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작가 서자가 다시 사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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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냑
작품등록일 :
2024.08.20 2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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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0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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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9 2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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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22화

DUMMY

침묵이 길어지자 사제가 의아한 얼굴로 그를 바라봤다. 로시안은 고심 끝에 결정했다.


‘일단은······ 둘러대는 게 좋겠어.’


그는 이제 막 이 목걸이가 마도구라는, 처음 듣는 이야기에 머리가 엉망이 되고 있었다. 그렇기에 여기서 술술 다 이야기하기에는 좀 더 신중할 필요가 있었다.


로시안은 생각을 정리하면서 입을 열었다.


“모르겠습니다. 사소한 것들이 떠오르기도 합니다만 애초에 그것이 그저 기억에 남았기 때문인지 아니면 목걸이 때문인지 확신이 안 서서요.”


로시안은 그런대로 납득할 수 있도록 설명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찔리는 게 있는 탓에 혹여나 사제가 무언가 이상한 기색을 눈치채는 것이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들었다.


“흐음. 그렇다면 아닐 겁니다.”


사제는 의외로 담백하게 말했다.


“보통 신비로운 일은 겪으면 분명한 구분감과 이질감을 느낄 테니까요. 비록 저는 그 목걸이가 무엇을 위한 마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점은 틀림없을 겁니다.”


로시안은 설명을 들으면서 납득했다. 그렇다면 그는 틀림없이 그 신비로운 일을 겪었으니까. 확실하게 그 사실을 단언할 수 있었다.


“그리고 분명 마도구라면 어떤 작동 원리나 조건이 발동했을 테니 아직 그것을 깨우치지 못하셨더라면 충분히 모르실 법도 하겠군요.”

“작동 원리요?”

“예. 무작위로 상시 발동할 리는 없을 테니.”


그렇게 말하고서는 노인이 도로 로시안의 남은 상처를 돌보기 시작했다.


“제가 아는 건 그 정도가 전부입니다. 마도구에 대한 것은 그 이상 알려진 게 따로 없으니까요.”

“······.”

“이런 곳에서 보게 되다니 그저 신기한 기분입니다.”


사제는 정말 그게 다였다는 듯 다시 멍 자국을 없애는 데 집중했다. 빛이 일었지만 로시안은 이번에는 그 신비감에 압도되지 못했다.


오히려 그의 생각은 완전히 다른 곳에 가 있었다.


‘발동조건?’


그런 게 있었다고? 하지만 로시안은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 부분을 짐작할 수 없었다. 그야 그는 그저 자고 일어났더니 덜컥 머릿속에 미래의 꿈이 박혀버린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그 직전까지 특별히 별다른 행동이나 말을 한 적이 있었는지 몇 번이나 기억을 되돌아봐도 마땅히 떠오르는 건 없었다.


“다 됐습니다.”


그사이 치료가 모두 끝났는지 사제가 손을 내렸다. 갑작스럽게 예상치 못한 사실을 알아버린 로시안은 온갖 잡생각으로 머리가 잠식되어 있던 탓에 한 박자 늦게 반응했다.


“아, 감사······.”


그러다 눈을 들어 사제와 마주했는데 무슨 일인지 사제가 조금 전보다 살짝 눈 밑이 거뭇해진 것 같았다. 전체적인 인상도 피가 빠져나간 듯 핼쑥하게 변한 기분이었다.


로시안은 깜짝 놀라 눈을 크게 뜨며 물었다.


“저, 괜찮으신가요? 뭔가 얼굴이 피로해 보이시는데.”

“아······.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사제의 목소리에 마저 피로가 묻어나왔다. 그러나 그는 익숙한지 작은 웃음을 머금으며 말했다.


“원래 치료를 마치고 나면 이렇게 됩니다.”

“아, 저 때문에······.”


로시안은 괜히 제 별것 아닌 상처 때문에 사제를 이렇게 만든 것 같아 죄스러움이 들었다.


“아뇨, 다 제 역량의 부족입니다. 사제로서 부끄러울 따름이죠.”


그는 알 수 없는 소리를 하고서는 두 손을 가지런히 모았다. 로시안은 그의 말을 자세히는 이해할 수 없었으나 그가 빛을 일으켜 상처를 치료한 그 기적의 힘 때문에 사제가 이렇게 됐다는 것 정도는 알았다.


그 피곤한 얼굴을 보자 로시안은 사제를 위해서라도 빠르게 웃옷을 입었다. 제가 얼른 나가줘야 사제가 좀 편하게 쉴 수 있을 것이다.


그는 들어왔을 때와는 완전히 다른, 깨끗하고 상처 하나 없는 몸으로 문고리를 잡았다. 하루 만에 상처가 모조리 나으니 새삼 신기한 기분이 들었다.


“정말 감사합니다. 푹 쉬세요, 사제님.”

“예, 공자님께서도 오늘 상처가 나았다고 너무 무리하지는 마십시오.”

“반드시 주의하겠습니다.”


로시안은 힘들게 제 상처를 치료해 준 사제를 봐서라도 당분간 최대한 몸을 사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아, 그리고 그 목걸이 말입니다만.”


