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작가 서자가 다시 사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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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냑
작품등록일 :
2024.08.20 2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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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0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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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4 2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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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17화

DUMMY

“저기 봐. 구름이 예쁘다.”

“그러게.”

“아! 방금 봤어? 새가 지나갔어. 참새보다 컸지?”

“응.”


아이는 옆에서 쉬지 않고 입을 움직였다. 몸도 작은데 어디서 이런 체력이 나오는 걸까. 로시안은 적당히 맞장구치는 시늉을 하면서 아이의 말에 반응했다.


하지만 아이는 썩 마음에 안 들었던 모양이었다.


“오빠, 좀 더 성의 있게 대답해 줘.”


적극적으로 요구를 해오는 탓에 로시안은 눈을 질끈 감을 뻔했다. 역시 아이는 눈치가 빠르고 자기 생각을 말하는데 거리낌이 없었다.


하지만 아이의 기준에 맞추어 살갑게 대하는 건 영 어색했기에 로시안은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에 빠졌다.


“얼굴을 잘 생겼는데 참 재미없는 오빠구나.”


아이는 실망한 듯 입술을 삐죽 내밀며 중얼거렸다. 로시안은 괜히 죄책감이 느껴져 공연히 목덜미를 매만졌다.


“미, 미안.”

“됐어. 오빠는 어른 같아서 재미없어.”

“어른 같다고?”

“응. 분명 저 앞의 공자님도 그럴 거야.”


로시안은 순간적으로 아이가 누구를 가리키는 건가 생각했다. 그러다 곧 얼굴이 시퍼렇게 질려서 눈을 크게 뜨고 아이를 바라봤다.


“아, 아벨루스?”

“그런 이름이었던가?”


아이는 순진무구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 어린애들은 겁이 없다고는 하지만 이 정도였나? 로시안은 제가 아이의 나이였을 때를 떠올리고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이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혹여나 이 당돌한 아이의 입에서 어떤 감당할 수 없는 발언이 쏟아질 봐 로시안은 쩔쩔매는 심정으로 아이를 불렀다.


“꼬, 꼬마야······.”

“어른들은 다들 자기 일만 바빠. 그래서 재미없어.”


그렇게 말한 아이는 조금 침울한 기색으로 땅바닥에 시선을 고정했다. 쉴 새 없이 떠들어대던 아이가 입을 다물자 순식간에 둘 사이에는 대화가 사라졌다.


‘으음······.’


로시안은 무어라 먼저 말을 꺼내야 할지 몰라 곤란한 얼굴을 했다. 순식간에 분위기를 이렇게 만드는 것도 능력이라면 능력이었다.


하지만 그 역시도 어쩔 도리가 없었는데 애초에 친구는커녕 또래와 친숙한 대화를 나누어본 적이 없었기에 이런 상황은 그에게 무척이나 어렵고 생소한 것이었다.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그는 거의 포기하는 심정으로 아이에게서 눈을 돌려 먼 산을 바라봤다. 워낙 외진 곳이라서 그런지 어딜 둘러봐도 거대한 산이 광활하게 펼쳐져 있는 것이 한눈에 들어왔다.


‘산이라.’


그는 산을 좋아했기에 푸르게 녹음 진 어디를 보더라도 마음이 편안해졌다. 로시안은 문득 제 어린 시절을 떠올렸다.


그는 어릴 적, 여관에서 일하는 것보다 더 이전부터 수도 없이 산을 오르내렸다. 산은 그에게 아주 익숙한 지형이었다.


그는 마을 주위의 그 어느 높디높은 산들도 뒷마당처럼 뛰어다녔다.


그 시작은 마을에서 가장 작은 동산이었다. 봄 무렵이면 색색의 꽃들이 민둥한 동산을 아름답게 수놓았다.


