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작가 서자가 다시 사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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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냑
작품등록일 :
2024.08.20 2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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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8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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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10화

DUMMY

테르베온은 테이블을 가운데 두고 앉아 있는 두 사람을 보면서 눈을 조금 크게 떴다. 그러다 곧 웃으면서 인사를 건넸다.


“방에 안 계시기에 혹시나 했는데 역시 여기에 계셨군요.”


그러고는 눈을 살짝 게슴츠레하게 떴다.


“로시안 공자님께서 이 시간까지 여기에 계실 줄이야. 두 눈으로 보면서도 믿기지 않는 조합입니다. 두 분 꽤 가까워지셨나 보군요!”

“그렇게 말하는 테르베온 경이야말로 무슨 볼일인가? 아벨루스 공자님의 책을 빌리러 온 것도 아닌 것 같고 경이 책을 읽으러 온 건 더더욱 아닌 것 같은데.”


로시안은 테르베온에게 말을 낮추는 노인을 보면서 눈을 휘둥그레 떴다. 노인이 더 직위가 높은 사람이란 말인가? 그러다가 문득 저번에 숙부의 보좌에게도 말을 낮추던 모습이 떠올랐다.


숙부의 보좌도 그렇고 테르베온도 그렇고 노인에게 깍듯하게 대하는 것을 보니 로시안은 대체 도서관 관리인은 뭐 하는 사람인가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의 생각은 오래가지 못했다.


“로시안 공자님을 찾고 있었습니다.”

“저를요······?”

“예, 아벨루스 도련님께서 찾으십니다.”

“······!”


‘아벨루스가 나를!’


로시안은 오늘 수업에서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선생을 떠올렸다. 설마 하는 마음으로 기대를 담아 테르베온을 바라봤다. 그에 응하듯 테르베온이 고개를 끄덕였다.


“같이 가시죠.”

“자, 잠시만요!”


로시안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러고는 허둥거리면서 의자를 정리하고는 책도 다시 원래 자리에 돌려 넣기 위해 돌아서려던 찰나 노인이 그를 불러세웠다.


“그 일은 제가 하죠. 아벨루스 공자님께서 기다리고 계시니 먼저 가십시오.”

“하지만······.”


언제나 허드렛일은 제 담당이었던 로시안은 노인, 그것도 평범한 도서관 관리인이 아닌 것 같은 사람에게 뒷정리를 맡기는 게 영 마음에 걸렸다.


그러나 노인은 어느새 그의 품에서 책을 빼앗고서는 테르베온을 턱짓으로 가리켰다. 서둘러 따라가라는 의미였다.


그에 로시안은 잠시 망설이다 감사와 인사를 겸해서 고개를 숙이고는 기본문자가 적힌 구깃구깃한 종이만 한 장 챙기고서 테르베온의 곁으로 다가갔다.


테르베온이 그 종이를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다 곧 미소 지었다.


“그럼 가실까요?”

“네, 네!”


로시안은 도서관 문을 지나면서 슬쩍 뒤를 쳐다보았다. 노인은 어느새 책장 사이로 사라지고 없었다.


그는 먼저 앞서 걷는 테르베온의 등을 보면서 의문을 삼켰다. 두 사람은 면식이 있어 보였는데 그렇다면 테르베온은 저 도서관 관리자의 정체에 대해 알고 있는 걸까? 물어봐도 되나?


그렇게 속으로 갈피를 못 잡고 헤메고 있는데 테르베온이 선뜻 입을 열었다.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설마하니 고드릭 님께서 공자님께 공부를 가르치고 계셨을 줄이야.”

“고드릭?”


로시안은 순간 고드릭이 누군가 생각하다 곧 말의 앞뒤 맥락에서 가리키는 이가 한 명뿐이라는 사실에 뒤늦게 노인의 이름을 알아차렸다.


“설마 이름도 모르고 계셨던 겁니까?”


그에 테르베온이 믿을 수 없다는 투로 물어보았다. 로시안 역시 그제야 제가 여태 노인의 이름을 물은 적이 없었다는 사실에 스스로가 놀랐다.


그냥 자연스럽게 대화를 주고받다 보니 어느새 아주 기본적인 것을 홀라당 빼먹고 만 것이었다. 게다가 노인은 자신이 누구인지 잘 알고 있는 것처럼 행동해서 더 위화감이 없었다.


“그게 어쩌다 보니까······. 지금 알았습니다. 이름이 고드릭이였군요.”

“네. 그분께서 공자님 공부를 돌봐주었다면 글은 어렵지 않게 익힐 수 있었을 텐데요. 어떻게, 진도는 좀 잘 나가고 있나요?”

“기본은 다 뗐습니다. 근데 아직 유창하게 읽지는 못해서······ 열심히 연습 중이에요.”


로시안은 열심히 라는 부분에 힘을 주어 말했다. 부디 테르베온이 저를 게으르거나 멍청한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기를 바라면서.


“그러면 금방 잘하게 될 겁니다. 반복하면 어느 순간 확 늘어있을 테니까요.”


