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공룡이 탑 등반을 너무 잘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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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조리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4.08.30 1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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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8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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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4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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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

DUMMY

대장간을 나오자 불그스름한 하늘이 보였다.


저 멀리 보이는 마을 입구너머로는 적갈색의 대지가 보였고, 대지와 하늘이 만나는 지평선에는 태양이 걸쳐있었다.


휘이잉-


바람소리만이 들려오는 조용한 거점마을.


몸이 무겁게 느껴지는 것은 허리에 맨 채찍때문일까.


아니면 이제 해야할 일 때문일까.


나는 썰렁한 거리를 걸어 입구로 향했다.


마을의 입구를 지나쳐 걷던 나는 천천히 걸음을 멈추었다.


이곳은 고블린이 서식하는 사냥터와 거점인 마을의 중간지점이자 내가 처음 공룡을 소환했던 자리, 즉 티라노를 뽑았던 명당이었다.


‘믿습니다. 성좌님.’


이곳까지 오며 성좌님을 불러보았지만 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성좌님을 욕하지 않았다.


어찌 그런 불경한 짓을 한단 말인가.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을 다 한 후 하늘에 결과를 맡기고 기다린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전부 했으니 이제 성좌님의 뜻을 기다리면 되었다.


그리고 순수한 우리 성좌님이라면 반드시 응답해줄 터였다.


많은 것을 바라는 것도 아니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티라노 한 마리만 주십시요...’


3번의 뽑기 중 한 번 정도는 티라노를 줄 만 하지 않은가.


굳은 믿음 아래, 나는 ‘랜덤 공룡 소환’을 1회 사용했다.


우웅-


어제와 마찬가지로 일대의 공기가 진동하며 푸른 빛무리가 나타났다.


해질녁에 피어난 푸른 빛무리는 하나로 뭉치며 크기를 키워가기 시작했다.


‘주먹만한 크기...’


아직은 미약했다.


하지만 그 끝은 ‘티라노’만큼 창대할 터.


나는 기대감을 잔뜩 품은 채 크기를 키워하는 빛무리를 응시했고, 빛무리는 쑥쑥 커져갔다.


어느덧 빛무리는 대형견의 크기에 이르렀다.


순조롭다, 그리 생각하던 순간.


“어?”


빛무리가 조형되기 시작했다.


빛은 순식간에 한 공룡의 형상을 이뤘고 이내 생명체로 현현하여 눈꺼풀을 들어올렸다.


파충류 특유의 세로로 쭉 찢어진 동공.


“······.”


멍하니 눈동자를 마주치고 있자니 놈이 입을 쩍 벌렸다.


끼에에엑-!!


탄생을 알리듯 시원하게 울어재낀 놈은 나에게 다가와 머리를 비벼댔다.


허벅지에서 온기가 느껴졌다.


겨우 내 허리에 닿을만큼 크기가 작으며 뒷발에 난 낫 모양의 큰 갈고리 발톱이 특징인 익숙하면서도 날렵한 인상의 공룡.


[“재빠른 약탈자” - 밸로시랩터(Velociraptor)]

등급: F

레벨: 15

특성: <D-가속> <D-무리사냥(비활성화)>


“···랩터.”


한 공룡 영화에서 봤었던 랩터였다.


“앞으로 잘부탁한다.”


나는 내 허벅지를 비비고 있는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쉽긴 했다.


일단 티라노가 아니었고, F급인데다가 특성도 두 가지 뿐인데다 하나는 잠겨있는 상태였다.


심지어 생김새는 공룡영화에 나왔던 것과 비슷하나 크기는 훨씬 작았다.


아쉬운 결과였으나 딱 아쉬운 정도였다.


‘첫 술에 배부를 순 없지.’


아직 두 번의 기회가 남았다.


F급으로 액땜을 했으니 다음 뽑기에는 분명 티라노가 나올 터였다.


나는 랩터의 매끈한 피부를 느끼며 2번째 뽑기를 감행했다.


우웅-


진동이 울린 후 푸른 빛무리가 떠올랐다.


빛무리는 주먹크기에서 축구공 크기로, 축구공 크기에서 소형견의 크기로 커져갔다.


그리고.


대형견의 크기에서 성장을 멈추고 형태를 이뤘다.


끼에에엑-!!


[“재빠른 약탈자” - 밸로시랩터(Velociraptor)]

등급: F

레벨: 15

특성: <D-가속> <D-무리사냥>


...또 랩터였다.


<D-무리사냥> 특성이 활성화되긴 했지만 기쁘지 않았다.


랩터에 이은 랩터.


무언가 잘못된 것이 틀림없었다.


눈에 힘을 준 나는 하늘을 노려보며 소리쳤다.


“성좌님! 흉포한 고대의 포효님!!”


