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 재생으로 아포칼립스 살아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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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밤
작품등록일 :
2024.08.26 04:49
최근연재일 :
2024.09.17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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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2 2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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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1)

DUMMY

“푸하!”


이유리 물 안에서 잠수하고 있던 사람처럼 숨을 토해냈다.


“시발...저게 일합회 보스라고?”


“숨 쉬는 것도 힘들었어요.”


겉으로는 아닌 척했지만, 이유리와 신세연이 떠는 게 보였다.


그렇지만 내 정신은 다른 곳에 쏠려 있었다.


‘처음 겪는 느낌이었어.’


살기를 처음 겪어본 게 아니었지만, 감각이 느껴질 정도로 따가운 살기는 처음이었다.


류재곤에게 느꼈던 원초적인 두려움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애초에 그런 두려움은 무게만 달랐을 뿐, 성벽에서 느껴본 적이었었으니까.


유진아가 내게 줬던 이질감은 그때완 또 다른 느낌이었다.


자주 느꼈던 두려움이란 감정은 심장이 뜨거워지고 온몸에 피가 도는 게 느껴졌다면.


유진아의 살기는 온몸의 피가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그 기운이 너무 차가워서 오히려 정신이 맑아졌다고 생각할 정도.


잠깐만.


“...그건가?”


내가 내 감각을 못 찾겠으면, 상대방이 찾아주면 되지 않을까.


혈하를 꺼내 손가락을 잘랐다.


“야, 너 뭐 하는 거야!”


“잠깐 마음 좀 다스리고 계십쇼.”


“어디 가는데!”


“유진아 좀 다시 한번 봐야겠습니다.”


내 생각이 맞다면. 이건 쉽게 올 수 있는 기회가 아니다.


이유리가 뭐라 외쳤지만, 그런 게 전혀 들리지 않았다.


한달이 넘던 고민의 실마리가 희미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



유진아를 만나는 데 오래 걸리진 않았다.


”...내가 헛것을 보고 있는 건가?“


일합회의 조직원들이 날 둘러싸고 있었지만, 그들에겐 시선도 주지 않았다.


”아까 했던 살기, 한 번만 더 써주라.“


부하 중 한 명이 나섰다.


”실성했구나.“


검이 내 머리 위로 떨어지기 직전.


”그만.“


”하지만...“


”알잖아, 난 했던 말은 반드시 지키는 거.“


부하는 날 죽일듯한 눈으로 노려보며 뒤로 물러났다.


”나한테 온 이유가 고작 그거야?“


”나한테는 중요한 일이라서.“


”좋아, 어렵진 않지. 그런데.“


유설아의 웃음기가 사라졌다.


”날 귀찮게 했으니까 이번엔 진심으로 갈 거야.“


그 말에 다른 조직원들이 당황했다.


”보스, 잠시만 시간을...“


”피...피해!“


쿵.


처음 만났을 때 느꼈던 심장이 떨어지던 느낌.



”끄억...“


”끄르르륵...“


일합회의 조직원들이 익사라도 하듯 목을 부여잡고 거품을 물었다.


폐 안의 모든 공기가 빨려 나가며 숨쉬기 어려운 게 느껴졌다.


“버티네?”


“이 정도쯤이야.”


살기라는 바다를 만들어낸 유진아가 모두를 익사시키기 직전.


“여기까지.”


유진아가 살기를 거뒀다.


“푸하...”


다른 조직원들이 거칠게 숨을 몰아쉬거나 심한 사람은 토를 쏟아냈다.


“하여튼 나약한 새끼들. 저놈 반만 닮아봐라.”


유진아가 혀를 쯧 찼다.


“살기는 여기까지, 내가 시간이 없어서.”


충분했다.


방금 느꼈던 감각으로 마나를 어떻게 운용하는지 깨달았으니까.



*



일합회의 간부 박태윤은 지금 상황이 잘 이해되지 않았다.


”보스.“


”음?“


”왜 그 새끼를 도와주신 겁니까?“


”재밌잖아.“


보스가 적인, 그것도 숙적인 상대를 도와줄 정도로 미치지 않았다는 건 잘 알고 있다.


”흠...너희 자존심이 상할 것 같아서 안 말하려 했는데.“


”...잘 이해되지 않습니다.“


”내가 거기서 살기를 더 썼으면 살아남는 건 나랑, 그놈뿐이었어.“


”...네?“


그럴 리 없다.


아무리 괴물 같은 체력 재생이라 해도 유진아의 살기를 버틸 수 있을 리 없다.


방금 전 느꼈던 땅에서 익사하는 감각은 아직도 심장이 쿵쾅거리는 소리가 머릿속을 울릴 정도였다.


”결과적으로는 도와준 게 됐지만, 내보낸 살기는 진심이었어.“


”그런데 마나도 안 배운 놈이 안 죽은 겁니까?“


”응.“


유진아가 가장 싫어하는 게 번복인 걸 알지만, 이 말은 해야 했다.


”지금이라도 죽여야 합니다.“


원래 같았으면 죽이거나 그에 준하는 고통을 줬겠지만, 마음에서 나오는 충언인 걸 알기에 한 번 참았다.


