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가문의 사생아는 역대급 천재 후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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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검은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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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03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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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7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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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장. 계승식(1)

DUMMY

시간이 흘렀다.

밖에서 나팔 소리와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렸다.

포 글로리아에 온 지 일주일이 된 시점.


“후계자님을 모시러 왔습니다.”


후계자 의식이 거행되었고, 수많은 무리가 후계자들의 처소를 방문했다.

본성의 주변에 꽂힌 깃발과 휘장.


그동안 처소에 처박혀 구팔에게 교육을 받은 젠은, 다시 봐도 화려한 광경에 혀를 내둘렀다.


“가, 가, 가, 가실까요?”

“말을 왜 그렇게 더듬어? 긴장했어?”

“아, 아, 아니요, 저, 저, 전, 하, 하, 나도, 제, 제, 젠 님께서도 너,너무 기,긴장하지 마,마,마십시오, 제, 제, 젠님께서는 제, 제가 본 후, 후, 후계자 중에 가장···.”


후계자 의식을 치를 젠이나 일주일간 두문불출했던 칠오는 차분한 데 반해, 구팔은 한참이나 긴장한 것 같았다. 그가 후계자 교육에 성실하고 충실했다는 걸 아는 젠은 그에게 별말 하지 않았다.


하지만 제 반응이 유독 별나다는 걸 아는 구팔이 먼저 긴장을 가라앉히려고 노력했다. 입을 다물고 행렬에 따라온 구팔이 어느 정도 진정한 후에 덧붙였다.


“제,젠님은 괘, 괜찮으십니까?”

“왜? 나도 긴장한 것 같아?”

“아니요, 반대로 너무 괜찮아 보이셔서···. 엄청 후계자님 같아 보입니다만···.”


그래서 의아한 모양이다.

젠이 너무 아무렇지 않아 보여서.


완벽히 준비했다고 한들, 세상에 완벽이란 없다.

구팔은 그의 교육을 쑥쑥 받아먹는 젠의 천재성을 감탄하고 또 감탄했지만, 후계자들이 얼마나 후계자 의식에 부담감을 가졌는지 알고 있었다. 수많은 사람의 시선이 몰리는 곳이 후계자 의식이다.

첫인상이 좋은 후계자가 가주가 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첫인상을 좋게 남기려고 모두가 의식할 것이다.


그런 상황에 젠은 후계자 의식을 수어 번 치른 사람처럼 태연했다.


“혹시 나한테 안 가르쳐준 게 있어?”

“네? 아, 아니요, 그럴 리가요! 제가 전달받은 그대로 알려드렸습니다. 젠님께서도 너무 잘 적응하셨고···.”

“그럼 지금 내 복장에 문제라도?”

“아, 아닙니다.”

“근데 뭐가 문제야.”

“그··· 그러게요.”


구팔은 뭔가 반박하고 싶었지만, 덧붙일 말을 찾지 못했다.


젠은 그의 출신이 의심이 갈 정도로 예법을 완벽하게 익혔으며, 아직 체구가 마르고 작지만, 금빛의 태양이 새겨진 후계자의 예식 복장을 잘 소화하고 있었다. 분명 불편할 텐데도 불편한 티 하나 내지 않는 젠은, 긴 청색 망토를 단 한 번도 밟지 않고 앞으로 잘 나아갔다.


평생 후계자로 살아온 것 마냥···.


두 수행인을 포함한 무리를 이끈 젠은, 마침내 후계자 의식이 치르는 예식장에 도착했다.


그곳엔 수많은 후계자가 도착해 있었다.

후계자 예식 복장은 정해져 있지만, 출신과 성별에 맞게 조금씩 개성이 돋보였다.


“어?”


예를 들어, 처소에 사흘간 감금하라는 벌을 받은 다린은, 이번에 반묶음 머리에 푸른색 보석으로 치장을 한 채로 원피스 형태의 예식 복장을 하고 있었다.


“너!”


그를 보며 반색한 다린이 그의 앞으로 달려왔다.


