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부 대공가의 괴팍한 검술 천재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새글

달밝은
작품등록일 :
2024.09.02 11:18
최근연재일 :
2024.09.18 20:35
연재수 :
19 회
조회수 :
1,749
추천수 :
39
글자수 :
109,085

작성
24.09.10 20:35
조회
90
추천
5
글자
12쪽

Episode 4. 승계전 (1)

DUMMY

북부의 발톱.


설원의 젊은 곰.


그 모든 이름을 아우르는 세르그니르의 가주, 헤르첼.



명예로운 전사로서 만인의 존경을 받는 헤르첼이지만 오늘만은 몇 시간째 성문 앞을 서성거렸다.


오늘은 7월 6일.


계승전이 치러지기 이틀 전이자 수련을 마친 카르셀이 돌아오는 날이었다.



식사 준비는 완벽하게 마쳐두었다.


놀라운 배려를 보여준 카르셀을 위하여 북부의 모든 진미를 그 안에 담았다.


남은 것은 오로지 카르셀의 귀환뿐이다.



그런데···.


해 질 녘이 다가왔는데도 통 올 기미가 안 보였다.



'마족이라도 만난 건가?'



괴인.


마르비다르의 가주가 보고한 그것의 소문이 파다한 시점이다.


끈적한 불안감이 스멀스멀 싹트는 참에 경비병 한 명이 헐레벌떡 뛰어왔다.



"가주님, 보고 드립니다! 성 근처에 싸라기눈 곰이 나타났습니다!"


"···뭐?"



싸라기눈 곰!


하급 악마에도 견줄 수 있을 만큼이나 위험한 마수였다.


불길한 기분은 사실이었던 것이다.



"당장 처리하지."



아르프레이아의 가주가 될 카르셀이 오는 길이다.


헤르첼은 갑옷조차 입지 않고 서둘러 성 밖으로 나왔다.



눈싸라기 곰···.


경비병의 보고대로 거구의 백곰이 설원 위에 서 있었다.


헤르첼도 분명 상당한 거구였으나 녀석의 몸은 자신의 두 배쯤 되어 보였다.


성체라는 뜻이었다.



"애 좀 먹겠군."



허둥지둥 나오는 터라 마도구도 놓고 나왔다.


마도구 없이도 충분히 강하지만 싸라기눈 곰은 역시 만만치 않은 상대였다.


방어구로도 쓰일 만큼 질기고 단단한 가죽 때문이다.



물론 불평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마도구를 가지러 다녀왔다 카르셀의 마차가 도착할 수도 있었다.


최선은 역시 재빨리 죽이는 것이다.



"흡!"



헤르첼은 합장하며 마력을 조작했다.


물 흐르듯 마력 변환이 이루어지자 날카로운 발톱들이 주변을 맴돌았다.



파괴력을 더하고자 발톱들을 회전시켰다.


5분, 아니 3분이면 처리할 수 있지 싶었다.



"나설 필요 없습니다."



나설 필요 없다?



갑작스러운 목소리에 고개를 돌려보았다.


사람이 있으리라 생각한 자리에는 희뿌연 눈먼지만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다시 정면을 마주했다.


촤아악!


싸라기눈 곰의 머리가 순식간에 날아가며 시뻘건 혈액이 온 곳으로 튀고 있었다.



녀석의 거체는 간헐적으로 움찔대다 허탈하게 침몰하며 눈먼지를 일으켰다.


눈먼지 사이로 흐릿한 것은 검을 든 사내의 형체였다.



검이라, 검이라고?



"대, 대공자님!"



헤르첼은 서둘러 사내에게 뛰어갔다.


카르셀 아르프레이아.


믿어지지는 않았지만 방금의 신기는 카르셀이 선보인 것이다.



거리가 가까워지자 카르셀의 모습이 똑똑히 보였다.


척 검을 쥔 그 빈틈 없는 자세는 명백히 한 달 전보다 예기를 품고 있었다.


체격도 이전과 달리 단련된 것이 느껴졌다.



"오랜만입니다. 헤르, 헤르···."


"헤르첼."


"아, 그래. 헤르첼."



그래.


이런 부분은 바뀌지 않았다.



"오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대공자님. 그보다···."



헤르첼은 싸라기눈 곰을 내려다 봤다.


목이 달아난 녀석의 숨은 어느덧 끊어져 있었다.



일격.


단 그것만으로 하급 악마에 준하는 마수를 쓰러뜨린 것이다.


기습이라고는 하지만 놀라운 발전이었다.



