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 재생으로 아포칼립스 살아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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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밤
작품등록일 :
2024.08.26 04:49
최근연재일 :
2024.09.17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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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6 2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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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멸망 이후(1)

DUMMY

이제 조직원 중에 일어서 있는 사람은 몇 없다.


“이야, 진짜 잘 싸우네.”


어느새 하예림이 캠코더를 들고 우리를 찍고 있었다.


“그거 오랜만에 보네요.”


“일합회한테 증거 자료로 제출해야죠.”


“하예림 이 개년이...”


처음부터 나대던 조직원이 이를 갈았다.


“그쪽이 먼저 시작한 거 다 찍혀있어요. 지금이라도 그만두면 이 영상은 없던 일로 할게요.”


“닥쳐!”


조직원이 하예림이 든 캠코더를 뺏으려 했다.


“이미 선을 넘으시긴 했지만, 이건 곤란하네요.”


하예림이 가볍게 몸을 움직여 조직원의 손을 피했다.


“역주님!”


어디서 튀어나왔는지 수십 명의 암시장의 직원들이 하예림에게 뛰어왔다.


“호들갑 떨지 마요.”


“아무리 일합회라도 선을 넘었습니다!”


“알아요, 그래도 부끄럽지 않게 서비스는 해드려야죠.”


계속 피하던 하예림의 눈이 한곳으로 향했다.


“저게 적당하겠네요.”


아까 손수윤이 보면서 감탄하던 명검을 주웠다.


하예림이 철도 밑 틈에 숨어있던 상인에게 웃었다.


“살게요. 열 개면 되죠?”


“예...예?”


“이거 가짜잖아요. 아니에요?”


“에...그게...”


하예림은 대답을 듣지 않고 검을 휘둘러 조직원의 검을 막았다.


“우수 고객이니 고통 없이 보내드릴게요.”


몇 번의 검이 서로를 지나갔다.


조직원의 지친 숨소리가 꽤 멀리 떨어져 있는 내게도 들렸다.


결과는 예상대로였다.


순식간에 검이 조직원의 귀 위에 닿았다.


“미안해요, 제 무기가 있었다면 더 편하게 보내드렸을 텐데.”


“살...”


서걱


조직원의 귀의 위가 잘리며 뇌수와 피가 흘렀다.


“최대한 빨리 뇌간을 배긴 했는데 어땠을지 모르겠네요.”


죽은 줄도 모르고 팔이 떨리는 걸 보니 하예림의 의도대로 된 것 같았다.


“역주님.”


“네?”


“저 좀 도와주셔야겠습니다.”


“이미 시원하게 저질러 놓으셔 놓고 뭘 도와줘요?”


“저게 아닙니다.”


심드렁하던 하예림의 표정이 달라졌다.


“서초행에 대해 말씀하시는 건가요?”


“네. 몇 가지 챙겨갈 게 있습니다.”


“흠...이 이상은 돈이 좀 들 텐데요?”


“투자라고 생각하시죠.”


“투자라...”


하예림은 내가 만들어낸 시체를 훑어봤다.


“실력은 확실하니까. 들어나 보죠.”


“원래는 관악산에서 준비를 좀 하고 가려 했는데,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설마, 안 하시게요?”


“그럴 리가요. 지금 바로 갈 겁니다.”


하예림이 진귀한 물건을 본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강화 포션을 만드는 연금술사, 저도 필요해졌거든요.”


“저야 빨리할수록 좋긴 하지만, 이유가 뭐죠?”


“오늘 일로 깨달았습니다.”


일합회와 관계를 돌이킬 생각도 없었지만, 이미 돌아갈 수 없는 강을 건넜다.


놈들이 내 목을 치기 전에, 저놈들을 뒤집어 놓을 생각이었다.


내 생각을 들은 하예림이 씩 웃었다.


“원래 몸이 계속 재생되면 겁이 없어지나요?”


“겁이 나기 때문에 서두르는 겁니다.”