보고만 있어도 향기로운 붉고 하얗고 분홍색으로 가득 찬 자연 꽃밭이었다. 그 꽃을 어머니께 안겨드리고 싶어서 홀로 길을 떠난 것이 네 살 무렵이었을 것이다. 일을 마치고 돌아온 어머니께 꽃을 안겨드렸더니 무척이나 기뻐하셨던 게 기억에 선명했다.


그때를 기점으로 해가 지날수록 더 높은 산을, 더 깊은 곳을 마치 모험을 떠나듯이 오가기 시작했다. 어머니께서 일을 떠나면 홀로 남은 오두막에서 시간을 죽이는 대신 선택한 일이었다.


산을 타는 것은 꽤 유용하고 재미있는 순간이었다. 특히나 열매가 맺히는 계절에는 먹을 것이 늘어나 가장 배가 풍족해지는 시기라 좋아했었다.


사람의 손을 타지 않은 곳일수록 많은 열매가 남아있었으므로 그는 점점 높고 깊은 산을 돌아다녔다.


처음에는 어머니를 위해 오르고 내린 산은 나중에 이르러서는 외로움을 달래주는 수단이 되었다. 어머니는 일을 하러 가고 없는 시간에 홀로 오두막 안에서 보내는 시간이 무척이나 길게 느껴졌었으니까.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로시안은 다시 아이를 돌아보았다.


‘마을에 이 아이만 한 또래는 없었지.’


어른들은 밭일을 하느라 바빠 보였고 그 옆에서 멀뚱히 시간을 보내는 것이 전부였을 것이다. 밭일을 마치고 나면 지친 부모가 아이를 돌볼 기력도 없을 그런 대략적인 상황이 눈앞에 선명하게 그려졌다.


축 늘어진 아이에게서 익숙한 외로움이 느껴졌다.


그래서일까. 미처 생각을 정리하지 못한 채로 로시안의 입이 저절로 열렸다.


“저기 저 꽃이 보이니?”

“······.”

“금잔화야. 예쁘지?”


로시안은 어머니께 선물 드린 적 있는 꽃을 하나 가리키며 말했다.


“저거 먹을 수 있다? 먹어본 적 있니?”

“······아니.”


뚱한 얼굴로 시큰둥한 체하던 아이가 반응을 보였다. 아닌 척하지만,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기색이었다.


그는 빠른 걸음으로 금잔화의 줄기를 똑 떼고서 돌아왔다. 아이는 알록달록한 꽃을 보더니 호기심이 피어오른 눈으로 먼저 물어왔다.


“그냥 먹어도 돼?”

“응. 근데 우리 어머니는 차를 우려서 마셨어.”

“차?”

“꽃잎을 햇빛에 말린 다음 물에 동동 띄워서 마시면 돼.”

“우리 엄마는 그렇게 안 먹는데.”

“대부분 그렇지 뭐. 나도 그렇게 자주 해 먹지는 않아. 근데 물비린내를 지워줘서 어머니는 자주 해 드셨거든. 가끔 기분 전환 겸 해 먹을만해.”

“흐음.”


아이는 별 얘기를 다 듣는다는 얼굴로 로시안이 손에서 굴리는 금잔화를 바라보았다. 로시안은 들고 있던 꽃을 아이에게 넘겨주었다.


“나도 말려서 먹어볼래.”

“그래. 다른 꽃도 그렇게 먹을 수 있는 게 많아.”

“정말?”

“응. 알려줄까?”


아이는 어느새 뚱한 기색은 온데간데없어지고 로시안의 옆에 찰싹 붙어 있었다. 로시안은 내심 아이의 기분을 적절하게 잘 풀어준 것 같아 안심이 되었다.


그렇게 옆에서 한창 눈에 보이는 꽃이나 열매를 설명해 주었다. 대체로 처음 들어본 이야기인지 아이는 흥미롭게 눈을 반짝였다.


“이 꽃의 꿀을 먹을 수 있어?”

“응. 여기 꽃의 뒷부분을 뜯어서 한 번에 쭉 빨아먹어 봐.”


