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작가 서자가 다시 사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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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냑
작품등록일 :
2024.08.20 2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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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7 1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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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20화

DUMMY

‘으음.’


로시안은 조금 곤란한 얼굴로 목덜미를 매만졌다. 그는 슬쩍 아벨루스의 표정을 살폈다.


당연히 평소처럼 무심한 눈으로 로시안이 곤란해하고 있는 모습을 말없이 지켜보고 있을 줄로만 알았으나 의외로 그의 미간은 작게 구겨져 있었다.


무언가 생각하는 듯한 얼굴이었다.


‘하긴 나도 고민이 되니까.’


뭐라고 자신을 말해야 할까. 일단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트레덴스의 서자라는 것이다. 하지만 서자가 저를 나서서 서자라고 설명하는 것도 웃기는 일이었다. 귀족의 서자가 무슨 의미인지 알 사람은 다 알고 있으니까.


‘그다지 좋은 의미는 아니지.’


마리가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그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 순진한 눈을 보자 대답이 더욱 망설여졌다.


침묵이 길어지자, 분위기는 더욱 이상하게 변해갔다. 마을 사람들, 특히나 마리의 부모의 안색이 하얗게 질려가기 시작했던 것이다. 혹시 제 딸이, 혹은 자신들이 무슨 큰 실수를 범하고 만 것이 아닌가 하는 그런 얼굴이었다.


로시안은 그들을 달래주고 싶어서라도 무슨 말이든 해보려고 했으나 역시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이름을 말해주시죠.”


해결책을 제시한 것은 마찬가지로 조용히 생각을 이어 나가고 있던 아벨루스였다. 그렇게 말하고서 그는 평소와 같은 무표정한 얼굴로 로시안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 뒤는 알아서 하라는 듯 내팽개친 것 같기도 했다.


‘이름······?’


로시안은 갑자기 왜 여기서 이름이 나오는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이름이라면 조금 전에 마리에게도 알려주었었다.


그러다 문득 트레덴스 성에 들어오고 난 이후 이름의 뒤에 새롭게 붙은 것이 떠올랐다. 백작이 자신을 인정했으니 당연히 붙어 있었던 것이었으며 특별히 의식하지 않았기에 생각지도 못했던 것이었다.


그것을 자신의 입으로 말하려니 영 어색하고 낯설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확실하게 자신을 설명할 수 있는 수단이었다.


로시안은 몇 번 머뭇거리다가 마침내 입을 뗐다.


“제 이름은······.”


마을 사람들의 시선이 한데 모였다. 호기심과 걱정 어린 감정이 시선에 섞여 들면서 로시안을 향했다.


“로시안. 그러니까 로시안 트레덴스입니다.”


두 단어는 마치 붙어서는 안 되는 것들 같았다. 그만큼 굉장히 입에 붙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로시안은 제 입 밖으로 직접 이 이름을 꺼내는 것은 처음이었다. 미래를 통틀어서 말이다.


왠지 몸에 맞지 않은 옷을 입은 듯 불편함이 감돌았다. 로시안은 공연히 아벨루스가 있는 부근을 바라보기 힘들어 어색하게 눈을 굴렸다.


“예?”


마을 사람들은 자신들이 방금 무슨 말을 들은 것인지 아리송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뻘쭘하게 땅만 바라보는 로시안을 어리둥절하게 바라봤다.


“트레덴스라면······.”

“우리 영주님 성이잖아.”

“아벨루스 공자님의 성이기도 하지.”


사람들은 저들끼리 떠들다가 곧 무언가를 깨달은 듯 조용해졌다. 순간 마을 사람들 사이로 경악성이 터져 나왔다.


***


“아이고오.”


촌장은 거의 쓰러질 것 같은 얼굴로 어찌할 바를 모르면서 로시안의 몸을 살폈다. 로시안의 생채기를 한 번 보고 아벨루스와 테르베온을 한 번 바라봤다.


