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부 대공가의 괴팍한 검술 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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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밝은
작품등록일 :
2024.09.02 11:18
최근연재일 :
2024.09.18 2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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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3 2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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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5. 나보고 대학을 가라고?

DUMMY

나는 지금 어느 때보다 울적했다.


그 이유는 승리의 공허함도 아니오 목표를 달성한 만족감도 아니다.


지긋지긋한 북부식 때문이다.



"도련님, 아직 식사가 반이나 남으셨습니다."


"남은 게 아니라 남긴 거네. 그 끔찍한 요리를 반이나 먹었단 말일세."


"남기시면 안 됩니다. 어제 그렇게 격렬하게 날뛰시지 않으셨습니까."



세상에, 집사 놈은 지난번 과로 이후부터 유난스럽게 나의 건강을 신경 썼다.


잔소리 하나만은 먼저 간 여편네 이상이다.



단언하건대 북부식을 계속 먹었다가는 못 먹는 것 이상으로 심한 병이 생길 터였다.


정신 이상 혹은 스트레스 과다.


그래, 둘 중에 스트레스 과다는 진작에 걸려버린 듯했다.



"나는 무엇이든 먹지 않을 권리가 있네. 그리고 대관절, 이 고기는 무엇인가!"



나는 불쑥 접시 위에 놓인 정체불명의 고기를 가리켰다.


고기···.


솔직히 그것을 고기라 불러야 할 지도 의문이었다.


표면은 탄 듯이 시커먼 색을 띄고 있는데 포크로 찔러보면 피가 한 웅큼 쏟아졌다.



그리고 누린내!


곰고기만큼은 아니었지만 이것 역시 누린내가 심했다.


평소처럼 밍밍한 간은 말하기도 입 아플 정도다.



"마수의 고기입니다."


"마수의 고기라고!"



마수라면 그 마차를 이끌던 괴상한 생물들일 터였다.


역시나 나의 짐작은 사실이었던 것이다.


북부식은 사람들의 정신을 오염시킨다!



집사 놈과 한동안 실랑이를 하고 식당 밖으로 나왔다.


고집으로는 누군가에게 꺾일 내가 아니었다.


그 마수의 고기인지 뭔지의 반 쪼가리는 집사 놈이 알아서 처리할 것이다.



"후우···."



한시라도 빠르게 위장을 비우고자 눈 덮인 성안을 거닐기 시작했다.


사흘.


치열하던 승계전으로부터 사흘이 지났다.



냉기에 휩쓸렸던 나의 왼 다리는 의외로 하루도 안 가 멀쩡해졌다.


성의라는 놈들의 치유 마법 덕분이다.


알케스가 있던 성에는 없었던 것을 생각하면 대공쯤은 되어야 그런 놈들을 부를 수 있는 모양이다.



그리고 그 어린 놈들.


마르텔의 친구 놈들은 시합이 끝나자마자 사과를 건네왔다.


듣자 하니 마르텔이 자신이 책임진다며 나를 향한 무례를 강요한 듯했다.


책임져야 할 마르텔은 장벽에 가게 생겼으니 부리나케 달려와 사과를 한 모양이다.



사과를 한 사람은 한 사람 더 있었다.


헤르첼 세르 뭐시기.


그 곰고기 양반은 잘못한 것도 없을 텐데 마르텔의 부정에 대해 고개 숙여 사과했다.


사과를 할 거라면 곰고기에 대해 했으면 싶었다.



저벅 저벅.



멀쩡한 왼 다리로 성안을 활보했다.


이틀 내리 느꼈지만 지나치게 고요한 곳이다.



10여 분쯤을 걷다 보니 그 이유를 알 거 같았다.


이곳에는 병사들이 없었다.


그래, 그러고 보면 헤르첼이나 알케스의 성에도 병사들의 수는 기묘하리만치 적었다.


병사가 있대도 대부분은 성곽을 지키는 감시병이었다.



"카르셀."



누군가 말을 걸어 뒤를 돌아보았다.


가주 양반.


오늘도 어김없이 멋들어진 콧수염이지만 수심이 가득한지 눈두덩이가 퀭했다.



이유는 짐작이 간다.


마르텔 그 어린 놈 때문이다.


승계전에서 꼴사납게 패배한 이후로 마르텔은 방에 틀어박혀 나오지를 않고 있다.


자식 사랑이 남다른 양반이니 그 사실이 괴로울 것이다.



"식사를 남겼다더구나."



간악한 집사 놈.


