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 재생으로 아포칼립스 살아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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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밤
작품등록일 :
2024.08.26 04:49
최근연재일 :
2024.09.17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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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31 2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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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짐

DUMMY

“이...이 괴물새끼...”


내 발아래에는 일합회의 시체가 쌓여 있었다.


“음. 아. 널 죽이려고 했지.”


어쩌다가 우두머리를 붙잡고 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지만, 죽여야 하는 이유는 똑똑히 기억했다.


“크윽...살려...”


우두머리를 조심히 내려 논 뒤, 배에 혈하를 갖다 댔다.


“헛짓거리하면 바로 찌를 거야.”


“원하는 게 뭐냐.”


“묻고 싶은 게 있다.”


“......”


우두머리의 침묵을 긍정으로 받아들였다.


“전쟁, 언제 할 거야?”


“궁금한 게 있다더니 고작 그거였나.”


“대답.”


우두머리의 복부에 핏방울이 흘렀다.


“...보름 안에 우리랑 세종의 전력이 도착할 거다.”


“빠르네.”


“이번에 이긴 세종 대표가 꽤 실력 있는 놈이거든.”


우두머리가 혀를 내밀며 손으로 톡톡 건드렸다.


“나도 잠깐 봤는데 이거 하나는 기가 막히더라고.”


이렇게 막힘없이 얘기하는 거 보면, 내가 물어본 정보가 크게 가치가 있진 않은 것 같았다.


전력이나 주요 각성자들의 능력 같은 것들을 물어봤지만, 깊은 부분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입을 다물고 비릿한 미소를 짓는 놈의 배에서 혈하를 거둬들였다.


“죽일 거면 깔끔하게 죽여라, 내 부하들처럼 더럽게 죽이지 말고.”


”아니, 넌 살려둔다.“


내 기억은 엎어진 퍼즐처럼 이리저리 흩어져 있었지만, 분명히 기억나는 게 몇 개 있다.


”네가 나랑 손수윤을 이용해서 공포를 주려 했던 이유를 생각해 봤어.“


혈하로 놈의 눈을 그었다.


”나도 하면 편하겠더라고.“


”아아아악!“


몸부림치는 놈을 던진 뒤, 뒤편을 향해 말했다.


”아직 안 죽은 놈들 있는 거 알고 있어.“


몇 명은 완벽하게 발골하지 못하고 때려눕힌 놈들이 있다.


”데려가서 너희 대장한테 전해. 나 건드리지 말라고.“


”그...럴 리는 없을 거다.“


우두머리가 눈을 붙잡으며 팔을 큭큭거렸다.


”날...건드린 순간, 아무리 괴물 네놈이라도 무사할 순 없을 거다.“


”대단하네, 아직도 겁을 안 먹고.“


한 부위 정도 더 자를까 했지만, 더 자르면 죽을 것 같아서 포기했다.


”갖고 꺼져.“


부하들이 우두머리를 들고 사라졌다.


”끝났어.“


멀리서 빼꼼 얼굴만 내밀어서 날 지켜보던 손수윤이 다가왔다.


”윤호 님, 괜찮으세요?“

”괜찮아. 기억이 조금 지워졌지만.“


”기억이요?“


”부작용. 머리가 잘리면 기억이 조금씩 사라져.“


”제가 기억하고 있으니까, 나중에 맞추면 되죠!“


순간, 짐꾼으로밖에 안 보이던 꼬마에게 신뢰가 생겼다.


”고맙다.“


”침, 도움받은 주제에 이런 말 하긴 죄송하지만, 서둘러야 할 것 같아요.“


갓 태어난 사화가 시체를 향해 다가가고 있었다.


시체에서 나는 피 냄새 때문에 우리의 존재를 아직은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다.


그 틈을 타 우리는 전자상가에서 도망쳤다.


”이제 어떡하실 거예요?“


”일단 꽃봉오리부터 전해줘야지. 정산도 해야 하고. 그리고...“


전쟁이 나기를 가만히 있기는 불안하다.


”이유리를 만나러 가야겠어.“



*



한윤철이 내가 가져온 꽃봉오리를 보며 담배를 깊게 들이마셨다.


”정말 해냈군.“


”사화는 별로 안 힘들었어요, 사람 때문에 힘들었지.“


”...그렇지. 다 사람 때문에 힘들지.“


한윤철이 꽃봉오리를 하나씩 대장간의 불에 던졌다.


”이거라도 줄 테니까 빨리 꺼져, 내 꿈에 나타나지 말고.“


꽃봉오리의 재가 흩날리며 대장간의 바깥으로 사라졌다.


”난 장례도 못 치러줬어.“


주름 가득한 얼굴에 슬픔이 보였다.


그가 애도의 기간을 가질 때까지 기다려 줬다.


타성의 바다에서 헤엄쳐나온 한윤철이 내게 뭔가를 건넸다.


”이제 혈하는 네 거다.“


허성철이 혈하의 크기에 맞는 검집이었다.


”아무리 재생 능력이 있어도 계속 피를 흘릴 순 없잖냐, 한 번 만들어봤다.“


검집은 혈하에 딱 들어맞았다.