”뭐, 틀린 말은 아니지.“


”그런데 어째서...“


”재밌잖아.“


”...정말 그것뿐입니까?“


”그리고 쓸모 있을 것 같기도 하고.“


이렇게까지 말했는데도 확고하다면, 어쩔 수 없다.


‘운이 좋군.’


박태윤이 고개를 숙였다.


”...그게 보스의 뜻이라면.“


”이래서 내가 너를 좋아해. 선을 안 넘거든.“


자칫하면 죽을 뻔했다는 생각에 박태윤의 등골이 서늘해졌다.


”가자, 할 일이 많다.“



*



”뭐 하다 온 거야!“


”마나를 깨우치고 왔습니다.“


”갑자기 무슨 개소...진짜네?“


유진아에게 살기를 맞으면 몸 구석구석이 훑어지는 기분을 느껴지게 된다.


무통인 내게 감각을 느낄 수 있는 건 정말 귀한 경험.


그 경험을 기억 삼아 내 몸 안의 마나 흐름을 잡았다.


”대체 어떻게 했냐?“


”그건 나중에 설명하고, 조미료는 받았습니까?“


”진작 받았지. 이것 때문에 왔는데.“


이유리가 긴장이 풀렸는지 식탁에 털썩 앉았다.


”밥 한번 먹으러 왔다가 이게 무슨 일이야...“


유진아를 만난 건 숨 막히는 경험이긴 했지만, 얻은 건 많았다.


그만큼 우리를 얕잡아 보고 있다는 말이겠지만, 쉽게 죽지는 않을 생각이었다.


”돌아가죠, 해야 할 게 많습니다.“


”한동안 한적해서 좋았는데, 바쁘겠네.“


이준우와 인사를 한 뒤, 차에 올라탔다.


”저는 안 타겠습니다.“


”왜, 유진아가 경공도 알려줬냐?“


”아까 몸을 살펴보면서 경공을 어떻게 하는지 대충 파악했거든요.“


한번 뚫린 마나를 운용하는 건 생각보다 쉬운 일이었다.


”벌써 했다고?“


”한 번 하니까 쉽던데요.“


“이럴 때 보면 천재 같기도 하고...”


“먼저 가보겠습니다.”


“가기 전에 저건 처리하고 가야겠는데?”


또다시 땅이 울렸다.


골렘이 식당을 향해 다가가고 있었다.


“잘됐네요, 안 그래도 써 보고 싶었던 게 있었는데.”


서초에서 개고생하고 얻어낸 사라마의 팔찌를 지금까지 써 보지도 못했다.


거인은 딱 써보기 좋은 상태였다.


하예림이 말했던 대로 마나를 사라마의 팔찌에 집중했다.


‘잘 모르겠는데?’


변화가 느껴진 게 딱히 없는 것 같아서 혀로 이빨을 만져봤다.


뚝 뚝.


피가 턱 아래로 흘렀다.


‘성능 확실하군.’


경공으로 순식간에 거인에게 다가갔다.


거인이 주먹을 휘둘렀지만, 가볍게 팔 하나를 내주며 목으로 올라갔다.


콰드득!


내 이빨이 거인의 목에 박혔다.


고통스러운 목소리를 내며 봐왔던 것처럼 몸을 흔들었지만, 내 이빨은 모 다큐멘터리에서 봤던 악어거북처럼 떨어질 줄 몰랐다.


사각사각.


거인의 살은 점점 파먹혀갔고, 얼마 지나지 않아 목이 바닥에 추락했다.


무너지는 거인의 몸뚱이 위에서 중심을 잡으며 입안에 남아있는 침을 뱉었다.


“씹는 맛이 있네.”




거인이 쓰러지며 먼지를 일으켰다.


“심장은 준우씨 챙겨주고 가야지.”


저녁도 공짜로 먹었으니, 이 정도는 줄 수 있었다.



*



돌아오는 길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경공에 익숙해질수록 속도도 빨라졌고, 몇 시간 만에 차보다 빠르게 갈 수 있었다.


가끔 등장하는 괴물은 더 쉬웠다.


콰득!


사라마의 팔찌를 쓸 필요도 없이 혈하 몇 번으로 괴물이 잘려 나갔다.


이런 생각이 오만한 걸 알고는 있지만, 세상의 난이도가 하나 내려간 기분.


차보다 빠른 속도로 달리며 산을 넘어 다니며 반나절 만에 관악산에 도착했다.


놀의 가죽을 벗기고 있는 남재우가 보였다.


“왜 너 혼자 왔어?”


“두 분은 차를 타고 오고 있을 겁니다. 중요한 얘기가 있습니다.”


어두웠던 남재우의 안색이 풀렸다.


“중요한 얘기가 뭔데?”


조금 미안했다.


안도하는 저 표정이 곧 근심으로 물들 걸 알기에.


유진아와 만난 얘기와 정보를 들을수록 남재우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좋은 정보는 맞는데, 머리가 벌써 아프네.”


남재우가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일단 따라와 볼래?”


산 정상에 올라왔다.


“얘들아! 오늘 저녁은 다들 와! 할 얘기가 있어!”