나 때문에 산악회 사람들을 비롯한 다른 사람들이 피해를 봤다.


서초를 정리하는 순간, 우리 차례일 게 뻔했다.


“뭐, 좋아요. 원하는 게 뭐죠?”


나뒹구는 시체 중 하나를 붙잡고 팔을 잘랐다.


문신이 있는 곳을 내게 가까이 갖다 대자 문신이 붉게 빛나기 시작했다.


“일합회가 저를 찾는 방법입니다.”


“주술일 거라 생각은 했는데, 이런 방법이었군요.”


“이게 주술이라면 무력화시키는 주술도 있겠죠.”


“주술에 문외한이긴 하지만, 그렇겠죠?”


“며칠 동안이라도 없애주시죠.”


”어려운 부탁이네요.“


”피차일반이군요.“


”시체는 저희가 치울 테니까 따라오세요.“



*



서울의 지하철이 넓긴 했지만, 생존자 전부를 담을 정도는 아니었다.


괴물에 의해 폐쇄된 곳이 절반 이상인 데다가 암시장의 손이 안 닿는 곳엔 무법자들도 살고 있었다.


지하철은 법이 존재하지 않는 또 하나의 도시나 다름없었다.


이제 개미굴이나 다름없는 지하철의 깊숙한 곳.


숨조차 쉬기 불편한 땅굴 안에도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이런 건 어떻게 만든 겁니까?“


비록 땅굴이고 공기가 옅긴 했지만, 사람이 살 수 있을 정도.


이런 거대한 장소를 만든 사람이 궁금했다.


”제가 했어요.“


”마법사셨습니까.“


”그건 아니고.“


개미굴이 생기기 전, 암시장은 살아있는 사람들의 지옥이나 다름없었다.


그런 환경을 하예림이 나서서 정리했고, 암시장과 개미굴을 분리해 냈다.


”만드는 건 어렵진 않았어요. 마법사 몇 명한테 철근 주고 시키니까 금방 만들더라고요.“


하예림이 시가에 불을 붙였다.


그 조악한 빛 너머에서 우릴 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사람이 꽤 많이 사나 봅니다.“


”궁금해서 새어 본 적이 있는데 200명은 넘게 살더라고요.“


하예림과 얘기하다 보니 땅굴의 끝에 도착했다.


단단한 벽 한구석에, 사람이 지나갈 만한 크기의 땅굴이 보였다.


”들어가죠.“


”여기도 길이 있나요?“


”아뇨, 이 안에 윤호님의 문제를 해결해 줄 사람이 있어요.“


시가의 불빛을 전등 삼아 아래로 내려갔다.


”할멈!“


시가 불빛 너머로 얼굴에 검버섯이 피어 있는 노인이 쪼그려 앉아 있었다.


”능력도 좋은 사람이, 왜 이런 곳에 있어?“


”됐고, 왔으면 담배나 줘.“

”하여튼 골초라니까.“


이유리가 품에서 오래된 담배 한 갑을 꺼냈다.


노인은 하예림의 라이터를 빌려서 담배를 태웠다.


”난 여기가 좋아.“


”여기가 뭐가 좋아, 빛도 안 들어오는데.“


”빛 한 줌 없는 이곳이 바깥의 핏빛 폐허보단 아늑하거든.“


”뭐, 그게 할멈의 취향이라면.“


하예림이 어깨를 으쓱했다.


”그런데 왜 왔어?“


”왜긴 왜야, 주술 때문이지.“


하예림이 일합회와 나의 관계를 시작으로, 주술을 어떻게 풀지에 대한 방법을 물었다.


”독한 놈들한테 걸렸구나.“


”그러니까 할멈을 찾아왔지.“


”손목을 한번 보자꾸나.“


노인이 내 손목을 더듬었다.


”...아주 강한 주술이구나. 완전히 푸는 건 힘들겠어.“


”며칠이라도 안 될까?“


”삼 일. 그 이상은 힘들겠구나.“


”충분합니다.“


”몸이 좀 뜨거울게다.“


뜨거운 물이 내 몸을 씻겨낸 뒤처럼 연기가 피어올랐다.


