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 재생으로 아포칼립스 살아남기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현대판타지

오랜밤
작품등록일 :
2024.08.26 04:49
최근연재일 :
2024.09.17 08:00
연재수 :
22 회
조회수 :
1,820
추천수 :
44
글자수 :
120,780

작성
24.09.03 22:15
조회
78
추천
1
글자
12쪽

멸망(2)

DUMMY

짜악!


채찍이 내 팔을 자르고 나서야 파공음이 들렸다.


"벌레도 그렇게 짓이기면 죽을 텐데, 더한 놈이구나."


이번이 몇 번째 재생이더라.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한 번 더!"


신나는 목소리와 함께 채찍이 눈앞에 나타났다.


수백 번 채찍이 날아왔지만, 지금까지 한 번도 피하지 못했다.


파열음.


그리고 다시 깜빡.


"와, 머리랑 사지를 다 잘랐는데, 몸통에서 또 기어 나오네."


시야가 돌아오기도 전에 다시 한번 어두워졌다.


게다가. 조금. 어지러웠다.


머리도. 몇 번. 터져서 그런지. 생각도 안개가 낀 것 같다.


'괜히. 왔나.'


남아있던 공무원과 소나무 길드의 잔존세력도 무너졌는지 불길은 점점 더 가까워져 있었다.

이제와서 새삼 죽음이 두려운 건 아니었다.


다만, 이 능력을 얻고 아무것도 못 한다는 게 아쉬울 뿐.


"한 번 해볼까."


리스크가 너무 커서 생각만 하고 해보지는 못했던 기술이 있다.

어차피 죽게 될 거라면, 시도해 보는 것도 좋겠지.


채찍이 날아왔다.


놈도 지쳤는지 처음보단 느리게 날아왔지만, 피할 힘이 없는 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팔로 채찍을 막았고, 역시나 갈기갈기 찢어졌다.


떨어진 팔을 집어든 후, 뒤를 돌아 도망갔다.


"한참 재밌는데 도망치는 거냐!"


놈의 얼굴에 승리의 미소가 떠올랐다.


채찍이 지나갈 때마다 등 뒤에서 피가 튀었다.


"얼마나 피를 흘려야 정신을 잃나 보자!"


저렇게 말 안 해도 이미 정신은 혼미한 상태다.


최대한 팔다리를 보호하며 불타고 있는 상가 앞에 섰다.


“어쩌냐? 이제 도망칠 곳도 없는데.”


반박할 말도, 힘도 없었다.


“그냥, 나랑 실험이나 하자니까? 얼마나 죽여줘야 네 비명이 나올지 확인하고 싶어졌거든.”


“비명이라...”


갖고 있던 팔을 집어 던졌다.


놈은 웃기지도 않는다는 얼굴로 고개를 돌려 내 팔을 피했다.


“뭐, 죽기 전에 저주라도 해 보려고?”


불에 타고 있는 상가에 뛰어들었다.


“그것도 궁금하긴 하네.”


세상이 붉은 불로 일렁거렸다.


눈알이 녹았는지, 시야가 다시 어두워졌다.


"저 미친놈이...“


그 소리가 마지막으로, 의식이 꺼졌다.


그리고 다시 의식이 켜진 곳은.


"이게 되네."


내가 눈을 뜬 곳은, 내 팔이 떨어져 있던 곳이었다.


내 목소리를 듣고 고갤 돌렸고, 놈의 눈이 '네가 왜 여기에'라는 얼굴을 보인 순간.


놈이 내비치는 의문의 답은 행동으로 보여줬다.


푹! 푹! 푹!


혈하가 놈의 몸 안을 지나갈 때마다 잘 먹은 짐승의 털처럼 반짝였다.


“이...새끼...”


채찍의 단점은 거리가 가까워 지면 제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놈이 허물어지는 건 내가 혈하를 열 번 정도 찔러 넣었을 때였다.


‘이게 되네.’


목숨을 건 도박이었다.


일합회와 싸웠을 때 몸이 반이 잘린 적이 있었는데, 몸이 더 많이 남아있는 쪽에서 재생이 됐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그 부위가 최소한이고 다른 곳은 재생할 수 없다면?

그 답은 신체 부위가 조금이라도 남아있는 곳에서 재생하는 거였다.


