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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치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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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25 2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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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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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의 그림자 속에서

DUMMY

19. 봄의 그림자 속에서




차가운 기운이 그레이트 홀 안에 여전히 머무르고 있었지만 벽난로에서 뿜어져 나오는 온기와 빛이 은은한 따뜻함을 드리우고 있었다.




연회가 없는 평소의 그레이트 홀에는 원형 테이블이 있었고 그곳에 뇌블랑 후작의 영애 데스데모나가 앉아 있었다.




뇌블랑 후작은 홀로드의 남동쪽 지역인 페르마니스의 영주로서 얼어붙은 대지와 얼음 강을 지배하는 냉철하고 냉혹한 가문으로 유명했다.




물론 과거의 일이었지만 말이다.




왕국이 건설되고 루나피라 1세의 축복에 따라 대륙의 각 영주들은 일정 이상의 병사나 기사를 거느릴 수 없었으며 왕실기사단을 제외한 모든 기사단은 해체해야만 했다.




유일하게 남은 기사단은 왕실과 계약을 맺은 발레리안 프레데릭의 홀로드 기사단뿐이었다.




7대 왕 라인홀트가 즉위하고 북부에 마물이 출현하기 시작했을 때, 발레리안 대공은 북부 제후들에게 최소한 영지민을 보호할 수 있을 만큼의 기사와 병사의 소집권한을 주기를 요청했다. 왕실은 조건을 내걸었으며, 허락한 사병의 수 또한 많지 않았다.




레이디 데스데모나는 뇌블랑 후작의 막내딸로 작은 몸집에 밝은 흑발이 눈부시게 빛나는, 마치 인형처럼 귀여운 외모를 자랑했다. 어두운 흑발이 어떻게 빛나냐고 묻는다면, 그녀를 직접 마주하면 알 게 될 일이었다.




마치 다가오는 봄의 여신이라도 되는 것처럼 샛노란 드레스를 차려입은 모습은, 겨울의 한가운데에 피어난 꽃처럼 보였다.




데스데모나는 두 손으로 작은 찻잔을 들고 있었고, 그녀의 작은 발이 의자에서 달랑달랑 흔들렸다. 그녀는 찻잔을 천천히 입에 대며 짙은 보랏빛 눈동자를 반짝였다.




한참 동안 탁자 위에 놓은 다양한 과자들을 손으로 만지작거리다가, 조금씩 입안에 넣고 오물거리며 상상의 대화를 나누고 있는 듯 혼잣말을 하기도 했다.




“대공녀님은 저를 싫어하시나요? 아니지··· 절대 안 돼! 대공녀님께서 저를 피하시는 것 같아, 데스데모나의 마음이 너무 아파요. 그래!”




그녀는 과자 하나를 집어 들고 환하게 웃었다. 만개한 웃음이 너무 아름다워 피할 도리 없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이 과자, 정말 맛있다!”




데스데모나는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발소리를 듣고 눈을 크게 떴다. 보석 같은 보라색 눈동자가 눈부셨다. 홀에 울려 퍼지는 발자국 소리에 그녀의 귀여운 얼굴이 밝아졌다.




그녀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가볍게 옷을 정돈했다. 데스데모나는 해맑은 미소를 띠며 맑은 목소리로 외쳤다.




“대공녀님을 뵙습니다. 데스데모나 뇌블랑입니다. 지난번 생일선물로 주신 브로치가 너무 아름다워서 감사를 드리려고······.”




그러나 그 순간, 데스데모나의 시선은 로라메리의 뒤를 따라 들어오는 한 남자에게 머물렀다. 은빛 머리카락이 부드럽게 흩날리며, 붉은 눈동자가 선명하게 빛나는 테오 경이었다.




테오의 우아한 외모와 강인하고 다부진 체격은 마치 그가 전설 속의 기사인 것처럼 느껴졌다. 그녀의 큰 눈은 더욱 커다랗게 뜨였고,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얼굴이 순식간에 붉어지더니, 그녀는 말을 잃고 멍하니 테오를 바라보았다.




