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발짝 더
3. 한 발짝 더
철 대문 너머로 무겁게 한 발딛는 그는,
좀 전까지 나약해 보이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기운이,
주변의 모든 것을
작아 보이게 하는듯 위풍당당했다.
전혀 망설임도,
작은 흔들림도 그에게는 보이지 않았다.
오직 자신에게 닥친 현실만을 직시하고,
움직이는 듯 현관문을 열고 들어선다.
눈앞에서 해맑은 웃음을 띠고, 수석을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볼몽이 이름을
연신 부르고 있을 뿐
볼몽아, 볼몽아 어서 변해야지. 볼몽아
준호는 헤나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볼몽이가 외 애완동물인지, 어떻게
이곳에 오게 되었는지, 엄마는 언제
오시는지, 어린아이 대하듯이 차분한
음성으로 헤나에게 말을 건넨다.
헤나야
볼몽이는 외 동물인데, 내가 보기에는
그저 돌로 보이는데.
내가 사는 곳에서는 동물인데, 이곳에
환경에서는 살 수가 없어서
돌덩이로 변한 거야.
우와, 헤나의 애완동물은 변신도 할 수 있구나,
그러면 헤나는 이곳에서 살 수 있는데,
왜 볼몽이는 이곳에서 못 살까?
어그 멍충이, 당연히 볼몽이는
동물이니까,
다른 행성의 환경에서는 살수가 없고,
나는, 나는~ 그러니까~
그러니까~
그게~ 그러니까~
준호는 헤나가 충분히 생각하고 대답할 수
있게, 계속 기다려 주는데
음~
준호의 바램과는 달리, 헤나는 대답을
포기하고,새침한 얼굴로 볼몽이에게
고개를 돌리고는
볼몽아,
다 큰 어른이 그런 것도 몰라서, 아직
어린이인 나에게 물어보고, 다른 어른들은
다 아는데 그치 볼몽아.
준호는 어이없는 표정을 하고는, 양손을
자신의 머리 위에 얹으며 고개 들어
신음에 가까운 한숨을 쉬는데
아저씨는 어른이 되어서 아직 9살밖에
안 된 나에게 그런 어려운 걸 물어보면
나는, 나는, 뭐 됐고 어른이면 어른다운
질문을 해야지. 흥
당당하고, 새침한 헤나와 달리, 준호는
입을 다물지 못하고, 말을 더듬어가며
헤, 헤나야
자,자, 잠시만 아저씨가, 헤나, 헤나에게
할 말이 있어 아저씨 얘기를 차분히
들어 주면 안 되겠니?
얘기 해봐.
준호는 잠시 호흡을 돌리고
아저씨는 헤나에 대해서 알고 싶어 질문을 하는거야.
헤나가 모를 수도 있고, 아저씨도 모를 수
있어,
하지만 헤나가 아는지 모르는지 아저씨는
알 수가 없어, 그러니까
아저씨가 물어보면, 아는 대로 대답해
줄 수 있겠니?
헤나는 골또리 생각하다, 입가에 미소를
보인다.
응,
알았어.
그래 헤나야, 좀 전에태어난 지 9살 됐다고
했니?
응,
여기 나이로 9살 하고도, 응~ 뭐더라,
여기 말로는 363일 정도 됐어.
준호는 헤나의 대답을 나름대로 해석을
해가면서 골또리 생각을 한다.
아저씨 왜그래, 어디 아파?
어, 아니야.
헤나가 좀 있으면 10살 되는구나, 혹시
엄마는 이곳에 어떻게 오시니?
엄마는 내가 없으면 내가 있는 곳으로
공간 이동해서 나랑 볼몽이를 댈고
갈 거야.
헤나는 좋겠네, 헤나 없으면 엄마가
찾으러 오고, 엄마는 언제쯤이면 데리러
오실까?
음~
고개들어 골똘히 뭔가를 생각 하던
헤나는 고개가 조금씩 밑으로 쳐지더니
표정이 시무룩 해진다.
모르겠어, 루한나무르 행성에서 는
알았는데, 여기에서는 이상해졌어,
시간 계산을 못 하겠어.
시간 계산?
응.
잠시동안 뭔가를 생각하더니, 준호는 뭔가
떠오른 듯 표정이 밝아 지는데.
