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 재생으로 아포칼립스 살아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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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밤
작품등록일 :
2024.08.26 04:49
최근연재일 :
2024.09.17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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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2 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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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짐(2)

DUMMY

도시를 나간다.


나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게다가 지금같이 일합회와 원수지간인 지금, 도시 바깥으로 나가는 건 자살행위다.


내 반응을 눈치챈 이유리가 씩 웃었다.


“일합회 때문에 망설이는 거지?”


“두렵지 않다면 거짓말이죠.”


아직은 도시의 그늘 없이 일합회라는 거대 조직 상대로 이길 힘이 없다.


“내가 아는 무법자 집단이 있어. 거기라면 안전할 거야.”


무너져 가는 집에 내려온 동아줄 같은 기회지만, 여기는 동화가 아니다.


“그 말을 믿을 수 있는 증거가 있습니까.”


“흠...그것도 그래.”


잠시 생각하던 이유리가 손가락을 튕겼다.“


“세연아!”


세 개의 검을 든 여자가 어디선가 튀어나와 고갤 숙였다.


“트럭 하나 준비해, 관악산 좀 갔다 오자.”


“알겠습니다.”


“관악산은 왜...”


“증거 보여달라며?”


“그렇긴 한데, 지금 바로요?”


“응, 하루가 급한데 서둘러야지.”



*



3년 만에 타는 차는 과거와 달랐다.


신세연이 운전하는 차에는 나랑 이유리가 타고 있었다.


“...토할 것 같아요.”


멀쩡한 도로가 있을 리 없었고, 트럭이 지나갈 때마다 사방으로 흔들렸다.


내가 아무리 무통이라 메스꺼움 같은 감정은 느낄 수 없다해도, 안에서 뭐가 올라오는 건 느껴진다.


이유리는 뒷자리에서 기지개를 켜며 여유롭게 바깥 풍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꼬우면 경공을 할 줄 알았어야지.”


“...다음엔 꼭 배워보죠.”


올라오는 걸 참으며 트럭을 탄 지 시간이 꽤 흘렀다.


지나가던 중 괴물이 꽤 많이 보였지만, 전부 이유리의 검기에 썰려 나갔다.


“도착!”


이유리가 살포시 흙을 밟으며 트럭 밑에서 내렸다.


기와로 된 대문 앞에는 관악산이라는 글자가 적혀 있었다.


“조금만 올라가면 돼.”


“어디까지죠.”


“정상 까지?”


“......”


“빨리 가자, 해 지면 찾기 힘들어.”


트럭보단 낫겠지 싶은 마음으로 둘을 따라갔다.


산은 험한 편이었지만, 올라가는 건 금방이었다.


이유리와 신세연은 자주 타봤는지 익숙했고, 나는 지치질 않았다.


”그나저나 신기하네요, 이런 거대한 산에 괴물이 없다니.“


산은 괴물이 살기 적합한 장소다.

우리나라같이 산이 많은 지형은 산을 잘 타는 괴물도 많은 편이었고.


그런데 관악산에는 괴물의 비명 비슷한 것도 들리지 않았다.


”여기 사람들이 괴물을 많이 싫어하거든.“


”싫다고 해서 조용히 시킬 수 있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보면 다 알 수 있으니까 따라오기나 해.“


정상에 올라온 이유리가 두 손을 모아 입을 갖다 댔다.


“나 왔 다아아아아!”


메아리가 허공에 울려 퍼지고 얼마 뒤.


”유리!“


뒤편에서 활을 들고 등산복을 입은 무리가 이유리를 반갑게 맞이했다.


”오랜만이야!“


”얘들아!“


”소개할게, 여기는 강윤호. 최근에 알게 된 재밌는 녀석이야.“


양궁에 쓰는 활을 든 남자가 날 흥미롭다는 듯 쳐다봤다.


”네가 말한 재밌는 녀석이라면...꽤 강하단 거네?“


”아직은, 하지만 곧 강해질 거야.“


”그런데 여긴 왜 왔어?“


”너희가 보고 싶어서라고 말하고 싶지만...우리가 좀 위험에 빠졌거든.“


이유리가 전쟁과 내가 처한 상황을 얘기했다.