다행히 테르베온은 긍정적으로 봐주고 있는 것 같았다. 로시안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테르베온이 대화의 물꼬를 터 조금 편안해진 분위기가 되자 조금 용기를 냈다.


“저, 그 고드릭이라는 분 말인데요. 도서관 관리인······이 아닌가요?”

“······예에?”


테르베온은 걷다 말고 멈춰서서는 큰 소리로 되물었다. 그는 지금 자신이 제대로 들은 게 맞나 하는 얼굴이었다.


“어, 아닌가요?”

“전혀 아닙니다! 애초에 트레덴스 성에 따로 도서관 관리인이라는 직책은 없어요! 도대체 누구한테 들은 말입니까?”


로시안은 차마 정확한 명칭을 모르기에 대충 제 머릿속으로 지어낸 직책이라고는 말할 수 없었다. 그는 황망하게 눈동자를 굴리면서 입을 꾹 다물었다.


“세상에 공자님! 저분이 누군지도 모르고 내도록 도서관에서 글자를 배우고 있으셨단 말입니까?”

“······.”

“저분은 트레덴스가의 가신이십니다. 그것도 현 백작님께서 젊을 적부터 함께하신 오랜 가신이죠. 성에서는 그런 분들을 따로 원로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로시안은 그 설명을 듣자마자 헉하고 숨을 삼켰다. 가신이라고? 그렇다면 숙부가 늘 만나서 중요한 대화를 주고받는 사람들 아닌가. 제대로 그들을 알지 못하는 로시안조차 성과 영지를 운영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인물들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바로 앞으로 아벨루스가 백작위에 오르기 위해 환심을 사야 하는 인물들이라는 것 역시도.


로시안은 반사적으로 노인 앞에서의 제 행동거지들을 돌이켜보았다.


‘뭐, 실수한 거 없지?’


그러다 책으로 무작정 글공부를 시작하던 것, 공부가 뜻대로 안 돼서 머리를 헝클어뜨리고 한숨을 쉬는 등의 추태를 보인 것, 쓸데없는 소리를 늘어놓거나 명세서를 허락 없이 들여다본 것 등등이 한꺼번에 떠올랐다.


‘······!’


그는 순식간에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버렸다. 게다가 방금 전에는 제가 본 책의 뒷정리까지 맡기지 않았는가. 로시안은 순간 다시 도서관으로 뛰어가야 하나 생각했다.


“같이 계시면서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습니까?”

“······! 들었습니다! 글공부를 봐주시는 게 능숙하다거나 난생처음 들어보는 고대어에 대해 설명해주거나 숙부님의 보좌가 찾아와 깍듯하게 대하거나 명세서를 작성하고 계시거나 할 때요!”


로시안은 쏟아내듯이 말을 내뱉었다. 테르베온이 그에 깜짝 놀란 얼굴로 멀거니 그를 바라봤다.


로시안은 조금 억울한 기분에 휩싸여 테르베온의 상태를 보지 못했다. 분명 그도 의아하게 여겼었다. 그것도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런데도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기니 이런 일이 생겨버렸다.


그의 얼굴이 거의 파리하게 질려있었다. 그 모습을 빤히 바라보던 테르베온이 정신을 차리고선 돌연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생각보다 엉뚱한 구석도 있으셨군요!”

“예에?”


로시안은 눈꼬리를 늘어뜨리며 도대체 이 사람 좋은 얼굴을 한 기사가 무슨 소리를 내뱉는 건지 알 수 없다는 얼굴을 했다.


“그렇게까지 의문을 가지셨으면서 도서관 관리인이라고 생각하고 계셨단 말인가요?”

“······그렇지만 분명 책 정리를 하고 계셨습니다!”

“그분께서는 책을 무척 좋아하셔서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도서관에서 보내십니다. 실제로 도서관을 자유롭게 사용하실 수 있도록 백작님께서 편의를 봐주셨고요. 책을 정리하고 계셨던 것은 그야말로 스스로 읽은 책을 정리한 것뿐입니다.”


‘그, 그런 거였어?’


로시안이 당황하는 사이 테르베온의 설명이 이어졌다.


“또한, 그분께서는 트레덴스 일가의 교육 담당이셨습니다. 백작님의 자식들도 또 그 자식인 아벨루스 도련님도 모두 그분께 교육을 받았지요. 그 외에도 영지의 행정업무나 세금 처리 등의 일을 도맡아 처리하고 계십니다. 명세서를 작성하고 계셨던 건 그 때문일 겁니다.”


로시안은 입을 쩍 벌렸다. 이렇게나 대단한 사람인 줄은 조금도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어쩐지 가르치는 게 능숙하더라니 성의 교육 담당이라는 말에 의문이 확 풀려버렸다.


일상적인 대화도 나눌 수 있을 정도로 편해진 노인이 순식간에 멀어진 것 같았다. 당장 내일 도서관에 가서 얼굴을 마주쳐도 평소처럼 대하지는 못할 것 같았다. 아니, 애초에 도서관을 가지도 못할 것 같았다.


“······.”


너무도 갑작스럽게 노인의 정체를 알아버린 로시안은 말을 잃고 말았다. 그에 피식 웃음소리를 내던 테르베온이 어느 순간 멈춰서서는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이해는 합니다만 이제 슬슬 충격에서 빠져나오시는 게 어떨까요. 집무실에 도착했습니다.”


