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재건이 아니라 김주혁이라고. 못배운 새끼들아.
괴한의 갑작스러운 등장에 급히 멈춰선 험비.
놀란 마음에 다짜고짜 욕지거리를 했다.
" 야 이 시발아! 누가 무단횡단 하래!!!! 뒤지고 싶어서 환장했냐!!! "
마음 같아선 경적도 같이 울리고 싶었으나, 더이상 소란을 피워서는 안된다.
주변에 어떤 괴물들이 도사리고있을지 몰랐으니까.
딴지를 건 서우가 가장 먼저 자리를 박차고 나가 단검 두자루를 뽑아 들었다.
" 누구시죠? "
싸늘한 질문.
지금껏 보여왔던 아리따운 아가씨 같은 얼굴은 온데 간데 없고, 차디찬 여전사의 패기만이 담겨있다.
문어라기엔 조금 기괴한 생명체를 입에 달고있던 괴한이 양손을 들어 올렸다.
" 나는 싸울 생각이 없다. 싸울 수도 없고. "
괴한의 목소리와 함께 문어 대가리가 덜덜 떨어댄다.
한박자 늦게 차에서 내려 괴한을 바라봤다.
" 그 문어가 목소리를 전달해주는건가? "
" 눈치가 빠르군. "
" 그런 셈이지. "
" 너희는 어떻게 방독면 없이 숨을 쉬고 있지? "
괴한의 질문에 잠시 고민했다.
이걸 솔직하게 답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 능력이라고 해두지. "
딱히 둘러댈 말이 생각나지 않아 적당히 정보를 뿌렸다.
" 이번엔 내가 질문 할 차례군. 넌 누구지? "
" ....정복의 아이다. "
아이?
그 덩치로 아이요?
" 아이.... 라기엔 덩치가 성인인데? "
" 별자리에 속한 이들은 전부 아이로 불린다. "
" 아하. 그런거군. 정복의 별자리라.... 깃발 모양의 별자리를 말하는건가? "
" 정확하다. "
뒤늦게 시스템 메시지가 떠오른다.
▶ 정복의 아이와 조우했습니다.
▶ 시스템 규율에 따라 상호간에 적대적인 행동은 금지됩니다.
" 서우야. 무기는 넣자. 어차피 못쓸테니. "
" 알겠어요. "
단검을 집어 넣고 한발자국 물러선 서우.
나비는 차에서 자고있기 때문에 따로 부르지 않았다.
" 어차피 싸울 수도 없는데, 왜 찾아온거지? "
" 정복의 주인님은 재건의 주인이 어떤 자인지 궁금해 하신다. 둘중 누구지? "
가볍게 손을 들고 미소를 지었다.
" 나다. "
" 꽤나 여유롭군. 내가 두렵지 않나? "
" 어차피 공격도 못 할 텐데 무서울리가. 나름 믿는 구석도 있고. "
코목살이 있는 한 무서울게 없지.
내 기세에 놀란건지 놈이 중얼거린다.
" 그렇군. 싸움엔 자신있다는건가.... "
" 뭘 그렇게 중얼거리지? 더 궁금한게 있나? "
" 딱히 어떤 질문을 해야할지 생각은 안해봤다. "
" 이거 이거. 이대로 돌아가면 정복의 주인님인지 뭔지가 실망할텐데. "
" 흠.... 맞는 말이군. "
그순간.
난데 없이 피같은 코인이 빠르게 깍여 나가기 시작했다.
" 어어! 저금통 깨졌나?!!! "
계속해서 줄어드는 보유 코인.
이곳에 있는 그 누구도 코인을 소모 할 이유가 없다.
그 뜻은....
" 박정환인가. "
마음을 다잡고 생각을 했다.
' 이정도로 코인이 줄어드는거면 공격 받은게 분명해. '
문제는 현재 박정환이 있는 위치가 그레이브라는 점이다.
습격.
그것 말고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 젠장. 투자자들 유치한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
이래서야 신뢰를 쌓기는 커녕 불신만 커질게 분명했다.
일단 급한대로.
" 야! 문어! 빨리 타! "
나는 급히 운전석 문을 열었다.
멍청한 표정으로 서있던 정복의 아이.
" 안타?! 빨리 타! "
" 난.... 문어가 아닌.... 데.... "
" 거 뭐! 문어든 문어 새끼든 그게 중요한게 아니야! 너 나한테 묻고싶은거 있잖아! "
" 맞다. "
" 나도 마찬가지니까 빨리 타라고. 줘 터지기 싫으면. "
" 뭐? 줘 터.... "
아오 답답한 새끼.
