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작가 서자가 다시 사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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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냑
작품등록일 :
2024.08.20 2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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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0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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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2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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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15화

DUMMY

그렇게 시찰을 떠나는 아침이 밝았다.


“테르베온.”


아벨루스가 대기하던 마차에 올라타다 말고 양옆으로 정렬한 병사들에게 시선을 주었다. 더 정확하게는 그 가장 끝에 있는 로시안을 향한 시선이었다.


“저 사람이 왜 여기 있지?”

“그야, 어제 도련님께서 병사들을 꾸려오라고 했으니까요?”

“지금 나랑 말장난하자는 건가?”


아벨루스가 짜증스럽게 테르베온을 노려보았다. 그러나 테르베온은 조금도 겁먹지 않은 기세로 어깨를 으쓱했다.


“병사들 사이로 공자님을 냅다 던져두었던 건 도련님이잖습니까? 저는 당연히 병사들과 같은 취급을 하신다고 생각했는데요.”

“······.”

“그렇게 노려보지 마시죠. 정 신경 쓰인다면 돌려보내시면 되는 일 아닙니까. 제가 전달하겠습니다. 아벨루스 도련님께서 로시안 공자님이 불편하셔서 동행하지 않겠다 하신다고요.”

“출발이나 해.”


아벨루스가 한숨을 내쉬면서 말하자 테르베온은 곧장 마차 문을 열었다. 그러고는 안으로 슬쩍 고개를 들이밀고서는 물었다.


“저, 로시안 공자님도 같이 타고 가라고······ 아, 네 그건 좀 그렇겠죠? 알겠습니다.”


서슬 퍼렇게 변한 아벨루스의 눈에 테르베온은 냉큼 마차 문을 닫았다. 그러고는 대기하고 있던 마부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천천히 마차가 출발하기 시작했다. 병사들 역시 마차의 뒤에서 이동하자 작은 행렬이 만들어졌다.


마차가 성에서부터 정원 중앙을 가로질러 기다랗게 이어진 길을 지나 성의 대문에 다다르자 거대한 나무문이 천천히 열리기 시작했다. 트레덴스가의 상징인 별을 가운데에 두고 교차하는 두 자루의 검이 새겨진 마차가 지나가자, 경비를 서던 병사들이 군기 잡힌 인사를 유지했다.


그들은 무표정한 얼굴로 경례하다 마차의 행렬 마지막에 있는 로시안을 보고서는 눈을 크게 떴다. 설마하니 트레덴스의 서자가 동행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는지 일순 빳빳하게 세운 어깨가 휘청했다. 그러나 초인적인 정신력으로 금세 자세를 바로 했다.


그들의 시선을 받는 로시안은 어색함에 자꾸만 고개가 숙여지려는 것을 간신히 세웠다.


아무래도 이런 건 영 익숙해지지를 않았다. 처음에는 마치 신기한 동물 보듯이 몰려드는 시선들 때문에라도 방에 틀어박혔었다. 하지만 그다음부터는 점점 그의 모습을 볼 일이 없으니 어쩌다 한 번 출현하기라도 하면 아닌 척 몰려드는 시선 탓에 점점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기 어려워지기도 했었다.


‘하지만 익숙해져야지.’


성인이 되기 전까지, 그리고 아벨루스가 백작위에 오를 때까지는 이런 일이 점점 많이 생길 것이다. 익숙해지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었다.


성문을 지나자, 언덕 아래에 모여있는 집들과 그 중앙으로 넓게 나 있는 광장이 한눈에 들어왔다. 높은 곳에서부터 바라보니 저 멀리 성벽까지 탁 트이게 보였다. 처음 트레덴스 성에 왔을 때는 그저 이 오르막길을 정신없이 뛰어올랐기에 영지를 둘러볼 여유가 없었다. 미래에서 영지를 떠날 때는 성의 분위기가 뒤숭숭해서 드디어 해방된다는 생각에만 사로잡혀 있었다.


그렇기에 특별히 조급한 마음 없이 내려다본 것은 처음이었다.


생각보다 평화롭고 사람 사는 냄새가 물씬 풍기고 있는 좋은 영지였다.


‘아무래도 영주가 직접 다스리는 곳이라서 그런가.’


꾸준히 순찰을 도는 경비도 있고 무엇보다 영지를 마치 요새처럼 넓게 둘러싸고 있는 성벽이 있어서 치안의 말썽이 드물기 때문일 것이다.


로시안이 살던 마을은 근처에 가도를 끼고 있었기에 들락거리는 인구 자체는 꽤 있었지만, 마을 규모 자체는 작은 편이라 징수관이 들를 뿐 따로 경비를 돌지는 않았다. 그래서인지 자체적으로 자경대를 구성하긴 했는데 다들 평범하게 농사짓는 마을 사람들인지라 강도의 위협에서도 안전하지 않았었다.


