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부 대공가의 괴팍한 검술 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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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밝은
작품등록일 :
2024.09.02 11:18
최근연재일 :
2024.09.18 2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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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1 2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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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4. 승계전 (2)

DUMMY

용들이 불태우고 악마가 짓밟는다.


과거를 설명하는 가장 대표적인 노랫말이다.



그런 시대에 인류가 살아남은 이유는 신의 축복과 정령들의 가호 덕이다.


지금은 드물거나 아예 모습을 감추었지만 그 시대의 전리품만은 여전히 남아있다.



유적.


북부에도 분명 몇몇 유적들이 남아있다.


물론 역사를 사랑하는 북부인인 프레델이지만 지금은 과거보다 미래를 생각할 때였다.



"무엇이든 베는 능력이라니, 자세히 설명해 줄 수 있겠는가?"


프레델의 물음에 아드레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마력뿐만 아니라 불, 냉기 등, 형체가 없는 것들을 벨 수 있게 해주는 능력이랍니다."


"봉인도?"


"시도해 보지는 않았지만, 아마도 그럴 것입니다.



봉인···.


그것은 마법이 아닌 저주의 일종이다.


해제하기 위해서는 해석이 필요하나 안타깝게도 그 대부분은 인간의 이지를 벗어난다.



그런데 카르셀은,


그 복잡한 해석조차 필요 없는 것이다.



"정말로 그렇게 대단한 능력이었을 줄이야···."



쓸 데 없는 노력가.


어릴 적부터 카르셀을 뒤따르던 말이었다.


노력을 해봤자 속성이 없는 카르셀은 마법사가 되지 못 했기 때문이다.



프레델은 언제나 그 사실이 미안했다.


자식의 부진이 자신의 잘못은 아니었지만 부모된 도리로서 미안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할 수만 있다면,


그럴 방법만 알았다면,


늘 자신의 속성이라도 기꺼이 주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런데 그런 능력이 숨겨져 있었다고?



모든 것이 밝혀지니 복잡한 마음이었다.


기쁘다는 마음도 분명 들었지만 미안하다는 감정도 여전했다.


조금만 더 그 능력을 일찍 밝혀냈다면 기억 상실에 걸리는 일도 없었을 테니 말이다.



"···그보다 속성이라는 건 확실한가?"


"그렇습니다. 알케스가 말하기를, 목검을 들 때는 베는 능력을 쓸 수 없었답니다."


"마력의 전도인가. 그렇다면 확실하겠군."



마력을 담을 수 있는 것은 오로지 금속뿐이다.


그런 특성에 기인하여 마법의 위력을 높여주는 마도구는 모두 금속으로 되어 있다.



"추가로 알케스는 그 능력이 빙산의 일각이리라 추측했습니다."


"빙산의 일각?"


"그 능력의 본질에서 뻗어 나온 가지 같은 능력 말입니다."


"본질과 가지, 그런 건가···."



이를 테면 프레델의 속성인 냉기와 같은 것이다


냉기는 그 자체로 무엇이든 얼릴 수 있지만 마르비다르의 서릿발처럼 얼음 가시를 생성할 수도 있다.



"그것이 무엇이든 그 본질을 알아내는 것이 최우선이겠구나."


"그렇습니다."



본질, 본질인가.


그런 것을 알아낼 만한 곳은 그리 많지 않았다.


제국 내에서는 제도(帝都)의 마법 협회 본부나 황실 대학 정도가 전부일 것이다.



"우선은 잘 알겠네. 차후의 고민은 승계전이 끝나는 대로 재개해 보자고."


"예, 가주님."



그래, 승계전.


일단은 눈 앞에 있는 그것이 먼저였다.


카르셀이 승계전에서 패배하면 조사고 뭐고 장벽에 가야 하기 때문이다.



* * *



나의 고향은 강원도 두메산골이었다.


누군가는 그곳을 두고 투박한 곳이라 평하겠지만 단언하건대 그곳만큼 정겨운 곳은 또 없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역시 음식이라 할 수 있겠다.


그곳의 음식이 제일은 아닐 지 몰라도 나에게 고향의 맛은 그 무엇보다 위대했다.



그런 생각을 지닌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북부의 음식은 역시 쓰레기다.



"···나는 이만 됐네."


"도련님, 아직 반도 안 드셨습니다."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이런 음식을 반이나 꾸역꾸역 먹었으니, 용하다고도 할 수 있지 않겠나."