녀석에게 성큼 성큼 걸어가 손목을 잡고 질질 끌었다.
" 말이 많아 새끼가. 과묵한 캐릭터 처럼 생긴 주제에. "
그렇게 재건과 정복의 동행이 시작됐다.
* * *
콰아아앙!
다시 한번 들려오는 커다란 폭음.
1 탐색 대원들과 박정환은 총기로 무장한 채 북쪽 출입구로 향했다.
" 대모든 대장이든 빨리 데려와! "
콰아아앙!
선명한 복근을 훤히 드러낸 스포츠 브라 차림의 여성.
반짝이는 금발 머리를 휘날리며 애꿎은 벽을 주먹으로 쾅 쾅 두드리고 있던 그녀는 지하도시 문스타의 수장.
이유림 이었다.
" 어허! 참! 이러시면 곤란합니다! 차분히 기다리세요! "
그녀의 패악질 앞에서도 한치의 물러섬 없이 날카로운 창을 들고있는 문지기.
30대 후반의 외모로 보이는 그는 세월 만큼이나 경험이 많았는지 멘탈이 튼튼했다.
" 아오! 확 다 부술 수도 없고! "
콰앙!
이번엔 깔끔한 발차기로 철창을 날려 버렸다.
귀 옆을 스쳐가는 철덩어리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던 문지기.
" 이미 다 부수고 있습니다만... "
" 두칠아! 무슨 일이야! "
박정환이 급히 달려오며 이름을 부르자 문지기는 절도 있는 자세로 정렬하며 고개를 숙였다.
" 아! 오셨습니까. 박대장님. "
가쁜 호흡을 하며 여성을 발견한 박정환.
그가 두칠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위로했다.
" 고생했다. 쉬고있어. "
" 감사합니다. "
처음부터 끝까지 무덤덤한 표정을 지으며 물러나는 곽두칠.
그는 어엿한 선임 문지기였다.
" 왜 또 난리입니까? 이유림씨. 전투 인원까지 끌고 오시고. "
" 아~ 얘네? "
이유림은 뒤쪽을 향해 손가락질 하며 입꼬리를 씩 올렸다.
" 너네도 알잖아? 쟤네는 공격 못한다는거. "
양 팔 대신 서늘한 칼날이 달려있는 사람이 다섯명.
재밌는건 사람의 머리통 대신 사마귀 형태를 한 로봇 대가리가 얹어져 있다는 것이다.
박정환은 그제서야 떠올렸다.
김주혁이 그레이브의 수장이 됨과 동시에 떠오른 월드 메시지를.
" 그렇군요. 그럼 이곳에 온 목적이 뭡니까? "
" 별건 아니고. 재건. 얼굴좀 보자. "
" 재건께서는 부재중이십니다. "
" 장난쳐? 그따위 거짓말이 통할거라 생각해? 잘 알아둬. 진화의 별자리 소속인 쟤네는 널 공격 못하지만, 난 아니라는걸. "
이유림이 주먹을 뿌득 쥐며 한걸음 앞으로 다가왔다.
박정환과 대원들은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총구를 들어 올렸다.
" 믿든 말든 자유입니다만, 이곳으로 들어올 수는 없습니다. "
" 하! 재밌네! 쏴보든가! 맞출 수 있다─ "
그녀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
순식간에 모습을 감춘 이유림.
그와 동시에 탐색 대원 한명이 풀썩 쓰러졌다.
" ─면? "
쓰러진 대원 옆에서 다시 모습을 드러낸 이유림.
그녀의 능력을 잘 알고있던 박정환은 총구를 내리고 단검을 꺼내 들었다.
" 죽이진 않았군요. "
" 당연하지. 난 싸우러 온게 아니니까. 다시 말하지만 재건 녀석을 만나게 해줘. 그러면 곱게 돌아가도록 하지. "
" 부재중이시라고 했습니다만. "
" 또 거짓말!!!! "
이유림은 입이 찢어져라 미소를 지으며 박정환을 향해 쇄도했다.
어쩌면 이유림은 이 상황이 퍽 달가운걸지도 모른다.
그녀는 두말 할 것도 없는 전투광.
싸움에 미쳐있는 여자였으니까.
콰아아앙!!!
* * *
쿠웅!
온간 잔해들을 부수며 거침없이 돌진하는 험비.
