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부 대공가의 괴팍한 검술 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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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밝은
작품등록일 :
2024.09.02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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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8 2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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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5 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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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3. 알케스 마르 뭐시기 (1)

DUMMY

소싯적에 만난 나의 스승은 존경할 만한 인물이었다.



스승께서는 검술뿐만이 아니라 삶의 태도 역시 본받아 마땅했다.


맹세컨대 나는 당신 이상으로 능구렁이 같은 이를 본 적이 없었다.



한 번은 스승께서 수련을 끝마친 나를 술집으로 데려갔다.


집에서 마시면 사모님이 핀잔을 준다며 인생 경험을 핑계로 나를 끌고 간 것이다.


그때의 나는 아직 미성년자였다.



스승께서 예상치 못 한 것은 사모님의 비범함이었다.


사모님은 어떻게 알았는지 쓰레빠를 질질 끌고 술집에 들이닥쳤다.



일촉즉발의 순간이었다.


검술로 단련된 스승이었지만 사모님의 등살만은 당할 재간이 없었다.


당신께서도 그것을 잘 알고 있었는지 나의 얼굴을 흘긋하고는 뱀처럼 히죽였다.



"나는 그저, 나의 제자가 이곳에서 일한다기에 보러 온 것이요."



그 뻔뻔함이란!



졸지에 그 술집의 종업원이 된 나는 사모님을 속이고자 대걸레질을 해야 했다.


바닥을 전부 깨끗이 닦고 환풍기 청소를 시작하고서야 사모님은 스승의 말을 확신하는 눈치였다.


환풍기의 먼지 탓에 피부 곳곳 검댕이 묻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그때의 황당한 감정을 잊을 수 없지만 떠올려보면 입꼬리가 올라가는 그런 기억이었다.


정신 나간 악우와 벌인 정신 나간 장난질···.


스승과 내가 쌓았던 것은 그런 종류의 추억들이다.



세상은 의외로 악우와의 교류로부터 배울 것이 많은 법이다.


나는 당시 스승으로부터 뻔뻔함의 새 경지를 배웠다.


이전까지는 마구잡이로 뻔뻔함을 휘두르던 나였지만 스승을 만나고서는 능구렁이 같은 뻔뻔함을 얻었다.



검술?


아, 그래. 그런 것도 배웠지.



어쨌거나 이번에도 비슷한 경험을 할 거라 기대하며 나는 집사 놈과 험난한 여정을 헤쳐 나갔다.


아침으로 재등장한 곰고기 스튜를 꾸역꾸역 삼키고,


삐걱거리는 마차의 소음을 귀를 막아 버텨내고,


태양이 지자 강해진 추위를 간신히 견뎌내고 도착한 성에서,


스승이 되기로 한 알케스라는 노인은 우리에게 단호히 축객령을 내렸다.



"돌아가거라, 다 돌아가!"


"뭐요?"


"검술은 이제 안 가르친다! 검은 이제 쳐다보기도 싫어! 전부 돌아가!"



이번 스승과의 첫 만남은 고민할 것도 없이 최악이었다.



* * *



아드레이는 식사도 못다 하고 다시 한 번 알케스를 찾아갔다.


식사 도중인 알케스는 묵묵히 고기를 뜯고 있었다.


식탁 앞까지 걸어가도 본 체조차 안 했지만 기분만은 나빴는지 입이 댓 발 튀어나왔다.



'꼭 삐졌을 때의 마르텔 도련님 같군.'



마르텔···.


그것도 10세 이전의 마르텔이나 그런 태도를 보였다.


소문은 익히 들어 알고는 있었지만 설마하니 이 정도일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알케스 님, 그러지 마시고 다시 한 번 고려해 주십시오."


"돌아가게."


"하다 못 해 한 번, 딱 한 번만이라도 도련님의 검술을 봐주십시오."



한 번.


단언컨대 그 한 번이면 알케스의 마음을 돌릴 수 있으리라 자신했다.


북부마저 마법을 받아들이는 시대에도 끈덕지게 검술을 고집하던 이였다.


카르셀의 유려한 검술을 보게 되면 고집불통 알케스라도 딴 마움을 품을 것이다.



