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화. 청계산 어느 멋진(?) 날에
도대체 왜 국정원은 김 회장을 감시하는 걸까? 그리고 김 회장이 중국에 가면 모든 도로의 신호등을 멈추고 베이징 시내를 가로질러 시진핑 국가 주석이 있는 곳까지 논스톱으로 간다는 말. 본인은 홍콩에 주 사무실을 두고 국제 금융의 보이지 않는···. 세계의 채권을 다룬다는 말.
이 모든 것이 내게는 생소하기는 했지만, 그 진지한 얼굴과 머니타이징, 역사와 과학의 이야기는 나를 더욱 그에게 빠져들게 했고, 결국 내 입에서는 ‘형님 제가 한번 해보겠습니다.’라는 말까지 하도록 만들었다.
도대체 이 사람의 정체는 무엇일까? 그렇게 경계심이 많은 나를 허물 정도라면 분명 사실이거나, 그게 아니라면 정말 대단한 사기꾼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이야기를 지어내고, 진지하게···. 연기 느낌이 들지 않게 말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이왕 이렇게 된 마당에 한번 끝을 보자. 귓가에 맴도는 제가 해보겠다는 나의 외침과 끝을 보자는 마음. 이것 말고는 더는 내게 남아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뭐라고? 너 미쳤어? 계약금 1억이 필요하다고? 마스크는 다 어딨고, 받기로 한 계약금은 어떻게 된 거야? 그리고 이게 다 무슨 개 같은 소리야?”
사촌 형은 상기된 얼굴과 함께 주먹으로 책상을 내리쳤다. 그럴 법도 한 것이, 지나간 이야기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지금 당장 1억이라는 자금이 필요하다고 하니···. 사촌 형의 전 재산인 융자받은 1억을 내놓으라니···. 내가 안 미덥고 미친놈처럼 보이는 것도 당연했다.
“형! 인생 모 있어? 남자로 태어나 이 정도 일에 한번 끝을 보자는데 내가 모 그리 잘못했다고. 우리 사이에···.” 반응을 보면서도 나도 이번엔 좀 강하게 밀어붙였다.
강한 어조에 좀 움찔했지만,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그래도 그렇지 인마. 이 1억마저 날리면 우린 다시는 회생 불가능이야 인마!”
그렇다. 코로나가 터지고 우린 더는 할 일이 없었다. 돈은커녕 일거리조차 없었고,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마스크, 코로나 진단키트, 니트릴 장갑 등 방역용품의 유통 말고는 할 일이 정말 없었다.
그마저도 제대로 된 거래를 못 했는데···. 이제 사촌 형의 융자받아 놓은 돈 1억으로 나라를 일으키자니 말하는 내가 정말 실성했다고 느끼는 것도 당연했다.
“형 이미 시작되었어. 이제부터는 우리도 감시를 당할 테니 특히 신경을 써야 해!”
“이 새끼가 미안하니깐 별 소릴 다한다. 감시는 무슨 감시? 나도 몰라 이젠. 네 맘대로 해.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살자 했으니···. 제발 성공하길 바란다. 이게 진짜 마지막이다.”
사촌 형은 결국 내게 와서 같이 일하기 시작하고 융자받은 1억 중 남아있는 8,800만 원을 건네주고 자신은 빠지겠다고 했다. 그냥 머리 쓰지 않는 막노동이나 뛰고 있겠다고 했다. 물론 잘되면 모든 수익을 반반 나누지만 실패한다면···. 그건 나도 기약할 수 없다.
더는 헤어나오지 못할 수렁에 들어가는 것 같았지만 한편으로는 정말 단 한 건이라도 제대로 성공한다면 이 모든 것들을 만회하고, 이 나라 역사에 이름을 남길 수 있다는 희망에 차 불나방처럼 뛰어든 것이다.
이후 내게 벌어질 일에 대해 난 정말 노 아이디어! 정말 정말 알 수도···. 짐작할 수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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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네. 내가 마스크와 머니타이징 설명한 것 잊지 않고 있지?”
“네 그럼요. 한마디로 지금 COVID19 시국에 마스크는 금괴와 같은 머니타이징을 할 수 있는 대체재다. 뭐 이런 말씀 아닐까요?”
