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혼환령검(鬼魂幻靈劍) - 귀혼검법(鬼魂劍法) <31>
“궁대협! 궁대협이라면 이 순간에 고스란히 목숨을 바치겠습니까? 우리는 소교주를 협철곡에서 무사히 빠져나가게 해야할 의무가 있습니다. 어차피 이렇게 된 바에 끝까지 싸워보는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사검귀천이 불굴의 의지를 내비치면서 물러서지 않는 승부수를 던졌다.
그 누가 점을 치더라도 결과는 패배였고, 이는 곧 비참한 죽음으로 연결 될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현재 그들에게 있어서 죽음이라는 것은 두려움을 조장하는 거추장스러운 어둠의 장막일 뿐이었다.
그렇기에 어둠에 갇혀있기 보다는 죽더라도 밝은 빛으로 몸을 내던지기를 원하였다.
“어디 한번 궁대협이 이끄시는 무사대의 실력이나 봅시다!”
사검귀천 중 한 명이 배짱이 두둑한 음성으로 싸움을 걸자 궁벽은 내심 그들의 기개를 칭찬했다.
“과연 사검귀천입니다! 그러나 제가 이끄는 무사집단은 사황단(四黃團)으로, 방금 뚫고 오신 등천대와는 차원이 다른 정예 무사단입니다.”
“대천마교에서 무사대를 재정비 한 것입니까?”
돌연 사검귀천의 뒤에 서 있던 허운이 물어오자 궁벽은 고개를 끄덕이며 부연설명을 해주었다.
“역량에 따라 3군6단6대로 나뉘었습니다. 인원으로는 군(軍)이 천 여명, 단(團)이 오백명, 그리고 대(隊)가 약 삼백 여명으로 구성되었지요. 그중 정예무사 집단은 3군 6단이라고 보시면 될 것입니다. 오래 전 지하밀성에서 얻어낸 비급들 중 수뇌부 인사들이 연마한 상승무학을 제외한 나머지 무학들을 가지고 3군 6단의 무사들을 단련시켰습니다. 아시다시피 지하밀성의 무공들은 위력이 강맹할 뿐 아니라 약 6성까지는 속성으로 익힐 수가 있는 특징이 있으므로 대천마교 무사들은 과거 마교의 무사들과 비교해서 더욱 강해졌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듣고 있던 허운은 심각한 안색으로 주위를 한번 둘러보았다.
3군 6단 6대중 궁벽이 이끄는 사황단의 수가 오백명이라고 했던가.
보이는 인원이 약 300여명, 청봉산을 약 3할 정도 오른 지금, 주위는 매우 협소하기에 그 이상의 인원이 포위를 할 수는 없었다. 그렇다면 나머지 200여명은 다른 자가 통솔하여 청봉산 다른 장소에 매복을 하고 있을 공산이 컸다. 더군다나 사황단 무사들은 아까 전 이철이 이끄는 등천대 무사들과 비교했을 때 무공 수위마저 높아 보였다.
허운은 조련이 잘 된 이들이 청봉산을 물샐틈없이 지킨다면 청봉산을 넘는 것은 포기할 수밖에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빠른 시일 안에 무사들을 많이도 모았구려.”
사검귀천의 냉랭하게 쏘아붙이자 궁벽이 짚고 있던 대도(大刀)를 천천히 가슴까지 올리면서 대꾸했다.
“마교에서 투항한 자들도 꽤 되었지만, 그보다 새외(塞外)에서 북마교를 따르던 많은 무사들이 새롭게 가담을 하였습니다.“
순간 깊은 호흡을 가다듬고 있는 궁벽의 옷깃이 파르르 떨렸다.
공격을 위해 깊은 내력을 끌어올려 대도에 주입시키고 있는 것이었다.
“시간이 지체되었으니 이제 작별을 고해야겠습니다. 소교주! 안타깝게 되었지만 순순히 목숨을 건네주십시오. 마교 교주와의 인연을 생각해서 소교주의 시신은 정성껏 수습해주겠습니다.“
마치 저승사자가 임종을 앞둔 자에게 보내는 마지막 배려와도 같았다.
허혜린의 안색은 딱딱하게 굳어졌다.
그때 사검귀천이 궁벽의 협박을 떨쳐버리려는 듯 검을 공중에 한번 휘두르더니 버럭 소리를 내질렀다.
“궁대협! 결전을 앞두고 미리 승리를 장담하지 마십시오! 그럼 사황단이 얼마나 대단한지 한번 견식(見識) 해봅시다.!”
“크게 후회하실 것입니다....”
“길고 짧은 것은 대봐야 아는 법!”
사검귀천은 일제히 검을 휘두르며 지면(地面)을 박차고 날았다.
그러자 포위를 하고 있던 사황단 무사들이 일사불란하게 두 패로 나뉘더니, 한패는 포위를 유지하고, 다른 한패는 사검귀천의 공격을 저지시킬 시도를 하였다.
“비켜라! 이놈들!”
사검귀천의 날카로운 검날이 번쩍이면서 반원을 그었다.
지금까지의 경험상 이 정도 공격이면 몇 놈이 비명을 지르면서 불귀의 객이 되는 것이 당연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예상은 어이없게도 무참히 깨졌다.
단 한 놈만 어깨에 얕은 검상을 입고 밀려나갔을 뿐, 다른 무사들은 재빨리 그의 검공을 피해 일정한 진(陣)을 이루더니 무섭게 반격까지 해왔던 것이었다.