"호오, 자네가 그렇게까지 말하는 걸 보니, 대공자가 생각 외로 괜찮은 검술을 지녔나 보군."


"네, 맞습니다. 그러니까 딱 한 번만―!"


"그렇다면 더더욱 볼 생각 없네. 나는 세상에서 내 의견 굽히기를 제일 싫어하거든."


"아, 알케스 님···."



알케스 마르비다르···.


예상 이상으로 까다롭다.



북부인들은 모두 아르프레이아를 존중하지만 모두가 충성을 받치는 것은 아니었다.


더군다나 마르비다르는 위치만큼이나 동부와 가깝게 지낸다.


아르프레이아라는 이름만으로는 제 뜻을 굽히지 않을 거라는 의미였다.



"하지만 알케스 님. 카르셀 도련님에게는―"


"그만! 그게 무엇이든, 들을 생각 없네. 거기에 자네는 내가 식사 중인 것도 안 보이나?"


"식사 중이 아니시면 상대조차 안 해주실 테니까요."


"단단히 착각했구만. 식사 중에도 상대해 줄 생각 없네."



말을 마친 알케스는 벌컥벌컥 포도주를 들이켰다.


희멀건 턱수염을 타고 넘쳐흐른 포도주가 뚝뚝 떨어졌다.


슬슬 화가 나는 모양이다.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적어도, 이유만큼은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검술이고 뭐고 다 질렸네. 그뿐일세. 무언가 거창한 이유를 기대했다면 실망이었겠군."


"아니, 아닙니다. 알케스 님이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요."



아드레이는 허겁지겁 고개를 저었다.


일단은 머무는 동안 자극하지 않는 것이 최선이다.



물론,


순순히 돌아갈 아드레이가 아니었다.



"그렇다면 저희는 당분간 이곳에 머무르도록 하겠습니다."


"뭐? 아니, 그냥 돌아가라니까?"


"길었던 여행으로 쌓인 피로가 아직 풀리지 않았습니다. 카르셀 아르프레이아님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아르프레이아.


아드레이는 의도적으로 그 말에 강세를 주었다.



설령 동부와 가깝게 지낸대도 마르비다르는 엄연히 북부의 일원이다.


북부인이 손님을 내치는 것은 커다란 불명예였다.


그 손님이 북부의 수호자, 아르프레이아의 자제라면 더더욱 말이다.



"···간악한 놈. 알겠네. 피로를 풀 때까지는 이곳에 머무르게, 단!"


알케스는 손가락을 모두 펴 보였다.


"머무를 수 있는 건 5일만일세. 그 정도라면 피로를 푸는 기간으로 충분하지 않겠는가?"


"물론입니다, 알케스 님. 보여주신 자비에 감사할 따름입니다."



5일···.


고작 그 기간만으로 알케스의 고집을 꺾어야 한다.


생각보다는 어려운 도전이 될 듯했다.



* * *



오늘에서야 나는 진실을 깨달았다.


끔찍했던 음식은 모두 북부식이었다는 것이다.



알케스라는 양반을 만나고 도달한 식탁에는 상상만 했던 귀족들의 만찬이 펼쳐져 있었다.


곰고기 스튜도 염치는 있었는지 그 자리에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첫날에 맛보았던 정체 모를 화로 구이는 있었지만 속까지 푹 익힌지라 나쁘지 않은 맛이었다.



아, 야채 수프!


물론 그것에 대한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었다.


첫날에 먹었던 밍밍한 것과 달리 이곳의 야채 수프는 훌륭한 맛이었다.



동부식.


가주 양반은 그 음식들이 동부식으로 만들어진 것이라 말했다.


같은 음식을 동부식으로 조리한 것만으로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가 나는 것이다.



이쯤 되니 북부인들의 정신 머리가 진심으로 의심스러웠다.


장담컨대 북부인들의 입맛은 신에게 저주 받은 것이 틀림 없었다.



"후···."



목구멍이 찰 때까지 음식을 들이붓고서야 나는 식기를 식탁에 내려두었다.


오랜만에 느끼는 만복감에 콧노래까지 흘러나왔다.