암, 나의 행동은 칭찬 받아 마땅했다.


요 밍밍하고 맛대가리 없는 놈을 반이나 먹었다는 것은 그런 업적이다.



"어쨌거나 나는 일어날 걸세. 남은 건 마차를 끌었던 그 마수 놈들에게 줘버리고."



사료.


그것이 북부식의 올바른 쓰임새였다.


고향의 맛이니 뭐니 하며 치켜세우는 북부인들의 정신머리가 의심스러울 따름이다.



냉수로 뒷맛을 지우고 식당을 빠져나왔다.


7월 7일.


여름이 다가온 북부의 밤공기는 여전히 얼음장을 피부에 댄 듯 서늘했다.


음식도 그렇고 기온도 그렇고 무엇하나 마르 뭐시기보다 나을 게 없는 곳이다.



'응?'



안뜰에는 무슨 이유인지 어린 놈들이 모여 있었다.


딱 봐도 성질이 고약할 거 같은 면면들이다.


아, 그렇군.


도착할 때 보았던 화려한 마차들은 그 놈들이 타고 온 듯했다.



어린 놈들의 한가운데에는 오랜만에 보는 마르텔이 있었다.


무시하고 지나가려 했다.



"형님이시군."



마르텔은 마치 이제야 발견했다는듯한 표정으로 다가왔다.


짐작건대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다.


주위를 둘러싼 어린 놈들의 귀와 손이 찬 바람에 노출되어 붉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내빼지 않고 오다니 용기가 가상하신데? 아니, 패배할 게 뻔한 싸움인데 어리석다고 해야 하나."



오늘도 마르텔은 자신의 호를 부단히 증명했다.


싸가지 없는 어린 놈.


마음 속으로 넌지시 붙여주었던 것인데 그리도 열심히 증명하니 내심 뿌듯해졌다.



"내가 형님이라면 오고 싶지 않았을 거야. 나는 승계전이라도 봐줄 생각이 없거든."


"그래. 사실 오고 싶지는 않았네. 이곳의 음식이 워낙에 맛이 없어야지. 예를 들면 곰고기 스튜 말일세."



곰고기 스튜.


그 말에 마르텔의 이마에 뽈록하고 핏줄이 섰다.


첫 만남에 저질렀던 그 '피치 못할' 실수가 떠오르는 모양이다.



"도대체 무엇을 믿고 그리 거만한지는 모르겠지만, 명심해 둬. 나는 지난번의 나와 다르니."


"···다르다고?"


나는 마르텔을 위아래로 훑었다.


"흠, 그리 달라 보이지는 않는데. 아하, 그런 거군. 이제는 마르텔에서 곰고기 스튜로 이름을 개명했나?"


"이 새끼가···."



마르텔은 주먹을 꽉 쥐다가 더운 숨을 내뱉었다.


제법 발전하셨군.


지난번처럼 무턱대고 덤비지 않는 것을 보니 못 보던 사이에 성장을 한 듯했다.



"계속 그렇게 지껄여 봐. 어차피 내일···."



입매를 비튼 마르텔은 어린 놈들 무리에 손짓했다.


눈치를 보던 어린 놈들이 하나둘 다가와 마르텔의 뒤에 섰다.



언제인가 이런 모습을 본 기억이 있었다.


도장에 다니던 시절.


나한테 패배한 객기 넘치던 신입 놈이 친구들을 이끌고 와 재도전했을 때였다.



"다들 인사해. 우리 형님이다."



마르텔의 말을 신호로 어린 놈들이 입을 뗐다.



"아, 그 속성이 없으시다던?"


"황실 대학에 도전했다가, 지원 자격도 안 돼서 떨어지셨다면서요?"


"근데 검은 뭐야. 요즘 같은 시대에, 도대체 어느 누가 구닥다리 검술을 배워?"



그때나 지금이나 상황은 비슷했다.


신입 놈은 나를 쪽수로 압박하며 기고만장하게 어깨를 으쓱였다.


똑 닮은 표정을 마르텔이 지었다.



"얘네들은 모두 나랑 같은 아카데미 학생들이야. 그래, 형님한테는 후배가 되겠군."


"후배는 무슨, 속성 하나 없는 인간이 뭔 우리 선배야?"



후배 놈의 한마디에 어린 놈들이 폭소했다.


끼리끼리 논다는 옛말처럼 마르텔의 친구들도 싸가지가 없었다.



"다들 계승전을 치른다니까 기꺼이 찾아온 거야. 내일 계승전에도 다들 참관할 거고."