“왜 이렇게 늦었어! 한참 찾았잖아!”


누가 보면 친한 사이인 줄 알겠다. 그러나 다린은 모두에게 친근하게 대하는 성격이라 젠은 착각하지 않았다.


“이영이가 원소석은 잘 가져다줬어?”

“어. 네 수행인한테 못 들었어?”

“그거랑 그거랑 다르지! 근데 넌 어떻게 나한테 한 번을 안 찾아왔어?”

“내가··· 왜 널 찾아가야 하는데?”


젠의 물음에 다린이 활짝 웃었다.


“심심하니까!”


본인 심심하다고 오라는 게 뻔뻔하면서도 잘 어울렸다.


젠은 후계자들의 시선이 조금씩 그들을 향하는 걸 느꼈다.

유력한 후계자인 다린과 대화하는 애가 누구인지 궁금할 거다.

다과회에서 그를 봤던 애들은, 그가 사생아인 걸 알 테니 더 궁금할 테고.


“중급 원소석은 어디다 쓸지 정했어?”

“뭐, 대충?”

“대충은 뭐야. 어디다 쓸 건데? 알려줘.”


오늘따라 궁금한 게 많다.

슬슬 다린이 귀찮아진 젠이 시선을 돌리자, 다린이 그의 시선을 따라와 “알려줘!” “왜, 뭔데!” “내가 준 건데 알려줘!” 알려달라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젠은 다린의 이마를 손바닥으로 밀어냈다. 방계 후계자들은 본성 후계자에 대한 젠의 행동을 보고 화들짝 놀랐지만, 다린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여기까지는 다린이 허용하는 선이다.


다린을 손바닥으로 밀어낸 젠은 부채로 반쯤 가려진 시선을 마주쳤다.

헬레나는 못 본 척 고개를 홱 돌렸다. 그리고서 젠은 다과회에서 보지 못했던 후계자들을 차례로 발견하게 되었다.


<대지> 술사로서 늘 후계자 순위 1, 2등을 차지했던 백은 무뚝뚝한 얼굴로 예식이 시작하길 기다리고 있었고, 그의 주변에 <바람> 술사중 1위였던 탈리아가 그의 옆에 있었다.


고지식하지만 서로 친한 편인 <대지> 술사들과 달리 <바람> 술사는 제각각 놀고 있었다. 동배인 제스퍼와 도로시 쌍둥이만 서로 마주 보며 체스를 두고 있었다.


<바람> 술사들이 자기만의 방식으로 시간을 보낸다면, <불> 술사는 자기들끼리 모여 팔씨름을 하고 있다. 그 안에서 젠은 그가 지난 삶에 충성을 바쳤던 헤레이스를 발견했다.


헤레이스 포 글로리아는 여유로운 척 제 가장 큰 라이벌인 헬레나에게 음료를 가져다주었다. 저 멀쩡한 겉모습에 속았던 젠은, 놈이 바로 벡에게 투항한 걸 떠올리고 화가 났다가 진정했다.


그래, 이번 생은 저놈에게 속을 리 없으니 일단 참기로 했다.


“후계자님들, 기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침내 모든 후계자가 모이자, 예식을 진행하기에 앞서 관리자가 들어왔다.


“원래 행정관이 예식이 진행하기로 되어있으나, 사정이 생겨 제가 대신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혼란을 초래하여 정말 죄송합니다.”


짧게 소개를 마친 부 행정관이 가져온 양피지를 폈다.


“그럼- 후계자 의식을 거행하겠습니다.”


음악이 울려 퍼졌다.

예식장의 문이 열렸고, 남녀로 맞춘 후계자들이 나란히 입장하기 시작했다.

본성에서 임의로 배정했다는 순서에 따라 젠은 가장 마지막 입장을 하게 되었다. 참 공평하지 않은가.


“아, 맞다.”


임의로 배정한 순서대로, 거의 앞줄에 있어야 할 다린은 하나둘 후계자들이 거리를 두고 입장하기 바쁜 가운데 젠의 옆에 있었다.