기분 좋은 발걸음으로 도착한 방안에는 먼저 나간 집사 놈이 침울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말하지 않아도 무슨 일인지는 알 거 같았다.



"잘 안 됐나보구만?"



알케스 마르 뭐시기.


첫인상을 보자마자 딱 느꼈다.


그 노인네는 내 과였다.


쉽사리 고집을 굽힐 양반이 아니라는 뜻이었다.



집사 놈은 고개를 끄덕였다.


"5일 간 이곳에 머무를 것을 허락 받았습니다. 저희는 그 5일 안에 알케스 님의 고집을 꺾어야 하고요."


"하, 5일이라. 그 노인네한테 얻어낸 것치고는 제법 많구만."



주름살 곳곳에 심술이 들어찬 노인네다.


5일이나 얻어낸 것은 나쁘지 않은 성과였다.



"그래도 이곳에 5일만 머무를 수는 없지. 어떻게든 그 인간 마음을 돌릴 방법을 찾아야겠네."



기껏 찾아낸 북부식의 피난처였다.


노인네의 성질 머리 탓에 잃을 수는 없는 법이었다.



"속 깊은 생각이십니다. 5일만에 돌아가시면 가주님께서도 걱정하실 테니까요."


"응? 아아, 응."



제멋대로인 착각이지만 정정하지 않았다.


긍정적인 방향으로 생각해 준다는데 구태여 마다할 내가 아니었다.



"어쨌거나, 잘 알겠네."


"어디 나가실 생각입니까?"



한구석에 놓아둔 검을 집어 들자 집사 놈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말대로 잠시 나갔다 올 생각이다.



"좀이 쑤셔서 도저히 견딜 수가 없거든. 보아하니 뒤뜰에 괜찮은 놈들이 있던데, 조금 보고 오겠네."


"예, 도련님. 부디 몸 상하지 않도록 주의해 주십시오."


"오냐."



손을 흔들어 걱정을 물리고는 건들건들 뒤뜰로 걸어갔다.


도착한 뒤뜰에는 나무로 만든 인형들이 줄지어 늘어선 채 눈을 맞고 있었다.


수련용 나무 인형.


검도를 배운 도장에서도 비슷한 것들을 본 적이 있다.



'응?'



독차지일 줄 알았더니 선객이 와 있었다.


몸뚱아리의 주인과 비슷한 또래의 청년이었다.


고민이라도 있는 건지 눈을 맞고 서 있는 모습이다.


가까이 다가가 보았다.



"누구야?"


뒤돌아 본 청년은 몸뚱아리와 면식이 있었던 듯했다.


"···하, 카르셀이구만."



청년의 입꼬리가 대번에 비틀렸다.


독심술은 못 한다 생각했는데 표정을 보니 읽을 수 있을 거 같았다.


너 아주 잘 만났다는 얼굴이다.



"온다는 건 들어서 알았지만, 설마하니 검을 들고 왔을 줄이야. 마법을 못 하니 검사로 전향했나?"



마법, 또 그거로군.


비슷한 트집을 마르텔한테도 들었었다.


싸가지는 그 어린 놈과 비교하면 귀여운 수준이다.



"장담하건대 틀린 생각일 걸? 그놈의 구닥다리 검술로는 마법사들을 쫓아갈 수가 없거든."


"그놈?"


"우리 할배 말이야. 시대에 적응 못 하고 뒤처진, 그 괴짜 할배."



알케스 마르 뭐시기를 말하는 듯했다.


누구인가 했더니 그 노인네의 손자였던 것이다.


그러고 보면 얼굴도 제법 닮은 느낌이다.



"검술을 포기하겠다 하니 고래고래 소리를 치더라고. 그래서 어때, 네가 대신 검술을 배우겠다니 좋아하디?"


"검은 이제 질렸다더군."


그 말에 청년은 흠칫 몸을 떨었다.


"···흥, 그거 잘 됐네. 드디어 그 구닥다리도 정신을 차린 듯하니."



보기보다 거짓말을 못 하는 청년이었다.


심한 말을 뱉는 것치고는 표정이 전혀 모질지 못 했다.