무통 덕분에 아무런 느낌도 들지 않았다.


그 모습에 노인의 눈이 이채가 깃들었다.


”대단하구나. 비명 한 번 안 지르고.“


”제가 체질이 특이해서요.“


”이 지옥에 어울리는 몸이구나.“


몸에서 피어오르던 연기가 끝났을 땐, 옅은 향냄새가 느껴졌다.


”지금부터 3일이다. 변장만 잘한다면 걸릴 일은 없을 거야.“


”감사합니다.“


”피곤하구나. 좀 쉬어야겠어.“


”동전은 여기다 놔둘게.“


노인이 기면증 환자처럼 한순간에 잠들었다.


”며칠은 안 깨어날 거야.“


”문제가 생기는 건 아닌가요.“


”한두 가지 문제쯤이야 안고 가는 거지.“


다시 땅굴을 나온 우리는 곧장 출발할 준비를 했다.


가장 먼저 한 건, 변장.


마법사도 다양한 종류가 존재했다.


자연을 무기로 쓰는 마법사부터 내 앞의 신경계열 마법을 쓰는 사람까지.


”혹시 닮고 싶은 연예인이 있어요? 눈만 조금 만져도 괜찮으실 것 같긴 한데.“


싹싹한 인상의 마법사가 내 얼굴을 요리조리 만지작 거렸다.


”...평범하게 해주세요.“


돈을 주고 각종 버프를 걸어주는 마법사에게 얼굴 변형을 받았다.


”다 끝났습니다.“


거울 안에는 준수하게 생긴 인상의 남자가 서 있었다.


”평범하게 해 달라고 했을 텐데요.“


”이 정도면 평범한 거죠! 이 정도가 딱 좋습니다!“


조금 불만이긴 했지만, 공짜로 받는 처지에 더 불평하고 싶진 않았다.


”혹시 머릿속에서 폭죽이 터지는 경험을 하고 싶다면 따로 연락을...“


”그럴 일 없을 겁니다.“


변장과 저주 해제.


서초에 잠입하기 딱 좋았다.


암시장을 나가기 전, 잠시 대피한 신세연과 손수윤을 만났다.


”꼭 살아 돌아오셔야 해요.“


”물론이다.“


”...조심해.“


신세연의 걱정은 조금 의외였다.


”다른 분들께는 잘 말해주십쇼.“


”알았어.“


짧은 작별 인사를 한 뒤, 서초로 향했다.



*



다시 돌아왔다고 해서 반가운 마음이 들진 않았다.


사방에 온통 문신을 한 놈들이거나 세종 출신으로 보이는 놈들이 다니고 있는데 편할 리가 없었다.


무너진 성벽에서는 군복을 입은 남자들이 입구를 지키고 있었다.


일일이 조사한다기보단, 수상한 사람을 물색하는 느낌.


최대한 자연스럽게 부서진 성벽을 지나갔다.


군인의 앞을 지나가던 순간.


”거기, 처음 보는 얼굴인데?“


이래서 평범하게 해달라고 말한 건데.


멋쩍게 웃으며 군인에게 대답했다.


”여기엔 처음 왔습니다. 털어먹을 게 있나 해서요.“


”무법자였나. 멀리도 왔군.“


“뭐, 서초 버러지 들만 아니면 되니까.”


이미 본인들의 땅이라 생각했는지, 경비는 허술했다.


한 달도 안 지났는데 서초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광장 곳곳에는 철근에 꽂힌 시체가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또 있었네.’


검과 활처럼 다시 돌아온 인류의 역사가 하나 더 존재했다.


고문.


멸망 전에도 있기는 했지만, 이렇게 표면에 드러나지는 않았다.


“으으윽...”


양복을 입은 사람이 배를 포함한 사지에 철근이 꽂힌 체, 신음을 흘리고 있었다.


몇 번 본 얼굴.


성벽 수비에서 마주쳤던 앳된 공무원이었다.


