오해를 한 건지 어리둥절하다가 곧 그의 입장이 되어봤다. 글공부는 아벨루스와의 내기로 인한 것이라 말하고 곧바로 테르베온을 따라나섰다. 그 이후로 뚝 발걸음을 끊어버린 것이다. 게다가······.


“병사들과 훈련을 받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래, 고드릭이라면 충분히 로시안이 뭐 하고 지내는지 정도는 알았을 것이다. 그러니 그는 로시안이 아벨루스와의 내기가 다음 단계로 넘어갔다고 여기고 있는 것 같았다.


로시안은 당황한 얼굴로 열심히 해명했다.


“전혀 아닙니다! 애초에 두 개는 별개의 일인걸요.”


그럼에도 고드릭의 얼굴에는 의아한 기색이 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실제로 공부를 하지 않았잖습니까?”

“그, 그건······!”


로시안은 해명을 하기 위해 입을 급하게 열었다.


“까, 까먹는 바람에······.”

“예?”

“훈련에 집중하느라······ 글공부하는 것을 완전히 잊어먹었습니다······.”


끝으로 갈수록 말이 점점 흐려졌다.


말하고 나니 이거 완전히 멍청한 사람 아닌가 싶었던 것이다. 누가 봐도 공부하기 싫어서 하는 변명 같은 말 아닌가.


하지만 그게 사실이었다. 제가 생각해도 어떻게 그렇게 완벽하게 잊었는지 알 수 없었다.


“까먹, 아······ 예······.”


고드릭도 똑같은 생각을 했는지 이해가 안 된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로시안은 귀가 뜨거워지는 것 같았다.


“뭐, 그럴 수도 있겠죠.”


전혀 그럴 수 없다는 투로 그가 말했다.


잠시 두 사람 사이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


처음에 살짝 예상과 다른 반응 때문에 어색해질 뻔했지만 어떻게 분위기는 잘 풀어지고 있었다.


일단 고드릭이 아무렇지 않게 먼저 대화를 걸어주었기 때문이다.


“제 평생에 공자님 같은 분은 정말 처음입니다. 매번 저를 놀라게 만드시는군요.”

“······.”

“아, 혹여나 오해하지 마십시오. 그 어떤 의미도 없이 정말 놀랐다는 말이니까요.”


그와 나누는 대화가 오랜만이라 그런가, 고드릭의 말이 자꾸만 뼈에 사무쳤다. 그의 귀에는 자꾸 그 말이 이런 멍청이는 살면서 처음 본다는 의미로 들렸다.


하물며 이미 고드릭에게는 몇 차례에 걸쳐 익히는 속도가 느린 편이라고 들어왔지 않은가.


“한 가지 일에 집중하면 다른 일은 홀라당 잊어버리다니······. 그게 가능하다니······.”


로시안의 어깨가 한없이 쪼그라들었다. 이전부터 느꼈지만 고드릭의 말은 악의가 없어서 더 아팠다.


하지만 얌전하게 그의 말을 맞으면서 생각해 보니 알게 모르게 조금 억울한 것도 있었다. 비록 제 잘못이 크기는 했지만, 그만큼 훈련을 따라가느라 정말로 힘들었던 것은 조금도 고려하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굳이 따지자면 로시안 역시 말하고 싶은 게 있었다.


“그러는 고드릭 님이야말로······!”


로시안이 은근히 고개를 들면서 불퉁한 투로 말하자 고드릭이 한쪽 눈썹을 들어 올렸다. 할 말이 있으면 말해보라는 얼굴이었다.


“그, 가신이라고, 그것도 원로라고 말 안 하지 않았습니까.”

“안 물어보지 않으셨습니까.”

“하지만······!”


마구 따지려던 로시안의 말을 고드릭은 단칼에 끊어냈다. 그러고는 역으로 이렇게 묻는 것이 아닌가.


“그러면 그동안 공자님께서는 제가 누구라고 여기고 있었기에 안 물어보신 겁니까?”