메아리가 산으로 울려 퍼졌고, 멀리서 연기가 보였다.


”그럼, 저녁에 보자.“


해가 질 무렵, 우리는 늘 모이던 오두막에 모였다.


그곳엔 내가 처음 본 얼굴도 몇몇 보였다.


”뭐야, 빨리 왔네?“


그 사이에는 이유리와 신세연도 보였다.


”얘기는 제가 다 해놨습니다.“


”그래서 얼굴 보기 힘든 놈들도 와 있었구나.“


산악회 모두가 모인 걸 확인했을 때 남재우가 입을 열었다.


”이렇게 다 모인 건 오랜만이지?“


남재우가 내게 들었던 얘길 전해줬고 다른 산악회원들도 얼굴이 어두워졌다.


나랑 비슷한 나이대의 남자가 손을 들었다.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저놈만 나가면 되는 거 아닌가?“


”야!“


이유리가 버럭하는 걸 말렸다.


”진정하세요, 저분 말이 틀린 건 아닙니다.“


내가 생각해도 내가 나가는 게 제일 깔끔했다.


화내느라 말도 제대로 못 하는 이유리 대신 남재우가 대신 말해줬다.


”아니지, 이미 우리랑 너는 지독하게 엮였어. 그런 걸 생각 할 거면 처음부터 안 받았어.“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그런 의리를 지킬 필요가 있나?“


”이런 세상이니까 더 지켜야 하는 거야.“


남재우의 시선이 가라앉았다.


”그러니까 그딴 소리 할 거면 닥치고 있어.“


”...언젠가 네 판단 때문에 우리 애들이 다 죽을 거다.“


남자가 떠났고, 남재우가 한숨을 쉬었다.


”저 새끼는 언제 철이 들지...“


우리 모두 이런 일로 싸우는 게 얼마나 쓸데없는 일인지 알고 있었다.


주제는 금방 해결책을 찾기 위한 방법으로 넘어갔고, 가끔 언성이 높아지긴 했지만, 선을 넘는 사람은 없었다.


수많은 의견 끝에 모두의 의견은 하나로 모아지고 있었다.


”역시 도망쳐야 하나.“


”도망도 힘들 거라고 유진아가 말하긴 했습니다.“


“그 여자가 간과한 게 있는데, 우리가 마음먹고 도망치면 절대 안 잡힐 자신이 있다.”


우리나라 땅 대부분이 산이다.


적당한 곳을 하나 골라 죽은 듯이 숨어 사는 것도 방법.


“그렇긴 하지, 그렇긴 한데...여기 만큼 살기 좋은 곳이 없으니까 문제지.”


관악산은 산악회가 멸망 초기부터 만들어 왔다.


이젠 놀도 그걸 알고 있어서 자주 침입해 오진 않았는데.


기껏 일궈놓은 곳을 떠나기엔 아쉬웠다.


“말이 나와서 그런데 세종의 상태도 이상해.”


우하윤은 평소 세종의 정찰을 맡고 있었다.


최근 세종은 군인들을 재정비하고 멋대로 놔두던 무법자들을 정리하고 있다고 했다.

절반 이상의 군인이 항상 훈련하고 있었고, 정찰하는 군인들은 극도로 줄었다.


“그쪽도 어느 정도 정리가 끝났나 보네.”


“그렇겠지,”


조금은 씁쓸했다.


저 안에 있던 잔당들이 다 정리됐다는 소리였으니까.


“그 정도 규모면 우리를 잡으려는 건 아닐 텐데.”


우리가 강하다 해도 세종의 군인 절반이 움직이는 건 말이 안 된다.


닭 잡는데 소 잡는 칼을 쓰는 격.


“그렇다고 전쟁은 아닐 거고.”


아래쪽 지방에 도시가 더 있긴 하지만, 서울에서 밑으로 내려가는 건 엄청난 손해다.


산악회원들이 이유를 찾기 위해 머리를 싸매고 있을 때, 내가 넌지시 말했다.


“괴물을 잡아서 서울의 영토를 넓히려는 건 아닐까요?”


남재우의 눈이 커졌다.


“...가능성 있어.”


괴물보다 인간을 더 죽인 인간 백정이라 해도 괴물이랑 동맹인 건 아니다.


주변에 돌아다니는 괴물을 처리해야 하는 건 세종도 똑같았다.


“간만에 쓸모 있는 일을 하는군, 우리한테는 안 좋은 일이지만.”


관악산이 필요 없어지는 순간, 우리의 운명은 뻔했다.


“잠깐만 생각할 시간을 줘.”


남재우가 눈을 감고 생각했고, 우린 기다려줬다.


천천히 눈을 뜬 남재우가 날 바라봤다.


“네가 세종의 군인과 마찰이 있었던 건 심증만 있잖아. 그렇지?”


“...아마 그럴 겁니다.”


유진아가 약속만 지켰다면 세종은 내가 누군지도 잘 모른다.


“그거면 충분해.”


“뭐 떠오르는 게 있으십니까.”


“아니, 아무리 생각해도 없어. 그러니 직접 만나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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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멸망 이후(1) 24.09.06 70 2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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