”감사합니다.“


”단골이 사라지는 건 조금 아쉽군.“


”종종 뵙겠습니다.“


허성철과 헤어진 뒤에는 다시 소나무 길드로 향했다.


한 번이 어렵지 두 번은 쉬웠다.


경비병들의 허락을 맡고 이유리의 사무실 문을 노크했다.


반갑게 맞이한 이유리가 싱글벙글 웃었다.


”우리 길드에 들어오려고?“


”전쟁에 대해서 다시 한번 할 얘기가 있어서요.“


”또? 왜 그렇게 신경 쓰는 거야?“


”이 도시가 망하면 저도 죽은 목숨이니까요.“


이유리가 날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갤 저었다.


”안 그래도 얘기는 해보긴 했어.“


”어떻습니까.“


”조짐은 있는데 당장은 걱정할 필요가 없겠더라.“


”제대로 조사한 거 맞습니까?“


”알고 있는 게 더 있나 보네?“


”생각보다 전쟁이 빠르게 오고 있습니다.“


”증거는?“


어제의 기억을 최대한 정리해서 말해줬다.


잃어버린 기억도 있었지만, 그건 손수윤에게 들어서 적당히 이어 붙였다.


내 이야기가 끝났을 땐, 이유리의 낯빛은 어두워져 있었다.


”이마에 문신이 있는 놈들이면 간부니까 틀린 말은 아니겠네.“


”당신의 힘이 필요합니다.“


”내 힘이라...“


이유리가 씁쓸하게 웃었다.


”아마 힘들걸?“


”세종이 그렇게 강합니까?“


”아니, 침입을 막으려는 걸 시도하려는 것 자체가 힘들 거야. 여긴 과거랑 똑같거든.“



*



놀랍게도 서초에는 동사무소가 존재했다.


멸망기에도 심한 불편 사항 정도는 들어주겠다는 취지.


”시발 빨리 해 달라고! 내가 여기에다가 내는 세금이 얼만데!“


뭘 원하는지 모르겠지만, 중년인이 공무원에게 꽥꽥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하아...그러니까 집에 생긴 시체는 직접 치우셔야 한다고요.“


”냄새나니까 빨리 치워! 안그럼 계속 민원 넣을 거니까!“


과거의 유산을 재현했다 해서 과거와 같은 건 아니었다.


”도시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돼서 참아 주려고 했더니 안 되겠네.“


”뭐? 이새끼가...“


”경비원.“


앉아서 상황을 지켜보던 덩치 큰 공무원이 일어났다.


”지금 시민한테 뭐 하는 거...아아악!“


눈을 깜빡인 틈에 남자의 몸이 빙글 돌아 바닥에 처박혔다.


”우리는 너 같은 새끼를 시민이라고 생각 안 해.“


”죽여 버릴 거야!“


이 정도쯤이면 상황을 파악하고 물러나야 했지만, 저 아저씨는 눈치가 없는 듯했다.


”쫓아내 주세요.“


경비원이 가볍게 고갤 끄덕이더니 주먹으로 중년인을 두들겨 팼다.


처음엔 검으로 몇 번 저항하던 중년인은 곧 검을 버리고 살려달라 외쳤다.


”나가.“


중년인이 네발로 동사무소를 나갔고, 내 차례가 왔다.


”신분증 좀 확인하겠습니다.“


무법자들과 적대적인 도시기에 도시 사람을 구분할 신분증이 필요했다.


나랑 이유리의 신분증을 확인한 직원의 눈이 조금 흔들렸다.


”소나무 길드의 간부님이셨군요, 몰라뵀습니다.“


”괜찮아요. 여기 담당자를 볼 수 있을까요?“


”웬만하면 저한테 말씀하심이...“


”중요하고, 급한 사항이라 그래요.“


”그러니까 절차가...“


”그러니까 책임자를 불러주세요, 제가 알아서 한다니까요?“


”책임자분은 지금 자리에...“


”아 진짜!“


그나마 소나무의 간부가 소리치니까 아무 말도 안 하는 거지, 일반인이 이랬으면 바로 어디가 부러지고 쫓겨났을 거다.


지금도 공무원들이 눈을 부라리며 무기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이 자리에 없다는 거죠?“


”죄송합니다.“


”내일 다시 올 테니까 책임자 꼭 불러와요.“


“죄송합니다.”


그러나, 그다음 날.


“죄송하지만, 오늘도 안 계셔서...”


이유리가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었다.


“일단 알았어요.”


동사무소를 나온 이유리가 어깨를 으쓱했다.


”지금 공무원들이 이래.“


”그래도 이유리님 정도면 공무원의 간부가 만나줄 만하지 않나요?“


애초에 이유리가 동사무소에서 이러고 있는 것도 이상했다.


아무리 과거와 기능이 다르다고 해도 이런 곳에서 고위 공무원을 만날 수가 있는가?


내가 든 의문을 곧바로 이유리에게 물었다.


”흠...외부인한테 이런 얘기를 하는 건 좀 부끄러운데.“


이유리가 해주는 얘기는 흥미로웠지만, 동시에 답답했다.