순간, 머릿속에 테르베온과 나눈 대화가 떠올랐다. 고드릭을 도서관 관리인이라고 생각했다고 하자 그의 어처구니없는 얼굴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


절대로 지금 고드릭에게 도서관 관리인이란 말을 꺼내선 안 된다. 직감적으로 그런 확신이 들었다. 여기서 더 한심하게 여길 것 아닌가.


로시안이 입을 꾹 다물고 있자 고드릭이 고개를 한 번 내저었다.


“뭐, 대충 알 것 같군요. 도서관에만 처박혀 있으니 사서 비슷한 것으로 착각했을 수도 있지요.”


하지만 말하지 않는다고 모르는 건 아닌 모양이다. 로시안의 침묵은 그 자체로 정답을 알려주는 꼴이나 다름없었다.


때문에 로시안은 자신이 고드릭에게 속았다! 라고 따지는 것도 할 수 없게 되었다. 곧 고드릭은 이 주제에 쐐기를 박았다.


“애초에 제가 누구인지가 뭐 그렇게 중요합니까.”


고드릭이 심드렁한 얼굴로 말했다.


“제가 누구인 줄 안다고 해서 공부가 더 잘되는 것도 아닐 텐데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로시안은 그가 가신이라는 데서 오는 일말의 어색함이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그는 처음 도서관에서 글을 알려줬을 때와 조금도 다르지 않은 태도로 로시안을 상대했다.


그게 왠지 낯익고도 편했다.


그렇기에 로시안도 금방 그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늘어놓을 수 있었다.


병사 훈련을 받고 아벨루스와 마을 시찰을 나가서 고블린과 조우하고 사제까지 만나고서야 어젯밤에 성으로 돌아온 그 일련의 이야기를 잔뜩 떠들었다.


잠자코 이야기를 듣고 있던 고드릭이 고블린과 대치했다는 부분에서 크게 놀랐다.


“공자님께서 상대하셨다는 말씀입니까?”

“아뇨, 저는 그냥 도망 다니느라 바빴고 테르베온 경께서 한 번에 목을 베어냈습니다.”

“그 테르베온 경이 오기 전까지는 상대하신 거잖습니까.”


굳이 따지자면 그렇게 되기는 했다. 비록 로시안 본인은 상대라는 거창한 의미로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이제 겨우 7일 정도 훈련받으신 것 아닌가요?”

“네.”

“대단하군요.”


고드릭이 순수하게 자신의 실력을 칭찬하는 말을 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로시안은 그 정도의 일인가 싶어서 눈이 커졌다.


“하지만 저는 고블린의 살갗을 겨우 뚫었을 뿐인걸요?”

“예, 그래서 대단하다는 겁니다.”

“······? 그런가요?”

“다른 병사 넷이서 고블린 두 마리를 겨우 잡았다고 말씀하셨잖습니까.”

“네.”

“마물이란 본디 그런 생물입니다. 보통의 인간은 한 명이 한 마리를 제대로 잡아내기도 힘듭니다.”

“하지만 테르베온 경께서는 손쉽게 잡아내셨습니다.”

“그러니까 기사지요. 당연히 일반 사람이나 병사와는 다릅니다.”


기사들이 대단하다는 이야기는 여관에서 지내면서 들은 게 있어 잘 알았다. 상단은 제대로 된 기사 하나를 영입하려고 돈과 정성을 들이다 못해 난리를 쳤으니까.


하지만 그 위력의 대단함을 실제로 두 눈을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그런 서글서글한 얼굴로 흔들림 없이 그 단단한 목을 베어내다니.


“그러니 고작 검을 잡은 지 7일밖에 안 된 공자님께서 고블린의 살을 뚫은 것만으로도 충분히 대단한 일입니다.”

“음······.”


고드릭이 스스럼없이 감탄하니 그건 그것대로 어색했다.


“하지만 고블린이 남아있었다니 위험했군요.”


고드릭이 미간을 구기면서 팔짱을 꼈다.


“이런 일이 흔히 일어나나요?”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글쎄요. 굳이 따지자면 일어나지 않게 해야 했는데 말이죠.”