마리와 그녀의 부모는 거의 머리를 땅에 박을 기세였다.


“정말 죄송합니다! 귀한 분을 몰라뵙고!”

“아니, 아니에요!”


마리의 부모가 허리를 굽힐수록, 저를 추켜세울수록 로시안의 허리 역시 절로 굽어지는 것 같았다. 자신은 이렇게 대우받을 존재가 아니었다.


무표정한 아벨루스가 속으로는 이 꼴을 얼마나 우습게 여기고 있을지. 얼굴이 홧홧해져 로시안은 차마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런 심각한 와중에도 마리는 여전히 당돌한 면모를 숨기지 않았다.


“정말 형제야? 하지만 안 닮았는데······.”

“마리!”


부모가 화들짝 놀라 아이를 다그쳤다. 로시안은 아이의 말을 듣고서는 가만히 볼을 긁적거렸다.


“흠흠! 큽큽!”


촌장은 거의 피기침에 가까운 헛기침을 하면서 주위를 분산시키려고 노력했다. 촌장 정도 되는 사람이면 대충 알 것일 테지.


두 사람이 상당히 닮지 않았다는 것. 아벨루스가 말을 높임으로써 로시안이 아벨루스보다 손위 형제라는 것. 그리고 그 손위 형제에 대한 일언반구도 들어본 적이 없다는 것.


하지만 그럼에도 트레덴스의 성의 달고 있다는 의미를.


삶의 경험이 풍부한 노인들은 적당히 눈치껏 알아차리고 그를 구태여 언급하지 않을 줄도 알았다.


중요한 건 아벨루스와 테르베온이 로시안을 어떻게 대하는가였다. 적당히 거기까지 생각을 마쳤는지 노인은 서자라는 사실을 알아차렸음에도 여전히 사근사근한 얼굴로 로시안을 대우했다.


“로시안 님. 로시안 님의 용맹함이 아니었더라면 저희는 분명 마을의 어린아이를 잃었겠지요. 정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촌장이 말을 마치자, 마리의 부모님은 벌써 몇 번째일지 모를 감사 인사를 함께 건넸다. 비록 속마음은 어떨지 몰라도 이 말 한마디에서는 분명 진심이 느껴졌다.


로시안은 아주 잠깐 만약 자신이 이곳에 오지 않았더라면······ 하는 가정과 함께 미래를 떠올렸다. 그러면 마리는 여느 때처럼 어머니의 곁에 붙어서 오늘보다 안전한 상황을 맞이하지 않았을까?


실제로 미래에서 아벨루스는 몇 차례 시찰을 돌았을 테고 그곳에 이 마을도 포함되어 있었을 테니. 적어도 이 당시에 아벨루스가 마을 시찰을 떠나서 신변에 큰 문제가 발생한 적은 없었다.


그러니 오히려 로시안 때문에 아이가 오늘 더 위험해진 것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로시안은 순박함이 넘치는 마을 사람들의 면면을 바라보았다. 마리가 웃는 얼굴로 사람들의 사이에서 그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어느새 눈물 자국도 깔끔하게 사라지고 없었다. 아이는 순수하게 자신을 향해 온몸으로 고마움을 표출하고 있었다.


왠지 아이의 미소가 꽤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았다. 그래서일까.


‘하지만 적어도 이 마음만은 그냥 있는 그대로 받아도 되지 않을까.’


로시안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


병사들이 마을 사람들을 도와 피해 상황을 살피면서 일을 거들었다. 다행히 직접적인 재산이나 인명피해는 그리 크지 않았던 탓에 빠르게 정리되고 있었다.


그 사이 테르베온은 다시 한번 꼼꼼히 고블린의 서식지 주변을 둘러보면서 혹시 모를 위협 요소를 살펴보았다.


아무래도 이는 마을 사람들을 안심시키기 위한 것 같았다.