반복해서 몇 번을 불렀음에도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불안감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아닐거야.’


자꾸만 말도 안되는 예상이 떠올랐다.


그 예상은 있을 수도, 있어서도 안되는 일이었다.


나는 기우이길 간절히 바라며 속으로 티라노라는 세글자를 되뇌었다.


‘티라노가 아니라도 좋습니다. 제발 B급이라도!’


마지막 도전!


우웅-


진동이 울렸다.


꿀꺽-


고인 침이 넘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빛무리가 모이고, 성장하며, 형상을 이뤘다.


그리고.


예상은 현실이 되었다.


[“재빠른 약탈자” - 밸로시랩터(Velociraptor)]

등급: F

레벨: 15

특성: <D-가속> <D-무리사냥>


3연랩.


“······.”


의도적으로 떠올리지 않으려 했지만 이런 경우의 수도 생각하긴 했었다.


솔직히 첫 뽑기에서 S급을 뽑은 것 자체가 행운이었다.


소위 ‘초심자의 행운’이라 부르는 것이었고, 그런 초심자의 행운 이후에는 항상 ‘평균회귀’가 따랐다.


그러니 S급인 ‘티라노사우루스’가 나오고 3연속 F급 랩터가 나오는 것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래.


이해는 했다.


허나 이해와 감정이 항상 일치하진 않았다.


몸이 잘게 떨리는 것이 느껴졌고, 머리에 피가 쏠리는 것이 느껴졌다.


심장은 화를 내듯 용두질을 쳤다.


‘이렇게 나온다 이거지?’


씨익-


한 쪽 입꼬리가 말려올라갔다.


나는 남은 원초력을 모두 털어 티라노를 소환했다.


크와아아아아아-!!


내 기분을 느낀 듯 티라노가 그 어떤 때보다 크게 포효를 내뱉었다.


나는 그런 티라노의 발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괜찮아. 아직 실패한 게 아니니까.”


티라노를 뽑고자 했으나 3연속 랩터가 나왔다.


여기서 단념하면 실패겠으나, 계속 도전하면 성공하는 과정일 뿐이었다.


3번으로 안된다면 6번 더 뽑는다.


6번으로 안된다면 12번 더 뽑는다.


12번으로도 안된다면 24번 더 뽑는다.


끝없이 도전하다보면 언젠가 나올 터였다.


다행히도 뽑기를 할 기회는 많았다.


저 멀리 불그스름한 지평선 아래로 보이는 무수한 녹빛의 물결.


티라노의 포효를 들었는지 수많은 코인들이 나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으니까.


꽈악-


나는 각오를 다지며 주먹을 꽉 쥐었다.


3연속 랩터가 떴으나, 겁이 나진 않았다.


애초에 티라노만해도 절반의 승률을 점쳤지 않은가.


거기다 F급이라고는 하나 세 마리의 랩터가 더해졌다.


충분히 할 만했고, 또 해야 했다.


두 번째 티라노를 위하여.


“가자!”


크와아아아아아-!!

키에에에엑-!

키에에에엑-!

키에에에엑-!


나와 네 마리의 공룡은 고블린의 파도를 향해 질주하기 시작했다.



*


평야를 달리기 시작한지 1분쯤 지났을까.


자연스럽게 포메이션이 갖춰졌다.


1-3-1 포메이션.


티라노가 최선두였고 그 뒤를 랩터 삼각편대가 따랐으며, 내가 최후방이었다.


의도한 바가 아닌 속도에 의해 자연스럽게 이뤄진 것이었지만 굳이 수정하지 않았다.


‘이게 이상적이다.’


압도적인 강함을 지닌 티라노가 적진을 휩쓸고, 랩터 삼각편대가 보조한다.


전투에 익숙하지 않은 나는 걸러지고 걸러진 극소수의 고블린을 처리.


머릿속으로 그림을 그려보고 있자니 전방에서 접근하고 있는 한 무리의 고블린들이 보였다.


‘홉 고블린 셋, 궁수 고블린 여섯, 일반 고블린 다수.’


전체에 비한다면 한줌에 불과한 숫자로 보아 정찰대인 듯 했다.


“키륵! 키르륵!”


한 홉고블린의 외침이 들려온 직후 궁수 고블린들이 활시위를 당기는 것이 보였다.


그들이 겨냥한 것은 선두에 선 티라노.


궁수 고블린들의 사격실력은 좋은 편이 아니었으나, 워낙 과녁이 컸기에 적중할 터였다.


‘해보던가.’


속도를 줄이지도, 달리는 방향을 바꾸지도, 포메이션을 변경하지도 않았다.


그 어떤 명령도 내릴 필요가 없었다.


휘익-!