맞네. 누한나무르 행성과 지구의 자전
속도가 다르고, 중력이 다르니까.
혼잣말로 떠들더니, 마치 대단한 걸
알아낸 듯 호들갑을 떤다.
아저씨, 아저씨~이.
왜, 왜 그래.
내가 아니고 아저씨가 왜 그러는데,
정신없이 웃으면서 왔다, 갔다, 앉았다
이러셨다 뒤로 돌았다가,
왜 그러는데.
좀 전에 시간 계산을 모르겠다고 했지,
아저씨가 소년원에 있을 때, 선생님이
가르쳐 줬어, 상대성이론에 대해서.
소년원?
헤나의 말에 아차싶어 다시 말을하는데
아니 소년원이 아니고, 소년, 원, 정
대학이라는 대학교.
소년이 대학에 다녀?
하, 하
헤나가 이곳에 대해서 잘 몰라서
그러는데, 이곳에서는 소년들 중에서
똑똑한 애들을 모아서 대학교로
보내곤 해. 하하
말을 바꾸면서 새로운 용어를 구사하는
준호가 안쓰러워 보인다.
헤나야 우리 다른 얘기 좀 할까?
마음이 급한 준호와 달리 헤나는
또, 예기해, 나는 졸린데, 잠자면 안 돼?
낯선 곳이 두려울 만도 한데, 자기
집인 양 졸음이 쏟아지는 헤나.
아저씨 나 어디서 자면 돼?
아직 저녁이 되기에는 이른 시간
헤나에게 대답을 못 하고 속만 태우고,
있는데 갑자기 작고 오색영롱한 불빛이,
헤나 옆에 생기더니, 금세 불빛이
커지면서 투명해 보이는 테두리가
헤나를 감싼다.
테두리 안에는 어떤 여인이 헤나 옆에
어떤 미동도 없이 서 있다.
누구세요?
혹시 헤나 엄마?
아무런 대답이 없다.
이봐요?
정체를 알수없는 여인의 갑작스레 등장에,
놀랄 만도 한데 준호는 도리어 차분하고,
냉철해 보인다.
대답이라도 좀 하죠?
여인 옆에 헤나 또한 미동도 없다.
헤나야?
투명한 테두리가 서서히 사라지고,
여인과 헤나가 움직인다.
엄마.
헤나야.
정형적인 한국 여성 피부에, 어깨
위에 살짝 걸친 검은 머리카락,
평범하면서도 화사한, 봄에 잘
어울리는 옷 누가 봐도 한국인 여성으로
보인다.
엄마 이 아저씨가 나에 대해서 막
물어보고, 엄마에 대해서도, 작구 작구
질문했어.
그랬구나.
낯선 곳에 당황할 만도 한데, 일상처럼
어색함이 전혀 보이질 않는다.
되려 주객이 전도되어, 전 준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두 모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많이 놀라셨죠?
죄송합니다. 저희도, 갑작스레
일어난 일이라.
다소곳한 듯하나, 너무도 반듯한 짧은
몇 마디에, 그녀가 호락호락하지는,
않다는 걸 보여준다.
아닙니다.
놀라기는요 머 조금 황당한 정도라 할까.
본의 아니게 준호씨를 놀라게 했네요.
알고 있다.
전 준호를, 머나먼 우주 너머의 저 여인은 누구길래
헤나 엄마 맞으시죠?
네 헤나 엄마예요.
응 내 엄마야.
엄마는 여기서도 이쁘네, 저번 저번에
틴투 행성에서도 예뻤는데, 여기서도
예뻐.
그래 엄마 예쁘니, 엄마는 헤나가
엄마보다 열 배 천배는 더 이쁜데.
행성 이야기만 빼면 이상할 게 없는
평범한 대화, 준호가 끼어든다.
잠시만요.
모녀 대화 중에 죄송한데 저도 급해서,
헤나야 엄마랑 아저씨랑 얘기 좀
해도 될까?
응,
나는 졸려서 쇼파에서 좀 잘게.
시간은 어느덧 오후 5시를 넘기고,
준호는 헤나를 자신의 침대에 눕히고,
거실 쇼파에서 헤나 엄마랑 마주 보며
앉는다.
-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글 내용에, 독지님에 느낌을 적어 주시면
저에게는 많은 도움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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