그 안에서 절규가 빠져 나왔다.
" 아아아!!!! 돈샌다 시발!!!! "
운전하랴 줄어가는 코인 보랴 정신 없이 고개를 흔드는 내 모습을 누군가 본다면 미친놈으로 착각 할게 분명하다.
" 재건은 미친놈이군. "
저봐 오늘 처음 본 사람도 저렇게 말하잖아.
" 아저씨가 가끔 이상하긴 해도 나쁜 사람은 아니에요. "
" 재건은 미쳤지만 나쁜놈은 아니다. 알겠다. 그리 전하도록 하지. "
어느새 서우는 저 문어 녀석하고 친해진 모양이다.
합세해서 날 돌려까는걸 보니.
이래서 딸과의 어릴적 추억이 중요한거다.
중요한건 그게 아니고.
" 한서우! 지하도시에 습격을 해올만한 존재가 따로 있어?! 사람이든! 괴물이든! "
덜컹. 덜컹.
디스코 팡팡 처럼 날뛰는 험비.
" 어어어.... 아마 있을걸요? 미친년? "
" 뭐? 미친년? "
" 아! 아저씨는 모르시겠구나. 그레이브 말고도 지하도시가 하나 더 있어요. 문스타 라고. "
서우의 말에 문어가 살을 붙였다.
" 문스타? 네스트 놈들 뒤나 빨아주는 그 천박한 것들 말인가? "
" 뭘 빨아주는진 모르겠지만.... 네스트쪽 놈들이랑 엮여있긴 하죠? 진화의 별자리가 네스트에 있으니까. "
끼이이이이익!!!!
별안간 험비가 급브레크를 하며 정차했다.
살짝 떠오른 차체 뒷편이 가벼운 충격과 함께 다시 내려 앉았다.
쿵!
그제서야 나비가 눈을 비비며 일어나고.
" 오빠... 무슨 일이야? "
" 아.... 저씨! 운전 왜 이렇게 못해요! "
서우가 화를 낸다.
" 재건은 운전을 못한다... 면허가 있는지 의심. "
문어는 여전히 헛소리만 해대고.
열받는 포인트가 한두가지가 아니지만 지금은 그보다 급한게 있다.
" 한서우. 지금 네스트라고 했냐? "
" 어.... 그랬죠? "
찾았다.
붉은 머리 여자의 실마리.
그렇게 폐허를 쭉 달리던 험비는 지하 터널 입구 앞에서 멈춰 섰다.
" 야, 문어. 넌 잠깐 여기에서 기다려. "
" 난 문어가 아니다. 한이다. 장 한. "
" 그래. 장한. 여기서 기다려. 집안 문제좀 해결하고 올테니까. "
" 그러도록 하지. "
장한이라는 사내를 험비에 남겨두고 빠르게 터널을 주파했다.
우리가 들어온 출입구는 북쪽.
가장 가까운 출입구로 들어온 것인데, 아무래도 정답이었나 보다.
벌써부터 크고 작은 폭음이 들려오는 걸 보면.
쉼없이 달리며 간략한 정보를 물었다.
" 그러니까! 문스타의 수장 이유림이라는 여자가 쳐들어 왔을 가능성이 높다라는 말이지?! "
" 네! 맞아요! 최근엔 잠잠했는데! 또 지랄병이 도졌나 보네요! "
" 각성자야?!! "
" 네! 각성자에요! "
" 능력이 뭔데! "
" 정확힌 모르지만 이상한 무술을 써요! 동작도 엄청 빠르고! "
" 오케이! 야! 나비! 총 꺼내! "
" 아이씨! 왜 나한테 이런 무거운걸 맡긴거야! "
뒤에서 열심히 달리고있던 나비.
그녀에겐 내가 애용하는 소총 한자루와 반자동 샷건을 맡겨놨다.
" 너가 힘이 제일 쌔니까 그러지! "
나비의 스탯중에서 가장 높은 것이 근력.
그 다음으로 높은게 민첩이었다.
가히 대한민국 호랑이 다운 자랑스러운 능력치.
이유림이라는 여자가 그렇게 빠르다면 소총으론 어림 없다.
이럴땐.
" 샷건! 샷건으로 던져! "
" 알겠어! 받아!!! "
뒤에서 날아오는 샷건을 정확히 받아내며 망설임 없이 코너를 돌았다.
코너를 돌면 곧바로 검문소가 나왔으니까.