꽤 큰 사건임에도 관악산 무리는 큰 반응이 없었다.


”그럴 줄 알았다. 넌 도시에 어울리는 사람이 아니라니까.“


”잘 할 수 있을 줄 알았지.“


”우리야 네가 오면 환영이지, 하지만...저 애는 잘 모르겠는데.“


그냥 와도 될까 말까인데 일합회까지 따라붙은 상태인 나를 쉽게 받아 줄 리가 없다.


”꽤 가치 있는 녀석이야. 한 번만 믿어주면 안 돼?“


”너는 믿지만, 저 남자를 믿을 수는 없어.“


”그럼 보여주면 되겠습니까.“


정말로 도시를 떠나야 한다면, 여기가 좋아 보였다.


나의 가치를 증명해야 했다.


”제가 보여줄 게 싸움뿐이라...아무나 한 분 나오시죠.“


”아하하! 내가 말했지! 재밌는 친구라고!“


관악산 무리의 눈빛이 일순간 돌변했다.


”기세는 좋네?“


날 흥미롭게 바라보던 남자가 웃으며 앞으로 나섰다.


”다치게 하고 싶진 않아. 지금이라도 그만두지?“


”상관없습니다. 편하게 하세요.“


”후회하지 마?“


남자가 곧장 활시위를 당겼다.


아무것도 없던 활에 녹색 빛 기의 화살이 생겼다.


”이것만 막아도 인정해 줄게.“


녹빛의 화살은 바람을 가르며 그대로 내 가슴에 명중했다.


그 모습에 다른 관악산 무리가 기겁했다.


”야! 아무리 그래도 애를 죽이면...“


”당연히 피할 줄...어라?“


몸을 툭툭 털고 일어났다.


가슴이 뚫린 상처는 이미 재생이 끝난 뒤였다.


”이것도 막은 거라고 쳐 줍니까?“


”재생?“


이유리가 돌 위에 걸터앉았다.


”계속해 봐, 더 재밌는 걸 볼 수 있을 테니까.“


”그럼 사양않고!“


남자의 활시위에 3개의 화살이 생겼다.


”와...아무리 재생 능력이지만, 겁이란 게 없네.“


다가오는 날 보며 곤란한 듯 눈살을 찌푸렸다.


”이번엔 좀 세게 간다.“


아주 잠깐, 숨을 쉬기 힘들었다.


폐를 지나간 화살은 내 가슴에 구멍을 뚫었고, 아래에서 검붉은 피가 쏟아지고 있었다.


숨을 쉴 수 없다는 고통이 무엇인지 알 수 없지만.


놀란 표정을 보니 아직 싸움은 끝나지 않았단 걸 알 수 있었다.


”이런 미친...“


남자의 화살이 이번엔 다리를 노렸다.


아예 못 걸어오게 할 생각인 듯했지만, 이번엔 달랐다.


넘어지듯 몸을 기울여 남자의 팔목을 붙잡았다.


그 대가로 무릎 아래가 잘려 나갔지만, 곧 회복하겠지.


남자가 날 때어내려 했지만, 저항하기에는 이미 늦었다.


본능적으로 혈하를 목에 박아 넣으려다가 정신을 차렸다.


”......“


말을 하려 했지만, 폐에 바람이 뚫려 쇳소리만 흘러나왔다.


폐가 재생된 뒤 입을 열었다.


”아, 죄송합니다. 습관적으로.“


”아니, 괜찮아.“


발목이 재생됐고, 자리에서 일어나며 남자를 일으켜 세웠다.


“이젠 제가 쓸 만해 보입니까.”


“...그건 인간이 참을 수 있는 고통이 아니다.”


“죄송하지만, 저는 고통이 뭔지 잘 모릅니다.”


깨달은 듯한 얼굴의 남자가 날 돌아봤다.


“유리 너, 뭘 데려온 거야.”


“저 친구, 무통이야.”


“허...세연이보다 더한 놈을 데려올 줄이야.”


뒤에서 팔짱을 끼고 지켜보던 신세연의 턱에 힘이 들어가는 게 보였다.