“또 깜빡할 뻔했네.”


아직도 알려달라는 그 소린가.


“너, 이름이 뭐야?”


다린의 물음에 젠은 눈을 깜빡였다.

몰라서 놀란 건 아니었다. 다린이 그의 이름을 이렇게 일찍 물어볼 줄 몰랐기 때문이다. 지난 생에선 후계자 시험이 시작된 지 몇 년 후에나 다린은 그의 이름을 물어보았다. 그때, 젠은 같이 몇 년간 교육받는 주제에 그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는 걸 보고 그를 놀린다고 생각했다.


“이것도 비밀이야? 비밀 엄청 많네.”


다린은 그녀를 찾는 파트너의 손길을 뿌리치며 젠을 노려보았다.


“그건 아니고.”


어차피 알게 될 이름이니 못 알려줄 것도 없었다.


“젠이야.”

“젠? 젠? 한 글자야?”

“어.”


다린은 의아해했다. 짧은 편인 다린의 본명은 세글자, 보통 귀족들의 이름이 네 글자부터였다. 그녀의 생에 이름이 한 글자인 사람은 만난 적도 본적도 없을 거다.


“젠이구나!”


그러나 다린은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젠, 젠, 몇 번 그의 이름을 반복하기도 했다.


“좋아, 기억했어!”

“한 글자도 기억을 못 하면 문제가 있긴 하지.”

“기억했으니까 문제없는 거지?”


젠의 이름을 들은 걸로 만족했는지 다린은 미련을 버리고, 그녀를 찾았던 파트너의 손을 붙잡았다.


“너 진짜 한가하구나.”

“곧 입장해야 하는 데 뭐가 한가해! 바보, 니콜라스!”

“···하.”


다린의 파트너인, 니콜라스가 속에서 진심으로 우러나오는 한숨을 내쉬곤 젠을 쳐다보았다.


“할 말이라도?”


그때 만난 건 모른 척할 생각인가 보다.

하긴 미로 정원에서 있었던 일을 떠들면 헬레나가 가만두지 않겠지.

그날 일을 굳이 떠들어 관심받고 싶은 생각도 없는 젠은 마찬가지로 그녀의 뜻에 따랐다.


“고맙다.”

“!”


그러나 그날 일을 잊은 건 아니다.

젠은 헬레나와의 전투에 대해 떠들지 않았지만, 그날 니콜라스가 도와줬던 걸 기억했다. 니콜라스가 바람을 일으키지 않았다면 그대로 뒤통수에 바람구멍이 났을 거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갑자기.”

“그냥 고맙다고.”


니콜라스가 잡아뗀다. 아무래도 헬레나는 니콜라스의 조력을 눈치채지 못한 모양이다. 젠은 웃으며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를 니콜라스가 바라보다가, 다린의 재촉에 예식장에 끌려들어 갔다.


:


“마지막으로 젠님, 입장하시기 바랍니다.”


마침내 젠의 순서가 왔다.

젠에게는 파트너가 없었기에 홀로 입장해야 했다.


엘은 여전히 보이지 않는다.

다린과 함께 불러간 이래로 소식이 전혀 없었다.

후계자 의식에 불참할 예정인가 보다. 원래 의식을 집행할 행정관까지 자리를 비운 것을 보면, 아무래도 관계가 있을 것 같다.


“젠님?”


젠은 부 행정관의 재촉에 고개를 끄덕였다.

혼자 입장하든 둘이 입장하든 어차피 마지막 순서인 젠을 곱게 보는 인사는 없을 것이다. 그리하여 젠은 당당하게 문을 열고 들어갔고 환한 빛과 우아한 음악이 그를 맞이했다.


그가 예상했던 것처럼 차가운 시선이 그에게 닿는다.

예식장은 계단 형태로 되어 그가 한 발짝 올라갈 때마다 수군거림이 덧붙여졌다.


더러운 사생아 어쩌고, 운 좋은 어쩌고.

