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 재생으로 아포칼립스 살아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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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밤
작품등록일 :
2024.08.26 0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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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7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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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4 2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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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래(1)

DUMMY

“......”


신세연은 우리와 가는 동안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 어색한 공기에 늘 밝은 손수윤조차 눈치를 볼 정도,


“강윤호.”


신세연이 먼저 입을 열었다.


“재우 오빠가 암시장에 대해서 어디까지 말해줬어.”


“자세한 내용은 말 안 했습니다.”


“...모르고 가는 게 낫다고 생각한 건가.”


혼잣말을 중얼거리더니 그대로 대화 끝.


나도 이런 분위기를 못 참는 건 아니라 가만히 갔지만, 손수윤은 아닌 것 같았다.


계속 쓸데없는 말을 떠들어 대는 손수윤이 조금 안쓰러웠다.


”수윤아.“


”네?“


”애쓰지 말고 그냥 가자.“


”...네.“


침묵하며 간지 시간이 꽤 흘렀고, 지하철역에 도착했다.


지하철에는 역 이름 대신에 누군가 ‘시장’이라고 간판을 붙여놨다.


”들어가자.“


지하철의 안에는 철판으로 만들어진 벽이 있었다.


이걸론 괴물을 막을 수 있을 리 없겠지만, 사람을 막기엔 충분했다.


”입구가 없네.“


”마법이야.“


신세연이 쳘벽 중앙에 섰다.


뒤편에서 굵은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소속은?”


“산악회.”


“내가 모르는 얼굴이 섞여 있는데.”


“신입이야. 서초 출신.”


“운 좋은 녀석들이군. 들어와.”


신세연이 망설임 없이 철벽으로 나아갔다.


잠시동안 벽이 일렁이더니 신세연이 사라졌다.


“들어와.”


손수윤이 망설이는 사이 내가 먼저 들어갔다.


“같이 가요!”


마지막으로 손수윤이 넘어왔다.


벽 너머에는 까무잡잡한 피부의 남자가 앞에 서 있었다.


”아, 내가 귀한 손님을 몰라봤군.“


남자가 내 어깨를 잡으며 친한 척을 했다.


”일합회에서 악명높은 살육형제를 죽여버린 놈들 아닌가!“


암시장의 소문은 빨랐다.


살육 형제라는 이명은 처음 들었지만, 내가 죽인 놈들이 일합회에서 꽤 높은 위치인 놈이었다는 건 충분히 실감했다.


”산악회에 들어갔다니, 이걸로 관악산에는 괴물이 더 없겠군.“


신세연이 계속 지껄여 대는 남자의 말을 끊었다.


”비켜.“


”여전히 까칠하군, 살인귀.“


신세연의 가장 짧은 검을 검집째로 남자의 목에 갖다 댔다.


“그거 쓰지 마.”


남자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조심해, 일합회 놈들이 단단히 벼르고 있어.”


“참고하지.”


암시장은 내가 알던 지하철과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곳곳에는 거주지로 추정되는 오래된 텐트가 생겨나 있었고, 철로가 있던 곳에는 상인들이 물건을 팔고 있었다.


그중 가장 많이 파는 건.


“노예 팝니다! 이번에 세종에서 사냥한 사지 멀쩡한 노예가 철근 열 개!”


세종에서 온 노예였다.


‘이유리랑 같이 안 가길 잘한 것 같군.’


이 광경을 이유리가 봤다면 암시장에서 살아 나가기 힘들었을 거다.


“......”


의외로 신세연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노예들을 쭉 살펴보고 있었다.


“강윤호.”


“아, 네.”


“물건부터 팔자.”


“그러죠.”


“나는 봐야 할 사람이 있어서.”


“편하게 보고 오세요.”


“한 시간 뒤에 이곳에서 만나.”


신세연이 떠나자 손수윤이 한숨을 푹 쉬었다.


“하아...저 분이랑 같이 있으면 숨이 막혀요.”


“물건이나 팔자.”


우리가 가져온 물건은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


“어이, 그거 놀 가죽이지?”


놀의 가죽은 방한이 잘되고 가벼운 편이라 인기가 많았다.


게다가 곧 겨울이 다가오기 때문에 가죽을 꺼내 놓기만 해도 팔리는 편이었다.


“어이! 우리도 사겠...”


익숙한 문신을 한 놈들이 나를 부르려다가 멈췄다.


일합회였다.


“네놈이 감히 여길...”


“이 개새끼!”


조직원들이 무기를 꺼내 들었다.


“내가 알기로는 여긴 싸움 금지구역으로 아는데.”


“뻔뻔한 새끼! 살육 형제님들을 죽이고도 무사할 줄 알았어?”


”한 명은 안 죽였어, 눈만 못쓰게 만들어줬지.“


”...자살하셨다! 네놈이 형님을 죽인 죽인 그 날에!“


“그것참 좋은 소식이네.”


“이 개...”