고새 또 쪼르르 달려가 보고를 한 모양이다.



"그랬지요. 마수의 고기라니, 그런 걸 먹을 바에야 혀를 씹어먹겠습니다."



진담으로 한 이야기인데 가주 양반은 웃었다.


뭐, 나라도 내 아들내미가 그랬다면 웃음을 터뜨리기는 했을 것이다.



"하긴 마수의 고기를 먹는 것은 우리 북부뿐이긴 하구나. 워낙에 척박하기도 하고, 마수가 많은 곳이니."



또 북부로군···.


역시나 이곳은 저주 받은 땅이었다.



"사실 간이 싱거운 것도 문제였습니다. 설마하니 북부 사람들은 짠 음식을 싫어한답니까?"


"추운 지방이다 보니 싱겁게 먹는 편이긴 하다만, 비단 그런 문제만은 아니란다."


"다른 문제가 있습니까?"



가주 양반은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활기를 찾았던 그 얼굴에 다시 깊은 수심이 깃들었다.



"소금의 주요 생산지는 서부거든. 하지만 옛적부터 북부와 서부는 사이가 좋지 않았지."


"지역 감정이로군요."


"그렇지. 더군다나 최근에도 갈등이 크게 있었거든. 그러다 보니 우리로서도 소금을 들여오기 어려워졌지."



과연, 북부식이 맛대가리 없는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던 것이다.


그것도 생각보다 복잡한 문제였다.



"그렇대도 이상하군요. 귀족이라면 그래도 어떻게든 구할 수 있는 거 아닙니까?"


"아니지, 귀족이기에 더 양보해야 하는 것이다. 잠깐 저곳을 보겠느냐?"



가주 양반이 가리킨 곳은 담벼락이었다.


넘어본 적은 없었지만 무엇이 있는지는 알고 있다.



"저 너머에는 우리가 지켜야 할 자들이 있다. 그들이 소금을 먹지 못 하는 한, 우리도 먹을 수 없는 법이지."



민가.


담벼락의 너머에는 민가가 펼쳐져 있다.


집사 놈에게 듣기로는 북부에서 가장 많은 이들이 가주 양반의 영지에 거주한다는 듯했다.



"언젠가는 나를 이어, 카르셀 네가 지키게 될 자들이다. 그때도 부디 이 마음을 잊지 말거라."



나는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가주라···.


사실 생각해 보지 않은 문제다.


승계전에 이긴 것으로 나의 악연은 정리된 셈이니 말이다.



이제 남은 염원은 오로지 하나뿐이다.


검사로서 최고가 되는 것 말이다.



"···어쨌거나, 북부식에 익숙해지지 않는다면 한 가지 방법이 있다."


"방법 말입니까?"



귀가 쫑긋했다.


북부식을 대처할 방법이라니,


지금의 나에게는 무엇보다 시급한 문제다.



"제도에 가는 것이다."


"제도?"


"그래, 중부에 있는 황제의 도시 말이다."



* * *



발디아르 제국.


대륙의 반을 차지한 그 융성한 제국은 광활한 토지를 지역에 따라 다섯 등분으로 나누었다.



북부의 아르프레이아,


남부의 엘베이그,


서부의 델리하르트,


동부의 네드발리.



각각의 지방은 수호자라 불리우는 그 지역의 대공가가 관리했다.


그 중에서도 중부를 관리하는 것은 제국의 황가인 그리프니아다.



"다섯 개의 지방 중에서도 가장 거대한 것이 북부다. 제국의 3분의 1은 북부라 봐도 좋을 정도란다."



가주 양반의 구구절절한 설명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그보다 발디아르!


지금에서야 내가 사는 땅이 무슨 나라인지 알게 되었다.


카르셀의 몸뚱아리를 차지한 뒤로 30일만에 이뤄낸 쾌거였다.



"···어찌 됐든 그 제도는 수도답게 많은 이들이 모이는 곳이다. 그만큼 다양한 음식들이 있는 곳이고."



서울을 생각하면 좋을 듯했다.


나의 고향 강원도 같은 지방뿐만 아니라 온 세계의 먹거리를 찾아볼 수 있으니 말이다.



"가는 건 상관 없습니다만, 승계 의식인지 뭔지를 치르는 거 아닙니까?"


"승계 의식은 전통적으로 겨울에 치른단다. 겨울의 정령들이 충만할 때 볼 거리를 제공하여 달래는 것이지."


"그렇군요."



겨울의 정령···.


