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가문의 사생아는 역대급 천재 후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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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검은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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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03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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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장. 포 글로리아의 후계자들 (2)

DUMMY

“이곳이 후계자님의 처소입니다.”


포 글로리아에 들어오자마자 엘과 헤어진 젠은 익숙한 공간으로 안내받았다. 그에게 배정된 별관은 지난 시간에도 그에게 배정되었던 처소였다.


포 글로리아의 남동쪽 성에 있는 별관.

본성보다 성곽에 더 가까운 별관의 위치와 크기는, 곧 후계자로서의 젠의 위치를 의미했다. 포 글로리아는 젠이 후계자 시험에서 이길 것이라고 전혀 생각하지 않는 모양이다.


반면, 헬레나나 헤레이스 등 유력한 후계자들의 처소는 본성과 가까운 곳에 있을 것이다.


뭐, 처소가 본성과 멀다고 큰 문제가 생기는 건 아니다.

가주랑 친하게 지낸다고 해서 다음 대 후계자가 되는 게 아니거니와, 후계자들이 받아야 할 기본적인 대우는 형식적으로 똑같다고 할 수 있다.

처소의 가구, 달마다 주어지는 예산, 일정, 그리고 수행 인의 수까지.


“저희는 앞으로 후계자님을 곁에서 보필할 칠오, 그리고 구팔입니다. 편하게 불러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말이 공평한 대우이지, 사실 젠은 형식적인 공평함 속에 있는 차이를 아주 잘 알고 있다.


일단 별관의 위치도 그런 차이 중의 사소한 하나일 뿐이다. 같은 예산을 할당받는다고 하나, 포 글로리아에서 외적인 지원을 금지하는 건 아니다. 어머니의 가문과 지지자들을 등에 업은 후계자들과 아무것도 없는 젠 사이에는 이미 엄청난 격차가 존재할 것이다.


또한, 이들.


“칠오(75), 그리고 구팔(98)이라고? 외우기 쉽네. 다른 후계자의 수행인도 이름이 숫자인가?”

“그렇습니다.”


본성에서 후계자들에게 임의로 배정하는 수행인 두 명.

이들은 후계자 시험이 끝날 때까지 담당 후계자를 보필한다. 이들은 단순히 곁에 머무는 하인이라고 할 수 없다. 이들은 후계자에게 할당된 예산과 처소를 총괄 관리하면서 하수인들을 부리는 중간 관리자이자, 후계자들의 일정을 관리하는 일종의 개인 감독관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후계자가 미쳐 신경 쓰지 못하는 모든 것들을 대신하기도 하는데, 여기까지만 들어도 이들의 역할이 아주 중요하다는 걸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여기서 문제.

수행인의 이름은 무슨 의미일까?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겠지만, 바로 수행인의 등급이다. 이름의 숫자가 작을수록 경력이 길고 능력 있는 수행인이며, 반대로 100번 대는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는 신참이 맡는다.


초짜 후계자에게 초짜 수행인을 붙여주다니.

참 임의적인 배정이 아닐 수가 없다.


“별관을 다 보셨다면 앞으로의 일정에 대해 안내해도 되겠습니까?”

“그래.”


이미 다 아는 거라 젠은 한 귀로 듣고 흘렸다.

분명 티가 날 텐데도, 머리에 기름을 발라 단정하게 넘긴 칠오는 담담하게 일정을 읊었다.


“일주일 뒤 후계자 의식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후계자님이 가문에 소개되는 중요한 자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반드시 참여해야 하는 자리이기 때문에 후계자님께서는 일주일간 차례와 예절에 대해 교육을 받으셔야 합니다. 의례 교육은 여기 있는 구팔이 맡을 겁니다.”

“앞으로 잘 부탁해.”

“네? 아, 아닙니다, 저야말로 후계자님을 보필하게 되어 영광입니다.”

“차례와 예절 교육만 받으면 되나?”

“···네, 그렇습니다.”


지난 삶에는 몰랐지만, 이번에는 알았다.

칠오의 대답이 한 차례 늦었다는 것을.

그가 거짓말을 했다는 건 이미 알고 있긴 하다.


지난 삶에서 젠에게 배정된 수행인은 칠오와 구사였다. 구사가 구팔로 바뀌었긴 하지만, 신경 쓸 변화는 아니었다. 아마, 엘이 살아남으면서 작은 변화가 일어난 게 아닐까 싶었다.