그에 비하면 확실히 제대로 치안이 잡혀 있는 트레덴스 영지, 그중에서도 백작성이 있는 이 레다폴은 퍽 평화로운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로시안은 기분 좋게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맞으면서 천천히 도시를 구경했다.


“밖으로 오랜만에 나온 기분은 어떻습니까?”


마차 바로 옆에 붙어있던 테르베온이 어느새 로시안의 곁으로 다가와 있었다. 로시안은 갑작스럽게 들리는 목소리에 도시를 구경하느라 고정해 두었던 시선을 돌렸다.


“신기합니다. 이런 풍경이었나 하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어요.”

“그런가요? 어떻게, 나오길 잘한 것 같습니까?”

“네. 무척.”


꽤 기분 전환이 되는 것 같았다. 그에 테르베온이 미소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입니다. 괜한 오지랖을 부려 공자님을 끌고 나온 것이 아닐까 한편으로는 걱정했답니다.”

“아뇨. 데리고 나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마 테르베온 경이 아니었다면 밖으로 나올 생각을 아예 떠올리지 못했을 거예요.”


그들이 대화를 나누는 사이 어느새 마차는 마을 광장을 지나고 있었다. 사람들은 마차가 지나가자 길을 비켜주면서 고개를 숙였다.


그러더니 가장 뒤쪽의 로시안을 발견하고서는 고개를 갸웃했다. 평범한 병사라기에는 복장이 눈에 띄었기 때문이다. 병사들은 가벼운 가죽 갑옷 차림에 검대를 착용하고 있었는데 로시안은 평범한 셔츠에 모직 바지만 걸치고 있는 단순한 옷차림이었다. 하지만 결코 헤지거나 낡은 원단은 아니었다.


나이도 다른 병사들에 비해 어렸기에 누구인지 궁금해하는 듯한 얼굴이었다.


아무래도 성 밖에서는 로시안의 존재에 대해 잘 모르는 것 같았다.


그렇게 마차는 광장을 지나서 성벽 앞에 다다르고 있었다. 마차가 성벽에 다다르자 앞선 트레덴스 성의 대문과는 비교할 수도 없이 거대하고 육중한 문이 열려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출입이 자유로운 시간대라 여러 사람들과 상인들이 문 사이로 오가고 있었다.


마차가 보이자마자 위병이 빠르게 지나가는 사람들을 통제하면서 길을 터놨기에 일행은 막힘없이 성벽 밖으로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로시안은 정확히 시찰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아는 것이 없었다. 그는 아직 제 옆에 붙어 있던 테르베온을 불렀다.


“아벨루스는 영지시찰을 어떻게 하나요?”

“일반적으로 영지를 도는 것은 연례행사 같은 것입니다만 이번처럼 문제가 생긴 영지는 그때그때 움직이시는 편입니다.”

“문제가 생겨요?”

“예. 이를테면 자연재해나 전쟁 같은 일이지요. 이번에는 마물 토벌 때문입니다.”

“고블린 말인가요?”

“알고 계셨군요? 맞습니다. 그렇게 큰 문제는 아니기 때문에 기사단이 잘 처리했다더군요.”


내심 살짝 걱정하고 있었는데 별일 아니라는 투로 말하니 로시안도 안심이 되었다.


“하지만 아무래도 살던 마을 근처에 마물이 튀어나오면 사람들이 불안해하지 않겠습니까. 그렇기에 도련님께서는 마물 토벌이 종료된 이후에도 간간이 근방 마을을 순방하면서 민심을 안정시키려는 겁니다. 겸사겸사 구호가 필요하면 피해 상황을 조사해서 인원이나 물품을 조달하기도 하고요.”


아벨루스가 하는 일을 직접 들으니, 생각보다 본격적이고 제대로 된 활동이 많았다. 로시안은 아벨루스가 앉아 있을 마차를 향해 시선을 보냈다.


그는 어린 나이 때부터 차근차근 영지를 돌보고 있었던 것이다. 기껏해야 로시안과 비슷한 또래의 소년이 자신을 돌봐주는 어른도 없는 상태로.


숙부는 정적이고 백작은 쓰러졌고 아버지는 세상을 떠났다. 그런 불리한 상황에서도 백작위를 이어받기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로시안의 안에서 작게 아벨루스를 향해 존경심이 생겨나고 있었다.


“아무래도 고블린이 나타났던 부근이 영지의 외곽 쪽이라 조금은 걸어야 할 텐데. 괜찮으시겠습니까?”

“네. 괜찮아요.”


몇 날 며칠을 쉬지 않고 걸으라는 것도 아니고 이야기를 들어보니 두세 시간 정도밖에 안 걸리는 거리였다. 그 정도면 충분히 버티고도 남았다. 하물며 근래에는 병사들의 훈련을 통해 체력도 쭉쭉 오르고 있었다.


“힘드시면 말씀하세요. 성에만 계신 기간이 길었으니 오랜 이동은 꽤 지치는 일일 겁니다.”


