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작가 서자가 다시 사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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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냑
작품등록일 :
2024.08.20 2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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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2 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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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4화

DUMMY

호기롭게 발걸음을 옮기긴 했지만 정작 아벨루스의 집무실 앞에 서자 심장이 차갑게 식었다.


‘······뭐라고 말해야 하지?’


둘 사이가 일반적인 형제와 결을 달리하는 거야 둘째치고 그 이상으로 두 사람은 남보다 접점이 없는 사이였다.


로시안은 늘 아벨루스를 어려워했고 아벨루스는 언제나 로시안을 없는 사람 취급했다. 간간이 반응을 보일 때는 로시안의 우스꽝스러운, 채신머리없는 행동을 볼 때 정도였다.


당연하게도 자신을 죽이려 드는 숙부보다야 낫지만, 아벨루스가 어렵고 힘든 상대라는 건 변하지 않았다.


아벨루스가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는지 다시 떠올랐다.


‘뭐 하나 이룬 것 없이 비굴하고 나약하고 제힘으로는 어쩔 도리가 없다고 현실에 굴복하고 회피하느라 바쁜 인간.’


생각보다 충격적인 발언이었던 터라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로시안이 생각하기에도 비슷한 나이 또래임에도 아벨루스에 비하면 한심하고 덜떨어진 형이기는 했다. 로시안이 여관일을 하고 있을 무렵부터 그의 이복동생은 후계자 교육을 받으며 조금씩 업무를 익혀 나갔으니까.


그런 아벨루스가 보기에는 갑자기 형이랍시고 등장한 자신과 그 행보가 얼마나 우스웠을까.


순간, 아벨루스를 찾아온 게 맞는 선택인가 싶어 자신감이 확 떨어지려던 찰나.


“공자님. 여기서 뭐 하십니까?”


유쾌한 목소리가 흘러들었다.


귀에 익은 목소리에 로시안이 고개를 돌렸다.


‘테르베온 경.’


검대에 손을 올린 채 가벼운 미소를 지으며 인사하는 이는 아벨루스의 호위 테르베온이었다. 늘 서글서글한 얼굴을 하는 그는 이 저택에서 로시안을 적대하지 않는 극소수의 인물 중 하나였다.


종종 아벨루스와 그 수행인들과 마주쳤을 때 인사해 주는 사람이기도 했다.


워낙에 성격이 좋은 사람인지라 로시안 역시 그를 내심 마음에 들어 했었다. 그래서 그의 죽음을 알게 되었을 때는 다른 때보다 조금 우울했었다.


그가 별일이라는 듯 신기한 눈으로 로시안을 바라봤다.


“여긴 어쩐 일이십니까?”


그의 반응은 충분히 이해가 갔다. 로시안은 한 번도 제 발로 아벨루스를 찾아온 적이 없었다. 애초에 숙부와 아벨루스가 지나다니는 길은 어지간해서는 돌아서 갈 정도였으니 그 사실을 아는 테르베온의 입장에서는 퍽 신기한 일 일터다.


“도련님께 무슨 볼일이라도 있으십니까?”


테르베온이 아벨루스의 집무실을 가리키며 물었다.


로시안은 그의 손과 집무실 문을 차례대로 바라보다 이내 고개를 저었다.


“그렇긴 한데, 지금은 좀······. 아벨루스도 바쁜 것 같아서, 그럼.”


로시안은 도망치듯이 자리를 떠나려고 했다. 너무 갑작스럽게 찾아와서 할 말을 채 정리하지 못했다. 솔직히 아벨루스가 불편하기도 하고. 이런 상태로는 서로 얼굴을 마주하더라도 횡설수설할 것 같아 오히려 아벨루스가 싫어할 일만 하게 될 성싶었다.


‘딱히 도망치는 건 아니야. 그냥 조금 생각을 정리하고 잠시만 미루는 것뿐······.’


“도련님. 로시안 공자님께서 찾아오셨는데요.”