아이는 시키는 대로 꿀을 빨아 먹었다. 입안에서 단맛이 느껴지자, 아이가 눈을 크게 떴다.


“나왔어! 꿀을 먹었어!”


그러고는 신이 났는지 제자리에서 방방 뛰어오르기 시작했다.


“아, 근데 너무 적어.”

“한 번에 많이 먹는 것도 안 좋아. 그런 건 그냥 별미로 먹는 거지.”

“앗! 벌레!”


로시안의 말을 듣지 않고 다음 먹을 꽃을 고르던 아이는 꽃잎 속에 웅크리고 있던 벌레를 발견하고서는 깜짝 놀랐는지 꽃을 떨어뜨릴 뻔했다.


“하마터면 벌레를 먹을 뻔했어.”

“먹어도 되는 건데? 독도 없고.”

“으으. 싫어.”


아이가 질색하는 얼굴로 로시안을 바라봤다. 로시안은 어깨를 으쓱했다. 그렇게 싫어하니 어쩔 수 없지.


그는 꽃에 숨어있던 벌레를 손으로 옮겨 아무 풀잎 위로 올려주었다.


그 모습을 빤히 지켜보던 아이가 입을 열었다.


“오빠는 똑똑한 사람이구나?”

“······내가?”

“응. 아는 게 많잖아.”


로시안은 불과 몇 주 전까지 도서관에서 머리를 싸매던 자신의 모습을 떠올렸다. 아이가 그 모습을 봤더라면 방금 자기가 한 이야기가 얼마나 터무니없는 말인지 제대로 와 닿았을 텐데.


로시안은 대충 웃음을 지었다. 이런 건 그냥 산을 몇 번 오르내리면 금방 깨달을 수 있는 잡상식 같은 것에 불과했다. 그렇기에 로시안은 동경의 눈빛을 뿜어내는 아이를 향해 말했다.


“너도 금방 알게 될 수 있는 것들이야.”

“그래?”

“응. 혼자 있을 때 심심하면 가까운 들판에라도 가봐. 많은 것들을 알 수 있어.”


로시안은 자신이 외로움을 달래던 방법을 아이에게 넌지시 알려주었다. 어차피 아이의 외로움은 외부에서 해소될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입에 풀칠하면서 먹고 살려면 어른들은 언제나 아이를 뒷전으로 둘 수밖에 없으니까.


그러니 자기 스스로 외로움을 달래는 법을 찾아야 했다. ······적어도 로시안이 아는 방법은 그랬다. 더 좋은 방법이 있으면 알려주고 싶었지만, 그도 다른 것은 잘 모르니까 알려줄 수 없었다.


“그렇다고 숲은 함부로 들어가서는 안 돼. 산은 더더욱.”


하지만 제가 경험한 방법이기에 위험성에 대한 것도 잘 알았다. 맹수의 위협이 있는 숲이나 산에는 마냥 좋은 것들만 넘쳐나지 않는다는 것도.


“그 정도는 나도 알아.”


아이가 시큰둥하게 말했다. 그러고는 다리를 절고 있는 나무꾼을 가리켰다.


“어른들도 다쳐오는 곳이니까. 바보같이 늑대나 곰한테 잡아먹힐 생각은 없어. 무엇보다 지형을 잘 모르고.”


꽤나 현실적이면서도 냉철한 말에 로시안은 눈을 크게 떴으나 곧 고개를 끄덕였다. 만용을 부리는 아이보다는 제대로 현실을 보는 아이가 현명하지.


처음에는 당혹스러웠던 아이의 당돌함에 조금씩 적응이 되는 것 같았다.


“있잖아.”

“응?”

“아까 재미없다고 해서 미안해. 오빠는 생각보다 재미있는 오빠였어.”

“그러니?”

“응.”


그렇게 말하고서 아이는 무언가 생각하는 얼굴로 지그시 로시안이 준 금잔화를 바라보았다. 그러고서는 슬쩍 그를 향해 입을 우물거렸다.


