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부 대공가의 괴팍한 검술 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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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밝은
작품등록일 :
2024.09.02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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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8 2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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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8 2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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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3. 알케스 마르 뭐시기 (4)

DUMMY

스승과의 대련이 처음은 아니었다.


도장에서는 금세 적수가 없어진 터라 스승께서 나의 상대를 해야 했다.



그날 처음으로 깨달았다.


스승 역시 한 사람의 검사였다.


제자에게조차 지기 싫어하는 승부욕으로 뭉친 무인 말이다.



눈 앞의 알케스에게도 같은 것이 느껴졌다.


나이는 어림잡아 60이 넘었을 노인이었지만 따끔거리는 예기가 두 눈으로부터 쏟아져 나왔다.



그저 노인이라고는 부를 수 없는 상대다.


호적수.


눈 앞에 있는 이를 그렇게 판단해도 좋을 듯했다.



"선공은 양보하겠네."



아, 선공이라.


세르디히도 나에게 했던 말이다.


그 할아버지에 그 손자였다.



나의 검기를 지켜보고도 그런 도발을 한 것이다.


어지간히 제 실력에 자신이 있다는 의미였다.



"좋습니다. 그 말, 후회하지나 마십시오."



우우우웅.



마력을 조작하여 뒤꿈치에 집중시켰다.


검술을 배워가며 질풍의 연습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이제는 그 숙련도가 세르디히조차 넘어설 정도다.



무인으로서의 나의 영혼은 만족을 모르고 다음을 찾았다.


제 앞에 서 있는 알케스라면 달랠 수 있을 것이다.



"흡!"



마력을 해방하여 알케스에게 돌진했다.


질풍.


그 이름에 걸맞은 속도로 우리의 거리가 좁혀졌다.


알케스의 몸이 사정거리에 들어오자 나는 가슴을 노리고 목검을 찔러 넣었다.



콰직!



좁다란 목검의 끝이 알케스의 것에 가로막혔다.


쉽지 않을 것은 예상한 바였지.


곧바로 자세를 바꿔 저돌적인 연격을 이었다.



캉! 캉!



질풍의 숙련도는 알케스가 나를 앞선다.


대련에서 승리하려면 비등비등한 검술 승부로 몰고 가야 한다.



"착각하는구나. 질풍은 그저 재빠른 이동기가 아니야."



이동기가 아니다.


그 말을 증명하듯 알케스의 검이 엉뚱한 곳에서 날아들었다.



캉!



본능적으로 막아는 냈지만 준비되지 않은 자세라 손이 저릿했다.


하, 그래, 그런 거군.


무슨 수를 썼는지는 대번에 눈치챘다.



마력을 뒤꿈치가 아닌 팔 어딘가에 모은 것이다.


그 탓에 본래라면 읽을 수 있을 검의 궤적이 예상치 못 한 방향에서 닥쳐올 수 있었을 터였다.



"조금 치사하지 않습니까?"



그런 쓰임새로 사용한다는 건 들어본 적도 없었다.


그 뿐만 아니라 잘만 활용하면 무궁무진한 형태로 발전시킬 수 있을 터였다.



"그런 것치고는 기뻐 보이는구만."


"기쁘지요. 모르는 게 있다는 건 그만큼 내가 발전할 수 있다는 뜻이니."


"하, 자네는 역시 내 과야."



캉! 캉!



알케스의 연격이 다시금 이어졌다.


나는 오로지 본능만으로 몰아치는 검격들을 막아냈다.


저릿 저릿 요란한 통증들이 목검을 타고 흘러와 손목을 괴롭혔다.



질풍의 도움으로 강화된 공격이다.


팔이 부러지지 않으려면 막을 것이 아니라 흘려야 했다.



"허, 벌써 대응하는군?"



알케스의 검을 흘려내는 족족 생겨난 빈틈에 반격을 찔러 넣었다.


불리했던 양상이 차츰 대등하게 흘러갔다.



캉! 캉!



목검들이 부딪히며 서로를 향해 으르렁댔다.


그래, 이런 감각이다.


대등한 호적수와 검을 맞대는 감각···.


첫 번째 스승과의 대련에서만 느낄 수 있었던 기분 좋은 고양감이 온몸을 감싸 안았다.



하지만···.


