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 재생으로 아포칼립스 살아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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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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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26 0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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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5 0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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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3)

DUMMY

차리리 사화가 수천 마리가 왔다 해도 이것보단 덜 무서웠을 거다.


"자네는 누구지. 주변을 보니 평범한 사람은 아닌 것 같은데."


여기서 산악회의 짐꾼이라고 속이면, 어떤 바보가 속을까.


류재곤과 처음 만났던 때를 떠올렸다.


나는 조금도 생각나지 않게 말투, 성격까지 바꿔야 했다.


"흠 흠."


목을 좀 가다듬고.


시작.


"아이고 여기 살아있는 사람이 있다니 다행입니다!“


"...조용히. 적진의 한가운데야."


"아, 죄송합니다. 너무 반가운 마음에...“


"그래서, 자네는 누구지?"


"저는 이곳을 지나가던 무법자 형제입니다. 서초에 괜찮은 물건들이 많다고 해서 왔는데 이런 일에 휘말렸지 뭡니까."


무법자만큼 속이기 편한 직업이 없다.


갑자기 형제가 된 손수윤이 당황하긴 했지만, 눈치껏 고갤 끄덕였다.


류재곤도 별 신경을 쓰지 않고 물었다.


"주변에 사람을 본 적 있나."


"살아있는 사람은 못 봤습니다.“


"...그래, 저게 살아있는 사람은 아니지."


버러지 같은 놈들이라고 중얼거리는 건 일부러 못 들은 척했다.


"다른 놈들이라도 구해야 하니 서두르지."


"예, 그럼 이만...“


"자네는 따라오게, 일단 처음으로 본 사람이니 도와주도록 하지."


"저는 괜찮습니다. 다른 군인 분들을 구하는게...“


"아니지, 자네 실력도 괜찮은 거 같은데 나랑 같이 다니는 건 어떻겠나?"


"예?"


"사화 놈의 대가리를 따는 게 가장 좋겠지만, 그건 좀 어려울 것 같으니 일단 구하기라도 해야지."


살고 싶으면 거절해야 했다.


그런데 딱히 벗어날 방법이 보이지 않았다.


‘생각을 바꿔보자.’


들키지만 않으면, 괜찮지 않을까.


어차피 길을 잃은 체 괴물에게 죽거나, 류재곤에게 죽거나다.


이왕이면 좀 더 가능성 있는 곳에 걸어 볼 생각이었다.


“좋습니다. 함께 하시죠.”



*



정찰은 손수윤이 맡았다.


특유의 민첩성과 길을 찾는 능력은 검술을 배운다고 해도 사라지는 게 아니었으니까.


“다음 줄기에 사화가 있어요!”


“생존자는?”


“안 보여요!”


“...불안하군.”


류재곤이 입술을 잘근거리던 중, 인간의 얼굴을 한 사화가 때지어 나왔다.


“아...”


“왜 그러지?”


“아무것도 아닙니다.”


만개한 꽃봉오리 안에 산악회원의 얼굴이 보였다.


“보고...싶어...”


탁구 국가대표였던 사람이었다.


순간적인 폭발력과 민첩성은 이유리를 뛰어넘을 정도라는 말이 있었는데.

이런 정글 같은 곳에서는 버티기 힘든 몸이었다.


“쓰레기들이 죽어서도 방해가 되는군.”


기합과 함께 류재곤의 주먹에서 마력이 분출됐다.


쾅!


그때 들었던 굉음과 함께, 사화의 절반이 사라졌다.


그중에는 산악회였던 사화도 있었다.


“나머지는 부탁하지.”


“...알겠습니다.”


마음을 다잡았다.


슬퍼할 시간에 살아남아야 한다.


혈하는 들킬 위험이 있다.


‘발동.’


이빨로 사화를 물어뜯으려다가 아차 싶었다.


신체가 다쳐서 재생되는 순간, 들킬 위험이 높아진다.


다가오는 사화의 줄기를 피한 뒤, 줄기 부분을 물어뜯었다.


줄기가 스쳐 지나가긴 했지만, 눈에 보일 정도로 다치는 건 아니었다.


“오호.”


내 전투를 본 류재곤이 감탄했다.


“병사들보다 쓸만하군.”


슬픔을 삼키며 입꼬리를 올렸다.


“헤헤, 감사합니다.”


“사례금은 충분히 줄 테니, 계속 부탁하네.”


“물론이죠!”


습지대를 지나가는 게 이런 기분일까 싶었다.


몸에서는 계속 땀이 났고, 단내는 더 짙어졌다.


“전방 100m 안에 사화가 있어요!”


