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가문의 사생아는 역대급 천재 후계자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새글

흰검은매
작품등록일 :
2024.09.03 15:57
최근연재일 :
2024.09.18 13:20
연재수 :
18 회
조회수 :
1,481
추천수 :
20
글자수 :
100,320

작성
24.09.06 17:20
조회
95
추천
1
글자
19쪽

2장. 씨앗 고르기(5)

DUMMY

‘씨발.’


젠은 이를 악물었다.

테이블에 정통으로 부딪힌 어깨와 감독에게 잡혔던 발목에서 통증이 일어났다. 경험상 부러진 게 분명했다.


누가 마력 보유자 아니랄까 봐.

이래서 전면으로 싸우기 싫었던 건데.


고개를 들지 못한 어린 소년을 향해 감독관이 다가간다. 그는 제 방에 들어온 건방진 새끼의 얼굴을 확인하고자 앞머리를 잡아 끌어올렸다.


햇볕에 탄 까무잡잡한 살갗, 홀쭉한 볼은 분명 빈민가 애새끼들의 것이었지만, 눈빛은 그렇지 않았다. 앞으로 얻어터지고 죽을 거라는 미래를 보지 못했는지 형형한 눈빛이 아주 건방졌다.


“죽어어-!”

“하. 이게 네가 원하던 거냐?”


챙. 소년이 갑자기 식칼을 찔렀을 때도 감독관은 놀라지 않았다. 그는 술사로 인정받지 못했지만, 어쨌든 <대지> 속성에 친화력을 가지고 있었고, 따라서 식칼은 그의 배를 뚫지 못했다.


“이···이게···.”


당황한 얼굴의 소년에 감독관이 비열하게 웃었다.


“멍청한 놈! 이따위 술수에 내가 당할 거라고 생각했느냐?!”


감독관은 소년의 어깨를 부실 듯이 잡아 올렸다.

으윽- 소년의 얼굴에 고통이 번진다. 이내 툭-떨어지는 식칼. 살려달라는 듯 그에게 뻗어진 팔과. 모든 걸 포기한 눈.


“이걸 어떻게 요리할까.”


감독관의 머릿속에 고통을 줄 500가지 방법이 떠올랐다. 한참 고민하던 끝에 감독관은 소년을 바닥에 던져버리곤, 그에게 몸에 올라타 주먹을 내려쳤다. 어떻게 끝내든 일단, 제 방에 허락없이 침입한 소년에게 벌을 주기 위함이었다


퍽퍽-! 잔인한 소리가 방안을 울려퍼진다.

소년은 어떻게든 막으려고 했지만, 감독관의 옷자락을 잡는 것 이상은 하지 못했다.


어느 순간 소년의 움직임이 멎는다.


“벌써부터 죽일 순 없지.”


감독관은 몸을 일으켰다.

아직 제대로 즐기지도 못했는데, 이렇게 싱겁게 끝낼 순 없었다.


그때였다.


“허.”


제 바짓가랑이를 잡는 손길에 감독관은 코웃음을 쳤다.


“—-.”


그의 귀에 소년의 목소리가 들어왔다.

뭉게진 발음에 도통 뭐라고 하는 지 알 수 없어, 감독관은 허리를 숙였다.

살려줄 생각은 없지만, 살려달라는 애원을 듣기 위해.


“뭐라고 했냐? 다시 말해봐. 살려달라고.”


그때 그에게 돌아온 나지막한 목소리.


“고오,맙다.”

“?”


주먹을 움켜쥔 소년이 고개를 들어 올렸다.

형형하게 빛나는 동공의 테두리.

슈욱- 꼬마를 중심으로 퍼지는 마력의 파동.


“-개새끼야.”

“!”


젠은 원소석을 웅켜쥐었다.

슈우- 원소석의 마력이, 익숙한 사납고 거센 기운이 그의 숨을 타고 들어와 막힌 혈관을 통과했다. 무겁고 짐 덩이 같던 육체에 활기가 돋고, 병든 세포들이 재생한다.


“이제 넌, 뒤졌어.”


반갑다는 듯 마력도 기운차게 그를 반겼다. 선을 넘어 그와 기 싸움을 하려고 하자, 젠은 손쉽게 제어했다. ‘마력’은 그의 의지에 따라 그의 전신을 누비며 부러진 발목과 어깨를 지탱했다. 젠은 몸을 일으켰고, 그의 손에 남은 작은 원소석을 확인했다.