이렇게까지 하는 건 나도 위험해서 하지 않았었다.


‘앞으로 자주 써먹을 수 있겠어.’


알면 알수록 ‘완전 재생’ 이라기보단 ‘완전 복원’에 가까운 능력이었다.


그건 그렇고.


“기억. 많이. 잃은 것. 같네.”


내가 왜 여기 와 있는지 헷갈렸다.


꽤 중요한 일이었던 것 같은데.


“윤호님!”


손수윤이 지게에 짐과 여자 한 명을 들고 왔다.


“최대한 챙겨 왔어요!”


“그건. 누구지.”


“그야 당연히...얼마나 죽은 거에요?”


이런 증상을 몇 번 본 손수윤이라 내 상태를 금방 눈치챘다.


“제 여동생이에요. 지금은 죽었지만.”


“아. 그랬었나.”


“서둘러요! 어디로 가야 할지는 기억하시죠?”


“관악산. 그 안으로 들어가자.”


“제가 안내할게요.”


손수윤과 도망치면서 머리가 맑아졌다.


그렇다고 기억이 돌아오진 않았지만, 머리가 맑아진 것만으로도 뭘 해야 할지는 알 것 같았다.


‘유리님은 어디 있지.’


먼저 가면 다행이지만, 아직 도시에 있으면 곤란하다.


“아아악!”


“도시 놈들은 다 죽여! 기술자들은 노예로 삼고!”


이 아비규환의 현장을 보고 이유리가 가만히 있을 리가 없다.


겉으로는 싫어하는 티를 냈지만, 이 도시를 꽤 사랑하고 있었다.


내 옆에서 일합회의 조직원이 도망치던 여자의 머리채를 잡았다.


“외모가 쓸 만하군, 적당히 놀다가 팔아먹어야겠다!”


“살려 주세요!”


“여기에 널 구할 사람은 없...”


여자의 머리채를 잡던 일합회의 조직원이 목에 달빛을 닮은 검기가 스쳐 지나갔다.


툭.


조직원의 목이 떨어졌고, 그 뒤에는 이유리가 있었다.


“하아...하아...”


벌써 꽤 많이 죽였는지, 몸은 피에 젖어 있었다.


“너 때문에 내 계획이 전부 틀어졌어.”


“죄송합니다.”


“난 멀리서 나태하고 고여있는 쓰레기 새끼들을 비웃기만 하려고 했단 말이야.”


역시나, 이유리는 이 도시를 사랑했다.


희망이 없는 걸 알고 있으니까 도망쳤을 뿐.


“그러니까, 책임져.”


그렇지만, 난 단호했다.


“구할 수 없는 사람입니다.”


모두를 구할 수는 없다.


그랬다면 도시를 나가지도 않았겠지.


“네가 하기엔 좀 웃긴 말 아니야?”


“전 구할 수 있는 사람이라서요.”


이기적인 거 안다.


그렇다고 양심 하나 지키자고 모두를 구하겠다는 이유리의 망상을 들어주는 건 미친 짓이다.


신세연을 향해 물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강윤호 말이 맞습니다.”


이유리가 타오르는 도시를 보며 이를 앙다물었다.


“쳐다도 안 볼걸.”



*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란 말이 있다.


의도와 다르게 비극을 경험한 우리는 정신적으로 피폐해져 있었다.


관악산으로 돌아온 우리는 곧장 산악회가 만들어 놓은 오두막 안으로 들어가 피만 대충 닦고 드러누웠다.


셋은 서로 아무 말도 안 하고 누워있었고, 손수윤만 안절부절못하며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러게, 가지 말라니까.”


우하윤이 이유리를 토닥여 줬다.


“네가 사람들이 죽어가는 걸 어떻게 보겠어.”


“...그 새끼들에 대한 분노가 더 크다고 생각했어.”


“넌 그럴 사람이 아닌 거 네가 더 잘 알잖아.”


“피곤해. 조금만 잘게.”


이유리가 침대에 누웠고, 우하윤이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윤호씨랑 세연이는 잠시만 나와 보세요.”


솔직히, 조금 긴장했다.


이유리의 마음이 다친 건 내 책임도 어느 정도 있다고 생각했다.


우하윤이 오두막을 살펴보다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고마워요.”


“네?”


멍청하게, 들었는데도 되물어봤다.