중요한 건 이번에도 칠오가 그를 속였다는 거다.


지난 삶에 그는 칠오가 하라는 대로 교육을 받았다. 교육 자체는 문제가 없었다. 포 글로리아의 역사는 대개 잊어버렸지만, 예절은 어설프게나마 흉내를 냈다. 문제는 의식의 마지막 순서에 있었다.


집안의 어른들에게 저를 소개한 후, 마지막 의식이 거행되었다. 후계자들은 가문 밖으로 나가 그들이 훗날 다스리게 될 숨을 한 바퀴 행진했다.


후계자들이 저마다의 무용과 매력을 과시할 때, 젠은 혼자 말을 타지 못했다. 빈민가 사생아가 승마에 익숙할 리 없다. 그렇다고 의식에 빠질 수도 없어 그는 자기 발로 걸어 숨을 한 바퀴 돌아야 했다.


물론, 젠은 이미 자존심 같은 게 없어 뻔뻔하게 한 바퀴 잘도 걸었지만, 그래도 가끔 생각나더라. 사람들의 수군거림과 후계자들의 무시.


누가 보면 자기들은 태어날 때부터 말을 탄 줄 알겠네.


그때. 칠오가 자신의 실수라며 읍소하여 넘어가 줬지만, 지금 보니 알겠다. 고의였다는 걸.


젠은 칠오와 아무것도 모르는 신참을 번갈아 보곤 말았다.

이 악의에 대해 칠오를 지적할 생각은 없다.

뭐라고 해도, 아차차, 깜빡했습니다. -라고 하면 끝날 문제가 아닌가.

수행인을 바꾼다고 하더라도 그 수행인은 믿을 수 있는가?

결국 똑같은 놈들이다.


젠은 이 자식들을 어떻게 해야 할지 결정하기 전에 일단은 내버려 두기로 했다.


“그리고 의식 때 후계자님께서는 새로운 이름을 받을 예정입니다. 혹시 원하는 이름이 있으십니까?”


젠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의견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이 자식들이 알아서 결정하겠지만, 아마 마음에 들 거다.


“제라이온.”


지난 삶에 포 글로리아가 그에게 부여한 이름이었으니까.

뜻은 뭐라고 했더라. 고대어로 무슨 뜻이라고 했는데.


“좋은 이름이군요, 위에 그렇게 보고하겠습니다.”



* * *



칠오와 구팔은 일정을 보고하자마자 별관에서 나와야 했다. 그들의 후계자가 식당까지 가기 귀찮다며 직접 가져오라고 첫 번째 명을 내렸기 때문이다. 후계자의 명은 절대적이기 때문에 그들은 그 하찮은 명을 거부하지 못했다.


“우리 후계자님 말이에요.”


별관에서 나온 구팔이 초롱초롱한 눈으로 말했다.


“뭔가 특별해 보이지 않아요?”

“말조심해라.”

“욕하는 거 아니에요, 그냥 앞으로 모실 후계자님이니까 더 잘 보필하고자 하는 거지.”


구팔의 말에 칠오는 더이상 뭐라고 하지 않았다.

암묵적인 긍정에 구팔이 수다스럽게 떠들기 시작했다.


“정통 핏줄이 아니라고 들었는데 되게··· ‘후계자’ 같지 않았어요? 저였으면 되게 얼탔을텐데 당연하게 방을 찾아가시고, 명령도 잘하시잖아요.”

“확실히···.”


딱히 구팔의 대화에 응해줄 생각은 아니었지만, 칠오도 내심 동의하고 있었다. 좋게 정통 핏줄이 아니라고 말하는 거지, 사실 젠이 사생아라는 건 모두가 알고 있다. 빈민가 출신의 더러운 피. 원래는 죽었어야 할 운명이지만, 마력을 자각하여 후계자 자격을 얻은 행운아.


그렇기에 칠오는 젠이 아무것도 모른 채 모든 것을 낯설어하거나 무서워할 줄 알았다. 그러나 그가 본 젠은 달랐다. 그의 말을 흘려듣는 듯하면서 핵심은 잘 찾아냈고, 쓸데없는 질문이나 행동도 없었다.


구팔의 말대로 다른 후계자 같았다. 태어나길 귀하게 태어나 후계자가 되기 위해 자란 분들 말이다. 물론 사는 환경이 다르니 외적인 건 차이가 존재하긴 하다만, 그건 포 글로리아에서 살다 보면 사라질 차이이다.