마력을 자각하기 위해 소모되었기에 원소석은 처음보다 크기가 작아졌다.

그래도 쓸만할 정도는 남아서, 젠은 이 원소석을 통해 <대지>의 힘을 빌릴 수 있었다. 그러나 젠은 쓰지 않았다.


이건 엘에게 주기로 결심한 것이다.


그리고 <대지> 원소석 없이 젠은 한 번 제 힘을 시험해 볼 예정이었다.

이 시점의 그는 얼마나 마력을 쓸 수 있을까하고.


젠은 마력을 끌어올렸다.


“어,어떻게 만지자마자···.”


젠이 원소석을 만지자마자 마력을 자각한 것을 본 감독관은 당황스러움을 느꼈다. 그의 인생에서 이렇게 빨리 자각을 한 사람은 본 적 없었다. 어린 나이에 자각한 사람은 있지만, 그들은 진한 피를 물려받고 마력이 가득한 가문에서 태어난 정통 핏줄이기 때문이다. 그런 천재조차 원소석을 쥔다고 바로 자각하지 못할 진데···. 이게 말이 되는가?


제 속에 피어난 열등감에 저도 모르게 이를 악문 감독관은, 곧 정신을 차리고 코웃음을 쳤다.


“그래봤자···.”


그래봤자 마력을 막 자각한 애송이일뿐이다.

마력을 어떻게 다루는 지 모르는 조금도 단련받지 못한 고아새끼.


감독관은 제 속에 피어나는 분노가, 그저 이 애송이가 제 방에 침입하여 제 원소석을 훔쳤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원소석을 만지자마자 마력을 자각한 그 천부적인 재능에 대해선 외면한 감독은, 눈 앞에 애송이를 찢어죽이고 싶었다. 마치 철천지원수를 만난듯 밉고 또 싫었다.


“그래봤자 뭐가 달라진다고! 어차피 내 손에 죽게 될 텐데!”


감독관의 외침에 마력의 파동이 일어났다.

젠은 감독관이 시험에 통과했다고 가만히 내버려둘 생각도 전혀 없다는 걸 알았다. 뭐, 기대도 안했다.


젠은 감독관의 마력을 그대로 맞았다.

자연의 힘을 쓰지 못하는 준 술사의 마력은 에너지 그 자체다.

상성이 맞지 않는다면 그것도 그것대로 위협적이겠지만, 젠의 마력의 유일한 장점은 상성이 잡히지 않는다는 거다.


‘반대로 말하면 상성을 잡을 수 없다는 게 치명적인 단점이지만···.’


어쨌거나 그는 이 쓸모없는 마력을 가지고 포 글로리아의 후계자로서 십년을 살았다. 이 시점에 젠보다 <무>속성 마력을 잘 알며, 잘 쓸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젠이 멀쩡하자 감독관의 표정은 더 일그러졌다.

아마도 운좋게 비슷한 속성이거나 우위를 가진 속성이라고 여길테다.

뭐, 어떻게 착각하든 상관없다.


“죽어라!”


그의 머리 위로 감독관의 주먹이 떨어졌다.

젠은 감독관이 주먹을 휘두르기 전 인지했지만, 그의 몸은 그의 명령을 조금 더 늦게 수행했다.

휘이익!


“이 쥐새끼같은..!”


아슬아슬하게 스친 주먹에 젠은 겉으론 여유로움을 유지하며 속으론 땀을 흘렸다. 생각보다 그의 몸 상태는 더 좋지 않았다.


그 말은 곧, 한계가 오기 전에 전투를 끝내야한다는 거다.


‘속전속결로-.’


젠은 소매에 숨겨두었던 만년필을 꺼냈다. 그의 엄지와 마찰하자, 만년필의 뚜껑이 열리며 촉이 그대로 드러났다. 그리고 다시금 공격하는 감독관의 주먹을 미끄러지듯 피한 젠은 감독관의 몸이 열린 걸 보았다.


‘지금!’


뒤늦게 감독관의 몸이 굳는다.

준술사답게 그는 마력을 끌어올렸다. 방어력 1위인 <대지>의 속성이 그의 몸을 단단하게 만들어줄 거라 여겼다. 지금까지 그랬듯이.


“!”


감독관은 젠의 미소를 보았다.