다시 사제가 목걸이를 언급하자 심장이 철렁거렸다. 혹시 뭔가 눈치를 챈 것인가? 하는 생각이 짧게 머리를 스쳤다.


“되도록 지금처럼 옷안에 넣어두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아······.”

“물론, 평범한 사람들은 눈치채지도 못할테지만 혹시나 모르는 것 아니겠습니까?”


로시안은 사제가 무엇을 염려하는지 알아차렸다.


목걸이가 마도구라는 사실이 드러나면 누군가 노릴지도 모를 일이다. 특히나 숙부에게 들키게 된다면······.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로시안은 정신을 번쩍 차렸다. 그는 조금 결연해진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잘 알겠습니다. 주의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뇨, 그저 노파심에 드린 말이었습니다. 괜히 마음을 쓰게 한 것이 아닌가 싶군요.”


그 말에 로시안이 거세게 고개를 저었다.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후후, 그렇다면 다행입니다.”


사제는 인자한 얼굴로 로시안을 배웅해 주었다. 로시안은 몇 차례 감사 인사를 건네며 밖으로 나왔다.


예상치 못하게 대화가 길어진 탓에 대기 시간이 좀 길었을 텐데 테르베온은 물론이고 아벨루스가 탄 마차 역시 그 자리에 그대로 멈춰 서 있었다.


로시안은 여태 아벨루스를 기다리게 했다는 생각에 서둘러 마차로 빠르게 걸어갔다. 그 바로 앞에 서 있던 테르베온이 웃으며 물었다.


“보기에는 다 나은 것 같군요. 좀 어떠십니까?”

“멀쩡히 다 나았습니다.”

“네, 걷는 모습을 보니 발목에도 이상은 없어 보입니다.”


그렇게 말하며 테르베온이 마차 문을 열어주자 로시안은 당황했다. 당연히 발이 나았기 때문에 여기서부터는 도로 걸어갈 줄 알았던 것이다.


그가 머뭇거리자 곧 그를 내려다보고 있던 테르베온이 그의 머릿속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이 말했다.


“도련님이 그렇게 매정한 사람은 아닙니다. 다 낫자마자 도로 걸어가라 하시겠습니까.”

“하, 하하.”


졸지에 그를 매정한 사람을 취급하고 있던 로시안은 어색하게 웃었다. 그리고 여기서 더 오래 아벨루스의 시간을 잡아먹으면 안 된다는 생각에 말미암아 마차에 올라탔다.


아벨루스는 팔짱을 낀 채 눈을 감고 있었다. 잠에 든 기색은 아니었으니 기다림이 지루해 이러고 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로시안은 대죄를 짓기라도 한 것처럼 아무 말 없이 자리에 앉았다.


그렇게 대화 한 마디 오가지 않은 채 마차가 성으로 진입하고 어느새 시간은 완연한 밤이 되어 있었다.


마차가 정지하자 아벨루스는 오늘 내내 동행한 병사들과 마부에게 가볍게 격려의 말을 건네주며 이만 물러가라고 전했다.


곧 로시안과 아벨루스, 테르베온 세 명은 성으로 들어가 계단을 올랐다. 얌전히 아벨루스의 뒤를 따르자 집사와 고용인들이 아벨루스에게 다가와 인사를 건네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뒤에 따라오는 로시안을 보면서 두 사람이 왜 같이 있느냐는 눈빛을 숨기지 않는 것도.


원래라면 이런 시선 하나하나가 예민하게 신경 쓰였을 테지만 오늘은 너무 많은 일이 있었기에 차마 거기까지 감정을 소모하지는 않았다.


어차피 뒤에서는 뭐라고 떠들기는 해도 고용인의 미덕이 있기에 직접적으로 앞에서 물을 일도 없을 테니 말이다.


어느 정도 계단을 오르자 테르베온이 로시안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럼, 공자님. 들어가서 쉬십시오.”

“아, 네.”

“여러모로 고생만 시켜드린 것 같네요.”


로시안은 부정하는 의미를 담아 고개를 저었다. 다행히 죽지는 않지 않았던가. 다치긴 해도 그 덕에 사제도 만나고 처음 듣는 이야기도 들었고.


밖을 나가서 사람 사는 모습을 보니 기분 전환도 되고, 마리와 그 부모의 얼굴을 떠올리니 그런대로 보람도 있는 하루였다.


“재미있었습니다.”


로시안이 정말 괜찮다는 얼굴을 하자 테르베온이 안도하는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로시안은 아벨루스에게도 인사를 해야 하나 짧게 고민했지만, 그는 그저 대화 중인 두 사람을 한 번 보고서는 먼저 앞서 걸어갔다.


그대로 가면 집무실이 나온다.


‘이 시간에 돌아와서는 또 일을 하는 건가.’


새삼스럽게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왠지 뻐근하게 느껴지는 목덜미를 한 번 풀어주면서 로시안은 제 방으로 향했다.