“거기까지.”


역무원 옷을 입은 남자가 일합회와 내 사이를 가로막았다.


“아무리 우리 우수 고객이라 해도 여기서 이러는 거 선 넘는 거 아시죠?”


조직원의 몸이 움찔했다.


“네놈들의 정보력이라면 저 새끼가 누군지 알 텐데?”


“당연히 잘 알죠. 그렇다 해서 규칙을 어길 순 없는 것도 아시잖아요?”


“저놈은 예외다! 그 누구도 우리 조직의 간부님들을 죽인 사람은 없어!”


“저런! 이제 생겼네요!”


“이 개...”


“참으셔야 합니다!”


“암시장의 규칙은 절대적인 거 아시지 않습니까!”


소리를 지르던 놈이 결국 무기를 집어넣었다.


“...그 말에 책임져야 할 거다.”


“일 잘했다고 대표님께 상은 받을지도 모르겠네요.”


“가자.”


다른 조직원들이 날 죽일 듯이 노려보며 암시장을 떠났다.


“반갑습니다. 역장(驛長)님의 경호원입니다.”


마침 정체가 궁금하던 참이었다.


“역장님께서 보고 싶어 합니다.”


이렇게 유명해졌으니 어느 정도는 예상한 일이었다.


“한 시간 안에 가능합니까.”



*



경호원이 데려온 곳은 지하철의 작은 사무실이었다.


“들어가시죠.”


문 뒤에는 화려하게 장식된 벽지와 고급스러운 의자가 있었다.


그 의자에는 인상이 날카로운 젊은 여자가 앉아 있었다.


옆에는 무기로 추측되는 거대한 낫이 놓여 있었다.


“반가워요.”


여자의 모든 행동은 느릿했지만, 무게감이 있었다.


시가를 입에 가져다 문 여자가 불을 피웠다.


“한 대 피우실래요?”


“괜찮습니다.”


“의외네요. 요즘 담배를 거절하는 사람은 드물던데.”


여자가 나긋하게 연기를 내뱉었다.


연기 너머의 시선이 날 훑는 게 느껴졌다.


”저를 부르신 이유가 뭡니까.“


”궁금했거든요.“


나도 궁금하긴 했다.


저 여자는 무슨 능력을 각성했길래 암시장의 왕이 되었는가.


”살육형제를 죽였다는 분을 보고 싶었어요.“


”정말 그것뿐입니까?“


”급하긴.“


연기가 점점 방 안을 채웠다.


”원하는 말은 나중에 할 테니까 서로 아는 시간을 가져 볼까요?“


”...그쪽 먼저 말해보시죠.“


여자의 이름은 하예림.


좋아하는 건 과일과 시가, 그리고 싸게 산 물건을 비싸게 팔아넘기는 것.


연기에 가려졌음에도 외모가 꽤 괜찮다는 것.


그게 내가 하예림과 잠깐의 대화로 알게 된 전부.


정작 중요한 내용은 없었다.


”죄송하지만, 제가 시간이 없어서요.“


신세연과 만나기로 한 시간이 20분도 남지 않았다.


”빨리 본론이나 꺼내시죠.“


”어머, 벌써 시간이.“


하예림이 마지막 남은 시가를 전부 빨아들였다가 내뱉었다.


”따로 부탁할 일은 없고, 명심해 둘 게 있어서요.“


이제, 방 안은 연기로 자욱했다.


담배의 연기는 평범하지 않았다.

진작 사라져야 했을 연기가 계속 남아서 방 안에 안개가 낀 것처럼 부옇게 휩싸여 있었다.


일반 담배 연기처럼 눈이 맵거나 숨을 쉬기 힘든 것도 아니었다.


방 안을 가득 채운 구름은 정말로 안개 같았다.


시가의 안개에서 하예림의 눈이 번뜩였다.


”웬만하면 안에서 싸움은 하지 말아주세요.“


”저야 좋지만, 제 의지대로 되는 게 아니라서요.“


”제 말 뜻은, 그쪽에서 시비를 걸더라도, 조금만 참아 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산악회도 여기에 꽤 많은 수수료를 내는 걸로 아는데요.“


”물론 산악회는 훌륭한 고객이죠.“


”그런 고객한테 이딴 식으로 해도 괜찮은 겁니까?“


”감히.“


경호원이 나섰지만, 하예림이 한 손으로 가로막았다.


“룰은 여전합니다. 하지만, 상황에 맞춰 적용되는 건 어쩔 수가 없네요.”


불쾌한 감정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내 얼굴을 읽었는지, 연기 안의 목소리가 약간 누그러졌다.


“그리고 솔직히, 윤호님 정도면 한두 대는 맞아도 괜찮잖아요?”


“저랑 같이 온 동료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 두 분은 저희가 반드시 지켜드리죠. 한 분은 딱히 보호가 필요 없으신 분이긴 하지만요.”