“제가 할까요?”


“이번엔 내가 하지.”


퍽!


류재곤의 주먹이 사화 무리를 휩쓸었다.


발에 밟힌 들꽃처럼 사화가 짓이겨져 있었다.


“다음엔 부탁하네.”


“물론입니다.”


얼마 나아가지도 않았는데 사화 무리를 마주쳤다.


맨손으로 사화의 줄기를 붙잡아 고정시킨 뒤, 입으로 마무리했다.


퍽!


뒤통수에서 둔탁한 소리가 들렸다.


“이봐 자네!”


류재곤의 다급한 소리를 듣고서야 내 머리가 다친 걸 알았다.


“형!”


손수윤이 눈치 빠르게 먼저 다가와 내 머리를 감싸 쥐었다.


“...내 상태 어때?”


“머리가 조금 파이긴 했는데, 괜찮아요.”


손으로 가려진 틈에 내 몸은 금방 회복됐다.


류재곤이 남은 사화를 마무리했다.


“...죄송합니다.”


“괜찮나?”


“날아오기 직전에 고개를 꺾어서 스치기만 했어요.”


“그럼 다행이군, 나한테 붕대가 있으니 빌려주지.”


각성한 이후 평생 쓸 일이 없다고 생각한 붕대를 쓴 채 계속해서 사화를 잡았다.


“...밤인가.”


원래도 주변은 어두웠지만, 이젠 완전히 밤이 되었다.


밤에는 사화도 잘 움직이지 않았다.


“좀 쉬지.”


류재곤이 사화의 줄기에 마나를 사용해서 불을 피웠다.


“먼저 주무십쇼, 전 괜찮습니다.”


요즘 들어서 잠을 굳이 잘 필요가 없어졌다.


“고맙네.”


어차피 날 경계하겠지만, 뒤통수를 노릴 생각도 없었다.


한 방에 죽여야 하는데, 마나가 있다고 해도 그럴 자신은 없었다.


“너도 자.”


손수윤도 머뭇거리다 잠이 들었고, 나 홀로 줄기가 미끄러지는 걸 멍하니 보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어디 있을까.’


그나마 다행인 건, 산악회 쪽 사람을 그 이후로 보지 못했다.


다들 근처에 있었으니 잘 모여 있겠지만, 걱정되는 건 사실이었다.


“걱정이 많아 보이는군.”


“깨셨습니까.”


“잠을 자기 좋은 환경은 아니잖아.”


살려달라는 비명은 이제 사방에서 들리고 있었다.


류재곤이 들고 있던 배낭에서 주전자를 꺼내 물을 끓인 뒤, 컵을 건넸다.


“들게.”


너무 오랜만에 본 차라 잠깐 기억이 나지 않았었다.


“이거 커피입니까?”


“그래.”


정말 귀한 음식이었다.


멸망 전에야 물보다 커피를 많이 마시던 사람이 수두룩했지만, 지금은 구경하기도 힘든 사치품이었다.


그랬기에 지금의 류재곤은 어색했다.


아무렇지 않게 내 몸을 찢고 부하의 두개골을 부수던 사람 같지 않았다.


잔을 받아 냄새를 맡았다.


애석하게도, 향은 잘 나지 않았다.


“자네, 군대에 입대할 생각이 있는가?”


갑작스런 공격에 마시던 커피를 뿜을 뻔했다.


“아유, 전 어디에 속해있는 게 싫어서요. 괜찮습니다.”


“하긴, 아까 싸우는 걸 보니 둘이 다녀도 괜찮겠어.”


류재곤이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부럽군.”


“...예?”


“나도 차라리 혼자였다면 나았을 텐데.”


사화의 지독한 단내 때문일까, 류재곤은 물어보지도 않은 자신의 과거를 얘기했다.


집안이 뼛속까지 군인 출신이었지만, 그는 다른 삶을 살고 싶어 했다.


미술에 퍽 재능을 보였던 그는 괜찮은 성적을 거뒀지만, 자기 자신을 만족시키지 못했다.


세상엔 자신보다 잘 그리는 사람이 너무나 많았고, 재능이라는 벽은 그에게 선을 그었다.


결국 가족이 원하던 군대에 입대했지만, 그가 원하던 삶은 아니었다.


나갈 준비를 하던 중 세상이 멸망했고, 누군가와의 약속 때문에 계속 군대에 있다고 했다.


그리고 정말 놀라운 건, 나이가 고작 30대 중반이라는 점.


‘최소 50은 돼 보였는데.’


어찌 됐든 사람의 마음을 파악하는 건 중요하다.