“기사단이 처리했다고 들었는데 그들도 예측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보통은 그래서 토벌을 나가면 며칠 그 주변에 상주합니다. 안 그래도 이번에는 좀 이상하다 싶긴 했습니다.”

“이상하다니요?”

“기사단이 토벌에서 돌아오는 게 좀 이르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렇다는 건 기사단이 허투루 일 처리를 했다는 뜻인 건가?’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고드릭이 무언가 생각하는 듯하더니 영 마음에 들지 않는지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래도 백작님께서 쓰러지시고 기강이 해이해진 것이 아닌지 우려되는군요.”


어딘가 짐작이 가는 구석이 있는 말이었다. 백작이 거론되는 순간 로시안은 이 주제에 대해 더 말을 얹기가 힘들었다.


돌연 고드릭이 이렇게 말했다.


“공자님은 앉아서 공부하기보다는 몸 쓰는 일에 더 소질이 있으신 것 같은데. 차라리 기사를 노려보시는 것은 어떠십니까.”

“예에?”

“어차피 자신의 쓸모를 증명하고 싶으신 것 아닙니까. 기사라면 충분히 증명하고도 남습니다.”


전혀 생각지 못했던 갑작스러운 제안에 로시안은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그가 자신에게 농담을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의외로 고드릭은 진지한 투가 아닌가.


“뭘 그렇게 새삼스러운 얼굴을 하십니까. 애초에 트레덴스 가는 무가입니다. 기사를 목표로 하는 것이 그리 이상한 일도 아니죠.”


맞는 말이다. 조부인 백작도 우수한 무인이고 사람들 경칭을 통해 친부 역시 기사였던 것으로 알고 있다.


“어······.”


하지만 요 며칠 훈련을 받으면서 검도 휘둘러 봤지만, 근본적으로 검이란 무릇 쉽게 익힐 수 없다는 뿌리에 박힌 개념 때문인지, 아니면 미래의 기억 때문인지 로시안은 기사가 될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는 당연하게도 자신에게 검술의 재능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마법의 재능을 꿈꾸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생각해 보니까 이것 역시도 숙부의 영향이 큰 건가.’


로시안은 미래의 기억을 끌어오자 저리기 시작한 팔목과 부러진 다리, 피멍이 든 배의 고통이 밀려오는 듯해 몸을 잘게 떨었다.


로시안이 소극적인 태도를 취하는 모습을 보이자 고드릭이 한숨을 내쉬면서 등받이에 기댔다.


“강요는 아닙니다. 스스로가 원치 않으면 어쩔 수 없죠.”

“······.”

“하지만 그 자리에 분명 아벨루스 공자님도 계셨다 말씀하지 않았습니까.”

“네, 그렇죠.”

“제가 만약 아벨루스 공자님이었다면 충분히 로시안 공자님을 기사로 만들 생각 정도는 했을 겁니다.”


하지만 고드릭은 곧 턱을 매만지며 중얼거렸다.


“음. 물론, 아벨루스 공자님이 감정적으로 굴지 않으신다면 말이죠. 이 부분은 확신이 안 서는 군요.”


그가 덧붙인 말이 무슨 의미인지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하지만 고드릭은 그 이상 이야기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아벨루스가 감정적으로 군다는 게 무슨 말일까. 로시안의 눈에 아벨루스는 언제나 냉정해 보였다. 바로 어제까지만 해도 갑작스러운 고블린의 습격에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는 침착함을 보여주었다.


비록, 생각지 못하게 조금 의외의 모습을 시찰을 도는 동안 보긴 한 것 같지만. 그래도 기본적으로 로시안에게 아벨루스는 어려운 존재였다.


어제의 일을 떠올리자 로시안은 문득 고드릭에게 묻고 싶은 것이 생겼다.


“저, 고드릭 님.”

“네.”

“혹시 이 목걸이를 아십니까?”


그는 옷 속에서 목걸이를 꺼냈다. 고드릭이 시선을 집중하며 유심히 목걸이를 살폈다.