“역시 영광된 가문의 피는 다른 건가?”


순수한 뇌를 가진 구팔은 그렇게 생각하는 듯했지만, 칠오가 보기에 그건 아니었다. 칠오는 보다 많은 핏줄을 보았고, 그가 맡은 후계자보다 못한 이들도 여럿 보았다.


-그리고 의식 때 후계자님께서는 새로운 이름을 받을 예정입니다. 혹시 원하는 이름이 있으십니까?


선천적으로 타고난 걸까?


-제라이온.


아니면 그가 모르는 무언가가 있는 걸까?


“‘분노’.”

“네?”


구팔이 못 들었다는 듯 되묻자 칠오는 고개를 저었다.

빈민가에서 태어나 아무것도 배우지 못할 아이가 뭘 알고서 말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제라이온’은 고대어로 ‘신의 분노’라는 의미다. 운명을 믿었던 고대인들은 ‘종전’ 혹은 ‘세계의 종말’이란 의미로 썼다고 한다.


“아무튼 저는 우리 후계자님 좋은 것 같아요.”


칠오는 구팔의 말이 바보같다고 속으로 비웃었다.

누가 들어온 지 3달 된 초임자 아니랄까 봐, 들어오자마자 배운 걸 잊어버렸다.


수행인들이 가장 먼저 배우는 건 그거다.

후계자들에게 정을 갖지 말라.


그가 맡은 후계자가 패배하면 반드시 모두 다 같이 죽을 운명이니.

그리고 그게 아니더라도 후계자의 변심이나 변덕에 의해 직접 죽는 경우도 많다.


고귀한 후계자에게 그들은 언제든 교체할 수 있는 물건과도 같으니.


“정말 열심히 잘 모셔야겠어요.”


구팔은 모를 거다.

칠오는 의식의 중요한 과정 하나를 말하지 않았다. 의식을 치른 후 후계자의 권위는 바닥을 칠 것이고 오래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후계자가 어떻게 나올지 모르겠다만, 일단 교육 담당자였던 구팔을 가만두지 않을 것 같다. 특히 저렇게 아무도 믿을 수 없다는 형형한 눈을 가진 후계자라면.


칠오는 살아남고 싶었다.



* * *



“익숙한 천장이다.”


젠은 두 수행인을 내쫓은 후 방에 들어와 바닥에 드러누웠다.

푹신한 침대가 있긴 하지만, 누가 빈민가 출신 아니랄까 봐 바닥이 더 편했다. 카펫이 깔린 덕에 등이 시리진 않다. 포 글로리아의 인간들이 보면 기겁하겠지만 뭐 어쩌랴.


‘내가 편하다는데.’


젠은 배 위에 두 손을 올리고 <호흡>을 시도했다.

<호흡>을 하면 머릿속에 잡념이 들지 않아 감정을 다스리기 좋았다.


포 글로리아에 입성하자마자 제어했던 불길이 산소라도 머금은 듯 다시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지금 당장은 원한을 드러내선 안 되기에 젠은 감정을 누르고 또 억눌렀다.


모든 건 강해진 이후에.

복수하기 전에 후계자들에게 죽거나 병신이 되면 말짱 꽝이었다.


“그러고 보니-.”


<호흡>을 마친 젠은 눈을 번쩍 떴다.

후계자 의식이 치러지기 전 ‘사건’이 하나 있었다는 게 방금 막 떠올랐다. 그 사건 때 방계 출신 후계자 하나가 반신불수가 되었고, 다른 하나는 호수에 빠져 익사했다.


“곧 다린이 초대장을 보내겠구나.”


포 글로리아의 후계자 중 하나인 디아린 포 글로리아는 후계자 의식을 치르기 전, 친목을 하자며 다과회를 열었다. 그리고 포 글로리아의 공식 분위기메이커답게 모든 후계자에게 초대장을 보냈는데, 말이 초대장이지 유력한 정통 후계자인 다린의 초대를 거부할 수 있는 후계자들은 많지 않았다.


다과회를 진행하는 동안에는 별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문제는 만찬을 즐긴 후 다린이 준비했다는 ‘놀이’였다. 마력이 작동하는 미로를 탈출하는 놀이였는데 젠은 그곳에서 현실을 알게 되었다.


다과회의 목적은 친목이 아니었다.

서열 과시이자 정리를 위해 초대한 것이었다.