상성이 잡히지 않는 <무>속성의 마력이 감독관의 마력을 누르진 못했지만, 부드럽게 파고 들었다.


푸욱-! 그리고 끔찍한 소리가 감독관의 귓가에 들려왔다.


1초, 2초, 3초, 한없이 길게 늘어졌던 시간이 다시 원래의 속도를 찾는다.

감독관은 제 턱에 손을 뻗었다. 그의 턱에 꽂힌 길쭉한 무언가-.


그것이 만년필이라고 인지하기 전에


“크거어..”


먼저 숨이 막혔다.

기도가 완전히 막히자, 폐가 끔찍한 고통을 호소한다.


‘어,어떻게-.’


감독관은 뒤늦게 제 마력이 뚫렸음을 깨달았다.

하지만 끝내 어떻게 뚫렸는 지 깨닫지 못한 감독관의 눈이 뒤로 넘어가며, 생명력이 턱에 꽂힌 만년필을 타고 빠져나간다. 마침내 쿵! 절명한 감독관의 몸이 뒤로 나자빠졌다.


“···.”


젠은 감독관의 움직임이 완전히 멎을때까지 한자리에 계속 서있었다.

마침내 파르르 떨리던 근육이 늘어지며 허리가 바닥에 붙었다.


그제야 젠은 몸에서 힘을 뺐다.


“미친···.”


‘겨우 이 정도로-.’


몸이 기우뚱거리다 바닥으로 무너진다.

다리를 포함하여 전신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다.


“지친다고?”


기대를 안 하긴 했다.

영양소도 제대로 보충받지 못한 몸이 아닌가.

조금 뛰었다가 헐떡이는 걸 보면 도저히 기대할 몸이 아니었다.

하지만 겨우 준술사의 마력을 움직였다고, 이처럼 지칠 줄은 몰랐다.


지금 젠은 25살의 제라이온이 아니라는 걸 그는 다시금 깨달아야했다.


이때 그는 아주 약하고, 연약했음을.


“마력도 거의 안 남았네.”


이거야 뭐, 축적한 것도 없으니 그럴 수밖에 없긴 하다.

젠은 신체를 단련하고 마력을 축적하여 최대한 빨리 25살의 제라이온의 몸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겨우 상대의 마력을 <관통>했을 뿐이다. 정확히 말하면 관통도 아니다. 지난 삶에서 상대의 마력을 숨쉬듯이 <관통>하며, <무효>로 흘리고, <증폭>으로 상대를 꼴받게 만들었던 젠에게 이번에 한 것은 잔재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앞으로 후계자들을 상대하려면 빨리 강해져야해.’


감독관은 그들에 비하면 에피타이저라고도 할 수 없다.

젠은 그에게 재능과 시간의 한계를 선사했던 후계자들을 떠올렸다.

물론, 지금 시점의 후계자들이 그때처럼 강하진 않겠지만, 젠은 격차가 무한히 벌어지는 걸 바라지 않았다.


한 숨 돌린 젠은 억지로 몸을 일으켰다.

생각보다 시간이 지체되었다.

보조감독들이 돌아오기 전에 그는 자리를 뜰 생각이었다.


감독관이 그를 합격시켜줄 생각이 없었듯이, 보조감독들도 그렇게 나올 지도 모르니까. 그들과 전투를 또 한 번 치룰 체력이 없으니 젠은 시험이 끝날때까지 숨어있기로 했다.


젠은 비틀거리며 침대로 다가갔다.

누군 생고생을 다 했는데, 누군 편하게 잘도 잔다.

감독관한테 끌려온 거니 부럽진 않다만.


“엘.”


그는 뺨을 약하게 치며 엘을 깨웠다.


“일어나.”


파르르 떨리는 속눈썹.

엘의 희뿌연 눈에 피투성이의 젠이 비쳤다.

의식이 돌아온 눈이 번쩍 떠진다.


“···젠?”

“일어나, 나가자.”


젠은 엘에게 많은 시간을 주지 않았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었는지 알 필요 없다고 생각했다.

젠은 엘처럼 두려움에 떠는 누군가를 위로할 성격이 되지 않았다.


그러나 짧은 새에 모든 걸 파악한 엘의 눈이 일렁거린다.

정신을 잃기 전의 기억은 분명 남아있을 테다.

꼬맹이 척에게 배신당하고 보조 감독들에게 잡혔던 기억.