”...좋아, 받아줄게.“


남자가 내게 손을 건넸다.


”소개가 늦었군. 남재우라고 한다.“


”강윤호입니다.“



*



차로 돌아가던 중 내가 저들의 정체를 물었다.


도시에서도 수많은 길드와 공무원을 봤지만, 그렇게 빠르고 강한 집단은 처음이었다.


”산악회. 내가 도시에 들어오기 전에 있던 그룹이야.“


”나갔는데도 꽤 친하시네요.“


“내가 쟤들한테 해준 게 얼만데.”


“산악회에 대해 조금 더 듣고 싶습니다.”


“같이 살게 될 사인데 그 정도쯤이야.”


내가 본 집단 중에 공무원 다음으로 강한 집단이었지만, 탄생 배경은 한없이 단순했다.


“그냥 선수나 그 정도 되는 출신들이 각성한 집단이야.”


“그럼 산이랑 무슨 상관이죠?”


“그쪽 대장이 산악인이야. 그게 전부.”


정말 별거 없는 배경이라 아무런 말도 나오지 않았다.


“아까 널 상대했던 남재우는 양궁 국가대표. 얼굴을 본 적이 있을지도 모르겠네.”


기억이 나는 것 같기도 했다.


양궁이야말로 한국 올림픽의 꽃이었으니까.


다음 주제로 이야기를 바꿨다.


“언제 나갈 겁니까.”


“오늘이 며칠이지?”


“5일입니다.”


“이왕 나갈 거 끝까지 빨아야지.”


“...세금 내는 전날에 나가실 거군요.”


“돈 많이 써놔, 어차피 세금 낼 필요도 없으니까.”



*



도시를 나가는 건 간단했다.


성문 밖을 나가서 세금을 걷는 날까지 안 오면 된다.


그럼 자동으로 시민권이 박탈되며 다시는 서초 안으로 들어올 수 없다.


“준비됐냐?”


“되긴 했는데...”


“막상 나가려니까 묘하지?”


“부정하진 못하겠네요.”


“나도 그래.”


이유리가 도시의 성문을 바라봤다.


“정말 괜찮은 도시를 만들고 싶었는데.”


“그래도 내가 사는 게 먼저니까.”


“서두르자. 일합회 새끼들이 보름이라고 말했지만, 그것보다 더 빨리 올지도 몰라.”


관악산에 돌아왔을 때는 입구에서 산악회가 기다리고 있었다.


“여, 왔냐.”


“자 선물. 산악회에 온 걸 환영해.”


“앞으로 신세 좀 지겠습니다.”


“너도 말 편하게 해.”


“죄송합니다. 습관이라.”


내가 존댓말을 고수하는 이유는 그 사람을 존중한다는 뻔한 이유가 아니었다.


이거라도 안 하면 사람이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다.


고통도, 두려움도 없는 내게 사람을 죽이는 건 꽤 쉬운 일이었고, 그럴수록 내 안의 무언가 무뎌져 갔다.


내가 잘못되고 있다는 건 내가 가장 잘 알았고, 사람을 무시하지 않기 위해서 존댓말을 고수하고 있었다.


손수윤은 나이 차이가 너무 많이 나서 말을 편하게 했을 뿐,


“네가 편하다면 뭐.”


남재우가 어깨를 으쓱한 뒤, 하던 말을 이어갔다.


“도시처럼 빡빡하진 않겠지만, 여기도 꽤 바쁠 거야.”


“각오하고 있습니다.”


“괴물은 많이 상대해 봤지?”


“주로 키메라랑 사화를 상대해 왔습니다.”


“지나갔으면서 봤겠지만, 이 근처에는 놀들이 많이 살아.”


놀.


판타지나 게임에서 나오는 개의 머리에 사람 정도 되는 크기를 가진 괴물,


그 이름 때문에 단일 개체가 약하고 무리 짓는 습성을 지닌 괴물이라 생각하면 곤란했다.


“아마 오늘도 우리가 내려왔으니 몇 마리 기어올...”


크아아아!


짐승들이 울부짖는 소리에 남재우가 한숨을 쉬었다.