***


물에 몸을 담그고 나오자 피로감이 몰려들었다. 사제의 치료를 받았기 때문인지 육체적인 피로는 그렇게 심하지 않았다.


하지만 정신적인 피로가 강했다.


고블린에게 습격을 당한 것도 있지만 그보다 목걸이를 보니 생각이 많아졌다. 로시안은 보드라운 침대의 감촉을 느끼면서 목걸이를 집어 눈앞에 가져다 댔다.


빙글, 그의 손짓을 따라 목걸이가 오른쪽 방향으로 돌았다. 푸른 광택이 표면에서 은은하게 맴돌았다.


그 광택을 눈에 머금으며 로시안은 계속 목걸이를 들여다봤다.


‘이게 마도구라고.’


살면서 처음 들어보는 단어였다. 마법적 기능이 있다니 그야말로 신비로운 물건이지 않은가.


어머니는 왜 이런 물건을 지니고 있었던 것일까. 왜 이 목걸이는 자신에게 꿈을 보여준 것일까. 제가 꾼 꿈이 정말 단순한 꿈이 아니었구나, 자신이 미치기라도 한 건 아닌가 했었는데. 등의 여러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올랐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그렇게 가만히 목걸이를 들여다보고 있으니 점점 멍한 얼굴이 되어가고 있었다. 어느새 그는 그저 손끝에서 촉감을 느끼고 광택을 즐겼다.


‘응?’


그렇게 오랜만에 목걸이를 유심히 바라보고 있는 로시안의 눈썹이 살짝 위로 솟았다.


“뭐지?”


그는 누웠던 자리에서 일어나 무릎을 꿇었다. 그러고는 촛불에 빛을 비추면서 무언가를 확인하듯 살펴보았다.


“금이 간 건가?”


얼핏 지나치기 쉬웠으나 자세히 보니 광택의 아래로 내부에 얇은 실선 같은 것이 그어져 있었다. 너무 미세해서 촛불에 대고 눈을 찡그리지 않으면 잘 보이지도 않았다.


‘원래 이런 게 있었나?’


로시안은 고개를 갸웃했다. 예전에 봤을 때는 없었던 것으로 기억하지만 너무 미세한 선이라 확신할 수는 없었다.


“으음.”


그전까지는 아무 생각이 없다가 눈에 띄니까 조금 거슬렸다. 로시안은 손에서 목걸이를 한 번 강하게 쥐었다가 폈다.


특별히 부서질 것 같은 기미는 없었다.


얇은 실선이 신경 쓰이기는 했지만, 다행히 목걸이가 깨질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아 로시안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마도구라고는 해도 로시안에게는 그보다 어머니의 유품이라는 사실이 더 중요했으니까.


결국, 한참을 손에 쥐고 주물러 봐도 목걸이 내부의 실선에 대해서는 알아내지 못한 채 로시안은 도로 침대에 몸을 뉘었다.


하도 생각할 일이 한 번에 많아지니 조금씩 머리가 아파오는 것 같았다.


로시안은 길게 숨을 내뱉으면서 목걸이에서 손을 뗐다. 어둑한 천장을 바라보고 있자 조금씩 잠이 밀려들어 천천히 눈을 감았다.


‘아, 그런데 내일 훈련은 어떻게 하지.’


그러다 잠들기 직전 로시안은 일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무래도 가야겠지······.’


상처도 다 나았고 아직 아벨루스가 훈련 문제에 대해 별말이 없었으니까. 내내 시찰을 다니고 마차를 함께 타던 동안에도 말이 없었으니 계속 이어서 하라는 뜻일 것이다.


로시안은 동시에 또 잊을 뻔한 것을 떠올렸다.


‘맞다. 그 전에 들려야 할 곳이 있지······.’


***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로시안은 도서관으로 향했다. 꽤 오랜만에 오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훈련을 시작하기 전, 그러니까 어쩌다 보니 7일을 통으로 빼먹었으니 그리 틀린 생각은 아니었다.


‘고드릭 님은 안에 있겠지?’


거의 매번 도서관에서 마주쳤기에 로시안은 확신을 가지고 문고리를 돌렸다. 고드릭의 정체를 안 이후로 처음 보는 거기도 하고 글공부를 때려치운 게으름뱅이로 기억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어 약간 긴장과 걱정이 섞여 들었다.


로시안은 침을 꿀꺽 삼키며 문고리를 돌렸다.


천천히 문이 열리자 여전히 널찍하고 조용한 내부가 보였다.


예상했던 대로 고드릭은 도서관 책상에서 책을 켜켜이 쌓아 올린 채 독서 중이었다. 그는 한창 책에 집중하다가 로시안이 가까이 다가가자 흠칫하더니 홱 고개를 돌렸다.


그러고는 예상치 못한 사람이라도 본 것처럼 눈을 크게 떴다.


생각보다 격한 반응에 로시안 역시 당황하며 어색하게 손을 올렸다.


“오, 오랜만입니다.”


눈을 몇 번이나 끔뻑거리던 고드릭은 조금 늦게 그의 말을 이해하기라도 한 사람인 것처럼 뒤늦게 정신을 차렸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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