마력이 작동하고 있기에 그들의 목소리가 들리는 건 아니나, 무슨 말을 하고 있을 진 뻔했다.


젠은 한 발짝 두 발짝 나아갔고, 다른 후계자에 비하면 평범하기 짝이 없는 푸른 망토가 그의 등에서 흔들렸다.


“마지막 후계자를 소개하겠습니다.”


가장 상석엔 가주가 양옆엔 가문의 안주인인 대부인들이 앉아있다.

머리가 반쯤 하얗게 센 가주와 달리 대부인들은 하나같이 젊고 고았다.


그중에서 젠은 가장 마지막 자리에 앉은 은발의 여인을 발견했다.

왜 이제야 알았나 싶을 정도로 그녀는 엘과 똑같이 생겼다.


“운 좋게 푸른 피를 이어받아, 마력을 자각한 소년 ‘젠’은 후계자의 자격을 얻었고, 그 이름이 포 글로리아의 격에 맞지 않아 후계자 ‘젠’에게 가주님께서 은혜를 하사하시어 오늘부로 새로운 이름으로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젠은 그녀에게 관심을 거두고, 가주와 대부인의 앞에 섰다.

기억 속의 어느 날엔 젠은 그들에게 시선도 보내지 못했다.

어린 젠에게 그들은 아주 높고, 위대한 사람들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날과 같이 사관이 그의 이름을 부른다.


“후계자, ‘제라이온 포 글로리아’는 위대한 영광께 예를 다하십시오.”


그날과 같은 이름을 받은 젠은, 한쪽 가슴에 주먹을 올리고 한쪽 무릎을 꿇었다.


“제라이온 포 글로리아가 위대한 영광께 인사드립니다.”


다른 후계자들과 달리 그의 머리는 묶을 만큼 길지 않았고, 성인이 아니라 기름도 쓰지 않았다. 그리하여 깔끔하게 빗어넘긴 머리카락이 고개를 숙임과 동시에 그의 얼굴을 가렸다.


젠은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포 글로리아의 몰락을 원하는 그는 진심으로 예를 다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사관이 칼을 넘겨주자 젠은 망설임 없이 제 손바닥을 그었다.

그의 붉은 피가 성배에 담겼다.

마치 그를 인지한 것처럼 성배가 반짝였다가 가라앉았다.

사관이 성배를 두 손으로 받아들인 후, 뒤에 있던 하인에게 넘겼다.


모든 후계자의 피가 담긴 성배는 후계자 시험이 끝날 때까지 보관될 것이다.


-이로써 후계자 시험이 진정으로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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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4장. 계승식(2) 24.09.18 37 1 11쪽
» 4장. 계승식(1) 24.09.17 49 1 12쪽
16 3장. 포 글로리아의 후계자들(8) 24.09.16 49 1 11쪽
15 3장. 포 글로리아의 후계자들(7) 24.09.14 61 1 14쪽
14 3장. 포 글로리아의 후계자들(6) 24.09.13 59 1 15쪽
13 3장. 포 글로리아의 후계자들 (5) 24.09.12 59 2 12쪽
12 3장. 포 글로리아의 후계자들 (4) 24.09.11 72 1 11쪽
11 3장. 포 글로리아의 후계자들 (3) 24.09.10 78 1 10쪽
10 3장. 포 글로리아의 후계자들 (2) 24.09.09 81 1 13쪽
9 3장. 포 글로리아의 후계자들 (1) 24.09.08 96 1 10쪽
8 2장. 씨앗 고르기(6) 24.09.07 106 1 16쪽
7 2장. 씨앗 고르기(5) 24.09.06 104 1 19쪽
6 2장. 씨앗 고르기(4) 24.09.05 107 1 12쪽
5 2장. 씨앗 고르기(3) 24.09.04 119 1 10쪽
4 2장. 씨앗 고르기(2) 24.09.04 127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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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1장 24.09.04 159 1 17쪽
1 프롤로그 24.09.04 190 2 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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