테르베온이 돌연 집무실 문을 벌컥 열었다. 로시안은 입을 쩍 벌리며 비명을 지를 뻔한 것을 간신히 참았다.


그런 로시안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몸을 반쯤 문 안으로 집어넣은 테르베온이 씩 미소를 지었다.


“자자, 도련님께선 생각보다 안 바쁘니까 할 얘기 하시죠.”


그는 퍽 친절한 손짓으로 안내하듯 문 안쪽을 가리켰다.


어처구니가 없어져 눈만 동그랗게 뜨고 그를 바라보는 사이 안쪽에서 종이가 넘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로시안은 쩍 벌어진 입을 다급하게 다물고 침을 꿀꺽 삼켰다.


‘······망했다.’


이러면 도망, 아니 생각을 재정비할 시간을 가질 수 없는데. 하지만 이대로 일없이 물러나는 것도 아벨루스는 싫어할 것이다. 할 말도 제대로 못 하는 인간이라면서.


그렇게 생각하니 차라리 횡설수설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은 반응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로시안은 작게 심호흡하며 감정을 갈무리했다.


그는 다짐하듯 속으로 되뇌었다.


‘그래. 원래도 말하려고 했잖아. 언젠가는 이렇게 이야기하게 될 거 그냥 미리 말하자.’


매도 먼저 맞는 게 나은 것이다.


로시안은 몸을 살짝 옆으로 비키며 문을 잡아주는 테르베온을 힐끔 쳐다봤다. 여전히 맑은 미소를 지은 채였다.


‘그래도 테르베온 경이 있을 테니 조금은 낫겠지.’


로시안은 처음으로 아벨루스의 집무실에 들어섰다.


고풍스러운 의자와 테이블을 방의 중심에 두고 그 너머로 커다란 업무 책상이 자리했다. 그 자리에서 햇살이 드리우는 창을 등진 채 9개월 어린 이복동생이 익숙하게 펜을 잡은 손으로 무언가를 써내려 가고 있었다.


그는 고개도 들지 않은 상태였다.


“······.”

“······할 말이 있으신 거 아닙니까?”

“아, 아, 어 그렇지.”


여전히 서류에 눈을 붙인 채로 그가 먼저 말을 걸어왔다.


“하시죠.”

“그전에 일단 여기 앉으시죠, 공자님.”


테르베온이 책상 앞에 놓인 손님맞이용 테이블로 로시안을 이끌었다.


아벨루스의 말을 제치고 테르베온이 멋대로 구는 것처럼 보여 당황스러웠지만 이내 아벨루스가 별 제지가 없는 것을 확인하고는 얌전히 의자에 앉았다.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테르베온과 아벨루스의 사이가 가까운 것 같았다. 하긴, 감정 동요가 별로 없던 아벨루스였지만 테르베온이 죽고는 유독 차가웠었으니까.


테르베온은 로시안이 성에 들어서기 전부터 아벨루스의 호위를 담당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알고 지낸 세월이 길 것이다.


로시안은 괜스레 테르베온이 죽는다는 사실과 그로 인해 가까운 호위를 잃을 아벨루스가 측은해졌다. 그는 미묘한 감정이 담긴 눈으로 은근하게 테르베온을 쳐다봤다.


“······? 저한테 하실 말씀이라도?”


의문스러운 얼굴로 웃으며 묻는 테르베온에게 고개를 저어주었다. 대신 그 뒤의 아벨루스에게 시선을 보냈다.


‘······아벨루스도 결국 죽었을까?’


테르베온이 죽고 자신도 죽은 이후에 아벨루스도 죽었을까? 숙부와의 경쟁에서 패하고 그 과정에서 아벨루스는 측근의 대다수를 잃었다. 죽은 이들도 있었고 배신한 이들도 있었다.


살아남았을 수도 있지만 숙부가 고용한 이들을 떠올린 로시안은 아마 아벨루스 역시 고난이 가득한 삶을 살아갔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은 그런 동생을 가엾게 여기고 있는 것인가? 잘 모르겠다.