대등한 것만으로는 알케스를 이길 수 없었다.



우우우웅.



나는 마력을 두 팔에 집중시켰다.


지금까지의 연격으로 충분히 보았다.


지금이라면 어설프게나마 따라 할 수 있을 터였다.



콰직!



질풍처럼 날아든 검날이 알케스의 것을 물어뜯듯 강타했다.


여유가 머물던 알케스의 얼굴에 경이라는 두 글자가 선명하게 떠올랐다



"바, 방금 그건?"



알케스가 보여준 질풍의 응용이었다.



* * *



처음으로 질풍을 검술에 응용한 것은 알케스의 할아버지이자 선대 가주였다.


그것을 이어받아 지금의 형태로 만든 것은 오롯이 알케스의 노력으로 일구어낸 업적이다.



자부심이 담긴 기술이었다.


단언컨대 그것이라면 마법사 놈들에게도 뒤처지지 않는다.


손주인 세르디히도 질풍의 응용을 숙달했다면 퇴학 당하는 치욕 따위 겪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


분명 세르디히조차 숙달하지 못 한 영역이었다.



콰직!



아직은 어설프다.


어느 부위에 마력을 집중시켜야 할 지 감을 잡지 못 하는 듯했다.



캉!



실전에서 쓰기에는 어려운 숙련도다.


천재적인 검술 실력과 풍부한 경험으로 억지로 비틀어 쓴다는 인상에 가까웠다.



날 것.


빗대자면 익히지 않은 생고기를 게걸스레 뜯어 먹는 맹수의 모습이다.



콰직!


"크흣."



그러나 틀림없이 질풍의 응용이다.


자신조차 정립하기까지 몇 년이 걸린 기술을 흘긋 본 것만으로 따라 한 것이다.


카르셀 아르프레이아.


다시 한 번 그 천재성이 경이롭게 느껴졌다.



우우우웅.



알케스는 질풍을 발동시켜 거리를 벌렸다.


뒤쫓아 오는 카르셀의 눈이 흉흉한 기세를 품고 있다.



살의?


순간 그렇게 착각할 만큼이나 날카로운 눈빛이었다.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것은 다시 한 번 검을 맞댔을 때였다.



카앙!



맞부닥친 검을 타고 감정이 전해졌다.


카르셀은 오로지 기쁨만을 품고 있었다.



자신의 검술을,


새로 배운 기술을,


봐줄 필요 없이 쏟아내는 것이 어지간히도 기뻤던 것이다.



'세르디히로는 부족했다고 항의하는 건가?'



당돌한 놈.


알케스는 피식 웃고 검 자루를 꽉 쥐었다.



그래, 좋다.


제자가 그리도 기뻐하는데 물러설 스승은 어디에도 없었다.



캉! 캉! 캉!



두 사람의 목검이 서로를 향해 달려들었다.


목검끼리 부딪히는 둔탁한 소음이 쏟아졌다.


서로의 검이 소리치는 기분이었다.


승리는 한사코 내어줄 수 없다며 말이다.



'하, 그나저나 이 녀석···.'



카르셀의 검기가 시간이 갈수록 날카로워졌다.


괴물 같은 천재 놈.


대련 도중에 감을 잡고 있는 것이다.



질풍의 응용.


그 숙련도가 처음보다 눈에 띄게 올라갔다.


아직은 서툰 점이 몇 가지 눈에 띄지만 이정도면 실전에서도 문제 없이 사용 가능하다.



'잡아먹히는 기분이구만.'



마르비다르의 검술을 탐욕스레 먹어 치우더니 이제는 자신의 감각마저 집어삼키려 들고 있다.


전부 집어삼킨다면 거들떠도 보지 않고 떠날 것이다.


함께 지낸 지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카르셀 아르프레이아는 그런 인간이다.



우우우웅.



알케스는 뒤꿈치에 마력을 집중시켰다.


미안하지만 아직은 제자에게 져줄 생각이 없었다.



카앙!


초격을 시작으로 연격을 이었다.


캉! 캉!


거듭되는 거친 공세에 노쇠한 근육이 비명을 질렀다.


주룩.


단단히 쥔 검자루에 진득한 피가 흘러내렸다.



검을 쥔 손이 엉망이 된 듯했지만 아픔은 일체 느껴지지 않았다.


