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부 대공가의 괴팍한 검술 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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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밝은
작품등록일 :
2024.09.02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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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8 2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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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6 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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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3. 알케스 마르 뭐시기 (2)

DUMMY

알케스의 손자, 세르디히 마르비다르.


세르디히가 카르셀을 처음 만난 곳은 성인식을 치르기 전에 다닌 아카데미였다.



북부의 수호자 아르프레이아의 장남이다.


처음에 만났을 때는 감히 말도 붙이지 못 했다.



어쩌다 말을 걸게 된 이유는 카르셀이 생각 외로 온순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카르셀은 속된 말로 호구 같은 이였다.


다른 유력가의 자제들이 자신을 무시하더라도 카르셀은 바보처럼 너털지을 뿐이었다.


처음에는 그 모습이 답답하다 생각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세르디히도 카르셀을 얕잡아봤다.



대공가를 존중하는 이유는 강하기 때문이라고,


강하지 않은 카르셀은 존중할 필요 없다고,


스스로의 마음을 속여가며 다른 이들의 멸시에 동참했다.



그런데···.


그 호구 같던 카르셀이 헛소리를 하고 있었다.



"하, 네가 나한테 한 수 가르쳐 주겠다고?"



어이가 없는 기분이었다.


단 한 번.


아카데미 시절 카르셀은 단 한 번도 세르디히를 이기지 못 했다.



시대에 뒤처지는 검술을 사용한다지만 세르디히는 엄연히 속성을 지니고 있었다.


속성도 없는 반푼이가 이길 상대는 아니었다.



"못 본 사이에 자신감이 조금 붙었나 본데, 괜한 객기는 부리지 않는 게 좋을 거야."


"객기가 아니라 가르침이라 불러주게."


"아니, 네가 나한테 뭘 가르치고 그럴 입장이 아니라니까 그러네. 너는 그냥―!"


"말이 많군. 설마 두려운가?"



두렵다?


설마하니 그 말을 카르셀에게 들을 줄은 몰랐다.



"···전부 네놈이 자초한 거다."



세르디히는 한구석에 놓인 수련용 목검을 집었다.


하, 그래.


기분도 나빴는데 차라리 잘 된 일이었다.


대공가의 일원이라도 덤벼온 건 카르셀이니 꾸중을 들을 걱정도 할 필요 없었다.



"진검은 없나?"


"걱정 마라. 진검이 아니라도 너 정도는 순식간에 이길 수 있으니까."


"그래도 내 체면이 말이 아니지 않은가. 그리고···."



카르셀은 꾸역꾸역 목검으로 바꿔 들었다.


척 검 끝을 겨냥한 카르셀은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나중에 져놓고 딴 소리를 하는 것도 볼썽사납거든."


"이 새끼가 진짜···."



빠득 이를 갈고 목검을 움켜쥐었다.


지긋지긋하게 휘두르던 목검의 감촉이 불쾌했다.


그보다 더 불쾌한 것은 눈 앞에 있는 카르셀이었다.



'도대체 뭐지, 저놈?'



급변해 버린 성격보다도 검을 쥔 자세가 놀라웠다.


자신 또한 수련을 했던지라 알아볼 수 있었다.


카르셀의 자세에는 빈틈이랄 것이 보이지 않았다.



"왜 그러나? 순식간에 이긴다던 놈은 다른 놈이었나보지?"


"이 새끼···."



좋다.


긴장은 이만 관두기로 했다.



못 보던 사이에 검술 실력을 길렀더라도 자신에 비할 바는 결단코 아닐 터였다.


검을 잡아 온 지 십수 년이 지났다.


급하게 얻은 조잡한 검술 따위에 겁을 먹을 세르디히가 아니었다.



그리고,


도발에는 도발로 응수하면 되는 것이다.



"선공은 양보하지. 먼저 덤벼라."


"친절하시군."



카르셀은 기꺼이 도발에 응했다.


빈틈이 없던 자세를 뒤바꾸자 예사롭지 않은 발놀림이 이어졌다.



변칙적이면서도 경쾌한 몸짓···.


움직임을 읽기 어려웠다.



'뭐?'



카르셀의 모습이 한 순간에 사라졌다.


콰직!


사라졌다고 생각했더니 틈을 비집고 들어왔던 것이다.


묵직한 일격이 세르디히의 목검을 강타했다.



