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작가 서자가 다시 사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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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냑
작품등록일 :
2024.08.20 2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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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0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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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8 2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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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21화

DUMMY

다시 성문으로 돌아왔을 때는 이미 땅거미가 지고 있었다. 그 탓에 성문이 굳게 닫혀 있어 마차가 잠시 정지해야만 했다.


생각보다 피곤했는지 저도 모르게 꾸벅 졸고 있던 로시안은 마차 바퀴의 굴림이 멎어 들면서 약간 덜컹거리자 퍼뜩 눈을 떴다.


그는 서둘러 입 주변을 닦았다. 아벨루스랑 동승하고 있으면서 잠에 들다니. 로시안은 자신의 정신머리가 어떻게 된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다행히 입가에 묻어나오는 것은 없었다. 입에서 침을 흘리는 최악의 추태는 피한 모양이었다.


그 사이 경비병들이 빠르게 돌아다니면서 서둘러 성문을 열었다. 마차는 금세 성벽 안으로 진입했다.


나갈 때는 걸으면서 본 풍경을 지금은 마차에 앉아서 보고 있었다. 그러나 사람들이 돌아다니던 아침과는 다르게 지금은 거리가 확연하게 비어있었다. 대신 창문 틈 사이로 흘러나오는 은은한 불빛이 보였다.


이대로 큰길을 따라 오르막을 쭈욱 올라가면 곧바로 트레덴스 성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그러나 도중에 마차는 방향을 틀었다.


밀집한 거주지에서 살짝 빗겨나자 곧 널널하게 떨어져 있는 건물들 사이로 한눈에 구분이 되는 하얀 건물이 나타났다.


곧 마차가 하얀 건물 앞의 작은 마당에서 부드럽게 정지했다. 로시안은 창밖으로 보이는 하얀 건물을 눈동자를 굴리면서 바라봤다.


실제로 여기를 방문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잠시 생소한 눈으로 외관을 구경하는 사이, 테르베온이 마차의 문을 열었다. 그러고는 로시안을 바라보며 바깥으로 손짓했다.


“도착했습니다. 공자님.”


로시안은 엉거주춤 자리에서 일어났다. 순간, 몸이 휘청거렸다. 자다 일어나 아직 정신이 없어서 그런지 자신이 발목을 다쳤다는 사실을 깜빡 잊어버린 것이다.


공연히 제자리에서 갸우뚱거린 꼴이 돼버렸을뿐더러 로시안이 휘청이면서 마차도 덜컹거리기까지 했기에 반사적으로 아벨루스의 눈치를 살폈다.


아벨루스는 팔짱을 낀 채 미간을 살짝 일그러트리고 있었다. 로시안은 숨을 삼킬뻔한 것을 간신히 참았다.


‘역시 불쾌했던 건가.’


곧 아벨루스가 차가운 투로 말했다.


“안 내리십니까?”

“어? 아. 아아, 어 지금 내려!”


그대로 펄쩍 뛰어내리고 싶었으나 또 한 번 마차를 흔들게 할까 봐 가능한 한 조심하면서 할 수 있는 빠른 속도로 마차에서 내렸다.


그러자 테르베온이 마차의 문을 닫았다. 아무래도 아벨루스는 내리지 않을 모양인 듯했다.


사제는 저 혼자 만나는 것인가? 교구에 방문하는 것은 처음인지라 로시안은 조금 긴장했다.


그냥 들어가서 상처를 봐달라고 하면 되는 건가 따위의 생각을 하고 있는데 다행히 테르베온이 먼저 앞장섰다. 로시안은 얌전히 그의 뒤를 따랐다.


교구는 그 상징인 백색을 뽐내듯 눈에 보이는 모든 곳을 회칠했는지 나무문조차도 하얀색이었다. 테르베온이 그 하얀 문을 두드리며 말했다.


“성에서 나왔습니다.”


곧 안에서 말소리가 들려왔다.


“잠시 기다려주십시오.”


언뜻 듣기로는 노인의 목소리였다. 잠시 안에서 움직이는 소리가 들리더니 곧 문고리를 건드리는 소리가 났다. 끼익하며 문이 열리자, 로시안은 공연히 입술을 작게 깨물었다.


역시나 예상했던 대로 나이가 꽤 있어 보이는 노인이 하얀 사제복을 입은 채 손님을 맞이했다.


“이 시간에 어쩐 일로. 혹시 백작님께 무슨 문제가 생기기라도 한 겁니까?”

“아뇨. 다른 일로 찾아왔습니다. 여기 이분을 치료해 주셨으면 해서요.”


테르베온은 로시안을 가리켰다.


로시안을 지그시 살펴보던 노인은 곧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들어오시죠.”


그는 로시안을 교구 안으로 이끌었다. 아무래도 로시안이 누구인지 알고 있는 눈치였다.


테르베온이 한 발 뒤로 물러섰다. 그러고는 얕게 웃는 얼굴로 말했다.


“밖에서 대기하고 있겠습니다.”