냅다 고함을 지르며 천장을 향해 탄환을 쐈다.
" 어떤 새끼야! 내 저금통에 빵꾸 낸 녀석이! "
타앙!
터널 안으로 울리는 커다란 충격음과 함께 따가운 시선들이 느껴진다.
" 주혁씨! "
" 뭐야! 누구야! "
목소리를 따라 눈알을 굴려보니....
그곳엔 금발 머리 여자에게 멱살이 잡힌 박정환이 있었다.
" 동작 그만. 미친년은 주먹을 내립니다. 실시. "
당장이라도 박정환의 면상을 후려칠 것 처럼 주먹을 들고있던 여자.
당연히 반항 할거라는 생각에 방아쇠 위로 손가락을 걸었건만.
예상과 달리 금발 머리 여자는 순순히 박정환을 풀어줬다.
덤으로 양손 까지 들어 올리며.
이유림은 음흉한 미소를 지은채 나를 바라봤다.
" 너구나? 재건이. "
" 제 이름은 재건이가 아니라 김주혁입니다만. "
* * *
여기에 온 목적은 단 하나.
이유림은 대화를 원했다.
진화의 별자리.
그러니까 네스트에서 재건의 별자리가 어떤 자인지 알아오라고 명령을 내린 것.
박정환에게 이유림의 안내를 맡기고 나는 다시 험비 쪽으로 돌아갔다.
거기에 홀로 남겨져있는 장한이 외로울까 싶어서.
" 기왕 이렇게 된거 삼자대면 하고 후딱 끝내자고. "
어두운 터널을 지나 밖으로 나오니....
장한의 뒷모습이 보인다.
초록빛 월광 아래에 우두커니 서있는 장한.
놈이 고개를 살짝 돌려 이쪽을 곁눈질 했다.
" 왔나. "
" 시발.... 이게 뭐야? "
장한의 주변으로 수북하게 쌓여있는 괴물들의 시체.
놈의 손에 들려있는 서늘한 환도에서 진득한 핏국물이 뚝뚝 떨어진다.
휘리릭.
검을 한바퀴 돌려 핏물을 털어낸 장한은 등에 맨 칼집에 그것을 천천히 수납했다.
찰─칵.
" 심심해서 몸좀 풀고 있었지. "
씨익.
' 저새끼.... 지금 웃었지? '
마치 100점 맞은 시험지를 쑥쓰럽게 전달하는 아들내미 마냥 음침하게 웃음기를 머금은 장한.
이걸로 깨달았다.
' 아, 저새끼 중이병이네. '
장한은 중증 환자라는 사실을.
최대한 티나지 않게 표정 관리를 하며 덤덤하게 물었다.
" 험비 소리를 듣고 몰려온건가? "
" 대부분이 좀비인걸 보면 그게 맞겠군. "
낮은 언덕 처럼 쌓여있는 괴물들의 사체를 뒤적거려 봤다.
' 하.... 아까워. '
아까워.
조오오온나 아까워!
스토커에 좀비에 데드 하운드까지.
이게 다 얼마야 시발.
괴물 놈들 수야 꽤 많았지만 그렇다고 나 혼자서 다 못죽일 이유도 없다.
진흙탕 싸움좀 했겠지만.
내 눈엔 이 사체들이 그저 괴물이 아닌 전부 돈으로 보인다.
한마디로 내 눈앞에 쌓인 이 낮은 언덕은 황금으로 만들어진 에덴 동산이라는 뜻이다.
' 하... 그냥 박정환씨 더 맞고있게 놔둘걸 그랬나. '
후.
아깝지만 별 수 있나.
이미 벌어진 일.
다음을 노리면 된다.
사체를 뒤적거리던 손을 툴툴 털고 장한에게 다가갔다.
희미하게 들려오는 음흉한 웃음 소리.
" 후후. "
뭐야 저 웃음은.
이새끼 손가락으로 코쓱까지 하고있네.
" 예. 대단하십니다. 대단한거 확인 했으니 좀 갑시다. 폼 그만 잡고. 예? "
" 난 폼 잡은적 없다 재건. 이런건 내 일상과 다를바가 없으ㄴ─ "
주절대는 녀석의 등을 밀어 터널 안으로 들어갔다.
이놈이고 저놈이고 자꾸 재건이래.
난 김주혁이란 말이다 이 못배운 새끼들아.
그렇게 재건과 진화 그리고 정복의 삼자대면이 시작됐다.
인류의 미래를 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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