"대단하십니다. 꾸밈 없이 말하건대, 방금 선보이신 그 모든 동작들이 상상 이상으로 놀라웠습니다."


"물론 그렇지요. 이래 봬도 제법 열심히 수련했거든."



카르셀은 피식 웃고 검을 휘둘렀다.


검에 묻어 있던 마수의 피가 하얀 눈을 더럽혔다.


그나저나 있어야 할 이가 보이지 않았다.



"대공자님, 아드레이의 모습이 안 보이는군요."


"집사 놈은 지금쯤 오고 있을 겁니다. 어지간히 추운 게 아닌지라, 못 참고 뛰쳐나왔거든요."


"설마 뛰어서, 아니 질풍으로 오신 겁니까?"


"그렇지요."



질풍.


자신조차 사용하지 못 할 만큼 상당한 마력 조작 실력을 요구하는 기술이다.


그런 기술로 마수가 이끄는 마차를 제치고 먼저 도착한 것이다.


거듭 그 발전이 놀라울 따름이었다.



"어쨌거나 들어갑시다. 집사 놈이야 제 알아서 올 테지."


"알겠습니다. 마침 대공자님의 바람대로, 식당에 한 상 가득 만찬을 준비해 온 참입니다."


"그거 반가운 소리군. 안 그래도 시장하던 참이었지요."



카르셀은 병사처럼 힘차게 걸어갔다.


북부의 밥을 먹는다는 것이 어지간히 기쁜 모양이다.


깜짝 놀라게 해줄 셈이었지만 아무래도 그 사실을 말해야 될 듯했다.



"그리고 대공자님, 실은 만찬 중에 곰고기 스튜도 준비를 해놨습니다."


"뭐요?"


"지난번에 보여주신 그 넓은 아량에 대한 답례입니다. 곰고기 구이 같은 다른 음식도 많이 준비되어 있으니, 부디 기대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렇군. 이제야 돌아온 것이 실감이 나는군요."



카르셀은 제 얼굴을 느릿하게 쓸어내렸다.


분명 미소를 참고 있는 게지.


제 나름대로 짐작을 한 헤르첼은 서둘러 카르셀을 식당에 안내했다.



어쩐 일인지 카르셀의 발걸음은 평소보다 무거워 보였다.


아아, 그래, 그랬던 거군.


한 달을 함께 한 스승과의 헤어짐이 못내 아쉬웠던 모양이다.



* * *



헤르첼의 성을 거쳐 간 마차는 북부의 추위를 뚫으며 아르프레이아로 나아갔다.



끼리익 끼리익. 삐걱 삐걱.



익숙해졌다 생각했는데 오늘의 마차는 한층 더 요사스러웠다.


한사코 우리와 같이 탑승한 거구의 누군가 때문이다.


나는 그 누군가를 쏘아봤다.



"대관절 왜 같이 탑승했습니까?"


"마르비다르에 나타났다는 괴인이 언제 또 나타날 지 모르는 일입니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십시오. 무슨 일이 있더라도 대공자님은 제가 지키겠습니다."



곰고기, 아니 헤르첼 세르 뭐시기.


불쾌함을 숨기지 않고 표독하게 물었는데 헤르첼은 도무지 눈치 챌 기미를 안 보였다.



"···그거 참, 든든하구만."


"그런 말씀을 해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누가 봐도 비꼬는 말을 곧이 곧대로 믿는 눈치였다.


헤르첼이라는 양반의 머리는 그 몸처럼 근육질이었던 모양이다.



"거기에, 대공자님과 같은 이유로 아르프레이아 성에 들러야 했거든요."


"같은 이유라면, 계승전 말입니까?"


헤르첼은 고개를 끄덕였다.


"승계전에는 전통적으로 한 명의 가주가 공증을 맡아야 합니다. 프레델 님께서는 그걸 저에게 부탁하셨고요."



그랬던 거로군.


원인은 전부 가주 양반이었다.


그 팔불출 양반 성격에서 짐작건대 제 아들의 호위도 겸하고자 그런 부탁을 했을 것이다.



끼리익 삐걱. 끼리익 삐걱.



어쩔 수 없이 우리의 마차는 평소보다 큰 소음을 내며 설원을 달렸다.


태양이 뉘엿뉘엿 지평선으로 숨을 때쯤 진저리 나던 그 소음도 끝끝내 사그라졌다.


나는 지체 없이 마차에서 내렸다.



이런, 제길.