그녀는 간부치고 나이가 어린 편이었다.


시대가 시대다 보니 그녀의 무력을 인정하기는 했지만, 미묘하게 느껴지는 차별이 있었다고 했다.


”능력을 인정하긴 해 주는데, 묘한 거리감이라고 해야 할까? 그런 게 있었어.“


그리고 그 거리는 이유리가 공무원에게 뇌물을 상납하지 않으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원래도 상납금을 내고 있던 이유리 입장에서 뇌물까지 내는 건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 결과, 공무원들은 대놓고 그녀를 무시하기 시작했고, 소나무 길드도 점점 그 티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처음에 성 구석에 있었던 이유도 공무원들과의 마찰이 싫어서였다고.


”...그럼 지금 안 만나주는 이유가 돈 때문입니까.“


”응, 로비 같은 건 내 스타일이 아니었거든.“


민망한 듯 뒤통수를 긁적이는 이유리를 보니 결심이 섰다.


”흠...예로부터 책임자를 부를 때는 유구한 전통이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정말 하기 싫었지만, 죽기 싫으면 뭐라도 해야지.


”잠시 따라와 주시겠습니까.“



*



다시 도착한 동사무소.


”와봤자 의미가 없다니까.“


”그건 해봐야 알겠죠.“


심호흡을 한 번 한 뒤, 발로 있는 힘껏 문을 걷어찼다.


”책임자 나와아아아!“


곧바로 공무원들이 몽둥이를 들고 몰려왔다.


”이 새끼가 미쳤나...“


다가오는 몽둥이에도 나는 계속 소리쳤다.


”나오라고!“


”좀 닥쳐!“


빠악!


내 팔이 있는 곳에서 거친 타격음이 들렸다.


”나와아아아아아!“


”뭐...뭐야?“


아무렇지 않아 보이는 날 보며 공무원이 허둥거리며 몽둥이를 다시 휘둘렀다.


팔, 다리, 몸통, 머리.


머리에 맞을 때는 잠깐 시야가 흔들리긴 했지만, 내 외침은 끝나지 않았다.


그러기를 10분,


”하아...책임자 왔습니다아아...“


피곤한 얼굴의 청년이 우산을 지팡이 삼아 걸어 나왔다.


명찰에는 그의 이름인 서인균이라는 이름이 금빛으로 박혀 있었다.


”정당한 이유여야 할 겁니다.“


서인균이 우산을 펼쳤다가 접었다.

안에는 수십 개의 칼날이 붙어 있었다.


”안 그럼 제 손에 죽을 수도 있거든요.“


”개인적인 이유였으면 이렇게 거친 방식으로 안 불렀을 겁니다.“


”개인적인 이유가 아니라면?“


”곧 전쟁이 일어날 겁니다.“


”혹시 과도한 사냥으로 미쳐 버렸나 싶었는데...꽤 진지한 얘긴가 보네요. 당신이 있는 걸 보면.“


이유리가 가볍게 웃었다.


”피곤해 보이시네요.“


”당신들 때문에 못 잤습니다. 얘기나 계속해 보시죠.“


이유리에게 했던 설명과 똑같은 설명을 했다.


”흠...사실이라면 큰일이긴 하네요.“


”네, 빨리 준비를 하는게 좋을 것 같습니다.“


”알겠습니다. 위에다가 보고해 보죠.“


”약속하셔야 됩니다.“


서인균이 다크서클이 짙은 눈으로 눈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그 웃음이 거짓인 건 얼마 지나지 않아 알 수 있었다.



*



흐지부지 며칠이 흘렀다.


하루라도 빨리 준비해야 하는 상황이고 발등에 불이 떨어졌는데도 도시는 여전히 평온했다.


”이해가 안 갑니다.“


”뭐가.“


자신의 사무실 의자에 눕듯이 앉아 있던 이유리가 대답했다.


”도시에 전쟁이 난다는데 왜 이렇게 태평한 겁니까?“


”태평한 게 아니라 외면하는 거야.“


외면이라는 말이 잘 와닿지 않았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 나올 수 있는 단어가 아니었기에.


”이유가 뭡니까?“


”많지, 공무원끼리의 분쟁이나 다른 길드의 이권 싸움이 껴 있기도 하고, 결정적으로...세종이랑 정말로 전쟁이 일어나지 않을 거란 말이 많기도 하고.”


과거 한국의 남북 관계가 생각나는 말이었다.


비록 남과 북이 전쟁했던 것보다 아포칼립스가 먼저 터져서 전쟁은 끝났지만.


“도시가 너무 건재했던 덕에 부패했던 권력자들도 그대로 남아 있어.”


실제로 각 길드의 대표나 간부는 과거 정치인이었던 사람이 꽤 있었다.


“...막을 수 없는 겁니까.”


“응, 그래서 그런데.”


이유리가 내게 얼굴을 들이밀었다.


“우리, 나갈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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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멸망 이후(2) 24.09.07 64 2 12쪽
12 멸망 이후(1) 24.09.06 70 2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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