막은 것은 오로지 본능이었다.


수만 번의 연습이 없었다면 막지 못 했을 속검이다.



"나쁘지 않구만."





캉! 캉!


카르셀의 연격이 쉴 틈 없이 이어졌다.


놀랄 만큼 빠른데도 한 번의 일격이 초격처럼 묵직했다.


간신히 막고 있는 자신의 손목이 저릿할 지경이었다.



'저, 정말로 이놈이 카르셀이라고?'



하루 이틀로 얻을 수 있는 검기(劍技)가 아니었다.


심지어 그 검기는 시간이 갈수록 날카로워지고 있다.


발전한다?


아니, 되찾고 있다는 표현이 적절할 것이다.



십 년···.


어쩌면 그보다 더 오랜 시간을 광기에 맡겼던 무인의 감을 말이다.


검술만으로는 명백히 자신보다 위였다.



콰직!


"큿!"



몰아치는 카르셀의 연격에 쥐고 있던 목검이 꼴사납게 나가떨어졌다.


카르셀의 무딘 검 끝이 물 흐르듯 목을 스쳤다.



진검이었다면,


대련이 아닌 실전이었다면,


자신은 그것으로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



"이래도 선공을 양보할 셈인가?"


"이게···."



세르디히는 이를 갈고 땅에 떨어진 목검을 주웠다.


그래, 인정한다.


무슨 수를 썼는지는 모르지만 카르셀의 검기는 자신을 능가했다.



물론 고작해야 검술일 뿐이었다.


검술만으로는 도달하지 못 할 경지를 세르디히는 질릴 만큼 보아왔다.



바로 마법이다.



"···말했지? 다 네가 자초한 거라고."



세르디히는 마력을 조작하기 시작했다.



* * *



소싯적에는 실전 감각을 익히고자 대련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자랑은 아니지만 동네 도장에는 적수가 될 만한 이가 존재하지 않았다.



모두가 나를 최고라 인정했다.


누군가 듣는다면 우쭐거린다고 하겠지만 고백하건대 그것만큼 피곤한 자리는 달리 없었다.



최고는 언제나 도전을 받는다.


그 중에서도 객기 넘치는 신입들은 상대하기 가장 까다로운 부류였다.


실력은 보잘 것 없으나 정도를 못 지켰기 때문이다.



그놈들은 조금만 골려주면 제 화에 못 이겨 눈빛을 뒤바꾼다.


아, 그래. 딱 저런 눈이다.


눈 앞에 있는 청년처럼 동공이 풀린 채로 흔들리는 그 눈 말이다.


그런 놈들은 하나 같이 이성을 잃어 위험하다.



쩌저적. 쩌저적.



청년의 목검에 연푸른 빛이 감기더니 날카로운 서릿발들이 표면을 뒤덮었다.


흉흉한 얼음 가시 위로 새하얀 김이 솟아올랐다.


차가운 가시인가···.


스치기만 하더라도 치명상을 입을 터였다.



우우우웅.


'응?'



청년의 뒤꿈치에 연푸른 빛이 모여들었다.


아, 그런 거구만.


대번에 무엇을 하려는지 알아보았다.


집사 놈이 설명해 준 것처럼 마력의 반발력을 응용하려는 것이다.



콰직!



용수철처럼 들이닥친 일격을 간신히 반응하여 막아냈다.


우두둑 목검에서 불길한 소리가 들려왔다.


빈틈없이 뒤덮여 있는 서릿발도 문제였다.


어찌저찌 목검만으로 막아내는데 성공했지만 조금만 늦었다면 눈구멍을 찔렀을 것이다.



우우웅.



이런, 청년의 뒤꿈치가 다시 한 번 일변했다.


검을 맞댄 채로 달려들어 목검을 부숴버릴 생각이다.


가만히 있다가는 얼음 꼬치가 될 판이었다.



뻐억!



청년의 복부를 발로 차고 서둘러 옆으로 몸을 틀었다.


목표를 상실한 청년의 진격은 눈맞고 서 있던 나무 인형을 향했다.



콰득!



세상에, 일격으로 나무 인형이 작살났다.


조금만 늦었다면 작살난 것은 나였을 것이다!



"하, 이걸 피하네."



언어.


인간만이 지니고 있는 이성의 증거였지만 안타깝게도 청년의 눈은 짐승의 것과 닮아 있었다.