그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소년이 자랑스럽게 입던 깔끔한 양복엔 오물이 잔뜩 묻어 있었다.


“......”


내가 온 줄도 몰랐는지 소년은 같은 말을 중얼거리고 있었다.


“시장님...왜 저희를 버리셨나요...시장님...”


나도 시장의 정체가 궁금하긴 했다.


전쟁 직전까지 나오지 않아 시장의 존재는 공무원들이 만들어 낸 환상이라 생각했는데.


더 캐묻고 싶었지만, 대답할 여력이 없는 것 같다.


“이봐.”


유일하게 움직일 수 있는 목을 돌려 날 바라봤다.


“죽여줄까.”


소년의 눈에 순간 망설임이 지나갔다.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싫으면 말고.”


“...최대한 편하게.”


“그래.”


그동안 도시를 지켜준 것에 대한 보답이 이거밖에 안 된다는 게 조금은 미안했지만.


푹.


마지막으로 가는 소년의 얼굴은 만족스러워 보였다.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성난 군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뭐야! 어떤 새끼가 죽였어! 아직 더 갖고 놀 수 있었는데!“


”누군가 심심해서 죽였나 보지.“


”쳇, 혼자 즐길 거면 같이하지.“


그 뒤로도 철근에 사지가 꽂힌 시체가 가로등처럼 군데군데 박혀 있었다.


대부분 양복을 입거나 소나무 길드의 옷을 입고 있었다.


‘악취미군.’


이유는 모르지만, 서초에 대한 악의가 너무나 날카로워서 베일 것 같았다.


칼 위에 올라선 기분으로 목적지로 향했다.


‘여기라고 했나.’


발걸음이 멈춘 곳은 손수윤이 포션을 주웠다는 장소였다.


조촐한 상가였을 것으로 추정되는 이곳은, 이미 화마가 지나가서 잔해만이 남아 있었다.


‘기억난다.’


성벽 수비를 하면서 몇 번 연고를 샀던 곳이었다.


이런 곳에서 그런 고급 포션을 만들었다는 생각은 잘 들지 않았다.


그리고 내 기억이 맞다면 그곳의 주인은...


”어라?“


금이 간 안경을 쓴 깡마른 남자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처음 보는 분인데, 누구시죠?“


연금술사 이종익.


지나가는 말로는 과거에는 약사였다고 했었다.


”아, 반갑습니다.“


이렇게 물어볼 걸 대비해서 준비한 말이 있다.


”암시장에서 왔습니다.“


”암시장이요?“


암시장은 어디까지나 중립의 입장이다.


게다가 은밀하게 활동하기 때문에 만나기도 어려운 편.


암시장의 이름을 빌리는 건 선을 넘지 않는다는 것을 약속한 뒤, 하예림한테 허락받았다.


이종익도 그걸 아는지 내게 물었다.


”암시장 분들은 은밀하게 활동한다고 들었는데...“


그의 눈이 내게 증거를 가져오라 말하고 있었다.


”이거면 믿으실지 모르겠네요.“


암시장의 동전 주머니를 보여줬다.


”동전이 이렇게나 많이...“일반적인, 그것도 도시에 사는 사람이라면 암시장의 동전이 이렇게 많이 필요할 리 없다.


”이렇게까지 보여줬으니 안 믿을 수 없겠네요.“


”아 다행...“


하려던 말을 멈췄다.


어떻게 이렇게 자연스럽지?


이종익의 행동은 마치 내가 올 걸 기다린 것 같은 행동이었다.


내게 주어진 시간은 그렇게 길지 않다.


바로 들이박았다.


”제가 올 걸 알고 있었습니까?“


직설적으로 말할 거라 예상하지 못했는지, 이종익의 눈이 미묘하게 흔들렸다가 금세 안정을 찾았다.


“만약 그게 암시장에 풀렸다면, 반드시 오실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거라면...”


“암브로시아(Ambrosia). 저희가 만든 근력 강화 포션의 이름입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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