로시안은 충분히 괜찮다고 생각했지만 아무래도 테르베온의 눈에는 조금 걱정스러운 모양이었다. 하긴 이곳에 와서 테르베온이 본 모습이라고는 활동반경이 극히 좁게 돌아다니는 제 모습뿐이었다. 그가 살짝 걱정스러운 기색을 내비치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로시안은 당장 그것보다 방금 테르베온의 대화에서 내내 자신이 완전히 까먹고 있던 일을 떠올렸다.


‘도서관!’


그 말을 듣는 순간 로시안은 그가 최근 머릿속에서 글공부를 완전히 놓아버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워낙에 훈련으로 몸과 머리 둘 다 정신이 없었었다.


그 사실을 떠올리자 로시안은 당황했으나 곧장 표정을 가다듬었다. 혹시나 글공부를 완전히 까먹었다는 것을 알아차린 테르베온이 그대로 아벨루스에게 전달할까 봐 걱정스러웠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테르베온은 시선을 앞으로 향하고 있느라 로시안의 급작스러운 표정 변화를 눈치채지는 못한 것 같았다. 로시안은 속으로 안도하면서 이번 시찰을 마치고 나면 곧장 도서관에 들러야겠다고 머릿속에 콱 박아두었다.


훈련 초반과 비교하면 지금은 심적으로도 많이 여유로워져서 도서관에 들러 공부할 시간을 어느 정도 확보할 수 있었다. 그리고 고드릭과도 인사를 해야지.


그는 대수롭지 않게 여길지도 모르지만, 로시안은 갑자기 그의 존재를 홀라당 까먹어버려서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가서 바로 인사하는 거야. 그리고 책도 읽어야지.’


로시안은 아직까지도 완독하지 못한 서적을 떠올리면서 제발 그간 그의 실력이 너무 한 번에 퇴보하지 않기만을 속으로 기도했다.


그렇게 일행은 레다폴을 지나서 점차 넓게 펼쳐진 밭을 지나고 군데군데 구성되어 있는 마을도 지나고 조금씩 인적이 드물어지는 산길로 향하고 있었다. 그렇게 깊은 산은 아니었으나 로시안은 간만에 마시는 맑은 공기에 기분 좋은 얼굴을 했다.


그리고 그 산을 지나고 조금씩 오후를 향해 시간이 달려가고 있었다.


“저기서부터는 하나하나 도련님께서 직접 돌아다니실 겁니다.”


그렇게 안내해 주고는 테르베온이 로시안의 곁을 떠났다. 그는 마차에 가까이 붙어 작게 나 있는 마차의 창으로 무어라 아벨루스에게 말을 전달하고 있었다. 아마 마을에 다다랐다는 것을 알려주려는 것일 터다.


곧이어 마을 어귀에 다다르자 멀리서부터 마차의 문장을 알아본 마을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마차가 마을 입구에서 정지하고 테르베온이 마차 문을 열자, 그 안에서 아벨루스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자 촌장처럼 보이는 노인이 냉큼 앞으로 튀어나왔다.


“아이고! 공자님께서 직접 행차하시다니요!”


마을 사람들은 감읍하기라도 한 듯 하나같이 아벨루스의 곁으로 모여들었다. 그들의 호기심과 동경 어린 시선을 한꺼번에 받으면서도 아벨루스의 표정은 태연했다.


로시안은 그 시선들에 부담을 느끼는 데 정작 아벨루스는 아무렇지 않은 모양이었다. 어려서부터 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이고 시선이 집중되는 데 아주 익숙한 사람다운 모습이었다. 이런 걸 보면 귀족도 아무나 하는 것은 아니라고 로시안은 생각했다.


“마을 사람들은 좀 괜찮은가?”

“예예, 아무 문제 없습죠. 기사 나리들께서 훌륭하게 괴물 놈들을 물리치지 않았습니까.”

“그거 다행이군. 농사는 잘 돼 가나? 작년에는 비 피해가 있었지 않나.”


로시안은 생각보다 화기애애하고 자연스러운 분위기에 놀란 얼굴을 했다. 비록 아벨루스의 표정이나 태도가 사근사근한 것은 아니지만 평소 그에게서 느껴지던 냉기가 없었다.


그는 정말로 마을 사람을 하나하나 진중한 태도로 대하고 있었다. 그에 촌장도 웃으면서 그의 말을 받았다.


“이번에는 풍작일 듯합니다. 덕분에 고블린 놈들이 말썽을 부려도 아무 걱정이 없어요. 괴물들은 기사님들이 물리쳐주시면 그만이니 걱정거리조차 되지 않는 것 아니겠습니까.”


말뿐인 것만은 아닌지 확실히 모여있는 사람들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얼굴이 하나같이 밝았다.


“그런가.”


아벨루스 역시 그런 기색을 읽었는지 누그러진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안심하고 있는 건가?’


로시안은 새삼 그의 보지 못한 면을 보게 된 것 같아 놀라운 마음이 들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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