그때 젠은 알게 되었다.

후계자들이 다른 후계자들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이곳은 위대한 영광을 좇는 음습한 너구리들의 굴이지, 사랑과 우정이 가득한 동화가 아니다. 모두 친구가 되어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았습니다-라는 엔딩은 전제 자체가 불가능했다.


한 명만이 모든 영광을 독식하는 구조에서 모두가 서로의 경쟁자이며 정적이다. 동맹이니 친구이니 겉으로 친한 척을 해도 언제 다시 적으로 돌아설지 모른다. 그렇기에 후계자들은 언젠가의 싸움을 위해 미래 걸리적거리는 놈을 일찍 처리하려고 했다.


물론 후계자들끼리 대놓고 살인을 벌이는 건 보기에도 좋지 않고 자칫하다 공동의 적이 될 수 있으니 선호하지 않는 방법이다. 그들은 ‘사고’를 선호했다.


나약하여 죽었으니 안타깝게 되었다.

그 한마디에 모두가 암묵적으로 넘어가는 것을 젠은 징글징글할 정도로 자주 보았다.



아마 이번에도 그럴 것이다.

사실 정확한 경과는 떠오르지 않는다.

그 이벤트 결과가 충격적이었을 뿐, 숨어있었던 젠은 피해를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젠은 분명히 알았다. 젠이 강해서 혹은 잘 숨어서 무사했던 게 아니다.


당시 후계자들에게는 이미 표적이 따로 있었다. 그 병신이 된 후계자들 말이다. 젠은 그 타겟에도 속하지 않을 정도로 후계자들이 하찮게 여겼기에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 다과회 무슨 목적인지 잘 알고 있는 젠은 손가락을 톡톡 두드렸다. 마음 같아서 빠지고 싶지만, 그에겐 아직 그만큼의 자유도는 없다. 유력한 후계자들이 모이는 자리에 혼자 참여하지 않는 행동은 너무 눈에 띈다. 다린이 뒤끝이 없는 편이라지만, 혹시 모르니까.


젠은 노을이 지는 창문을 바라보았다.

딱 이런 때였는데.


멀리서 다가오는 기척.

별관에 퍼트린 마력이 그를 잡아냈다.

그의 수행인은 아니다.


3, 2, 1.


젠은 속으로 카운트 다운을 했다.

똑똑똑. 타이밍을 맞춰 누군가가 노크했다.


“후계자님 계십니까?”


문을 연 건, 깃털이 박힌 모자를 쓴 전달책.


“디아린 포 글로리아님께서 후계자님을 환영파티에 초대하였습니다. 많은 후계자님이 참석하니 후계자님께서도 꼭 참석하셨으면 좋겠습니다. 환영파티는 내일 진행할 예정이며 장소는-.”


젠은 더 듣지 않았다.

어디에서 환영파티가 열리는지 이미 알았기 때문이다.


“참석하겠습니다.”


이렇게 반가운 얼굴을 보게 되겠구나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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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4장. 계승식(1) 24.09.17 35 1 12쪽
16 3장. 포 글로리아의 후계자들(8) 24.09.16 39 1 11쪽
15 3장. 포 글로리아의 후계자들(7) 24.09.14 51 1 14쪽
14 3장. 포 글로리아의 후계자들(6) 24.09.13 49 1 15쪽
13 3장. 포 글로리아의 후계자들 (5) 24.09.12 50 2 12쪽
12 3장. 포 글로리아의 후계자들 (4) 24.09.11 64 1 11쪽
11 3장. 포 글로리아의 후계자들 (3) 24.09.10 69 1 10쪽
» 3장. 포 글로리아의 후계자들 (2) 24.09.09 70 1 13쪽
9 3장. 포 글로리아의 후계자들 (1) 24.09.08 86 1 10쪽
8 2장. 씨앗 고르기(6) 24.09.07 98 1 16쪽
7 2장. 씨앗 고르기(5) 24.09.06 96 1 19쪽
6 2장. 씨앗 고르기(4) 24.09.05 97 1 12쪽
5 2장. 씨앗 고르기(3) 24.09.04 110 1 10쪽
4 2장. 씨앗 고르기(2) 24.09.04 116 1 11쪽
3 2장. 씨앗 고르기(1) 24.09.04 121 1 12쪽
2 1장 24.09.04 147 1 17쪽
1 프롤로그 24.09.04 172 2 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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