이런 세상이 아니었다면 정신 나간 인간이라 생각했을 단어였다.



"사실 제도에 보내고자 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너의 능력에 대한 본질을 알아내기 위해서지."


"본질?"


가주 양반은 고개를 끄덕였다.


"북부의 수호자는 누구보다 강해야 한다. 그리고 본질을 아는 것은 강해지는 지름길이지."



최초의 검술 스승도 비슷한 말을 했었다.


나의 본질을 유추해 보자면 뻔뻔한 능구렁이가 아닐까 한다.



"그래서 그 본질은 어떻게 안답니까?"


"그 분야의 권위자에게 가야겠지. 내가 소개해 줄 이와 머무르며 연구해보면 된다."


"소개해 줄 사람?"



가주 양반은 머뭇거리며 머리를 긁적였다.


입술도 달싹이는 것이 말할지 말지 고민인 모양이다.



"그게, 황실 대학의 교수란다."



육시랄, 대학 가라는 소리잖아!



순간적으로 너무 놀라 마른 기침이 쏟아졌다.


비슷한 상황을 겪은 기분이지만, 단언컨대 그것보다 심각했다.



대학이라니,


나는 잠시 청년들 틈에 끼인 나의 모습을 상상했다.


세상에, 상상만 해도 갑갑하다!



"알고 있다. 기억에는 없더라도 마음에는 남았겠지. 그곳은 너에게 잊지 못 할 기억을 남긴 곳이니."



잊지 못 할 기억.


마르텔의 친구 놈이 말한 바에 의하면 카르셀은 이전에 지원 조건조차 안 되어 떨어졌다.


가주 양반이 말하는 건 그 기억이리라 짐작했다.



"하지만 너무 걱정하지는 말거라. 대학에 다니라는 것이 아니라, 머무르는 것뿐이야."


"아아, 그런 거면 다행입니다."



그런 거라면 최소한 청년들과 마주치지는 않을 것이다.


내 나이 오십에 청년들과 부대낄 수는 없었다.



"제도에 보내는 이유는 그것뿐만은 아니란다. 실은 그곳에 너의 부러진 검을―"


"가주님!"



집사 놈의 목소리가 넓은 안뜰에 울려 퍼졌다.


그보다 검이라고?


헐레벌떡 달려오는 집사 놈보다 그 사실이 궁금했다.



"무슨 일인가, 아드레이? 그렇게 급히 달려오고."


"그, 그게···."



이런, 궁금해 죽겠는데 대화가 돌연 딴 곳으로 흘러간다.


검!


나는 무엇보다 그것이 궁금했다!



"천천히 말해보게, 무슨 일인데 그런가?"


"마, 마르텔 도련님이···."


"마르텔이?"


"마르텔 도련님이 사라지셨습니다!"


"···뭐?"



아, 그렇군.


아무래도 검에 대한 이야기는 나중에 물어야 될 듯했다.



* * *



나는 집사 놈과 가주 양반과 함께 마르텔의 방으로 찾아갔다.


먹지 않은 음식들이 방문 앞에 놓인 것이 실의에 빠진 어린 놈은 식사마저 거른 모양이다.


아니지, 다시 생각해 보니 마족의 고기라면 나라도 거를 듯했다.



"언제부터 안 보였나?"


"그게, 점심 식사를 건네드릴 때만 해도 분명히 방안에 계셨습니다."



점심 식사!


그 말에 생각이 번뜩였다.



"혹시 요놈한테도 마족 고기를 주었나?"


"네, 맞습니다."



하, 역시나 그랬군.


원인은 바로 마족 고기다.


나 같아도 그런 음식을 먹으라고 준다면 집 구석을 뛰쳐나가 돌아오지 않을 터였다.



"요새 통 기운이 없으셔서, 마르텔 도련님이 제일 좋아하는 음식으로 준비해 드린 건데···."


"···그랬구만."



나의 짐작이 틀린 모양이다.


그보다 그런 걸 제일 좋아한다니, 정신 머리의 문제일 수도 있겠다.



프레델이 입을 열었다.


"승계전에 진 게 분해서 나간 것은 아닌가? 예전에도 혼이 나면 툭하고 나가곤 했으니."


"하기야 여름도 다가왔으니 밖에서 지내기에는 불편함이 없을 것입니다."



밖에서는 눈이 내리고 있었다.



"그런 걸 지도 모르겠군. 어릴 적에도 이런 날씨에는 노느라고 밤 늦게 돌아왔지 않은가."