객기 넘치던 신입 놈도 제 친구들이 보는 앞에 재도전했다.


그놈이 어떻게 됐더라? 아, 그래.


정말 처참할 정도로 꼴 사납게 패배했다.



그런 모습을 구태여 보여주겠다니,


마르텔의 교우관계가 진심으로 걱정스러웠다.



"그것 참 이상한 친구들이구만. 자네가 지는 모습을 보러 이 추운 곳까지 오다니. 혹시 따돌림 당하나?"


"···뭐?"


"아니면 입대 전의 송별회인가? 자네는 조만간 장벽을 지키러 가게 될 테니 말이야."



나는 진심으로 걱정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 표정이 오히려 성질을 돋구었는지 마르텔의 얼굴이 노기로 붉어졌다.


그런다고 멈출 내가 아니었다.



"어쩌면 그런 취향일 수도 있겠군. 자신의 수치를 남에게 보이기를 즐기는 이들 말이야."


"이, 이···."



쩌저저적.


이 갈리는 소리 사이로 공기가 동결하는 소리가 선명했다.



"이 반푼이 새끼가 진짜!"



콰아앙!



마르텔의 몸 주위에 짙푸른 기운이 뿜어졌다.


분노, 치욕.


감정이 뒤섞인 차디찬 냉기 탓에 주변의 공기가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천재라는 말은 과연 사실인 듯했다.


지난번의 그것과는 위압감이 달랐다.



그 덕분에 뒤에 있던 어린 놈들은 혼비백산하며 달아나고 있다.


공격에 대비하고자 검 자루를 쥐었으나 뒤이어 들려온 소리에 행동을 멈추었다.



"고정하십시오, 마르텔 대공자님."


"···헤르첼인가."



마르텔은 의외로 순순히 마력을 거두었다.


두 눈은 긴장한 듯 빠르게 굴러가는 것이···.


이런, 설마하니 요 어린 놈이 누군가의 눈치를 볼 줄 몰랐다.



"한발 늦었지만 인사드리겠습니다. 오랜만입니다, 마르텔 대공자님. 무탈해 보이셔서 다행입니다."



마르텔은 대답 대신 고개만 까딱거렸다.


어린 놈 주둥아리가 댓 발이나 나온 것이 마력은 풀었어도 화는 안 풀린 모양이다.



"···그랬군. 승계전의 공증인이 헤르첼이었나보지?"


"그렇습니다. 영광스럽게도 대공님께서 직접 지명해 주신 일입니다."


"그거 잘 됐군···."



마르텔은 나의 얼굴을 쏘아봤다.


방금까지 눈치를 보던 어린 놈이 어느새 다시 기세등등한 모습이다.



"한 번 두고 보자고, 형님. 과연 아르프레이아의 가주가 될 자가 누구일지 말이야."


"그래, 두고 보겠네."



가주의 자리야 관심도 없었다.


나의 목적은 오로지 군대에 가지 않는 것뿐이다.



* * *



소싯적에 치른 대련은 두 가지 종류였다.


하나는 무언가를 얻기 위해 치른 것이고 또 하나는 누군가가 무언가를 앗기 위해 도전한 것이다.



이번 같은 경우에는 둘 다 아니었다.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앗아가고자 치르는 대련이다.



군대.


그 검은 장벽인지 뭔지를 지키지 않고자 마르텔의 승계권을 빼앗으려는 것이다.



"많이도 데려왔구만."



엄숙할 거라 생각했던 승계전은 볼거리로 전락해 있었다.


사방을 가득 메운 마르텔의 친구들 때문이다.



그 모두가 상대편의 응원자였지만 나는 미묘한 희열조차 느꼈다.


올림픽에 나갔을 때의 그 기억이 떠오른 탓이다.



그래, 그러고 보면 그때도 상품으로 군 면제가 걸려 있었다.


심각한 부상을 입은 터라 결과적으로는 면제였지만 말이다.



"그럼, 두 사람."



헤르첼 세르 뭐시기가 중앙에 선 채 입을 열었다.


그 왼쪽에는 나, 반대편에는 마르텔이 이를 갈며 대기했다.



"자비로운 어머니 신 메이아께서 살펴보시는 가운데, 이곳에서 치러지는 두 사람의 결투가 훗날 노래가 되어 모두의 입에 오르내리리니. 이에 부끄럽지 않도록 공정한―"


"길구만."