“허허 역시 남달라 남 사장. 이렇게 금방 깨우치니 자네는 나보다 훨씬 잘 해낼걸세.”
“자네 가진 돈이 얼마라고 했지?”
“아 네. 8천여만 원 갖고 있습니다. 1억 원까지는 조금 모자랍니다.”
“괜찮네. 우선 그걸로 40피트 트럭 200대를 예약해야 하네. 그리고 오늘 자넬 ‘창’으로 데려가겠네.”
“네? ‘창’이요?”드디어, 내 두 눈으로 직접 보고 싶었던 ‘창’으로 가는구나. 난 상기되어 꼼꼼하게 비즈니스 체크 하는 것도 잊은 채 들떠서 물었다.
“그 ‘창’에서는 어떤 것을 지키고 있나요? 위치가···.”
“어. 일단 선바위역에서 멘데이터를 만나고, 청계산으로 이동할 거야. 더 자세한 위치는 말해줄 수 없고, ‘창’이 청계산 일대에 있다는 것만 말해주겠네.”
“네. 그럼 제가 해야 할 일은 무언가요?”
“그야 당연히 멘데이터를 접선하고, 8천만 원을 오만원권으로 가져가 보여주고, 함께 ‘창’으로 가서 금괴를 보면 되네. 그리고 이후 내가 40피트 트럭 200대에 마스크를 채워 보낼 테니, 금괴와 맞바꾸면 되네. 그럼 그 금괴를 머니타이징 하는 일은 내가 알아서 할 테니 걱정하지 말고.”
“내 알겠습니다. 형님! 멘데이터 접선 시간과 장소 알려주세요!”
드디어 난 선바위역 커피숍 뒤 작은 주택에서 멘데이터를 만났다.
“생각보다 젊구먼”
안경 끼고 메마른 사내는 매서운 눈과 묘한 미소를 띠며 말했다.
“돈은 가져왔나?”
난 배낭에 가득 담아온 돈을 보여주었다.
“그럼 가세! 무조건 이 일의 생명은 속전속결이야. 보이지 않는 눈들의 감시가 심하단 말이야. 서두르게. 내 차로 움직이겠네!”
난 그의 차를 타고 청계산으로 향했다. 꼬불꼬불 길을 올라 과연 이런 곳에도 사람이 있나 싶은 곳으로 차는 계속해서 올라갔다.
차 시동이 꺼지고 살짝 열린 창밖에서 풀냄새가 들어왔다.
“다 왔네. 내리게!”
차에 내려 둘러보니 그 앞에는 무척 큰 컨테이너 무덤처럼 여기저기 컨테이너들이 흩어져 있었고, 건전해 보이지 않는 몇몇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조폭이라고 하기에는 덩치나 분위기가 아니지만 그렇다고 건전하게 비즈니스를 하는 사람들처럼 보이지도 않는..양아치 같은 옷차림의 사람들···.
‘나···. 제대로 온 거 맞나···. 정말 창이 이렇다고···?’
청계산에 이런 곳이 있다는 것도 생소했지만, 이런 인적이 드물고 작은 차 한 대가 올라갈 만한 곳에 창이 있다는 것도 의문이었다.
그래도 풀냄새와 흙냄새는 좋았다. 벌써 해가 져가는지 붉은 노을이 아름답게 펼쳐졌다. 순간 이런 곳을 매일 거닐 수 있다면 돈이고 모고 다 필요 없고 행복하겠다 싶었다.
이런저런 생각에 빠져 있을 때 순간 꽝인지 퍽인지 모를 소리와 함께 하늘은 노랗고 빙빙 돌면서 토할 것 같은 느낌과 함께 모든 것이 캄캄해졌다. 이때 무언가 내 등에 뜨겁게 꽂히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고요···. 으악 소리를 낼 찰나 조차 없이 정말 무서울 정도로 고요함 속에서 난 편안히 잠이 들고 있었다.
모든 시름과 근심 걱정이 사라지고 편안히 잠들고 싶다고 생각하곤 했다. 특히 이렇게 힘들 때는 할 수만 있다면 고통 없이 편안히 잠들다 가고 싶었다. 찬 바닥이지만 이 흙냄새와 풀냄새···. 얼마 만에 맡아 보나···. 아···. 좋다···.
- 작가의말
다음편도 기대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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