삐걱거리는 소음이 아직도 귓가에 맴도는 느낌이다.



'응?'



무슨 이유인지 성내가 알록달록했다.


안뜰에 줄지어 서 있는 사치스러운 마차들 때문이다.



이유는 짐작이 안 갔지만 어찌 됐든 우리는 집무실로 향했다.


여정 내내 굳건해 보이던 헤르첼은 무슨 영문인지 발걸음이 무거워 보였다.



"긴장이라도 하는 겁니까?"


툭 던진 질문인데 헤르첼은 시인했다.


"그 무정한 프레델 님과 대면하는 거니까요."


"무정?"



잘못 들었나 싶어 되물었다.


부정(父情)을 말하려 한 거겠지.


암, 차라리 그 편이 현실적이었다.



"가주가 되기 전, 전선에서 그 분을 뵌 적이 있습니다. 존경스러운 분이지만 동시에 두려웠습니다."


"···혹시 나 몰래 술이라도 먹었습니까?"


헤르첼은 고개를 저었다.


"대공자 님은 아드님이라 모르시는 겁니다. 북부의 왕, 푸른 용. 그 모두가 프레델 님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진지하게 말하는 것을 보니 농담하는 건 아닌 듯했다.


아니면 가주 양반에게 쌍둥이 형제가 있던가.


뭐가 됐든 그 팔불출 양반의 무정한 모습은 아무리 애를 써도 상상할 수 없었다.



의문만 늘어간 채 발걸음은 이어졌다.


마침내 가주 양반의 집무실에 도착하자 뒤따르던 아드레이는 조심스레 노크했다.



"가주님, 아드레이입니다."



쿵 쾅 쾅!



안쪽에서 불현듯 거인이 나뒹굴 듯 큼지막한 소리가 들렸다.


혹시 몰라 검 자루를 단단히 쥐었다.


적의 습격을 예상했건만 의외로 튀어나온 것은 콧수염의 사내였다.



"카르셀! 드디어 돌아왔구나!"



프레델.


안면의 가득히 미소를 띈 가주 양반은 문을 박차고 나와 나의 몸을 요리조리 살폈다.



"다친데는 어디 없느냐? 괴인이 나타났다 들었다. 그리고 과로! 훈련 중에 무리를 했다더구나."



그럼 그렇지, 이것이 내가 아는 가주 양반의 모습이다.


무정인지 뭔지 하는 소문은 역시 헛소문이었다.



물론,


적어도 헤르첼에게만은 헛소문이 아니었을 것이다.



"프, 프레델 님?"


"헤르첼?"



두 사람의 눈이 맞았다.


성질이 고약한 나는 이런 순간을 좋아한다.


누군가의 말실수로 어색한 침묵이 감도는 순간 말이다.



먼저 침묵을 부슨 것은 프레델이었다.


"커흠, 그래. 어서 오거라, 카르셀. 수련은 잘 끝냈느냐?"



아, 그렇군, 없었던 척을 할 셈인가.


가주 양반에게도 제법 뻔뻔한 구석이 있었던 것이다.



"물론 잘 끝냈지요. 내일 보면 알 겁니다."


"그것 참 기대가 되는구나. 그리고···."



가주 양반은 헤르첼을 바라봤다.


아니, 쏘아봤다는 표현이 옳았다.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방금 본 것을 발설하면 죽인다.


독심술은 못 하지만 그런 말을 하는 거 같았다.



그래···.


적어도 그 무정하다는 소문이 완전한 헛소문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 * *



프레델은 헤르첼과 카르셀을 물리고 아드레이와 대면했다.


카르셀과 더 대화하고 싶었지만 지금은 그보다 시급한 일이 남아있다.



"소문은 들었다. 마르비다르에 괴인이 나타났다더구나."


"제가 본 것은 아니지만, 사실입니다. 마르비다르 소가주의 상처를 제 눈으로 확인했습니다."


"흠, 자네가 봤다면 사실이겠지···."



괴인···.


인간이 마족이 된다는 이야기는 역사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마력을 베는 카르셀도 그렇고 갑작스레 사건들이 터지는 듯한 기분이다.



보통 이런 것은 징조다.


어쩌면 조만간 큰일이 생길 지도 모르겠다.



"그 괴인이 정확히 무슨 짓을 했는지 설명해 주겠나?"


"물론입니다."



아드레이는 자신이 보고 들은 이야기를 상세하게 설명했다.


세르디히가 무언가에 찔렸던 일,


그 상처가 몰라보게 부어올랐던 일,


마족으로 변하지 않는 카르셀을 이상하게 여겼던 일도 말이다.