“레이디 데스데모나. 오래 기다리셨다는 말을 전해 듣고 곧바로 오는 참이었습니다. 훈련 중이라 차림이 이렇네요. 여기는 테오 경. 곧 테오 프레데릭이 될 것이라는 이야기를 아마도 들으셨겠지요.”




“안녕하세요! 테오 경··· 정말 멋지신 분이로군요! 저는 페르마니스에서 온 데스데모나 뇌블랑입니다.”




떨리는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귀여운 미소를 지으려 노력하며 테오에게 말을 거는 그녀였다.




“뇌블랑 영애를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그의 목소리가 울리자, 데스데모나는 심장이 또다시 두근거렸다. 그녀는 머뭇거리며 자신의 손가락을 만지작거렸다.




그저 테오의 시선이 자신에게 오랫동안 머물기를 바랐지만, 테오는 금방 로라메리에게로 눈길을 돌렸다.




“음. 일단 오해를 바로잡고자 하는데요, 나는 뇌블랑 영애에게 선물을 보낸 적이 없습니다. 아마도 알프레드가 질 좋은 것을 골라보내준 모양입니다. 마음에 드셨다니 다행입니다. 제게 주실 것이 있어 기다리셨다지요?”




“그렇군요! 저는 그것도 모르고 대공녀님의 안목이 역시나 특별하다고 다른 영애들에게 소문을 냈지 뭐예요··· 아! 일주일 후에 페르마니스 성에서 티파티를 열예정이에요! 물론 대공녀님은 외출을 좋아하시지 않는다고 알고 있지만··· 홀로드의 연회는 또 한참을 기다려야 하는데··· 모두가 로라메리 전하를 기다리고 있답니다! 곧 봄이잖아요!”




“참석하겠습니다. 다만, 레이디만의 파티가 아니라면 테오 경이 동행 해도 되겠습니까?”




“물론이죠! 디몬님과 에디아르님도 꼭 와주신다고 하셨는걸요!”




“디몬을··· 만났나요?”




“네! 오전에 디몬님과 에디아르님을 함께 뵈었어요! 정말 신사답고 멋지신 분들이에요! 물론 테오 경도 그러시겠지만요!”




데스데모나가 테오를 향해 눈을 가늘게 접고 미소 지었다. 로라메리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곁눈질로 테오를 한 번 쳐다보고는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우리가 안 보는 새 디몬이 방 밖으로 나왔나 봐.”




그 말을 들은 테오가 살짝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잔잔한 반응에 로라메리는 피식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역시 테오 경 말대로 걱정할 일이 아니었던 거지.”




데스데모나는 그들 사이에 오가는 자연스러운 대화를 부럽게 바라보며, 둘의 친밀함에 살짝 위축된 듯했다. 그녀는 두 사람의 대화에 끼지 못하고 그저 촉촉한 눈으로 테오를 바라보고 있었다.




로라메리는 짧은 미소를 지으며 데스데모나에게 말했다.




“레이디 데스데모나, 그럼 오늘 할 얘기는 이만 끝난 것 같으니 다음 주에 페르마니스에서 만나도록 하시죠. 먼 길 오시느라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그리고 갑작스러운 요청을 받아줘서 고마워요.”




데스데모나는 살짝 아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지만, 테오를 바라보고는 서둘러 미소를 지었다.




“네! 대공녀님. 꼭 다시 뵙고 싶습니다! 테오 경도요!”




로라메리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테오에게 눈짓을 했다. 그들은 함께 발걸음을 돌려 그레이트 홀을 빠져나갔다.




데스데모나는 그들의 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부러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








조안나는 차가운 밤공기를 가르며 그리핀을 타고 홀로드 성의 북쪽 탑을 향해 날아갔다. 그리핀의 거대한 날개는 부드럽게 퍼덕이며 탑의 꼭대기를 향해 점점 더 가까이 다가갔다.




탑의 벽면에는 세월의 흔적이 남아 있었지만, 여전히 견고하고 위엄이 느껴졌다. 탑의 벽난로에서 장작들이 불꽃을 너울대며 타고 있었다. 그 불빛이 조안나의 도착을 환영하듯 타오르고 있었다.