나를 죽이는데 망설임은 없을 것이다.



큰소리 쳐놓고 무안하지만,


진검으로 상대해야 될 듯했다.



우우우웅!



청년의 뒤꿈치에 다시 한 번 마력이 모였다.


지금까지보다 그 빛이 강한 걸 보면 이번에야 말로 끝장을 낼 작정이다.



진검!


우선은 진검이 먼저다!



나는 급히 땅바닥에 떨구어 둔 진검을 향해 달려갔다.


순식간에 달려 나간 덕에 손만 뻗으면 닿을 거리였다.


문제는 청년이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느덧 청년은 지면을 박차고 가시들을 앞세우며 닥쳐오고 있었다.


한 발 먼저 검을 잡았지만 피할 수 있는 자세가 아니었다.


남은 수는 오로지 방어뿐이다.



충격을 어느 정도 상쇄시키고자 두 손으로 움켜쥔 검을 횡으로 그었다.


서걱.



'서걱?'



예상했던 소리와는 다른 것이 귓가를 찔렀다.


나의 검은 쉽사리 서릿발을 헤치고 나아가 목검마저 무시하고 청년의 목에 달려들었다.



이런, 궤도를 바꾸기에는 거리가 너무 근접했다.


이대로라면 청년의 머리가 달아날 위기였다.



뻐억!


"커헉!"



벨 거라 예상했던 청년의 머리가 무언가에 얻어맞고 지면에 처박혔다.


나의 검은 허공을 그었다.


한 발 늦게 뒤따르던 청년의 머리칼만이 검날에 잘려 나가 공중에 흩날렸다.



"방금 그건···."



노인네의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알케스 마르 뭐시기.


청년의 목숨을 구한 것은 고집스러운 할아버지였다.



알케스라는 노인네는 큼직하게 눈을 뜨고 나와 청년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경악, 호기심.


자신의 손자를 죽일 뻔했는데도 노인의 눈에는 노기가 보이지 않았다.


그것은 순수한 무인의 눈이었다.



선조로부터 계승 받고,


한평생을 일구어,


끝끝내 완성해낸 자신의 기술을 이어갈 존재.


노인의 두 눈을 밝히고 있던 감정은 그 존재를 발견한 것에 대한 가슴 벅찬 환희였다.



* * *



마르비다르는 예로부터 검술로 명성을 떨쳤다.



연푸른 검성, 철의 영웅, 서릿발의 도살자···.


북부를 넘어 제국 전체를 호령하던 걸출한 영웅들도 적지 않게 배출했다.



그 사실은 알케스의 긍지이자 원동력이었다.


지금이야 세간에서 괴짜 가문이라 떠들어대지만 알케스의 귓가에는 들리지 않을 아우성이었다.



그래.


세간의 평가라면 들리지 않았을 터였다.



대학에 보냈던 손주 놈이 불과 일주일 전 가문의 성에 돌아왔다.


한 손에는 치욕스러운 퇴학 통보를 쥐고 있는 채였다.



세간의 평가 따위 신경 쓸 필요 없다고,


가문에만 충실하면 그만이라 말해주었다.



손주 놈은 자신처럼 뻔뻔하지는 않았는지 검술 따위는 쓸모없는 미개의 기술이라 모욕했다.


자신은 할아버지처럼 구닥다리가 되기 싫다며,


지금부터라도 검술을 관두고 마법사가 되겠다 선언했다.



숨이 턱하고 막히는 기분이었다.


세간의 평가 따위 귀 기울이지 않았거늘 손주 놈의 한마디는 비수처럼 박혔다.



그 뒤부터 망자처럼 모든 열정이 차게 식었다.


하루도 빼놓지 않았던 검술 훈련을 그날 처음으로 거르게 되었다.



검을 비롯해 모든 것이 무의미하다 느껴졌다.


난데없이 찾아온 대공가의 장남조차 쓸데없는 일을 하려 애를 쓴다 생각했다.



마력 조작은 인정하지만 속성이 없는 반푼이였다.


속성을 활용하는 손주 놈보다 못 한 놈 따위 신경 쓸 필요도 없다고 여겼었다.



그런데···.


식어버린 열정을 다시 한 번 불태운 것은 업신 여기며 무시하던 대공가의 장남이었다.



"대공자, 방금 설마···."



카르셀이 벤 서릿발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서릿발만을 벤 것이 아니라 마법 그 자체를 베어버린 것이다.