나도 모르게 내뱉은 말이 생각보다 크게 들렸다.


모두가 나에게 시선을 돌렸지만 부끄러운 감정 따위 느낄 리가 없었다.



"아, 미안하군요. 계속 하십시오."


"커흠, 두 사람의 아비 되는 이요 북부의 수호자인 프레델 아르프레이아 대공께서 허락하신 가운데···."



대공께서 허락한,


황제께서 용인한,


겨울의 정령들이 지켜보는,


그 뒤로도 이어지는 시시콜콜한 이야기가 끝이 나자 헤르첼은 나와 마르텔을 번갈아 바라봤다.



"두 사람 다 준비하십시오."



스릉.


검집을 빼들자 고개 내민 검날에 카르셀의 얼굴이 비쳤다.


퍽 잘난 그 얼굴이 입꼬리를 거만하게 비틀었다.



"하, 웃어?"



쩌저저적.



웃는 거 하나로 뭐가 그리 유난인지 마르텔은 제 주변에 얼음 화살들을 생성했다.


숫자는 어림잡아 오십 개쯤 될 것이다.


그 정도는 받아들여지는 범위였는지 헤르첼은 어느 누구도 말리지 않았다.



"그럼 이 자리에서 선언하겠습니다―"



우우우웅.



주변의 소음이 잦아드는 가운데 나의 마력이 요란스레 시동을 걸었다.


두 눈은 차갑게 마르텔을 쏘아봤다.



육신도 장소도 전혀 다른 곳이었지만 왜인지 시야에는 그 장면이 겹쳐 보였다.


강력한 우승 후보였던 프랑스 선수,


첫 출전인 대한민국의 선수,


관중 모두가 상대편의 승리를 확신하던 그 장면 말이다.



나의 기억이 맞다면 상대와의 초전은 그 누구도 예상치 못 한 결말을 맞았다.



"―두 사람의 계승전이 시작되었습니다!"



시작.


그 말과 동시에 수십 여 발의 화살이 나에게 달려들었다.


나의 몸도 반사적으로 움직였다.


맹수의 이빨처럼 닥쳐오는 화살들 품으로 아무런 주저 없이 몸을 날렸다.



그리고,


정신을 차리니 나의 몸은 마르텔을 지나쳐 있었다.


아, 그랬군.


이번에도 결국 같은 결말을 맞은 것이다.



콰장창!



얼음 화살들이 바스러지며 투명한 파편이 비산했다.


털썩.


나의 뒤에 있을 마르텔의 몸은 허무하게 고꾸라졌다.


눈먼지가 흩날리는 가운데 역할을 마친 검을 납도했다.



모든 것이 그때와 같았다.


순식간에 끝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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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Episode 7. 황실 대학 (2) NEW 4시간 전 15 0 12쪽
18 Episode 7. 황실 대학 (1) 24.09.17 42 0 13쪽
17 Episode 6. 용살자의 유산 (完) 24.09.16 49 0 13쪽
16 Episode 6. 용살자의 유산 (2) 24.09.15 53 1 13쪽
15 Episode 6. 용살자의 유산 (1) 24.09.14 66 1 12쪽
14 Episode 5. 나보고 대학을 가라고? 24.09.13 68 2 13쪽
13 Episode 4. 승계전 (完) 24.09.12 71 2 13쪽
» Episode 4. 승계전 (2) 24.09.11 76 2 13쪽
11 Episode 4. 승계전 (1) 24.09.10 91 5 12쪽
10 Episode 3. 알케스 마르 뭐시기 (完) 24.09.09 90 2 13쪽
9 Episode 3. 알케스 마르 뭐시기 (4) 24.09.08 91 2 12쪽
8 Episode 3. 알케스 마르 뭐시기 (3) 24.09.07 101 2 12쪽
7 Episode 3. 알케스 마르 뭐시기 (2) 24.09.06 100 3 12쪽
6 Episode 3. 알케스 마르 뭐시기 (1) 24.09.05 113 3 12쪽
5 Episode 2. 북부는 최악이다. (完) 24.09.04 113 2 13쪽
4 Episode 2. 북부는 최악이다. (1) 24.09.03 124 2 15쪽
3 Episode 1. 나보고 입대를 하라고? (完) +1 24.09.02 145 3 12쪽
2 Episode 1. 나보고 입대를 하라고? (2) 24.09.02 155 3 13쪽
1 Episode 1. 나보고 입대를 하라고? (1) 24.09.02 196 4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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