불가해한 힘을 갖고 있다고 해도 마음이 무너지면 아무런 의미도 없다.


왜 같이 다니는지 이유를 물어봤다.


“그야...”


아무 생각 없이 말하려던 류재곤이 흠칫 놀라며 헛기침했다.


“미안하네, 그건 말해줄 수 없어.”


“하하, 누구에게나 비밀은 있는 법이죠.”


잘못 선을 넘으면 류재곤이 날 의심할 수 있다.


“아무튼, 약속 때문에 저런 버러지들이랑 같이 다니는 게 마음에 안 들어.”


“약속을 중요하게 생각하시나 봅니다.”


“했던 약속은 무조건 지킨다. 대부분 후회하지만.”


유진아도 그렇고 신념이 강한 사람일수록 능력이 강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편해도 조금만 자, 여긴 내가 지킬 테니.”


육체는 괜찮았지만, 비명을 많이 들어서 그런지 정신이 피곤했다.


“문제가 생기면 바로 깨워주십쇼.”



*



줄기 틈새로 들어오는 빛이 지금이 아침임을 말해줬다.


“출발하지.”


어제랑 다른 건 없었다.


사화를 죽였고, 생존자를 찾아다녔다.


‘이것도 색다르네.’


각성한 이후로 피한다는 동작은 쓸모없는 행위였다.


피하기위해 상대를 관찰할수록, 오히려 적의 빈틈이 더 잘 보였다.


앞에서 정찰하던 손수윤이 소리쳤다.


“생존자예요! 생존자들이 사화랑 싸우고 있어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소리가 난 쪽으로 달려갔다.


“막아!”


“이 전선이 뚫리면 우린 죽어!”


세종의 군대가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처럼 버티고 있었다.


“비켜!”


류재곤이 도약해 사화의 안으로 들어갔다.


“버틸 수 있는 놈만이 살아남을 자격이 있다.”


“그게 무슨...히익!”


류재곤의 주먹에 모이는 마나를 보고 군인들이 황급히 방패를 올렸다.


쾅!


파동이 방패를 들어 올린 군인을 내동댕이쳤다.


대부분의 사화가 죽긴 했지만, 군인들도 꽤 많이 다친 것 같았다.


쓰러진 군인들을 보며 류재곤이 혀를 쯧 찼다.


“...버러지 같은 새끼들.”


“죄송합니다.”


“됐고, 무전기 있나.”


군인 중 한 명이 무전기를 가져왔다.


“이런 환경에서 터집니까?”


“마법사가 만든 무전기다. 그놈 말로는 지구 밖에 있어도 가능하다더군.”


류재곤이 무전기를 들었다.


무전기 너머에서 날카로운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통신보안.”


“나다.”


“나다? 미쳤냐? 짬찌 새끼가...”


“류재곤이다.”


“......”


무전기가 조용해졌다가. 우당탕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추...충성! 근무 중 이상 무!”


“지금 상황이 어떻게 됐지.”


“아 그게...”


“요점만 빨리.”


얘기를 들을수록 류재곤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알았다.”


류재곤이 땅이 꺼지라 한숨을 쉬었다.


“자네, 나랑 같이 사화를 잡으러 가야 할 것 같은데.”


아무리 그래도 선이란 게 있다.


연기 없는 내 진심이 튀어나왔다.


“그건 못합니다!”


죽진 않더라도 내 정체가 들키는 건 확정이다.


세종에게 좋은 일만 하다가 죽는 건 아니지.


“지금 사화가 서초 쪽으로 향하고 있다는군. 마법사의 포격도, 검기도 안 먹히는 모양이야.”


사화는 천천히, 그리고 확실하게 서초를 향해 움직였다.


마법사들이 꽃봉오리를 향해 원거리 포격을 가했지만, 움직이는 줄기가 그 봉오리를 보호하고 있었다.


세종이 생각해 낸 유일한 방법은 류재곤을 이용해 줄기 중심으로 올라가 꽃봉오리를 꺾는 것이었다.


“우리가 줄기 위로 올라가서 놈의 목을 베버리는 것, 그것밖에 방법이 없어.”


“...만약 실패하시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최소한 이 안에 있는 사람은 다 죽겠지.”


산악회를 살리기 위해서는 애초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래요 뭐, 해보죠!”


“자네라면 그럴 줄 알았어.”


류재곤이 씩 웃었다.


“보상은 넉넉하게 챙겨주지.”


“약속하신 겁니다?”


“말했듯이, 난 약속은 반드시 지켜.”


이왕 이렇게 된 거 큰 보상을 받아 낼 생각이었다.


그래야 내가 살 구멍이 보일 것 같았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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