숙부는 두렵고 싫다. 그러나 아벨루스는 숙부 같은 싫은 감정이 들지는 않는다. 어쨌거나 아벨루스는 자신에게 경고를 하러 왔다. 숙부가 저를 죽일 것이라고.


‘그 답례라고 생각하자.’


일단 로시안은 테르베온 역시 죽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컸다. 자신의 미래를 바꾸기 위해서 아벨루스를 선택하는 것 말고는 지금으로선 달리 방법이 떠오르지도 않았다.


그 전에 확인차 물어보고 싶은 게 있다.


“있잖아. 아벨루스 너는 백작이 되고 싶은 거지?”


서류를 들여다보던 아벨루스의 눈썹이 들썩였다. 생각지 못한 질문이었는지 그가 의외로운 눈빛을 보냈다. 곁에 서 있던 테르베온 역시 마찬가지였지만 아벨루스보다 좀 더 역동적인 표정이었다.


“······갑자기 그런 게 궁금하셨습니까?”

“음, 응.”


아벨루스가 무언가를 고민하듯 책상을 두어 번 두드리다가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트레덴스에서 태어난 이상 그 외의 길은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로시안은 속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그렇구나. 그리고 아마 그건 숙부도 마찬가지겠지.


“그렇다면 만일, 정말 만일 그러니까 숙부님께서 가주가 된다면, 이건 어디까지나 가정이니까. 그렇게 된다면 어떻게 될 거 같아?”


괜스레 아벨루스의 심기를 건드리게 될까 절로 조심스러워졌다. 그러나 의외로 아벨루스는 썩 기분 나쁜 기색이 아니었다.


“가능성이 높은 이야기죠.”

“응? 그런 거야?”


오히려 담담하게 이야기하는 그 태도에 로시안이 눈을 둥그렇게 떴다.


“할아버님께서는 후계자를 명확히 하지 않으셨으니까요. 가문의 중진들은 나이가 어린 저보다는 숙부님이 더 차기 가주로 적합하다고 생각하고 있을 겁니다.”

“너, 너도 벌써부터 가문의 일을 돕고 있는데?”

“이 정도는 숙부님도 할아버님도 그리고 돌아가신 아버님께서도 제 나이 때 다 하셨던 일이었습니다.”


‘그, 그런 거였어?’


로시안은 어린 나이에 업무를 수행하는 아벨루스가 대단해 보였지만 사실 귀족 사회에서는 이게 일상이었던 모양인가 보다. 자연스레 자신이 얼마나 하는 일이 없었는지를 알게 되었다.


괜스레 아벨루스의 말이 자신을 타박하는 것 같았지만 애써 대화를 이어 나갔다.


“그래도 가주직을 쉽게 포기하지 않을 거잖아. 그렇지?”


실제로 아벨루스는 지금보다 나이를 먹으면서 가문 내에서 점차 두각을 드러내게 되었다. 숙부도 쉽게 무시하지 못할 정도로.


아벨루스는 잠시 질문을 생각하는 듯하더니 물었다.


“갑자기 가주직에 관심이라도 가지게 되신 겁니까?”

“나······? 내가?”


뜬금없이 이게 무슨 소리란 말인가. 로시안이 멀뚱히 자신을 가리켰다.


아벨루스는 가만히 그 모습을 쳐다봤다.


로시안은 격하게 손을 내저었다.


“그럴 리가! 난 그저 걱정돼서······.”

“무엇이 말이죠?”


로시안은 침을 꿀꺽 삼켰다. 본능적으로 알아차렸다. 바로 지금이 아벨루스에게 제대로 자신의 생각을 말해야 하는 지점이라는 사실을.


“내가, 나름대로 생각을 해봤어.”

“예.”

“만약에 숙부님께서 가주 자리에 오르신다면 나는 어떻게 될까 하고.”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그는 여태껏 아무 생각이 없었다. 저 자신은 그 누구에게도 위협이 되지 않을 거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그 생각을 고쳐먹어야 하는 계기가 생긴 것뿐이다.


