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부 대공가의 괴팍한 검술 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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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밝은
작품등록일 :
2024.09.02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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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8 2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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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7 2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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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3. 알케스 마르 뭐시기 (3)

DUMMY

소싯적의 나는 몽상가였다.



매일 같이 검술을 배우면서도 나의 마음에는 답답함이 응어리졌다.


인간의 몸이 갑갑했다.



신체 구조의 한계로,


물리법칙의 한계로,


할 수 없는 것들이 너무나도 많았다.



가령 인간은 중간에 검을 멈출 수 없다.


알케스의 손주 놈을 까딱하면 죽일 뻔했던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하늘.


고백하건대 나는 언제나 하늘을 활보하고 싶었다.


푸른 하늘을 누비는 한 마리의 매처럼 자유롭게 공중을 선회하며 나의 검술을 펼치기 바랐다.



자유···.


그것이 내가 꿈꿔 왔던 궁극의 검술이다.



허황한 꿈이라며 마지못해 덮어둔 꿈들을 알케스의 기술이라면 실현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제자가 되겠느냐고? 암, 물론.


이 먼 곳까지 온 이유가 그것인데 거절할 이유는 하나도 없었다.



단지,


바라는 것이 하나 더 있을 뿐이다.



"···대신 한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조건?"



알케스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조건을 내걸 줄은 몰랐겠지.


다음으로 이어질 말도 예상하지는 못 했을 것이다.



"저기 저 청년 놈이, 나를 거의 죽일뻔했습니다."



나 역시도 죽일뻔했지만 그런 사실쯤이야 무시했다.


다른 잣대를 들이미는 것은 정치인이었던 나의 주특기다.



"그뿐만 아니라 저 놈은 나를 모욕하는 발언을 서슴지 않았습니다. 당신도 분명 들었으리라 믿습니다."



알케스는 무거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난데없이 호출된 청년은 눈동자를 요리조리 굴렸다.


이성은 제법 돌아온 모양이다.



"보아하니 나는 제법 괜찮은 집안의 자제라더군. 아르프, 뭐시기 말입니다."



아레프이아였나?


어쨌거나 이름은 상관 없다.


몸뚱아리가 어느 집안 자제인지는 이 자리의 누구나가 알고 있을 테니 말이다.



"아무리 대련 중이었다지만, 그런 자제를 죽이려 든다면 무슨 벌을 받습니까?"


"얼마 전만 해도 북부에서는, 아르프레이아의 일원을 건드리면 사형을 당했네."



알케스는 손주 놈의 얼굴을 보며 또박또박 대답해 주었다.


아하, 그렇군. 음흉한 영감탱이.


자신의 손주 놈을 계속 걸고 넘어지니 무슨 조건을 내걸려는 건지 눈치를 챈 모양이다.



"그것이 엄연히 대련이었던 바, 책임을 물을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그거 고맙구만."


"그렇지만 그 부분에 대해서는 반드시 짚고 넘어갈 생각입니다."


"그럼, 물론이네. 조건을 제시해 보게."



우리 둘은 만남이 짧았던 것치고는 나쁘지 않은 호흡을 자랑했다.


까닭 모를 청년만이 두 눈을 끔벅거렸다.


나는 곧장 검지를 펼쳐 그런 청년을 가리켰다.



"당신의 수련을 받는 동안, 이 청년도 같은 훈련을 받게 해주십시오."


"···뭐?"



조건으로 지정된 청년은 어안이 벙벙하다는 표정이다.


물론 거절하지는 못 할 것이다.



정치인 생활을 오래 하면 그런 부분에 민감해진다.


지금 이 자리에서 어떤 사람이 갑인지를 말이다.


장담컨대 그것이 알케스의 손주 놈은 아니었다.



"상관은 없네만, 자네에게 득이 될 것이 있나?"


"있지요. 내 개인적인 욕심입니다."



나는 아직 나의 벗과의 약속을 완수하지 못 했다.


변해버린 벗의 친구 놈을 두들겨 패서라도 데려온다는 약속 말이다.



"그리고 수련이라는 게, 혼자서만 하는 것은 재미가 없는 법이니까요."


"하, 그렇군. 동감하네."



알케스라는 노인네는 껄걸 웃기 시작했다.


노인과 나의 시선은 짜맞춘 듯 손주 놈에게로 움직였다.