그래, 사실 멍청이가 아니라면 모를 수가 없지.


감독의 시체를 보고 흠칫놀란 엘이 그에게 묻는다.


“넌 괜찮아?”

“아니, 뒤질 것 같아.”


웃으라고 한 말에 엘은 웃지 못했다.

입을 달싹이는 그녀의 눈이 일렁거렸다.


젠은 그냥 두고나가려다가 곧 한숨을 쉬고 그녀에게 다가왔다.


그녀를 버리고 가지 않은 건, 과거에 추위에 떨고 있던 젠을 버리지 않았던 소녀에 대한 뒤늦은 보답이자 하나의 실험이기도 하다. 그는 분명 여기서 죽었을 게 분명한 엘을 한 번 더 살렸다. 그녀는 또다시 죽을 것인가? 미래가 변하지 않는 지 변하는 지 그녀로 실험할 생각이었다.


젠은 엘에게 손을 내밀었을 때 비로소 엘의 희뿌연 눈이 그의 손을 인지했다.


“나가자.”


특별한 게 없는 말이었다.

젠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엘의 눈에서 눈물이 한방울 흘러나왔을 때 그렇게 생각할 수 없었다.


“왜-.”


젠은 왜 우냐고 물으려다가 멍청한 질문임을 인지하고 입을 다물었다.

사실 여태까지 침착하게 있던 게 더 이상한 일이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도 눈앞의 위험을 보지 못했을 리 없다.


젠은 아무 말 없이 이불을 들었다.

감독관이 덮는 이불이란 게 좀 찝찝하지만, 여기서 유일하게 깨끗한 것이었다. 젠은 위로하는 대신 엘의 얼굴에 튄 피를 닦아주었다. 엘은 가만히 거친 손길을 받아들였다.


“가자, 보조감독들이 오기 전에 나가야해.”

“···응.”


소리없이 눈물을 흘린 엘은 코맹맹한 소리로 대답했다. 젠은 처음으로 그녀가 살아있는 사람처럼 보인다고 생각했다. 이전에는 어딘가 나이답지 않게 초연한 것이,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았는데.


“가자.”


이번엔 진짜 가자. 젠이 손을 뻗자, 엘이 잡고 일어난다.

잡고 일어나라고 준 건데, 일어나서도 놓을 생각이 없어 보이자 젠은 포기하고 복도를 걸어 나왔다.


“잠깐만.”


그는 관리실에 들러 확인했던 새집의 문을 열었다.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망가트리자는 목적으로 선을 모조리 끊어버렸다. 갑자기 ‘눈’이 다 꺼져버리자 젠은 제 판단이 틀리지 않았음을 알았다.


지하실에 돌아온 보조 감독들이 얼마나 허탈할까.


이때까지 젠은, 마력을 자각하기 위해 그가 일으킨 사태가 얼마나 많은 변화를 초래할지 몰랐다.



* * *


포 글로리아에는 가문의 혈통을 관리하는 명부가 있다. 족보라고도 하고, 계도라고도 하는 것인데, 그곳엔 고대의 신비가 깃들어 가문의 피를 이는 자들의 생사가 표시되곤 했다.


물론, 포 글로리아의 의지로 지우는 때도 있긴 하나, 보통 명부에서 이름이 지워지는 경우는 그가 죽었을 때였다.


포 글로리아에는 푸른 피가 흐르고 무엇보다 고귀하다.

고귀한 피를 부르짖는 이들은 삼엄하게 혈통을 관리했고, 따라서 방계의 죽음이 위에 보고되었다.


하급 수준에도 들지 못한 술사의 죽음.

방계에 이름을 올리고 있을 뿐, 포 글로리아와 어울리지 않는 재능이라 안타깝게 여기는 사람은 없었다. 다만, 사생아들의 청소를 맡은 자라는 게 걸렸을 뿐.


상식적으로 힘없는 사생아들이 준-술사를 죽였을 리는 없다. 그렇다면 범인은 외부인이나 하수인들의 소행이다.


이 두 가지는 전부 다 문제가 되었다.

외부인들이 포 글로리아의 피를 건드렸을 가능성, 그리고, 충성해야 할 하수인들이 포 글로리아에 반기를 들었을 가능성 둘 다 포 글로리아의 의자에 벗어났기 때문이다.