산 밑에서 피칠갑을 하고 족히 3m는 되어 보이는 개의 머리와 털이 숭숭 나 있는 인간의 몸.


저 주먹에 맞으면 뼈 정도는 내줘야 할 것 같았다.


“요즘 더 자주 나오는 것 같아.”


다른 산악회원들도 각자의 무기를 들어, 전투를 준비했다.


올라오는 놀을 향해 남재우의 녹색 화살이 쏘아졌다.


핑-


놀의 목이 관통되며 한 마리가 쓰러졌다.


컹!


남재우의 화살은 날아 올 때마다 맞았지만, 모든 놀을 막을 수는 없었다.


“여기서 싸우는 건 오랜만이네!”


이유리와 신세연이 남재우를 호위하며 검기를 뿌려댔다.


놀이 워낙 질긴 탓에 한 번에 죽지는 않았지만, 둘이 검기를 뿌려대는 속도는 놀이 다가오지 못하게 할 정도는 충분했다.


둘의 전투는 화려하기 그지없었지만, 더 눈에 띄는 건 신세연이었다.


세 자루의 검은 각자 다른 길이의 검으로 그 용도가 달랐다.


가까울 땐 단검.

중거리에 있을 땐 장검.

적이 멀리 있을 때는 대검.


보통 사람들은 한 가지의 무기만 다뤄도 힘들어하는걸, 신세연은 아무렇지도 않게 사용했다.


나랑 눈이 마주친 신세연이 잠시 눈살을 찌푸리더니 다시 전투에 집중했다.


“...왜?”


의문이 들었지만, 지금은 그걸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아무리 검기를 날리고 활을 쏴도 모든 놀을 처리하진 못했다.


“남재우! 뒤!”


활을 쏘는 남재우는 놀의 최우선 살해 대상이었다.


“이런 씨...”


놀의 주먹이 남재우에게 꽂히기 직전, 내가 앞으로 나서 주먹을 대신 맞았다.


보기처럼 놀의 주먹은 묵직했는지, 시선이 제멋대로 돌아가며 붕 뜨는 기분이 들었다.


“끙...”


내가 낸 소리는 아니었다.


“아, 죄송합니다.”


내 뒤에 깔린 남재우가 어깨를 부여잡고 있었다.


“죄송은 무슨, 덕분에 살았는데.”


가벼운 사고가 있었지만, 놀은 손쉽게 정리됐다.


아무도 죽지 않은 분위기가 내겐 어색했지만, 저들에겐 일상이었는지 전혀 기뻐하지 않았다.


“오늘따라 더 많은 것 같네.”


“고생했다. 새로운 사람도 왔는데 한잔해야지?”


“술이 있어요?”


“최근에 소주 공장을 한 번 털었거든.”


소수 정예 집단의 장점.


신경 쓸 게 크게 없으니 행동에 리스크가 적었다.


규칙이 있긴 했지만, 헐거운 편이기도 했고.


그 수혜의 맛은 꽤 짜릿해 보였다.


다른 사람들이 신나게 술을 마시고 있던 와중에도 나는 그 광경을 바라만 봤다.


이유리가 소주를 기울이며 물었다.


“너는 술 안 마셔?”


“별로 안 좋아합니다.”


무통 때문인지 예전부터 미각이 희미했다.

미세하게 느껴지긴 했지만, 못 먹는 음식을 구별할 정도가 겨우.


내 기준에선 독약이랑 구분 짓기 힘들기 때문에, 입에 잘 대지도 않았다.


“아쉽네, 어차피 얼마 마시지도 못하는데.”


“괜찮습니다. 지금 모습만 봐도 여기 오길 잘했다는 생각은 하니까요.”


이유리가 씩 웃었다.


“그렇지?”


술은 안 마셨지만, 많은 대화가 오갔다.


산악회 사람들 전부 정신이 강인한 사람들인 게 꽤 마음에 들었다.


잠깐이지만, 멸망을 잊을 수 있던 밤이었다.


그러나 다음 날 아침.


“야, 일어나!”


이유리가 다급하게 날 깨웠다.


“세종 놈들이 왔어!”


멸망의 현실은 생각보다 더 빨리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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