아벨루스도 있는데 기다리겠다는 건가?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로시안은 일단 고개를 끄덕이고서는 안으로 들어갔다. 테르베온이 시중을 들 듯 로시안이 들어간 모습을 확인하자마자 문을 닫아주었다.


마차를 탔을 때부터 느꼈지만 이런 사소한 시중도 역시 좀처럼 익숙해질 것 같지 않았다.


로시안은 그런 생각을 뒤로하면서 처음 들어오는 교구를 눈으로 살폈다. 역시나 안쪽도 바깥처럼 온통 회칠이 되어 있었다.


눈에 닿는 모든 게 다 하얘서 이질감이 들 정도였다.


“이쪽으로 오십시오.”


사제는 내부에 마련된 작은 기도실로 그를 이끌었다. 사람 여럿이 앉을 수 있을 법한 길쭉한 의자가 여러 개 놓어져 있었다. 사제는 그중에서 가장 앞자리에 로시안을 앉혔다.


천장은 돔 형태로 되어 있어 다른 데보다 공간이 남아 유독 높아 보였다. 교구는 어느 정도 지역 규모가 있지 않고서는 들어서지 않기 때문에 이번 기회에 로시안은 실컷 내부를 구경할 수 있었다.


“얼굴이나 팔다리에 생채기가 나셨군요. 일단 가장 불편한 곳을 보여주십시오.”


그 말에 로시안은 먼저 발목을 앞으로 내밀었다. 사제는 주름이 자글자글한 손으로 살며시 로시안의 발목을 살폈다.


“피를 흘리셨군요.”

“그렇게 많은 양은 아니었습니다.”


사실 상처 자체로만 보면 굳이 번거롭게 사제를 찾아와야 하나 싶을 정도였다. 그러나 사제는 귀찮은 기색도 없이 두 손을 모아 발목에 가져다 댔다.


“다행히 모두 제가 치료할 수 있을 정도의 상처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조용히 무어라 읊조리는 듯했다. 그러자 그의 손끝에서부터 하얀빛이 일렁거렸다.


‘······!’


로시안은 처음 보는 현상에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사람의 몸에서 빛이 나오다니. 그는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가 없었다.


더 신기한 것은 사제의 손에서 맴돌던 빛이 로시안의 발목에 닿자, 무형의 기운이 느껴졌다는 것이다. 로시안은 저도 모르게 흠칫 몸에 힘을 주었다.


“긴장을 푸십시오. 상처에 좋지 않습니다.”


그 말에 도로 몸을 느슨하게 하려고 했다. 잠시간 그대로 사제가 손을 계속 대기만 했다.


붉은 실선처럼 그어져 있던 상처가 점점 아물어갔다. 로시안은 신기하면서도 신비로운 빛을 눈도 떼지 못하고 계속 바라봤다.


기묘하게까지 느껴졌던 하얀 교구는 그 은은한 빛이 닿자 신성한 성전처럼 느껴졌다.


상처가 사그라지면서 차츰 사제의 손에서 빛이 사라져갔다. 그러자 그 자리에는 말끔하게 나은 발목만이 남아있었다.


로시안은 신기한 얼굴로 몇 번이고 발목을 움직이고 매만져봤다.


‘아무렇지 않아.’


분명 조금 전까지만 해도 걸을 때마다 조금씩 쓰라렸는데 지금은 멀쩡했다. 사제가 그런 로시안을 향해 물었다.


“좀 어떠십니까?”

“완전히······, 완전히 나았습니다. 그야말로 기적 같습니다.”

“후후, 신의 기적이지요.”


노인은 사제답게 신실한 면모를 듬뿍 드러내고 있었다. 그리고 로시안의 몸 곳곳에 난 생채기에도 손을 가져다 댔다. 조금 전과 마찬가지로 하얀빛으로부터 무언가 무형의 기운이 로시안의 몸으로 흘러들었다.


하나둘 점점 상처들이 사라져 갔다.


“일단 눈에 보이는 것은 다 치료했습니다만 혹시 다른 부분도 있으신지요?”

“아, 고블린에게 몸통을 짓밟혀서 살짝 둔통이 있습니다.”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 같군요. 웃통을 벗어주시겠습니까?”


로시안은 그 말에 상의를 벗었다. 이제 와서 보니 슬슬 가슴과 배에 멍이 들고 있었다.


사제는 마치 치료사처럼 몸통 앞면과 뒷면을 살피고 뼈나 근육을 강하지 않게 눌렀다.


‘윽.’


그래도 압박감이 들어 로시안은 침음을 흘릴뻔한 것을 간신히 삼켰다. 사제가 조금 심각해진 얼굴로 입을 열었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마물에게 밟힌 곳이라고 했으니, 내부에 문제가 생겼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빠르게 치료하는 게 좋아 보이는군요.”


그러고는 이번에도 맨살 위로 빛을 일으켰다. 가만히 기다리고 있자 점차 호흡이 좀 더 편해진 기분이 들었다.


이제 막 생기려던 멍 자국 역시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졌다. 역시 몇 번을 봐도 신기했다. 귀족들이 그토록 사제들에게 치료를 받으려고 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인가?