바라는 것은 오로지 승리뿐이었다.



콰직!



두 사람의 검이 최후의 승부에 나섰다.


맞부닥친 검은 한 치의 양보 없이 서로를 불사르려 제 몸을 불태웠다.


그 순간 소음은 사라지고 심장의 고동만이 정적을 좀먹었다.



우지직.



규칙적인 박동 사이로 좋지 않은 소리가 거슬렸다.


두 사람보다 한 발 먼저 목검이 한계를 맞은 것이다.



조금 더, 제발···.


간절히 바랐으나 결국 그 순간은 찾아왔다.



콰득!



두 사람의 목검이 동시에 부러졌다.


됐어, 그 정도 즐겼으면 충분했지.


승부의 여운을 느끼는 사이에 손주 놈의 외침이 들려왔다.



"둘 다 멈추십시오!"



멈추라고?


그제야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깨달았다.


날아간 목검의 날을 붙잡고서 카르셀을 찍으려 하고 있었다.



카르셀도 마찬가지였다.


부러진 목검을 단단히 쥐고서 자신의 목을 노리고 있었다.



서로가 서로의 목숨을 탐하던 순간···.


털썩.


카르셀의 몸이 한발 먼저 쓰러졌다.


내리 찍으려던 목검은 다행히 허공을 긋다 기세를 잃었다.



"하아, 하아···."



거친 숨을 몰아쉬고서야 서서히 이성이 되돌아왔다.


그제야 무슨 일인지 파악이 되었다.



파르르 떨리는 전신의 근육.


피가 맺혔지만 부드러운 손바닥 피부.


놀라운 검기 탓에 착각하고 있었지만 카르셀의 신체는 단련이 부족했다.



기껏해야 3주.


즉, 카르셀이 이곳에 도착한 뒤에야 신체를 단련하기 시작했으리라 추정됐다.



'허, 그런 몸으로 나와 대등하게 싸운 건가?'



속성을 쓰지 않았다지만,


전성기가 지나간 노쇠한 몸이라지만,


알케스는 엄연히 한 가문의 가주였다.


단련조차 안 된 몸으로 비등이 싸운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



그래.


분명 그것이 상식이다.



'카르셀 아르프레이아···.'



알케스는 쓰러진 카르셀을 내려다봤다.


정말이지 상식을 넘어서는 천재성이었다.



* * *



세르디히는 쓰러진 카르셀을 방으로 옮겼다.



마르비다르의 성의들이 분주하게 드나들었지만 하나 같이 입을 모아 과로라 진단했다.


과로···.


며칠을 내리 연습만 했으니 피로가 누적되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세르디히는 자고 있는 카르셀을 내려다봤다.


'정말로 카르셀이 맞는 건가?'



속성 없는 반푼이,


마법 둔재,


쓸 데 없는 노력가,


아카데미 시절 카르셀을 뒤따르던 별명이다.



누구나가 얕보았던 카르셀이다.


북부인인 자신조차 카르셀을 무시했다.



그랬던 카르셀이 알케스와 대등하게 겨루었다.


자신에게는 아직도 멀게만 느껴지는 조부와 말이다.



끼이익.



세르디히는 방을 나서 성 밖까지 걸음을 옮겼다.


하늘에는 추적추적 빗방울이 떨어졌다.



동부와 가까운 마르비다르는 북부에서 얼마 안 되는 비를 볼 수 있는 곳이다.


여름이라 할 수 있는 6, 7, 8월이 아니면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눈이 내리긴 한다.



세르디히는 주저 없이 빗속을 거닐었다.


차디찬 빗방울에 머릿속이 맑아졌다.



아, 그래, 그렇구나.



카르셀이 자신과 수련하겠다는 뜬금없는 조건을 내건 것이 이해가 됐다.


아주 오랫동안 잊고 있던 그 감정···.


검술을 좋아하던 어릴 적의 그 기억이 떠올랐다.



카르셀을 보다 보면 애쓰지 않아도 생각이 났다.



선조의 영웅담을 듣던 그때의 설렘이,


처음으로 검을 쥐던 그때의 기대가,


황실 대학에 합격하던 그때의 환희가,


새록새록 의식 위로 솟아올라 굳어 있던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그때는 참 순수했다.


검만을 쥘 수 있으면 그것으로 충분했다.