“더는 없는 것 같습니다. 그 세 마리 말고는 다른 마물의 흔적도 없고요. 애초에 우연히 제게 발각된 것이니 더 숨어 있을 리도 없을 겁니다.”


그의 말을 듣고 있던 마을 사람들은 더 안도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도 당분간은 조금 신경 쓰이지 않을까 싶었다.


이미 한 차례 소탕했음에도 그 잔당이 남아있었다고 하니 무서울 만하지 않은가.


아벨루스도 그 점을 고려한 것인지 마을 사람들에게 확인차 물었다.


“정말 괜찮겠나?”

“예.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조금 무서운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만. 기사님께서 두 번이나 확인해 주셨으니 충분하겠지요.”

“마을을 좀 더 단단히 방비해 두는 게 좋겠어.”

“안 그래도 목책을 튼튼한 것으로 새로 세울까 합니다.”


아벨루스는 잠시 고민하다가 느릿하게 입을 뗐다.


“여긴 너무 외져있어서 병사나 기사들도 잘 안 들르는 곳이지. 자체적으로 자경대를 구성한다고는 하지만 역시 조금 위험하지 않겠나.”

“으음. 그 고민을 해보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만 아무래도 살던 곳을 버리는 건 쉽지 않아서요. 무엇보다 이번 같은 일은 처음이기도 하니 그 문제는 조금 더 고심해 보지 않을까 싶습니다.”


촌장의 말을 듣던 로시안은 내심 이해한다는 듯 속으로 동의했다. 살던 곳에서 벗어나 새로운 곳으로 이주한다는 것은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설령 그것이 같은 영지 안이라고 해도 말이다.


아벨루스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는지 딱히 그 이상은 묻지 않았다.


“잘 알겠어.”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공자님들.”


공자님들. 그 말에 로시안은 흠칫 몸을 떨었으나 아벨루스는 아무렇지 않게 몸을 돌렸다. 그는 출발 준비를 마친 마차를 향해 걸어갔다.


내도록 그랬던 것처럼 로시안은 병사들의 가장 뒤편으로 다가섰다.


그러자 테르베온의 도움을 받아 마차에 오르던 아벨루스가 발을 올리다 말고서는 로시안이 있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

“······?”


그가 말없이 가만히 서 있으니 기묘한 침묵이 감돌았다. 로시안은 계속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에 어쩔 줄을 모르고 눈만 깜빡였다.


‘뭐, 뭐지?’


로시안은 당혹스러운 심정이었다. 그때 테르베온이 로시안을 불렀다.


“타고 가시죠, 공자님.”

“네에?”


로시안은 기겁하면서 되물었다.


‘지금 그게 무슨······.’


하지만 아벨루스가 따로 테르베온을 저지하지 않았다. 설마 진짜로? 로시안은 믿기지 않는 얼굴로 일단은 천천히 발을 옮겼다.


그제야 아벨루스가 로시안에게 못 박아 두었던 시선을 떼고서는 마차에 올라탔다. 그는 먼저 안으로 들어가 익숙하게 자리에 앉았다.


로시안은 순간 뒤를 돌아서 하늘을 바라보고 땅을 내려다봤다. 하늘이 무너지거나 땅이 꺼지지 않은 것으로 보아선 세상이 망할 징조는 없는데.


“다리. 불편하잖습니까.”


정신을 놓을 것 같은 얼굴로 마차 입구에 다다르자, 테르베온이 그렇게 말하면서 싱긋 웃음을 지었다.


“그래도 한참 걸어야 할 텐데 사제님께 보여드리기 전에 다리가 너무 악화하면 좋을 게 없지 않겠습니까.”


테르베온이 얼른 타라는 듯 마차 안을 가리켰다. 로시안은 제 다리를 내려다봤다.


‘도움이 되지 못할망정 폐를 끼치면 안 되지.’