흉터도 없이 이렇게 말끔하게 나을 수 있으면 확실히 치료사는 거들떠보지도 않을만 했다.


몸통 치료만 끝나면 이제 다 끝난 것이니 곧장 성으로 돌아갈 수 있을 터였다. 테르베온이 기다린다고 했으니 아벨루스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런 생각에 미치자, 로시안은 사제가 손을 거두면 바로 입을 수 있도록 미리 옷을 손에 쥐고 있었다.


“음?”


그런데 가슴팍 부근에 빛을 일으키던 사제가 돌연 눈매를 좁혔다. 뭔가 석연치 않은지 그는 몇 차례 고개를 갸웃거리기까지 했다. 그러더니 곧 상처에서 손을 뗐다.


“흐음.”

“왜, 왜 그러시죠? 혹시 무슨 문제라도······?”


로시안은 입안이 메말라가는 것을 느꼈다.


혹여나 무언가가 잘못된 걸까? 마물이 준 상처가 내장에 문제라도 일으킨 것이 아닌지. 그래서 내부의 상처가 낫지 않는 것인지 별의별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아뇨, 그런 것은 아닙니다만.”


그렇게 말하면서도 사제는 여전히 로시안의 가슴팍 부근에서 눈을 떼지 않고 말했다.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다시 사제가 손을 올렸다. 로시안의 불안한 시선 역시 그를 따라갔다.


그러나 의외로 사제의 손이 향한 곳은 로시안의 몸통 어느 곳도 아니었다. 그는 로시안이 목에 매고 있는 목걸이에 손을 가져다 댔다.


옷을 벗은 탓에 목에 덜렁 목걸이 하나가 걸려 있던 상태였다.


‘이, 이게 왜?’


노인은 어머니의 목걸이를 지그시 들여다보았다. 그러고는 손끝에서 다시 기적을 일으켰다.


“음. 역시.”


그러더니 얕게 침음했다. 로시안은 더욱 어리둥절해졌다.


“어, 저기, 뭐 때문에 그러시는지······.”

“잠시 제게 그 목걸이를 보여주시겠습니까?”

“아, 네.”


워낙 진지한 기색에 로시안은 순순히 목걸이를 빼내 사제에게 건네주었다. 사제는 목걸이를 이리저리 들여다보더니 곧 고개를 끄덕이고는 도로 돌려주었다.


로시안은 얼떨떨한 눈으로 목걸이를 목에 걸었다.


사제가 흥미롭다는 얼굴로 물었다.


“신기하군요. 이런 데서 마도구를 보게 될 줄이야.”

“마, 마도구요?”


처음 들어보는 단어였다. 로시안이 잘 못 알아듣는 기색을 보이자 사제가 설명을 덧붙였다.


“마도구란 마법적 기능을 하는 도구입니다. 그 자체만으로 마법을 일으키죠.”


로시안은 제 목걸이를 집었다.


‘이게 마도구라고?’


하지만 로시안은 어머니께 그런 설명을 들은 적이 없었다. 어머니는 언제나 이것을 부적이라고 부르셨다.


사제가 무언가 잘 못 알고 있는 게 아닌가 싶었다. 하지만 사제는 그의 생각을 확실하게 부정했다.


“긴가민가하긴 했습니다만. 목걸이의 반응을 보니 틀림없는 것 같군요. 저도 실물로 보는 것은 처음입니다.”

“예? 이게 그렇게 대단한 물건인가요?”

“현존하는 마도구는 그리 많지 않으니까요. 이는 과거의 유실물입니다. 제조공정을 잃었으니 이 마도구도 못해도 400년 이상 전의 물건일 겁니다.”

“예에?!”


로시안은 이해할 수 없었다. 목걸이를 아무리 들여다봐도 그리 오래되고 그리 대단한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그 목걸이 어디서 나신 겁니까?”

“어머니께서 주신 것인데······.”

“혹시 건네받으실 때 무슨 설명을 전해 듣지 않았습니까?”

“아뇨. 전혀······.”


사제는 턱을 매만지며 생각에 잠긴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마도구라면 분명 어떤 능력을 지니고 있을 겁니다. 혹시 특별한 경험을 하신 적 없으십니까? 이를테면 목걸이에서 불이 솟는다거나 아니면 유난히 목걸이를 걸고 있을 때는 운이 좋다거나 하는 그런 신비한 현상 말입니다.”


‘특별한 경험······.’


로시안은 저도 모르게 목걸이를 집은 손에 힘을 주었다. 깊이 생각할 것도 없었다.


있다. 그것도 아주 특별한 경험이.


그가 본 그 꿈. 그 미래의 꿈.


“공자님?”


로시안은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퍼뜩 정신을 차렸다. 그는 자신을 의아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 사제를 보다가 입을 잠시 뗐다.


‘꿈을 꿨다고 말해도 되는 걸까?’


순간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로시안은 입을 도로 다물었다. 자신이 미래의 꿈을 꾸었다는 이야기를 과연 오늘 처음 본 노사제에게 해도 되는 말일지 순간 의문이 들었던 것이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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