쏘아진 화살은 티라노의 몸에 적중했으나,


퉁.

퉁.

퉁.


모조리 튕겨나갔다.


‘이거지.’


예상대로의 결과에 미소가 지어졌다.


티라노는 피지컬적으로도 압도적이었지만 레벨이 100이었다.


레벨이 높다는 것은 곧 신체능력이 그만큼 뛰어나다는 것.


그 신체능력에는 방어력도 포함되어 있었으니 고블린의 화살 따위가 통할 리가 없었다.


키륵-!

키르륵!


당황한 홉고블린들이 분주히 무어라 소리치는 듯 했으나 이미 늦은 후였다.


이제 곧 그들의 머리 위로 거대한 발이 떨어질 터.


콰직! 콰직! 콰지직-!


[원초력 1을 획득하셨습니다.]

[원초력 1을 획득하셨습니다.]

[원초력 1을 획득하셨습니다.]

[레벨업!]

[원초력 1을 획득하셨습니다.]

[원초력 1을 획득하셨습니다.]

[원초력 1을 획득하셨습니다.]

.

.

.

.


나는 떠오른 알림창을 모조리 지웠다.


티라노는 거대한 발로 뭉쳐있던 고블린을 짓밟으며 나아갔다.


신경 써서 죽인 것이 아니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아이가 무심코 개미를 밟고 달려가듯 속도를 줄이지 않고 그저 나아갔을 뿐.


그것만으로도 뭉쳐있던 대부분의 고블린을 처리했으나, 아직 몸을 던져 살아남은 홉 고블린 셋이 남아있었다.


키르르륵-!

키륵키륵!


분노에 찬 울음을 내뱉는 홉고블린 셋.


티라노에게 명령해 처리할 수도 있었으나, 나는 앞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티라노를 멈춰 세우지 않았다.


대신 랩터들에게 명령했다.


‘처리해.’


본격적인 전투를 눈앞에 둔 지금, 랩터 삼형제의 전투력을 알아볼 요량이었다.


키에에엑-!


랩터들이 거칠게 소리쳤다.


그 포효에선 그들의 넘치는 자신감이 느껴졌으나 나는 마음 한구석에 존재하는 작은 불안감을 지울 수 없었다.


서로를 향해 마주 달리는 홉고블린들과 랩터 삼형제.


홉고블린은 나와 비슷한 크기였고, 랩터는 내 허리까지 밖에 오지 않았다.


또 홉고블린은 무기를 든 반면 랩터가 믿을 건 육신 밖에 없었다.


거듭 생각해봐도 불안감이 커질 뿐이었으나 랩터의 돌진을 멈출 순 없었다.


홉고블린따위에게 앞으로 펼쳐질 전투에서 도움이 되지 않을 터였다.


한 번은 필요한 증명의 시간.


‘힘내라.’


나는 적과 빠르게 가까워지는 랩터를 보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키에에엑-!


서로를 향해 달린만큼 두 개체들의 거리는 빠르게 줄어들었다.


남은 거리는 불과 10m안팎.


격돌의 순간이 머지 않았다고 생각한 순간 랩터들이 하늘을 향해 뛰어올랐다.


타앗-!


흙을 한움쿰 밀어내며 뛰어오른 랩터들은 엄청난 점프력을 보이며 공중으로 떠올랐다.


자신의 키에 족히 3배는 될 법한 높이까지 떠오른 랩터들.


그들이 그리는 포물선의 끝에는 각각 녹슨 검을 들고 선 홉 고블린이 있었다.


‘안돼!’


랩터들이 단 칼에 썰리는 장면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랩터의 점프력은 뛰어났고, 속도도 빨랐다.


허나 거리가 멀었기에 홉 고블린이 대처할 시간은 충분했다.


단 몇 초에 불과하나 타이밍에 맞춰 검을 휘두르기 충분한 시간이었다.


그렇게 홉 고블린들이 검을 치켜드는 가운데.


쉬익-!


랩터들의 속도가 급격히 빨라졌다.


콰직!

콰직!

콰직!


벼락같이 쇄도하여 홉 고블린들은 머리에 발톱을 박아넣은 랩터들.


나는 눈을 부릅 뜬 채 홉 고블린의 심장부를 물어뜯는 랩터들을 바라보았다.


‘<가속>!’


신체의 속도를 한순간 상승시키는 특성 <가속>이 발현된 듯했다.


키에에에엑-!

쩌업.쩌업.쩌업.


포효하며 우악스럽게 홉고블린의 고기를 뜯는 랩터들.


그 모습을 보아하니 나만 잘하면 될 듯 했다.


“가자!”


나는 내 입가에 만연한 미소를 느끼며 외쳤다.


앞서나가고 있는 티라노와 그 너머에 위치한 고블린의 군세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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