특히 전자의 문제라면 단순히 포 글로리아의 피를 건드린 걸 넘어 권역에 침범했다고 볼 수 있기에, 가문에선 문제를 해결할 집행관을 보냈다.


문제를 조사하고 해결하는 조사관이 아닌, 비공식적인 존재인 집행관을 보낸 이유는 하나밖에 없었다.


문제의 해결을 원하는 게 아니라, 처분을 원하는 거다.


하극상이 일어났다면 반역자의 처형을,

외부인이 침입했다면 포 글로리아를 감히 무시한 징벌을.


감독의 죽음에 당연히 조사관이 나올 거라고 여긴 보조 감독들은 아무 생각 없이 지하실의 문을 열어주었다. 포 글로리아의 상징인 금빛 태양이 집행관의 망토에서 펄럭였다.


집행관은 보조감독의 생각보다 젊었고, 험한 일을 하는 사람답지 않게 꽤 귀족다웠다.

보조감독들은 어쩌면 높으신 분일지도 모른다고 짐작하며 굽신굽신거렸다.


어느정도 그들의 추측이 틀린 건 아니다.

실제로 집행관은 평범한 집행관이 아니긴 했다.


집행관은 거침없이 감독관실 안으로 들어온다.

따라 들어오려던 보조감독들은 집행관을 따라온 병사들에게 막혔다.

하나같이 살벌한 분위기라, 보조감독들은 말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


험한 일엔 아랫사람을 다룰 거라 여겼던 집행관은, 어떤 표정 변화도 없이 사체를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그 앞에 직접 앉아


“!”

“왜, 그런 일을···”

“더,더럽습니다, 조사관님!”

“제가 대신-.”


집행관이 손을 들자 호들갑이 지워진다.

곧 그는 정적이 깔린 방안에서 사체의 턱에 꽂힌 만년필을 그대로 뽑았다.


“이것이군···.”


보조감독들이 처음으로 들은 조사관-집행관-의 목소리였다.


집행관은 어떤 감정도 담기지 않은 눈으로 만년필을 들여올렸다.

피와 살점이 묻은 펜끝을 어디선가 생겨난 물이 닦아내자 뭉게진 촉과 만년필의 이니셜이 드러났다.


일단 죽은 감독관의 이니셜은 아니었다.


“누구의 것인지 조사해라.”


가만히 만년필을 들여다본 집행관의 말에 가까이 있던 병사가 다가와 양손으로 만년필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는 감독관실을 둘러보았다. 감독관이 살해당하는 순간이 그대로 그려졌다.


“!”

“세상에···.”


그건 곧 기억이자 이미지였다.

세상 모든 곳에 존재하는 물이 이곳에서 일어났던 일을 복기했다.

<물>속성 술사는 세상에 많지만, 그중에서 물이 가진 특별한 특성을 쓸 수 있는 술사는 흔치 않다. <치유>도 그렇지만, 이런 일도 가능하다는 건 들어본 적도 없었다.


보조감독들은 이런 특별한 현상을 보게 된 것에 감탄하면서 존경했다.

어떻게 이 힘이 세상에 널리 알려지지 않았는 지는 생각치 못했다.


물론 이 싸이코메트리능력이 완전한 건 아니다.

집행관이 볼 수 있는 건 물이 보여준 실루엣이 다였다.


자그마한 아이같은 형체가 만년필로 감독관의 턱을 찔러버리는.


물은 아이의 성별도 외모도, 감독관이 준술사였다는 것은 상세하게 설명하지 못했다.

그러니 술사의 능력에 눈이 먼 보조감독들은 사건이 얼마나 말도 되지 않은 일인지는 몰랐다.


감독관은 방계라고는 하나 포 글로리아의 피를 이어받은 준 술사다.

자연의 힘을 쓰지 못할 뿐, 마력 자체는 웬만한 준 술사보다 많을 테고, 다루는 능력도 훈련받았을 테니 부족하지 않을 테다.


그런 이가 제 반쪽만한 아이한테 일격에 죽은 것이다.

이 곳에 있을 만한 아이라면, 당연히 사생아일테고.


<마력>을 자각은 했겠지만, 시험이 경과된 게 나흘이니 마력 자각이 아무리 빨랐어도 나흘밖에 되지 않은 아이가 준술사의 마력을 이기는 건 세상의 법칙에 어긋나는 일이었다.


뭐, 준술사가 멍청해서 마력으로 자신을 보호하지 않았을 수도 있긴 하다만···.