“유리가 감정적인 면이 좀 강하거든요.”


“제가 먼저 사고를 친 건데요.”


“그렇긴 하지만, 덕분에 유리가 미련을 버렸으니까 괜찮아요. 책임지고 돌아오기도 했고요.”


관악산에서도 망원경으로 우리를 보고 있었다고 한다.


내가 이유리를 두고 가는 것도 봤고, 혼자 손수윤을 데리고 올 수 있는 것도 봤다고 한다.


“솔직히 놀랐어요, 일합회의 고위 간부를 잡을 줄은 몰랐거든요.”


얼굴 전체에 문신이 있는 놈들은 일합회에서 서열이 열 손가락 안에 든다고 한다.


“그래도 다음부턴 이런 일은 없었으면 좋겠어요.”


“명심하겠습니다.”


“그리고 유리는...한동안 놔둬요. 누가 위로해 줘도 슬픈 건 같을 테니까.”


유하윤이 가고 나서 나도 오늘의 마무리를 위해 움직였다.


“네 여동생부터 정리하자.”


시체가 줄지 않는 멸망기에서 유일하게 흥하고 있는 건 파리 같은 벌레였다.


벌써 시체에 파리가 꼬이고 있었다.


“...네.”


장례는 짧게 치러졌다.


“땅에 묻는 건 싫어요. 이 지옥에 계속 남아있는 것 같잖아요.”


손수윤의 뜻에 따라 화장했다.


태우는 건 산악회의 마법사 정우준에게 부탁했다.


순식간에 타오른 불길은 시체를 순식간에 재로 만들어 버렸다.


“...이제 업고 다닐 필요 없겠네.”


손수윤이 바람에 흩날리는 재를 보며 이를 갈았다.


“복수할 거예요.”


사는데 목표가 있다는 건 나쁜 일은 아니다.


낚시하는 법 정도는 알려 줄 생각이었다.


그렇게 며칠이 흘렀다.


손수윤은 빠르게 동생의 죽음을 잊은 척을 했다.


떠난 이를 마음에 오래 두는 것만큼, 죽을 확률이 높다는 걸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제가 가져온 물건이에요.“


손수윤이 가져온 물건은 철근을 따위로 만들어 버릴 만큼 가치가 있는 물건들이었다.


”이계의 금속이네.“


괴물 중에는 부산물로 다른 세계의 금속을 떨구는 경우가 있었다.


재련만 잘한다면 철보다 단단한 물건을 만들 수 있었다.


‘혈하도 이계의 금속으로 만들어진 것 같기도 하고.’


혈하 특유의 가벼움과 날카로움은 아무리 기술 좋은 대장장이더라도 철로만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런데 이걸 팔 수 있나요?“


가져오라고 시키긴 했지만, 정작 팔아야 할 도시가 사라졌다.


다행히도 내겐 물어볼 사람이 있었다.


”그건 걱정마.“


남재우가 활시위를 만지며 말했다.


”사람이 살아 있다면 물건 거래는 어디나 있지.“


”근처에 없으면 곤란합니다.“


세종의 침입 이후로 도시가 정리되면서 근처의 관악산도 시끄러워졌다.


괴물이 좋아하는 산이라는 장소라 세종과 일합회가 당장에 건드리지 않을 뿐, 명분은 충분했다.


”도시에서는 지하철에 대한 소문이 어땠어?“


서초의 지하철은 괴물 침입의 이유로 모두 폐쇄했었다.


남재우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갤 끄덕였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야.“


남재우가 말하는 정보는 상당히 흥미로웠다.


암시장.


처음엔 도시의 감시를 피하고자 지하철에 만들어진 중고 거래 장소와 비슷했다.


하지만, 지금의 암시장은 웬만한 도시의 시장보다 커다란 규모를 갖고 있었다고 한다.


”그럼 싸움이 안 날 리가 없을 텐데요?“


”암시장의 주인이 내세운 룰이 하나 있어.“


불가침.


어떤 원수를 진 사이라 해도 암시장에는 서로 싸워서는 안 된다는 불문율이 있다고 한다.


만약 이를 어길 시 사용 금지에다가 즉결 처형까지 당한다고.


‘우물 안 개구리였네.’