그리핀이 난간에 발톱을 단단히 박으며 조심스럽게 착지하자, 처음 방문 했을 때와 달리, 조안나는 우아하게 그리핀의 등에서 내려왔다. 북부의 밤, 얼어붙은 바람이 그녀의 푸른 망토를 세차게 휘감았다.




‘으··· 추워 봄··· 아닌가?’




조안나는 탑의 내부로 들어서며 자신이 챙겨 온 연구자료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비토리오의 상태를 점검할 준비를 했다.




그녀는 탑의 고요함 속에서 잠시 멈춰 서서 깊은숨을 들이마셨다. 그 순간 깊게 들이마신 차가운 공기 속에서 어딘가 이상한 기운을 감지했다.




낯선 에테르의 흐름이 느껴졌다. 마치 보이지 않는 파동이 홀로드 성의 공기를 휘감고 있는 듯했다.




벽난로 앞에 선 조안나의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졌다.








***








테오는 깊은 잠에 빠져들었지만, 그 꿈은 평온하지 않았다. 그는 꿈속에서 자신이 알지 못하는 낯선 곳에 와 있었다.




숲이었다. 깊은 밤 짙고 우거진 숲의 한가운데 금발의 소녀가 홀로 서 있었다. 긴 망토와 후드를 입은 마법사들이 그녀를 둘러싸고 있었다.




그들은 아무 말 없이 소녀의 행동을 주시하고 있었다. 얼굴은 옷과 어둠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았다.




나뭇가지가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소녀는 깊은숨을 내쉬며 자신의 손을 들어 올렸다. 다른 손으로는 천천히 주머니에서 날카로운 칼을 꺼냈다.




칼날이 달빛을 받아 반짝였고, 소녀의 손이 떨리는 것이 보였다. 소녀는 칼날을 자신의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순식간에 손을 그어 찢었다.




피가 소녀의 손가락을 타고 떨어져, 땅 위에 붉은 점을 만들었다. 피가 땅에 닿자마자, 굶주린 땅은 피를 흡수하듯 서서히 더 짙은 색으로 물들었다.




소녀의 피가 계속해서 땅으로 떨어졌고, 그 순간 소녀의 손끝에서 푸른빛이 흘러나와 땅으로 스며들었다. 떨어진 피가 꿈틀거리며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움직이기 시작했다.




땅이 갈라지고 피가 끓어오르듯이 요동쳤다. 피는 마치 무언가를 형성하려는 듯 뭉쳐지고 모여들었다.




마침내, 피가 땅에서 솟아오르며 하나의 생명체를 형성했다. 응집되어 형체를 갖춘 그 생명체는 마치 고통에 찬 비명을 지르며 세상에 태어나는 듯했다.




테오는 그들을 구하려 했으나 바닥에 뿌리를 내린 듯 두 발이 움직이지 않았다. 몸은 사슬에 묶인 것처럼 단단히 고정되어 있었고, 테오가 아무리 애를 써도 움직일 수 없었다. 공포와 분노가 그를 휘감았다.




- “그림킨이야! 위험해!”




그는 온 힘을 다해 소리쳤다. 그러나 그의 목소리는 메아리치며 허공으로 사라질 뿐이었다. 그곳의 누구도 테오의 존재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눈을 질끈 감고 이마를 찌푸린 그의 얼굴이 땀에 젖어 번쩍였다. 은발의 머리카락은 이마에 달라붙어 있었고 숨소리가 거칠었다.




꽉 쥔 손끝의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었다. 그의 입술 사이로 억눌린 신음이 흘러나왔다.




그의 몸이 침대 위에서 격렬하게 움직였다. 테오의 앓는 소리가 점점 더 커지고 마침내 눈을 뜨며 현실로 돌아왔다.




‘또 그 꿈··· 인가’




물기 맺힌 붉은 눈이 빛났고, 숨은 여전히 거칠었다. 테오는 숨을 내쉬며 이마에 손을 가져갔다. 그의 손이 여전히 떨리고 있었다. 몸은 꿈의 잔해를 기억하고 있었다.