그러나 아벨루스라면 줄곧 후계자 경쟁에서 지고 난 이후에 대한 일도 생각해 본 적이 있겠지.


“숙부님은 나를 죽일 거야 그렇지?”


그 생각은 들어맞았다. 아벨루스가 드물게 흥미로운 빛을 눈에 띄고 있었기 때문이다. 로시안을 바라보던 시선을 통틀어 경멸과 무시, 냉대와 한심함을 제하고 처음으로 긍정적이라고 부를 수 있는 빛이었다.


로시안은 말을 이었다.


“그렇다면 내가 살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까.”

“도망치시는 게 어떤지요?”


그 말의 속뜻을 아는 로시안은 희미한 놀림을 느꼈다. 로시안은 침착하게 고개를 저었다.


“정말 그게 방법이라고 생각해?”


질문을 질문으로 되받을 줄 몰랐는지 아벨루스가 한쪽 눈썹을 치켜떴지만 이내 순순히 입을 열었다.


“아뇨. 숙부님은 당신을 싫어하니까요.”

“그래. 내가, 아버님과 닮아서지?”

“······예.”


아벨루스의 안색이 미묘하게 어두워졌다.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그는 로시안과 그의 생부가 닮았다는 말에 감정적 동요가 일은 모양이다.


“그 이유가 크기도 할뿐더러 굳이 후계를 위협할 요소를 남겨둘 이유는 없습니다. 그건 저도 마찬가지고요.”

“그렇다면 만일 네가 가주직에 오른다면 나를 죽일거야?”

“······필요하다면요. 숙부님과 다르게 저로서는 아직 당신을 죽일 필요성은 못 느낍니다만.”


그 말이면 됐다. 어느 정도 어렴풋이 느끼고도 있었다.


아벨루스는 로시안을 싫어하지만, 죽일 정도는 아닌 것이다. 그건 미래의 어느 날 밤 돌연 찾아와서 경고를 줬을 때부터 느끼고 있었다.


그것만으로 아벨루스가 가주가 돼야만 하는 이유는 차고 넘쳤다.


“내가 도와줄게. 가주 자리에 오르는 거 최대한 도와줄게.”


로시안은 주먹을 꽉 쥐고 눈에 힘을 주며 말했다.


“그러니까 나 좀 살려줘! 부탁이야!”


노골적인 구걸. 그래, 목숨 구걸이다. 그렇지만 로시안은 당장 아벨루스말고 자신을 구해줄 만한 사람을 알지 못했다.


“······굉장히 확신하고 계시는군요. 숙부님이 당신을 죽이지 않을 수도 있는 것 아닙니까?”

“절대로 그런 일은 없어! 나는 죽는단 말이야!”


로시안은 거의 버럭 성을 내듯이 소리를 질렀다. 죽음에 대한 공포와 당시의 상황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죽기 싫은 마음으로 절박했던 스스로가 순간 튀어나왔다.


이번에는 아벨루스조차 평소의 무표정이 흐트러질 정도로 놀란 얼굴을 했다. 테르베온은 거의 눈알이 튀어나올 정도였고.


이런 채신머리없는 행동을 싫어하는 아벨루스였으니 그의 놀람이 얼마나 컸는지 알만 했다.


하지만 그만큼 로시안은 절박했다.


그 진심이 전해졌는지 아벨루스가 곧 표정을 갈무리하고 진지하게 물어왔다.


“당신이 무슨 수로 저를 돕습니까? 저는 짐만 생기게 될 뿐인데요.”

“뭐라도 쓸모가 있지 않겠어? 인간 방패 같은 거 빼고는 다 할게. 당장 도움이 될 만한 정보도 있어.”


그게 뭐냐는 얼굴로 아벨루스가 쳐다봤다.


로시안은 침을 삼키며 지금이 바로 그가 알고 있는 미래에 대한 정보를 하나 풀 때임을 깨달았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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