로시안은 잘 안 움직이는 다리를 애써 들어 올려 마차에 한 발 내디뎠다. 그게 상처 때문인지 마차에 동승한 사람 때문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었다.


그리고 완전히 마차에 올라타기 직전.


“로시안 오빠!”

“아악! 마리 제발!”

“아, 맞다. 로시안 공자님!”


로시안이 그를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마리는 그가 건네준 금잔화를 들고선 해맑게 손을 흔들고 있었다.


“잘 가!”


다친 곳 하나 없이 밝은 아이의 모습에 로시안은 왠지 가슴이 뭉글해져 저도 모르게 손을 흔들며 말했다.


“안녕. 마리.”


그러고서는 마차에 완전히 올라탔다. 로시안이 아벨루스의 반대편에 착석하는 모습을 확인한 테르베온이 문을 닫고서는 마부에게 출발 지시를 내렸다.


덜컹하고 마차가 출발했다. 로시안은 순간적으로 움직이는 마차에 몸을 잔뜩 경직했으나 몇 바퀴 움직이자 곧 빠른 속도로 적응했다.


그는 창의 너머로 손을 마구 흔드는 마을 사람들과 마리를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바라보았다.


‘······.’


잠깐 이별의 상실이 가볍게 찾아오고 잦아들었다. 그리하여 사람들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남은 건······.


로시안은 고개가 빳빳하게 굳어 잘 돌아가지 않는 것을 간신히 돌렸다. 아벨루스가 팔짱을 낀 채 반대편 창문에 시선을 주고 있었다.


‘어, 어색해.’


그냥 어색하기만 한 정도가 아니라 어색해서 죽을 것 같았다. 차라리 지금이라도 문밖으로 뛰쳐나가 병사들과 걷고 싶었다.


‘다친 게 다리만 아니었다면······.’


로시안은 하필 다쳐도 왜 다리였는지 울분을 토해내고 싶었다. 꼴깍, 침 넘어가는 소리마저 크게 들리는 것 같았다.


왠지 뭐라도 말해야 할 것 같은 침묵이었다. 결국, 참지 못하고 로시안이 무겁게 입을 뗐다.


“······그, 마차에 태워줘서 고마워.”


아벨루스는 창문에서 시선도 떼지 않은 채 입을 열었다.


“아뇨. 다리를 저는 사람을 굳이 걷게 할 필요는 없었을 뿐입니다.”


로시안은 그 말이 왠지 자신 때문에 이동시간이 지체되기 때문이라고 들려왔다. 그리고 다시 침묵이 찾아왔다.


“음, 대단하더라. 문제가 생기면 매번 이런 곳까지 돌아다니는 거야? 힘들지 않아?”

“해야 하는 일일 뿐입니다. 이럴 때가 아니면 오기 힘드니까요.”

“으응. 그렇구나······.”


의무적인 것처럼 말하는 것치고는 꽤 진지했던 것 같은데. 로시안은 그런 생각을 삼켰다.


그리고 또다시 침묵이었다.


대화 몇 마디 만에 할 말이 떨어졌다. 로시안은 코를 한 번 훌쩍이고는 입을 다물었다. 너무 수다스러워 보여서도 좋을 게 없을 것 같았다.


그런데 돌연 아벨루스가 먼저 입을 열었다.


“훈련 말입니다만.”

“응?”

“병사들과 훈련을 받은 기간이 얼마나 되죠?”

“음.”


로시안은 간단한 셈을 했다.


“7일 조금 넘었나?”

“7일······. 겨우 그것만으로······.”


아벨루스가 무어라 중얼거렸다. 그러고는 무슨 생각인지 창을 내다보면서 마차에 머리를 기댔다.


로시안은 그 뒤로 아벨루스가 무슨 말을 더 할 것 같아 기다렸지만, 그는 쭉 침묵을 유지했다.


레다폴을 향해 마차가 덜컹거리면서 굴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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