"지금이라면 바람만 피해도 잘 수 있을 것입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창밖에는 눈이 내렸다.


그것도 차츰 거세지는 중이다.



두 사람의 대화를 듣다 문득 의문이 들었다.


"아드레이, 자네는 마르텔이 사라진 사실을 어떻게 발견했나?"


"문 앞에 식사가 그대로 있길래, 걱정되어 들어가 봤습니다."


"식사를 놓았을 때도 지금과 같은 위치였나?"


"그렇습니다. 문을 열면 곧바로 발견할 수 있도록 해두었습니다."



과연,


그것으로 대강의 의문이 풀렸다.



"아마도 혼자서 가출한 건 아닌 거 같습니다."



한마디를 툭 던지고 창가로 걸어갔다.


창가에는 소복이 눈이 쌓여 있었다.



"여기 쌓인 눈들, 반쯤은 얼어있는 것을 보면 내린지 꽤 된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눈이 내린 것은 어제 아침이었다.


새삼스레 북부인들의 정신머리가 의심스러웠지만 중요한 것은 창문이 열리지 않았다는 점이다.



"다른 창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두 쌓인지 오래된 눈들만 쌓여 있지요."


"그것이 무언가 관련이 있느냐?"


가주 양반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창문이 열리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저희가 올 때까지는 문 역시도 열리지 않았고요."



집사 놈이 식사를 준비한 것은 점심이라 말했다.


그리고 그때까지는 마르텔이 있었다.



식사는 우리가 도착할 때까지 고운 상태를 유지했다.


그 싸가지 없는 어린 놈이라면 가출을 결심했을 때 문을 박차고 나갈 것이다.



"즉, 마르텔은 문을 열지 않고 이곳을 빠져나간 겁니다. 그놈 속성은 냉기이니, 아마도 다른 놈이겠죠."



밀실.


미스터리 소설의 단골 소재지만 안타깝게도 이 세상은 판타지였다.



가주 양반이 나의 의도를 눈치챘다.


"마법! 그렇군. 하지만···."


"공간을 이동하는 속성은 없습니다."



집사 놈이 단언했다.


하기야 그런 것이 있었다면 누구도 마차를 타지 않았을 것이다.



"아니, 그런 속성은 존재하지 않지만 비슷한 수단은 존재하지."


"예? 아, 맙소사···."


"그래···."



가주 양반은 창밖을 바라봤다.


눈 내리는 설원, 그보다 멀리에 있는 어딘가를 바라보는 눈이다.



"마굴. 그 괴인이라는 놈은 분명 자유롭게 마굴을 드나들 수 있었어···."



마굴.


악마들이 사용한다는 단방향 통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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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Episode 7. 황실 대학 (2) NEW 4시간 전 15 0 12쪽
18 Episode 7. 황실 대학 (1) 24.09.17 42 0 13쪽
17 Episode 6. 용살자의 유산 (完) 24.09.16 49 0 13쪽
16 Episode 6. 용살자의 유산 (2) 24.09.15 53 1 13쪽
15 Episode 6. 용살자의 유산 (1) 24.09.14 65 1 12쪽
» Episode 5. 나보고 대학을 가라고? 24.09.13 68 2 13쪽
13 Episode 4. 승계전 (完) 24.09.12 71 2 13쪽
12 Episode 4. 승계전 (2) 24.09.11 75 2 13쪽
11 Episode 4. 승계전 (1) 24.09.10 91 5 12쪽
10 Episode 3. 알케스 마르 뭐시기 (完) 24.09.09 90 2 13쪽
9 Episode 3. 알케스 마르 뭐시기 (4) 24.09.08 91 2 12쪽
8 Episode 3. 알케스 마르 뭐시기 (3) 24.09.07 100 2 12쪽
7 Episode 3. 알케스 마르 뭐시기 (2) 24.09.06 99 3 12쪽
6 Episode 3. 알케스 마르 뭐시기 (1) 24.09.05 112 3 12쪽
5 Episode 2. 북부는 최악이다. (完) 24.09.04 112 2 13쪽
4 Episode 2. 북부는 최악이다. (1) 24.09.03 124 2 15쪽
3 Episode 1. 나보고 입대를 하라고? (完) +1 24.09.02 145 3 12쪽
2 Episode 1. 나보고 입대를 하라고? (2) 24.09.02 155 3 13쪽
1 Episode 1. 나보고 입대를 하라고? (1) 24.09.02 194 4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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