순수하게 검술을 좋아하는 카르셀을 보고 나니 깨달았다.


어느 순간부터 검신 위에 무언가를 더하고 있었다.



때로는 욕심을,


때로는 책임을,


때로는 제가 아닌 누군가의 기대를,


그렇게 무언가를 차곡차곡 얹어가니 어느덧 휘두르기 버거워진 것이다.



그래. 그러니 검술이 지긋지긋하지.



카르셀과의 검술 수련은 그 사실을 상기시켜 주었다.


아니, 카르셀이 상기시켜 준 것이다.


나중에라도 깨어난다면 감사 인사를 전해야 될 듯했다.



'응?'



걷다 보니 생각보다 멀리 나온 것을 깨달았다.


태양이 저문다면 북부의 추위가 덮칠 것이다.



돌아가자.


그럴 마음으로 몸을 틀으려니 문득 두 눈에 붉은 것이 걸렸다.



피.


새하얀 눈밭인지라 유난히 더 눈에 띄었다.



들짐승의 짓일 것이다.


마수가 흔한 곳이니 놈들이 남겨둔 흔적일지도 모른다.



무엇이든 신경 쓸 것은 아닐 터다.


무시하고 가려는데 목소리가 들려왔다.



"세르디히 마르비다르인가?"



고막을 떼어 긁는 듯한 오싹거리는 목소리였다.


듣는 것만으로 마력이 술렁댄다.


심상치 않은 인간임에 틀림없었다.



"누, 누구야!"



몸을 틀자 시야 안에 새하얀 것이 들어찼다.


악마?


순간적으로 착각할 만큼이나 인간의 요소가 희미한 존재였다.



형체는 분명 인간의 그것인데 피부는 창백하고 흰자위는 시커멨다.


무엇보다도 마력···.


그것에게서 느껴지는 마력은 명백히 악마의 것과 닮아 있었다.



"내가 누구인지는 알 거 없다. 그대가 세르디히인지 아닌지만이 나의 관심사지."



자신을 찾는 괴인.


마르비다르의 핏줄로서는 정체를 알아낼 필요가 있었다.



"···맞다. 무슨 이유로 나를 찾지?"



괴인은 대답 전에 손을 내밀었다.


방금의 피는 역시 그놈의 짓이었는지 창백한 손을 타고 핏물이 흘렀다.



뚝뚝. 뚝뚝.


괴인의 발치가 시뻘겋게 물들어 가자 마침내 괴인이 아가리를 벌렸다.



"세르디히, 마족이 되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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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Episode 7. 황실 대학 (2) NEW 4시간 전 15 0 12쪽
18 Episode 7. 황실 대학 (1) 24.09.17 42 0 13쪽
17 Episode 6. 용살자의 유산 (完) 24.09.16 49 0 13쪽
16 Episode 6. 용살자의 유산 (2) 24.09.15 53 1 13쪽
15 Episode 6. 용살자의 유산 (1) 24.09.14 65 1 12쪽
14 Episode 5. 나보고 대학을 가라고? 24.09.13 67 2 13쪽
13 Episode 4. 승계전 (完) 24.09.12 71 2 13쪽
12 Episode 4. 승계전 (2) 24.09.11 75 2 13쪽
11 Episode 4. 승계전 (1) 24.09.10 90 5 12쪽
10 Episode 3. 알케스 마르 뭐시기 (完) 24.09.09 89 2 13쪽
» Episode 3. 알케스 마르 뭐시기 (4) 24.09.08 91 2 12쪽
8 Episode 3. 알케스 마르 뭐시기 (3) 24.09.07 100 2 12쪽
7 Episode 3. 알케스 마르 뭐시기 (2) 24.09.06 99 3 12쪽
6 Episode 3. 알케스 마르 뭐시기 (1) 24.09.05 112 3 12쪽
5 Episode 2. 북부는 최악이다. (完) 24.09.04 112 2 13쪽
4 Episode 2. 북부는 최악이다. (1) 24.09.03 124 2 15쪽
3 Episode 1. 나보고 입대를 하라고? (完) +1 24.09.02 145 3 12쪽
2 Episode 1. 나보고 입대를 하라고? (2) 24.09.02 154 3 13쪽
1 Episode 1. 나보고 입대를 하라고? (1) 24.09.02 194 4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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