무언가 하고 싶은 말이라도 있는 기색이었다.


“저기. 나는 마리야.”

“응?”

“내 이름 말이야. 마리라고 해.”

“응. 예쁜 이름이네.”


로시안은 아이의 이름을 듣고서는 곧바로 상투적인 칭찬을 건넸다. 마리. 마을에 몇 명 이름이 겹칠 사람이 있을 법한 이름이었다.


그런데 칭찬을 들은 아이의 표정이 어딘가 이상했다. 아이는 미간을 작게 찡그렸다.


“아이. 그게 다야?”

“으응······?”

“오빠는 이름이 뭐냐고! 숙녀가 이런 것까지 먼저 물어봐야 해? 오빠 애인 없지.”

“무슨 말을 그렇게 하니······.”


로시안은 허리에 겨우 오는 꼬마를 내려다보면서 지친 얼굴을 했다. 역시 어린아이는 변덕이 심했다.


하지만 아이가 하는 말이 틀린 것은 아니었다. 먼저 제 소개를 했으니 로시안 역시 저를 소개하는 게 맞는 것이겠지.


“난 로시안이야.”

“로시안······. 흠. 나쁘지 않은 이름이네.”

“······.”


사람의 면전에 대고 아무렇지 않게 이런 얘기를 하다니 역시 보통내기가 아닌 아이라고 생각했다.


“로시안 오빠라고 불러도 되지?”

“마음대로 해.”


아이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연신 로시안의 이름을 불러댔다. 그 사이 로시안은 테르베온이 사라진 방향으로 슬쩍 고개를 돌렸다.


어느덧 마을은 거의 다 돌아본 것 같은데 테르베온은 아직 돌아오려는 기미가 없었다.


아무래도 조금 더 대기해야 하는 시간이 길어지게 될 것 같았다.


‘테르베온 경이 돌아오기 전까지 출발하지는 않을 테니까.’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아이가 잠시 머뭇거리더니 말을 붙여왔다.


“있잖아.”

“왜?”

“오빠는 평범한 병사가 아니지?”

“······왜 그렇게 생각해?”


아이는 앞서 멀직하게 걷고 있는 병사들을 가리켰다. 아이의 발걸음에 맞추어 걷고 중간중간 수풀에서 풀꽃을 뜯어오느라 시간을 지체한 탓인지 아벨루스의 무리와 거리가 상당히 벌어져 있었다.


아이의 손가락은 어느새 병사들을 지나 가장 선두의 아벨루스를 가리키고 있었다.


“뭔가. 공자님이랑 비슷한 느낌이야.”


어떤 의미에서는 아이의 촉이 날카로운 부분이 있었다. 당연히 성에 들어오기 전의 삶과 성에 들어온 이후의 로시안의 삶은 달랐으니까.


그저 따뜻한 목욕물에 몸을 담그는 것만으로도 피부에 윤기가 생겼고 머리칼이 전보다 보드라워졌다.


당연히 일반 평민들과는 조금씩 다른 부분이 눈에 띌 수밖에.


로시안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아이에게 무어라 대꾸해야 좋을까 고민했다. 그때, 그의 귀로 돌연 기묘한 소리가 잡혔다.


로시안은 의아한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눈앞에 보이는 건 없었다.


‘······잘못 들은 건가?’


“꺄악!”


그 순간, 날카로운 비명과 함께 마을 아낙이 겁에 질려 뛰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그녀의 뒤로 돌도끼를 손에 쥔 무언가가 맹렬하게 쫓아오고 있었는데 도무지 인간의 형상이라고는 볼 수 없는 존재였다.


‘······! 설마.’


처음 보는 존재지만 로시안은 직감적으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녹갈색 피부에 매부리코, 뾰족한 이빨에 길쭉한 귀, 왜소한 체형에 구부정한 자세.


“고블린이다!”


누군가가 그렇게 외치던 순간 로시안 역시 딱 그 이름을 떠올렸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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