아무리 멍청하다고 한들 그런 실수가 가능한가?

집행관의 시선이 사체에 닿았을 때 일순 일그러졌다.

방심했든 아니든, 형편없이 죽었다는 건 달라지지 않는다.

위대한 가문의 피를 이어받은 자가 이토록 형편없게 죽은 건 곧 가문을 우습게 만드는 일.


‘쓰레기같은 놈.’


집행관의 눈에 서린 한기는 그가 돌아선 순간 형체도 없이 사라졌다.


“알데베르트 님! 연결이 완전히 끊어져 ‘눈’을 복구할 수 없다고 합니다.”

“그런가.”


마침, 부하가 소식을 전해왔다.

시험을 이어갈 수 없다는 선고였다.


“어쩔 수 없군. 시험은 여기서 끝이다. 처분해라.”


집행관의 대답에선 어떤 감정도 담기지 않아, 보조감독들은 어떤 불온한 징조도 느끼지 못했다. 처분의 대상이 그들이 아닌 아이들이라고 생각한 탓도 있다. 그들은 새삼 불쌍히 여기지 않았다. 여기서 마력을 자각하는 건 일주일이 아닌 일년을 줘도 불가능하다고 여긴 탓이다.


착, 차작.


병사들이 검을 뽑았다.

그리고 그들을 향해 겨누었을 때 보조감독들은 뒤늦게 문제를 인지했다.


“왜.”

“검을···.”


시험을 관리하라는 의무를 끝까지 이행하지 못한 놈들이다.

포 글로리아는 쓸모없고 무가치한 놈들을 두 번 다시 고려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그들의 사형판고는 일전에 떨어졌다. 집행관이 제 능력을 보인 것도 같은 이유다.. 곧 죽을 놈들은 이미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 그들의 눈을 신경쓸 이유가 전혀 없었다.


:


쩌걱쩌걱.

핏물에 잠식된 지하실에서 집행관이 가장 늦게 걸어 나왔다.


“우리는 이곳을 정리하고 떠난다. 한 놈도 남기지 마라.”


집행관의 지시 아래 병사들이 숲에 퍼져나간다.

아이들을 처분하기 위해서였다. 늑대를 피해 살아남은 아이들은, 운좋게도 고통없이 눈을 감게 될 것이다. 모든 것은 포 글로리아의 은덕이니.


불현듯 집행관은 소리가 완전히 사라진 숲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저 새끼가 왜 여기 있어.”


그리고 그와 눈이 마주치고만 젠은 이를 악물었다.

저 사이코패스가 왜···.

몰라볼 수가 없었다. 그는 젠과 아주 오랜 악연이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위대한 가문의 사생아는 역대급 천재 후계자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작품 제목을 '위대한 가문의 사생아는 역대급 천재 후계자'으로 변경합니다. (9/10) 24.09.06 44 0 -
18 4장. 계승식(2) NEW 15시간 전 23 1 11쪽
17 4장. 계승식(1) 24.09.17 35 1 12쪽
16 3장. 포 글로리아의 후계자들(8) 24.09.16 39 1 11쪽
15 3장. 포 글로리아의 후계자들(7) 24.09.14 50 1 14쪽
14 3장. 포 글로리아의 후계자들(6) 24.09.13 48 1 15쪽
13 3장. 포 글로리아의 후계자들 (5) 24.09.12 49 2 12쪽
12 3장. 포 글로리아의 후계자들 (4) 24.09.11 63 1 11쪽
11 3장. 포 글로리아의 후계자들 (3) 24.09.10 68 1 10쪽
10 3장. 포 글로리아의 후계자들 (2) 24.09.09 69 1 13쪽
9 3장. 포 글로리아의 후계자들 (1) 24.09.08 86 1 10쪽
8 2장. 씨앗 고르기(6) 24.09.07 97 1 16쪽
» 2장. 씨앗 고르기(5) 24.09.06 96 1 19쪽
6 2장. 씨앗 고르기(4) 24.09.05 97 1 12쪽
5 2장. 씨앗 고르기(3) 24.09.04 110 1 10쪽
4 2장. 씨앗 고르기(2) 24.09.04 115 1 11쪽
3 2장. 씨앗 고르기(1) 24.09.04 120 1 12쪽
2 1장 24.09.04 147 1 17쪽
1 프롤로그 24.09.04 170 2 5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