"괴인은 마족으로 변화하지 않는 소가주를 보며, 대학에서 퇴학당하지 않았느냐 물었습니다."


"···퇴학 당했다?"



퇴학, 퇴학이라.


단순하게 그 자체가 마족이 되는 조건일 수도 있다.


물론 밝혀진 것은 없었으니 더 이상의 담론은 무의미하다.



"그나저나, 카르셀은 어떻던가? 성장은 충분히 했나?"


"오는 길에 싸라기눈 곰을 잡으셨습니다. 그것도 단칼에 말입니다."


"싸라기눈 곰을? 허허···."



프레델은 만족스레 너털지었다.


싸라기눈 곰은 마법사에게도 결코 쉬운 적이 아니다.


카르셀···.


예상 이상으로 발전한 듯했다.



"내일의 계승전이 기대가 되는구나. 카르셀뿐만 아니라 마르텔도 상당히 발전했어. 몰라볼 정도로 말이야."


"마르텔 도련님도 천재이시니까요."



카르셀과 마르텔.


어느 누가 가주가 되더라도 아르프레이아의 미래는 밝았다.


프레델로서는 그저 기쁠 뿐이었다.



"그보다, 프레델 님."


아드레이가 불현듯 진중한 얼굴로 입을 뗐다.


"카르셀 님의 능력과 관하여, 마르비다르의 가주, 알케스로부터 전언이 있습니다."


"그 노인네가?"



알케스 마르비다르.


괴팍하기는 하더라도 나이만큼이나 지혜로운 자였다.



카르셀과 오래도록 지냈으니 무언가 알아챈 바가 있을 수도 있다.


자신이 아는 것은 오로지 마법을 벤다는 것뿐이니 말이다.



"그게 아니랍니다."


"···뭐?"


"마법만을 베는 능력이 아니랍니다."


"무슨, 그게 무슨 소리더냐?"



마법만을 베는 능력이 아니다.


그 말은 꼭 무언가를 더 벨 수 있다는 뜻으로 들렸다.



"알케스가 말하기를, 카르셀 도련님의 능력은 벨 수 있게 해주는 능력이랍니다···."


아드레이는 침을 꿀꺽 삼키며 말을 이었다.


"그것이 무엇이든 말입니다."



무엇이든!


그 말에 번뜩이며 온 세계의 유적들이 떠올랐다.


봉인을 풀지 못하여 잠들고만 있을 그 수많은 유물들도 말이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북부 대공가의 괴팍한 검술 천재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제목 재변경 [검술 천재는~] -> [북부 대공가의 괴팍한 검술 천재] 24.09.05 65 0 -
19 Episode 7. 황실 대학 (2) NEW 4시간 전 15 0 12쪽
18 Episode 7. 황실 대학 (1) 24.09.17 42 0 13쪽
17 Episode 6. 용살자의 유산 (完) 24.09.16 49 0 13쪽
16 Episode 6. 용살자의 유산 (2) 24.09.15 53 1 13쪽
15 Episode 6. 용살자의 유산 (1) 24.09.14 65 1 12쪽
14 Episode 5. 나보고 대학을 가라고? 24.09.13 67 2 13쪽
13 Episode 4. 승계전 (完) 24.09.12 71 2 13쪽
12 Episode 4. 승계전 (2) 24.09.11 75 2 13쪽
» Episode 4. 승계전 (1) 24.09.10 91 5 12쪽
10 Episode 3. 알케스 마르 뭐시기 (完) 24.09.09 89 2 13쪽
9 Episode 3. 알케스 마르 뭐시기 (4) 24.09.08 91 2 12쪽
8 Episode 3. 알케스 마르 뭐시기 (3) 24.09.07 100 2 12쪽
7 Episode 3. 알케스 마르 뭐시기 (2) 24.09.06 99 3 12쪽
6 Episode 3. 알케스 마르 뭐시기 (1) 24.09.05 112 3 12쪽
5 Episode 2. 북부는 최악이다. (完) 24.09.04 112 2 13쪽
4 Episode 2. 북부는 최악이다. (1) 24.09.03 124 2 15쪽
3 Episode 1. 나보고 입대를 하라고? (完) +1 24.09.02 145 3 12쪽
2 Episode 1. 나보고 입대를 하라고? (2) 24.09.02 155 3 13쪽
1 Episode 1. 나보고 입대를 하라고? (1) 24.09.02 194 4 13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