도시를 벗어날수록 얼마나 좁게 살았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하루 벌고 하루 사는 그전에야 상관없었지만, 강해지려는 지금에는 문제가 있다.


”바로 가도 되겠습니까.“


”세종도 점령한 도시를 정리해야 할 테니까 한동안 괜찮을 거야. 우리가 부탁할 것도 있고.“


남재우의 부탁은 그동안 놀을 잡으며 얻은 가죽과 이계의 금속이었다.


”전쟁 때문에 시세가 요동치겠지만, 놀 가죽 하나에 철근 반 개 정도는 됐어.“


”그 정도는 받아 오겠습니다.“


”부탁할게, 그리고 조심할 게 있는데.“


”일합회 말씀입니까.“


남재우가 고갤 끄덕했다.


”아마 싸울 일은 없겠지만, 일합회 놈들도 암시장에서 많이 거래하거든.“


무법자들의 주 거래처니 일합회가 있는 건 당연했다.


”안에선 그렇다 쳐도...나가면 문제가 좀 생기겠네요.“


”그건 걱정 안 해도 돼. 아무리 일합회가 많아도 그럴 수는 없으니까.“


”나가서 죽이는 것도 안 된다는 규칙이 있습니까.“


”그럴 리가.“


그 이유의 답은 내 생각과는 달랐다.


“암시장의 위치는 지하철이야.”


“아.”


지하철이라면 이해가 됐다.


수많은 출구를 조직원들이 다 막을 수는 없으니까.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그런데 암시장은 허락받은 사람만 들어갈 수 있거든.”


“그럼 어떻게...”


“신세연을 데려가, 그럼 열어 줄 거야.”


“세연님은 왜...”


“암시장에 한 번 가보기도 했고, 저대로 있어봤자 의미도 없고.”


신세연은 이유리가 들어박힌 오두막 앞을 지키고 있었다.


“쟤도 머리 좀 식혀야지.”


“저야 괜찮겠지만...세연님은 괜찮을까요.”


“그건 내가 어떻게든 할 테니까 신경 쓰지 마.”


그렇게 암시장에 갈 멤버가 정해졌고, 곧바로 준비에 돌입했다.



*



짐이 많고 정리할 게 많다 보니 준비 시간만 며칠이 걸렸다.


산악회에서 준비해 둔 경량화 가방을 멘 체 남재우에게 물었다.


“유리님은요?”


“아직 오두막에 박혀 있어.”


이유리의 도시 사랑은 꽤 컸던 것 같았다.


”자책하고 있는 거겠지, 차라리 도시에서 지키다가 죽었다면 같은 생각.“


“멍청한 생각이네요.”


신세연이 눈살을 찌푸렸지만, 내 말에 후회는 없었다.


“그 점이 매력이잖아.”


남재우가 씩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조심해서 갔다 와.”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무한 재생으로 아포칼립스 살아남기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추석 연재 안내 24.09.15 10 0 -
공지 매일 밤 10시 15분에 연재됩니다. 24.08.26 33 0 -
22 전부 떠나야 하는 법 24.09.17 16 1 13쪽
21 계약(4) 24.09.16 27 1 13쪽
20 계약(3) 24.09.15 29 1 11쪽
19 계약(2) 24.09.13 35 2 12쪽
18 계약(1) 24.09.12 45 3 12쪽
17 여행(2) 24.09.11 44 2 13쪽
16 여행(1) 24.09.10 51 3 12쪽
15 거래(3) 24.09.09 53 2 12쪽
14 탈출 24.09.08 61 3 13쪽
13 멸망 이후(2) 24.09.07 64 2 12쪽
12 멸망 이후(1) 24.09.06 70 2 13쪽
11 거래(2) 24.09.05 66 1 12쪽
10 거래(1) +1 24.09.04 70 1 12쪽
» 멸망(2) 24.09.03 79 1 12쪽
8 멸망(1) 24.09.02 88 2 12쪽
7 조짐(2) 24.09.02 96 2 13쪽
6 조짐 24.08.31 106 1 12쪽
5 사냥(2) +1 24.08.30 108 2 13쪽
4 대장장이 +1 24.08.29 133 1 12쪽
3 사냥 +1 24.08.28 147 3 13쪽
2 복수 +2 24.08.27 188 4 11쪽
1 각성 +2 24.08.26 242 4 1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