"그래서, 어떻게 하겠는가?"


"그래, 세르디히, 어떻게 하겠느냐?"



우리의 물음에 청년의 동공이 사시나무처럼 흔들렸다.


사형.


알케스가 내뱉은 그 단어는 청년의 귓가에도 확실히 들렸을 것이다.


청년의 대답은 오로지 하나뿐이다.



"···알겠어. 카르, 아니, 대공자님."



* * *



저벅 저벅.



두 사람과 헤어진 나는 방으로 돌아왔다.


제 방으로 돌아갔을 줄 알았던 집사 놈이 무언가를 중얼거리며 정신없이 서성이고 있었다.



"―그렇게 알케스 님이 한눈을 파는 사이에, 내가 붙잡고 도련님이 검술을 시연하면···."



영화에서 이런 장면을 본 적이 있다.


짐작건대 다음 장면에는 눈을 까뒤집고 기묘한 자세로 공격할 것이다.


나는 혹시 몰라 차고 있던 검을 꽉 잡았다.



"이런, 정신이 하나도 없군. 대관절 자네 무엇하나?"


"도련님, 생각보다 일찍 돌아오셨군요."



악마 놈에게 홀린 것은 아닌 듯했다.


집사 놈의 눈동자는 평소처럼 선명하다.



"실은 알케스 님을 설득할 방법을 생각 중이었습니다. 일곱 가지 정도 계획을 짜놨는데 들어보시겠습니까?"


"계획?"


"예, 우선 첫 번째 계획부터 들려드리자면, 알케스 님께서 식사를 하는 사이 저희 둘이 쳐들어 가는 겁니다."



아하.


무엇을 하고 있나 했더니 기특한 생각을 하고 있던 것이다.


그 충심에는 과연 감탄스러울 따름이나 집사 놈의 계획은 이제 쓸모가 없었다.



"계획에 전부 실패할 수도 있으나, 일단은 5일이라는 시간이 있으니―"


"그럴 필요 없네."


"예?"


"방금 나한테 부탁을 해오더군. 부디 자신의 제자가 되어달라며 말이야. 그래서 받아들였네."


"무, 무슨 일이 있으셨던 겁니까?"



집사 놈은 호들갑스레 다가왔다.


고백하건대 나는 이런 순간을 좋아한다.


궁금해 죽겠다는 표정을 하는 사람에게 전말을 알려주지 않는 이 순간을 말이다.



"시작은 내일 아침부터라더군. 자네는 슬슬 돌아가게."


"예? 하지만···."


"검술을 선보였더니 피곤하거든. 어서 돌아가게."



쾅!



집사 놈을 내보내고 침대로 향했다.


오늘 밤은 두 다리를 쭉 펴고 잘 수 있을 거 같다.



* * *



세간에서 흔히 북부의 검술이라 칭하는 것은 본래 마르비다르의 검술이 원조다.


그 역사는 아주 오래 이어졌으나 최근과 같은 형태를 띤 것은 오래 되지 않았다.



마력 조작.


본격적으로 그 체계가 확립된 이후부터 마르비다르의 검술은 지금과 같이 발전했다.


물론 마도구의 발전 탓에 마법의 위력도 높아진 터라 검술은 모두에게 구닥다리 취급을 받고 있다.



알케스는 장담했다.


조만간 자신의 검술을 구닥다리 취급하던 놈들이 입을 다무는 순간이 올 것이다.



그래···.


눈 앞에 있는 이 말도 안 되는 재능 덩어리에 의해 말이다.



"다시, 다시 한 번 해보게."


"좋습니다."



카르셀은 말을 마치고 심호흡을 하며 집중했다.


다시 봐도 놀라운 집중력이다.


평소에는 건들건들 한량 같던 분위기가 집중만 시작하면 달인들의 그것으로 뒤바뀐다.



보다 더 놀라운 것은 마력 조작의 재능이다.



우우우웅.



가르친 지 고작 한 시간 만에 발뒤꿈치에 마력을 집중시켰다.


마력 조작 실력이 대단하다는 건 들었지만 초심자라면 이 부분에서 헤매기 일쑤다.


시야의 사각인 발뒤꿈치의 위치를 지각하기 어려운 탓이다.