생각해 보니 고드릭은 고대어를 설명해 주면서 마법에 관한 것도 덧붙여 말해주었었다. 책도 많이 읽는다고 했고 아는 것도 많은 것 같았으니 혹여나 이 목걸이에 대한 것도 알지 않을까 싶었던 것이다.


비록 사제가 주의를 주긴 했지만, 고드릭이라면 믿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음?”

“······! 혹시 뭔가 아시나요?”

“어디서 본 건가 했더니.”


고드릭이 목걸이에 대해 알고 있는 것처럼 말하자 로시안의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그는 귀를 잔뜩 기울였다.


“로디시온 님께서 종종 착용하고 계셨던 물건이로군요.”


로디시온······. 로디시온이라면······.


“제 친부께서 말인가요?”

“네. 본래 이런 거추장스러운 장신구는 잘 안 하시는데 어느 순간부터 가끔 착용하시더군요. 그래서 기억이 납니다.”


설마하니 여기서 친부의 이야기가 나올 줄은 몰랐기에 로시안은 당황했다. 이 목걸이는 어머니께서 착용하고 계셨던 건데······?


“이 목걸이를 공자님께서 가지고 계셨던 거로군요.”

“호, 혹시 이 목걸이에 대해 자세한 이야기를 들은 적은 없으셨나요?”

“흐음.”


그가 기억을 더듬으면서 침음을 내는 동안 로시안은 초조하게 발을 동동거렸다.


그러나 고드릭은 고개를 저었다.


“글쎄요. 딱히 그런 얘기는 못 들었습니다.”

“······아.”


로시안은 노골적으로 실망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고드릭은 그저 목걸이를 본 것이 반가운지 계속 말을 이었다.


“그렇군요. 백작님께서 무엇을 보고 공자님을 받아들였나 했는데 이 목걸이의 영향도 없지 않아 있었겠습니다.”


‘······!’


그 말에 로시안이 도로 고개를 들었다. 그러고 보니 확실히 이 성에 처음 와서 조부를 대면했을 때 그가 목걸이를 보고서는 무언가 반응을 했던 것이 떠올랐다.


혹시 조부는 무언가 알고 있지 않을까? 하지만 그건 의미가 없었다.


‘할아버님은 깨어나지 못하니까.’


미래의 기억을 통해 조부가 지금 상태로 잠을 자듯이 숨이 멎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니 조부에게서 무언가 정보를 알아내는 것은 요원한 일이었다.


“뭔가 알고 싶으신 겁니까?”

“네. 그런데 아는 사람은 아무래도 없는 것 같아서요.”

“목걸이의 존재 자체에 대해서만이라면 아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자세한 내막을 아는 사람이 있을까 싶군요.”


역시 그렇겠지. 로시안은 저도 모르게 흘러나오려는 한숨을 삼켜냈다.


“아, 그렇군요.”

“······?”

“그 사람이라면 뭔가 알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사람이요?”

“클로트 경 말입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백작가 서자가 다시 사는 법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 23화 24.09.10 32 3 13쪽
22 22화 24.09.09 43 3 13쪽
21 21화 24.09.08 45 3 13쪽
20 20화 24.09.07 51 2 13쪽
19 19화 24.09.06 55 2 13쪽
18 18화 24.09.05 70 1 13쪽
17 17화 24.09.04 61 2 13쪽
16 16화 24.09.03 66 2 13쪽
15 15화 24.09.02 75 3 13쪽
14 14화 24.09.01 92 4 15쪽
13 13화 24.08.31 84 2 12쪽
12 12화 24.08.30 104 3 13쪽
11 11화 24.08.29 114 3 13쪽
10 10화 24.08.28 116 3 13쪽
9 9화 24.08.27 114 3 13쪽
8 8화 24.08.26 141 3 15쪽
7 7화 24.08.25 138 2 13쪽
6 6화 24.08.24 141 3 14쪽
5 5화 24.08.23 166 4 13쪽
4 4화 24.08.22 174 4 13쪽
3 3화 24.08.21 193 3 13쪽
2 2화 24.08.20 209 3 14쪽
1 1화 24.08.20 311 5 13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