그 말에 로시안은 바닥으로 향했던 시선을 들었다. 테르베온의 말이 맞다. 기껏 아벨루스가 불렀는데 멍청한 얼굴로 들어갈 수는 없었다. 여기서 더 자신에 대한 생각을 바닥으로 찍게 만들 수는 없었다.


로시안은 마음을 다잡으며 일단 지금 눈앞의 일에 집중했다.


그런 로시안을 보면서 테르베온이 천천히 집무실 문을 두드렸다. 곧 들어오라는 말이 들려왔고 테르베온이 문을 열었다.


이로써 두 번째 방문이지만 마치 처음 들어온 것처럼 심장이 긴장으로 뛰기 시작했다.


저번과 마찬가지로 아벨루스는 책상에 앉아 서류더미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로시안이 들어서자, 고개를 들었다.


제가 들어오는 모습을 보고 있는다고 생각하니 로시안은 팔다리가 뻣뻣하게 굳는 것 같았다. 최대한 자연스럽게 굴려고 노력하는 사이 책상 바로 앞에 도착했다.


로시안은 침을 꿀꺽 삼키면서 물어봤다.


“그, 무슨 일로 부른 거야?”

“말씀하신 내용 말입니다만 확인을 해봤습니다. 사실이더군요.”


‘당연하지!’


로시안은 순간 감정이 훅 올라와 눈에 힘을 주고 주먹을 꽉 쥐었다. 아벨루스가 제 말을 흘려보내지 않고 들어줬다는 것과 사실을 알아내고서도 그냥 묻을 수 있었는데 이렇게 불러준 것이 감격스러웠다. 제게 쓸모가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 준 것이 아닐까 그런 기대감이 차올랐다.


로시안의 격한 반응에 아벨루스는 미미하게 눈가를 찌푸리고서는 말했다.


“확실히 숙부님도 모르고 계셨더군요. 선생이 마물 밀수와 연관되어 있는 사람인 줄은 말이죠.”


그렇다. 선생은 꿈에서 본 미래에서 이 사실이 들통나 쫓겨났다. 제국에서 마물 밀수는 중죄였다. 특히나 최근 몇 년 동안 황실에서는 유독 마물과 관련한 문제에 예민했으므로 선생이 트레덴스 가에 남아있을 수는 없었다.


자칫 잘못하면 트레덴스 가마저 죄를 물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알아챈 이상 당장이라도 내쫓아야 했다.


“선생은 어떻게 되는 거야?”

“지금은 성의 지하 감옥에 가두어 놨습니다. 가장 가까운 황제 직할령에 서신을 보냈으니 곧 근위대에서 사람이 올 겁니다. 못해도 감옥에서 십몇 년 썩으면서 노역형에 처하겠죠.”


그렇다면 꿈과 다르지 않았다. 그때도 황실 근위대에서 사람이 찾아왔었다. 로시안은 일이 잘 풀리고 있음을 느꼈다.


조용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테르베온이 살짝 설명을 덧붙였다.


“조사해 본 바에 의하면 상당히 명예욕이 강한 사람이더군요. 욕심이 과하기는 했습니다. 결국, 이리 들통나버렸으니. 밀수 경로로 보아하니 아마 수도 귀족과의 연줄을 만들고 싶었던 게 아닐까 싶습니다. 사람이 많이 모인 곳이니 별 해괴한 취향을 가진 귀족들도 많으니까요.”


선생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조사 내용이었다.


“오히려 이제껏 칼루이덴 님께서 모르고 계셨다는 게 신기합니다.”


그건 그렇게 신기한 일은 아니었다. 숙부는 그저 로시안의 교육을 방해하고 인격을 짓밟을 수 있는 선생 정도의 실력이면 되었고 그 이상의 세밀한 조사는 불필요한 시간 낭비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다만, 애초에 숙부는 선생에게 그 이상의 역할을 바라지 않았던 것과 반대로 선생으로서는 나름 지금까지 상대했던 귀족 중에서는 가장 높은 축에 속하는 트레덴스가와 어떠한 연줄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겠지.


그러니 미온적인 숙부의 태도가 선생을 초조하게 만들었고 다른 곳에 눈을 돌리게 했을 것이다.


“어쨌거나 공자님께서 큰 역할을 하셨습니다.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마물 밀수업자를 성에 들여보내고 있었다는 거 아닙니까.”


테르베온이 칭찬하듯 그를 추켜세워주었다. 그에 익숙하지 않은 로시안이 멋쩍은 웃음을 지을 즈음 유순한 분위기가 감도는 공간 사이로 냉철한 말이 흘러들어 왔다.


“그렇지. 큰 역할을 했지. 숙부님도 모르고 나도 몰랐는데 말이야.”


비록 일은 잘 해결되었지만, 아벨루스의 눈에는 아직 의심의 눈길이 가득했다.


“그 사실을 당신이 먼저 알아차렸다니 말이야.”


매섭게 올라간 눈초리를 마주하자 로시안은 저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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