"그래, 잘 했네. 바로 그거야. 그 상태에서 마력을 해방하면 상당한 속도로 나아갈 수 있네."



질풍.


알케스의 선조는 그것을 질풍이라 명명했다.


잘만 조작하면 질풍만큼이나 빠른 속도로 이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비 없이 질풍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네. 이유를 알겠나?"


"그렇군. 다치겠구만."


"바로 그것일세!"



인간의 신체는 마족처럼 튼튼하지 않다.


견디지 못 할 힘을 받으면 쉽사리 부러지는 것이 인간의 몸이다.



"하여 다치지 않기 위해 발끝에다 소량의 마력을 모아두는 걸세. 충격을 완화할 수 있도록 말이지."



순간적인 전환이 필요한 고도의 기술이다.


빠른 속도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발끝에 있는 마력이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한 번 해보겠는가?"


"좋습니다. 시연할 때만 기다렸지."



카르셀은 피식 웃고 마력을 조작했다.


우우우웅.


카르셀의 뒤꿈치에 흑과 백의 마력이 모여들었다.



역시나 조작만은 상당한 숙련도다.


손주 놈이 그런 수준에 도달한 것은 가르치고 몇 년 정도 흐른 뒤였다.



'···그나저나 색이 두 개라니. 마법을 베는 그 능력과 관련이 있나?'



두 가지 색의 마력에 대해서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


이름을 떨쳤던 영웅들의 마력도 색상은 오로지 하나뿐이었다.



콰아앙!



불현듯 큰 소리가 알케스의 의식을 사로잡았다.


하, 꼴 좋구만.


자신만만하던 카르셀의 머리가 눈더미에 처박혀 있었다.


제아무리 천재라도 이것만큼은 어려웠던 모양이다.



"방금 그건 발끝에 모은 마력이 너무 적어서 그런 걸세."


"거 보기보다 어렵구만."



몸을 일으킨 카르셀은 머리칼을 툴툴 털었다.


한 번의 실패 따위로 주늑 들지 않는 모습이다.



어쩐지 자신의 어릴 적을 보는 듯했다.


성공하는 것도 실패하는 것도 관심 없이, 그저 검이 좋아서 휘두르던 철부지 시절의 모습을 말이다.



알케스는 실실 웃었다.


"아무리 자네라도 그것만큼은 쉽지 않을 거야. 속도에 따라 모아야 할 마력량이 매번 달리지거든."



아마도 2주.


카르셀의 재능을 고려하면 그 정도 기간이 걸리리라 예상했다.



부끄러울 것은 전혀 없었다.


수재라 할 수 있을 세르디히가 질풍을 익힌 것은 몇 년이 흘러 아카데미에 들어갈 즈음이었다.


익히는데 2주보다 오래 걸린다 할 지라도 충분히 이해가 갈 수 있는 수준이다.



그런데,


설마하니 자신의 예상이 보기 좋게 빗나갈 줄은 몰랐다.



카르셀은 그날 이후 밤낮없이 수련에 몰두했다.


광기에 가까운 노력이었다.


자신의 몸은 전혀 살피지 않고 실패하면 일어나고 다시 하기를 반복했다.


그 덕분에 마르비다르의 성안에는 온종일 큰 소음이 멎을 참이 없었다.



그렇게 일주일이 흐르자 카르셀이 찾아왔다.


온화하고 잘난 얼굴에 제법 잔상처가 생긴 채였다.



"완성했습니다. 그 질풍이라는 기술."


"···뭐?"



카르셀은 알케스를 뒤뜰로 안내했다.


우우우웅.


장담한 것처럼 능숙하게 마력을 모으더니 단숨에 해방하여 질풍처럼 튀어 나갔다.



"아···."



외벽을 치는 바람 소리 외에는 정적만이 맴돌았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오로지 하나였다.


완벽한 시기에 마력을 조작하여 완벽한 마력량으로 충격을 완화한 것이다.



그제야 직감했다.


카르셀은 결단코 일반적인 천재가 아니었다.



광기에 가까운 노력···.


그것을 오로지 검술에 쏟아붓는 괴팍한 검술 천재였다.



* * *



그날부터 카르셀의 수련은 다음 단계로 나아갔다.



마르비다르의 검술.


사람들이 흔히 북부의 검술이라 부르는 그것을 알케스는 빠짐없이 카르셀에 주입했다.