그리고 그 검술.


북부의 검술과는 결이 달랐지만 카르셀의 검술은 더없이 유려했다.



손주 놈의 재능도 결코 못나지는 않았다.


퇴학당했다고는 했다지만 검술을 기반으로 황실 대학에 입학한 인재다.



그런 손주를 검술만으로 압도했다.


심지어는 속성을 쓴 손주와도 대등한 실력으로 겨루었다.


자신의 기술이 순풍을 더한다면 마법을 베는 재능이 없더라도 높은 경지에 이를 자였다.



"하, 그랬구만."



아드레이가 끈덕지게 봐달라는 이유가 있었다.


단 한 번 본 것만으로 열정이 타올랐다.



그 순수했던 어린 시절,


선조들의 영웅담을 들었었던 그때처럼 말이다.



"대공자, 아니, 카르셀 아르프레이아."



알케스는 서서히 고개를 숙였다.


손주 놈의 두 눈이 휘둥그래졌지만 지금만큼은 이 열정을 잠재울 수 없었다.



"오후에 있었던 무례를 사과하지."



누군가의 앞에서 고개를 숙여본 것은 오랜만이었다.


전쟁의 공훈으로 선대 여왕을 만난 것이 알케스가 기억하는 마지막 예우였다.



알케스는 고개를 들었다.


"본론으로 들어가서, 자네의 검술을 보았네. 그리고 그, 신묘한 능력도."


"저도 보았습니다. 감지하지도 못 할 거리에서, 순식간에 달려온 것을요."



손주 놈을 구했을 때의 마력 조작을 말하는 듯했다.


당돌한 놈.


마침맞게 카르셀도 같은 생각인 모양이다.



"그 기술, 그리고 북부식 검술. 내가 알려줄 수 있는 것들은 고작 그런 것뿐이라네. 하지만···."



방금 보았던 카르셀의 검기를 떠올렸다.


그것과 자신의 기술이 한데로 합쳐진 모습을 상상했다.



아, 그래.


어릴 적에 공상했던 영웅의 모습이 그려졌다.



검 하나로 악마를 때려잡고,


북부를 넘어 제국을 호령하는,


꿈꿔왔던 영웅의 재목이 눈 앞에 있었다.



"장담하겠네. 자네의 검술은 더욱 더 발전할 걸세. 그러니 나의 제자가 되지 않겠는가?"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자신의 고집을 꺾은 사람은 말이다.


그리고 처음이었다.



"좋지요, 대신 한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자신의 제안에 조건을 단 사람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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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Episode 7. 황실 대학 (2) NEW 4시간 전 15 0 12쪽
18 Episode 7. 황실 대학 (1) 24.09.17 42 0 13쪽
17 Episode 6. 용살자의 유산 (完) 24.09.16 49 0 13쪽
16 Episode 6. 용살자의 유산 (2) 24.09.15 53 1 13쪽
15 Episode 6. 용살자의 유산 (1) 24.09.14 65 1 12쪽
14 Episode 5. 나보고 대학을 가라고? 24.09.13 68 2 13쪽
13 Episode 4. 승계전 (完) 24.09.12 71 2 13쪽
12 Episode 4. 승계전 (2) 24.09.11 75 2 13쪽
11 Episode 4. 승계전 (1) 24.09.10 91 5 12쪽
10 Episode 3. 알케스 마르 뭐시기 (完) 24.09.09 90 2 13쪽
9 Episode 3. 알케스 마르 뭐시기 (4) 24.09.08 91 2 12쪽
8 Episode 3. 알케스 마르 뭐시기 (3) 24.09.07 100 2 12쪽
» Episode 3. 알케스 마르 뭐시기 (2) 24.09.06 100 3 12쪽
6 Episode 3. 알케스 마르 뭐시기 (1) 24.09.05 112 3 12쪽
5 Episode 2. 북부는 최악이다. (完) 24.09.04 112 2 13쪽
4 Episode 2. 북부는 최악이다. (1) 24.09.03 124 2 15쪽
3 Episode 1. 나보고 입대를 하라고? (完) +1 24.09.02 145 3 12쪽
2 Episode 1. 나보고 입대를 하라고? (2) 24.09.02 155 3 13쪽
1 Episode 1. 나보고 입대를 하라고? (1) 24.09.02 194 4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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