"좋은 말로 할 때 너도 정신 차려. 검으로는 결국, 아무것도 못 하니까."


"아무것도 못 한다고?"


"그래, 아무것도···."


청년은 뜸 들이다 아랫입술을 꽉 물었다.


"일주일 전에 대학에서 퇴학 통보를 하더라고. 요컨대 나 같은 놈은 대학에 어울리지 않는다면서 말이야."



아하, 그래, 그런 거였군.


대강의 사정이 이해됐다.



난데없는 퇴학 통보에 좌절한 청년은 속에 끓는 무성한 분노를 검에 돌린 것이다.


불길은 결국 알케스에 번져 나의 수련까지 재로 만들었다.


참으로 민폐스러운 나비효과였다.



청년은 고개를 떨구었다.


"결국 검이란 그런 거지. 아무리 노력하고, 아무리 발악해도, 결국 주인을 배신할 뿐인 그런 놈."



검이 주인을 배신한다라···.


툭 던진 그 말이 나의 심경을 자극했다.



나에게 있어 검이란 오래된 벗이었다.


젊은 시절 한 몸처럼 달라붙어 지냈으며 울더라도 웃더라도 변치 않고 함께 했다.



그래, 검은 변함없는 존재였다.


변화했다 느껴진다면 스스로가 변한 것이지 검이 친구를 배반한 것은 결단코 아니었다.



검은 제 벗을 포기하지 않는다.


부상으로 좌절했던 나이 많은 친구조차 끝끝내 마음을 돌린 끈덕진 벗이었다.



그런 벗이 모욕 당하고 있었다.


사내로서 그런 치욕을 가만히 두고 볼 수는 없는 법이다.



스릉.



쥐고 있던 검을 빼 들고 청년을 바라봤다.


난데없는 발검에 청년은 당황한 표정이다.



"가, 갑자기 뭐야? 할배가 가르쳐 주지 않는다고 화풀이라도 할 셈이야?"


"설마, 그럴 리가. 나는 단지 벗을 대신하여 말해주려는 것뿐일세."



아무리 모욕당해도,


배신했다 곡해받아도,


검은 언제나 그 자리에서 기다린다.



그리고 때때로 자신의 벗이 늦는다면,


두들겨 패서라도 끌고 오는 것이 검이었다.



"한 수 가르쳐 주지. 덤벼보게."



나의 벗의 친구 놈을 두들겨 패줄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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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Episode 7. 황실 대학 (2) NEW 4시간 전 15 0 12쪽
18 Episode 7. 황실 대학 (1) 24.09.17 42 0 13쪽
17 Episode 6. 용살자의 유산 (完) 24.09.16 49 0 13쪽
16 Episode 6. 용살자의 유산 (2) 24.09.15 53 1 13쪽
15 Episode 6. 용살자의 유산 (1) 24.09.14 66 1 12쪽
14 Episode 5. 나보고 대학을 가라고? 24.09.13 68 2 13쪽
13 Episode 4. 승계전 (完) 24.09.12 71 2 13쪽
12 Episode 4. 승계전 (2) 24.09.11 75 2 13쪽
11 Episode 4. 승계전 (1) 24.09.10 91 5 12쪽
10 Episode 3. 알케스 마르 뭐시기 (完) 24.09.09 90 2 13쪽
9 Episode 3. 알케스 마르 뭐시기 (4) 24.09.08 91 2 12쪽
8 Episode 3. 알케스 마르 뭐시기 (3) 24.09.07 101 2 12쪽
7 Episode 3. 알케스 마르 뭐시기 (2) 24.09.06 100 3 12쪽
» Episode 3. 알케스 마르 뭐시기 (1) 24.09.05 113 3 12쪽
5 Episode 2. 북부는 최악이다. (完) 24.09.04 113 2 13쪽
4 Episode 2. 북부는 최악이다. (1) 24.09.03 124 2 15쪽
3 Episode 1. 나보고 입대를 하라고? (完) +1 24.09.02 145 3 12쪽
2 Episode 1. 나보고 입대를 하라고? (2) 24.09.02 155 3 13쪽
1 Episode 1. 나보고 입대를 하라고? (1) 24.09.02 196 4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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