카르셀은 빗대자면 굶주린 늑대 무리였다.


하나의 기술을 포식하면 탐욕스레 다음 것을 탐냈다.


하루, 그리고 또 하루가 지나갈수록 카르셀은 마르비다르를 잡아먹고 그 몸짓을 불려 나갔다.



놀라운 한편 두렵다는 느낌도 들었다.


단순히 그 기적 같은 천재성뿐만이 아니라 카르셀에게는 근원적인 허기 같은 것이 느껴졌다.


검술에 대한 지독한 굶주림···.


학자가 되겠다던 온순한 놈이 지니기에는 기묘할 정도로 강한 집착이었다.



스승 이전의 무인으로서,


그리고 한 사람의 검사로서,


카르셀이 품은 그 집착의 근원이 궁금해졌다.



"오늘은 시작 전에 대련을 할 생각이네."



알케스가 선언하자 카르셀은 자세를 잡았다.


한숨을 내뱉은 세르디히는 맞은편에 자리했다.


한심한 표정이지만 기분은 이해한다.



요 2주간 세르디히는 질리도록 얻어 맞았다.


하루의 수련이 끝나면 대련을 시켰는데 카르셀에게는 도무지 상대가 되지 않은 탓이다.



카르셀은 정말 집요할 만큼 세르디히를 때렸다.


처음에는 그 이유가 복수심이리라 생각했는데 보다 보니 무언가 다른 이유가 있는 듯했다.



"착각들을 하고 있구만. 그게 아닐세."


"대련을 한다지 않았습니까?"


"그랬지. 허나 이번 대련에서 자네의 상대는 내 손주 놈이 아닐세."



알케스는 세르디히의 검을 뺏어 들고 그 자리를 차지했다.


무슨 뜻인지 알아챘는지 카르셀의 얼굴이 활짝 폈다.



"그렇구만. 안 그래도 슬슬 궁금하던 참이었는데."



당돌한 놈.


자신과 대련한다는 것이 그리도 기쁜가보다.


알케스는 척 검 끝을 겨냥했다.



"질풍, 마르비다르의 검술, 자네의 그 독특한 기술들, 모두 사용해도 좋네."



유망한 제자라도 져줄 생각은 없었다.


자신은 세상에서 지는 것을 가장 싫어하기 때문이다.



"나는 오로지 질풍과 검술만을 쓸 걸세. 즉, 속성은 사용하지 않겠다는 얘기지."



검술에 굶주린 것은 카르셀뿐만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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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Episode 7. 황실 대학 (2) NEW 4시간 전 15 0 12쪽
18 Episode 7. 황실 대학 (1) 24.09.17 42 0 13쪽
17 Episode 6. 용살자의 유산 (完) 24.09.16 49 0 13쪽
16 Episode 6. 용살자의 유산 (2) 24.09.15 53 1 13쪽
15 Episode 6. 용살자의 유산 (1) 24.09.14 66 1 12쪽
14 Episode 5. 나보고 대학을 가라고? 24.09.13 68 2 13쪽
13 Episode 4. 승계전 (完) 24.09.12 71 2 13쪽
12 Episode 4. 승계전 (2) 24.09.11 75 2 13쪽
11 Episode 4. 승계전 (1) 24.09.10 91 5 12쪽
10 Episode 3. 알케스 마르 뭐시기 (完) 24.09.09 90 2 13쪽
9 Episode 3. 알케스 마르 뭐시기 (4) 24.09.08 91 2 12쪽
» Episode 3. 알케스 마르 뭐시기 (3) 24.09.07 101 2 12쪽
7 Episode 3. 알케스 마르 뭐시기 (2) 24.09.06 100 3 12쪽
6 Episode 3. 알케스 마르 뭐시기 (1) 24.09.05 112 3 12쪽
5 Episode 2. 북부는 최악이다. (完) 24.09.04 113 2 13쪽
4 Episode 2. 북부는 최악이다. (1) 24.09.03 124 2 15쪽
3 Episode 1. 나보고 입대를 하라고? (完) +1 24.09.02 145 3 12쪽
2 Episode 1. 나보고 입대를 하라고? (2) 24.09.02 155 3 13쪽
1 Episode 1. 나보고 입대를 하라고? (1) 24.09.02 196 4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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