그나마 합의점을 찾았다는 거에 안도해야겠지.


”오늘 만남은 여기까지 하죠.“


첫 만남과 다르게 끝은 불쾌했지만,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알고 싶은 게 많았지만, 하예림은 보여 줄 생각이 없었고, 대화할수록 내 정보만 나갈 것 같았다.


손해 보는 장사는 뒤로 하고 암시장의 주인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 만족하고 떠나려는데.


괜찮은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부탁 하나만 드려도 되겠습니까.“


”간단한 거라면요.“


”혹시 여기에 감정이 가능한 사람이 있습니까.“


”그런 장소는 따로 없긴 하지만, 제가 물건을 볼 줄 압니다.“


뒤에서 가만히 있던 웃는 인상의 남자가 화들짝 놀랐다.


”그런 잡일은 제가 하겠습니다.“


”괜찮아요. 받아 가기만 하는 건 거래가 아니니까.“


내가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이게 거래인지 잘 알고 있었다.


”물건을 보여 주시죠.“


손수윤이 갖고 온 잡동사니 중에 정체를 알 수 없지만, 신기하게 생긴 물건들 위주로 꺼냈다.


”흠...이건 쓰레기고, 이건 철근 열 개 정도면 팔릴 것 같고.“


한 번의 망설임 없이 물건을 구별해 내던 하예림의 손이 멈췄다.


내가 들고 있던 약병이었다.


”허, 이건?“


”비싼 겁니까.“


”네, 오랜만에 봐서 헷갈렸지만, 확실하네요.“


연기 속에서 하예림의 실루엣이 약병을 열고 냄새를 맡았다.


”케흑...이 먹어서는 안 될 것 같은 매콤한 향과 색. 분명해요.“


그 말에 독약이나 괴물을 퇴치하는 약인 줄 알았는데.


”근력을 영구히 강화해 주는 포션이에요.“


힘은 곧 생존으로 직결된다.


저 포션의 가치가 상상 이상이라는 건 단박에 깨달았다.


”얼마나 강해집니까.“


”이걸 마신 어린아이가 성인 각성자를 이겼다는 소문도 있어요.“


뜬소문이라고 해도 확실히 강해지는 약은 맞는 것 같았다.


하예림은 신기하다는 듯 계속 약병을 돌려봤다.


”재료가 워낙 비싸서 몇 개 없는 걸로 아는데.“


긴장하고 있던 손수윤의 눈도 어느새 초롱초롱해졌다.


”가격은 얼마 정도 될 것 같아요?“


”마음 같아선 등쳐먹고 싶지만, 솔직히 말할게요.“


하예림이 두 개의 손가락을 펼쳤다.


”20개?“


”대략 철근 200개 정도.“


그 수에 손수윤의 입이 떡 벌어졌다.


”서초가 망하지만 않았어도 집 한 채는 사고도 남을 가격이겠네.“


하예림이 약병을 테이블에 탁 소리가 나게 내려놨다.


”이거, 저한테 팔아요.“


철근 200개의 값어치면 살 사람도 생각해야 한다.


게다가 암시장에는 일합회도 있어서 만약에 못 팔고 나갈 경우에는 뺏길 위험도 있다.


차라리 하예림한테 파는 게 편하긴 하지만.


”거절하겠습니다.“


”...윤호씨 꽤 똑똑한 사람으로 봤는데요.“


”지금은 감정이 좀 더 앞서 있어서요.“


일합회와 나를 차별하는 사람에게 별로 팔고 싶진 않았다.


“저도 사정이란 게 있다 보니 어쩔 수 없답니다. 그 대신 철근 230개로 쳐 드릴게요.”


“20개 더 채워서 250개.”


“애초에 200개가 최대 가격이에요.”


“250.”


괘씸해서라도 이 이상 깎을 생각이 없었다.


“하아...알겠어요. 제 잘못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양해는 해 주셔야 해요.”


철근 50개면 목 한 번 정도는 떨어져도 괜찮은 가치였다.


“좋은 거래군요.”


“좋은 거래인지는...모르겠네요.”


하예림이 손을 까딱였다.


“가져와요.”


경호원이 잠시 사라지더니 곧 검은빛이 나는 금속 동전이 쏟아져 나왔다.


“암시장에서는 철근 1개의 가치를 가진 재화예요.”


“암시장에서만 쓸모 있는 거면 크게 필요 없습니다만.”


”바깥에서도 쓸모 있는 금속일 거예요, 그거 이계의 금속이거든요.“


동전은 손가락 정도 되는 크기였지만, 이계의 금속이라면 철근과 가치가 비슷했다.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시간이 얼마 안 남아서요.”


“그리고 하나 더.”


하예림이 가려던 날 멈춰 세웠다.


“제안할 게 있는데.”


제안이라는 말이 불안하지만, 또 들어볼 수밖에 없었다.


“말씀해 보십쇼.”


“서초에 한 번만 갔다 와 줄래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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