그는 느릿하게 몸을 일으켜 창문 쪽으로 걸어갔다. 홀로드의 차가운 바람이 그의 뜨거운 피부를 식혀주었다. 테오는 이마에 붙은 은발의 머리카락을 손으로 쓸어 넘겼다.




성벽 너머, 그림샤텐 숲이 그림자처럼 자리 잡고 있었다. 테오가 숲을 바라보자 머리에서 꿈속의 장면들이 떠올랐다.




‘시키는 대로 다 했잖아··· 왜 하필 나야.’




한바탕 달리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달리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테오가 창문에서 뛰어내릴 때 뒤에서 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테오!”




그 소리에 순간적으로 뒤를 돌아본 테오는 균형을 잃었다. 그의 시야가 아찔하게 흔들렸다. 테오는 몸을 둥글게 굴려 충격을 완화하려 했지만, 결국 발을 헛디뎠다.




테오는 얼굴을 찡그리며 숲을 향해 달려갔다.








***








로라메리는 침대에 누워 몸을 이리저리 뒤척였다. 창 밖의 바람 소리가 그녀의 귀를 간질였다. 로라메리의 머릿속은 온통 그날 밤 생각으로 가득했다. 처음으로 루카스의 방, 아니 테오가 머무르고 있는 방을 찾아갔을 때의 기억말이다.




테오 경의 고통스러운 표정과 붉은 눈동자가 계속해서 떠올랐다. 이마에 닿았던 뜨거운 숨결과 허리를 감싼 감촉이 생생했다. 이미 2주가 넘게 지난 일이지만, 그리고 그 후로 검술을 배우며 말 그대로··· ‘가족’처럼 잘 지내는데도 그랬다.




그녀가 잠을 청하려고 애쓸 때, 테오의 방에서 희미한 신음소리가 들려왔다. 멈칫한 그녀는 숨을 죽이고 귀를 기울였다.




그의 소리는 점점 더 선명해졌고, 로라메리는 망설임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벼운 옷차림이었으나 시간이 없었다. 그녀는 다급한 마음으로 복도를 달렸다.




테오의 방에서 들려오는 신음소리가 그녀의 마음을 초조하게 만들었다. 그녀는 손을 들어 문을 두드리려다, 벌컥 문을 밀어 열었다.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그녀를 놀라게 했다. 테오의 은발이 바람에 흩날리며, 그가 창 밖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테오!”




로라메리는 순간적으로 소리쳤다.




테오는 그녀의 목소리에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공중에 떠있는 그의 붉은 눈동자가 그녀의 하늘빛 눈과 마주쳤다. 그 순간, 시간이 멈춘 듯 둘의 시선이 교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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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비밀의 숲 NEW 8시간 전 0 0 12쪽
» 봄의 그림자 속에서 24.09.19 6 0 13쪽
19 봄의 기운 24.09.18 8 0 13쪽
18 지나간 시간과 마음 24.09.17 10 0 12쪽
17 북부의 왕과 마탑주 24.09.16 11 0 13쪽
16 돌아온 레오니드 (2) 24.09.13 11 0 12쪽
15 돌아온 레오니드 24.09.12 13 0 12쪽
14 마탑주의 방문 24.09.11 13 0 12쪽
13 기억의 파편 (2) 24.09.10 14 0 12쪽
12 기억의 파편 (1) 24.09.09 15 1 12쪽
11 디몬의 마음 (3) 24.09.06 10 0 12쪽
10 디몬의 마음 (2) 24.09.05 10 0 12쪽
9 디몬의 마음 (1) 24.09.04 11 0 12쪽
8 오늘부터 24.09.03 14 0 12쪽
7 마탑에서 생긴 일 24.09.02 16 0 12쪽
6 북부는 어떤 곳입니까? 24.08.30 16 0 13쪽
5 원정에서 생긴 일 24.08.29 15 0 12쪽
4 잠시 시간을 내어주시겠습니까? 24.08.28 14 0 12쪽
3 북부의 환영에 감사드립니다! 24.08.27 28 0 12쪽
2 북부에서의 첫만남 24.08.26 37 0 12쪽
1 프롤로그 24.08.26 46 1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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