한꺼번에 수 십여 개의 병장기가 휘둘러오자 사검귀천은 물러서지 않고 검을 세워 힘껏 막아냈다.
순간 사방으로 불똥이 튀는 듯 하더니 사황단 무사들의 힘에 사검귀천이 밀려났다.
깜짝 놀란 사검귀천은 심기일전하여 무사들에게 공격을 퍼부어 보았으나 마치 소용돌이 속에 빠진 것처럼 일시에 고립될 뿐이었다.
“이런...정예무사들이라더니...등천대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만큼 훌륭하게 조련이 되어 있구나.”
사검귀천은 전력을 다해 사황단 무사들에게 대항했으나 역부족이었다.
이러다가는 고스란히 몰살당할 지경이었다.
“사황단은 뒤로 물러나라!”
궁벽의 우렁찬 명령 한마디에 무사들은 썰물처럼 빠져나가 전열을 갖추었다.
사검귀천은 뜻밖의 상황에 더욱 긴장하여 공세를 취했다.
그때 궁벽의 신형이 무사들을 뚫고 앞으로 홀로 튀어나왔다.
그제야 사검귀천은 그의 뜻을 간파할 수 있었다.
사검귀천을 직접 상대하겠다는 뜻이었다.
“과연 궁대협의 패기는 알아줘야 하겠소!”
수적으로 불리하여 은근히 걱정되었는데 모든 무사들을 물리고 궁벽이 단신으로 공격해오자 사검귀천은 내심 반갑기 그지없었다.
결과가 어찌 될지 장담할 수는 없겠지만, 만약 사황단을 이끄는 궁벽만 제거해버린다면 사황단 무사들은 졸지에 머리를 잃고 갈팡질팡하는 오합지졸이 되어 지리멸렬하지 않겠는가. 천우신조를 놓칠 그들이 절대 아니었다.
“궁대협! 먼저 공격하겠습니다!”
사검귀천의 선제공격에 맞서 궁벽은 큰 키와 긴 팔을 이용하여 커다란 도(刀)를 막대기 다루듯이 거세게 휘둘러댔다.
보기만 해도 엄청난 파괴력이 느껴지는 지라 그 기세에 눌린 사검귀천은 잠시 물러났다가 다시금 사방(四方)으로 협공해 들어갔다.
그 와중에 궁벽의 대도(大刀)와 사검귀천의 사검(四劍)은 강렬히 충돌하게 되었다.
“네 분 모두 기력들이 많이 떨어지신 모양입니다.”
“궁대협은 사검귀천의 실력을 우습게보지 마시오!”
사검귀천은 불리함을 보이지 않기 위해 더욱 빠르게 검을 휘둘러 공격했다.
“으합!”
밀려들어오는 사검귀천의 검공을 아랑곳하지 않은 궁벽은 기합과 함께 대도를 힘차게 움직였다. 그 살인적인 기운에 사검귀천은 뒤로 밀리면서 일순 패색을 보였다.
“아쉽게 되었습니다. 사검귀천과 제대로 겨뤄보고 싶었는데...”
궁벽이 기세를 잡고 수 십여 초를 공격을 해대자 사검귀천중 한 명이 검을 잡은 쪽의 어깨에 부상을 입고 비틀거렸다.
가뜩이나 힘이 부칠 지경인데 한 명이 빠지니 결과는 불 보듯 뻔했다.
남은 세 명의 사검귀천은 풍전등화에 놓여 그야말로 젖 먹던 힘까지 짜내 방어하기에 급급하게 되었다.
그때 남은 한쪽 방향을 타고 허혜린의 신형이 번뜩였다.
“소교주까지 오셨습니까?”
궁벽은 그녀의 검공을 대도로 턱 막더니 그녀를 비롯하여 사검귀천까지 광범위하게 공격하기 시작했다.
부상당했던 사검귀천중 한 명이 급히 지혈을 하고 가세하여 총 다섯 명이 궁벽을 에워싸고 협공을 가했으나 기울어진 열세를 만회하기란 불가능하였다.
“지금부터 조심하십시오. 소교주!”
궁벽이 허혜린에게 한번 주의를 주면서 도(刀)를 그녀의 허리쪽으로 깊숙이 찔러갔다.
무형의 도기(刀氣)가 피부까지 도달함을 느낀 허혜린은 허리를 뒤틀면서 몸을 공중으로 붕 띄웠다. 그때 허혜린에게 공격을 집중한 틈을 노리고 사검귀천이 한꺼번에 달려들었으나 궁벽은 대도를 360도 크게 회전시켜 그들의 검공을 모조리 쳐냈다.
그리고 동시에 그의 대도에서는 여섯 개의 극광(極光)이 퍼지면서 공중에 일점(一點)이 되어 있는 허혜린을 노리고 질풍처럼 폭사되었다.
“아!”
사검귀천이 기습을 할 수 있게 일부러 궁벽의 공격을 유인 한 것인데 사검귀천의 공격은 무위로 돌아가고 자신은 오히려 절체절명의 순간에 처하게 되어 버렸다.
그녀는 여섯 개나 되는 공격을 공중에 머물러 부자연스러운 상황에서 어떻게 막아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소교주! 위험합니다!”
뒤에서 허혜린의 위급을 본 허운이 비명과도 같은 외침을 질렀다.
사검귀천도 대경실색 한 나머지 공격하는 것도 잊어버린 채 그만 몸이 굳어지고 말았다.
그녀를 구할 시기를 놓쳐 버렸던 것이다.
“아! 늦어버렸어!”
검막(劒幕)을 형성하여 막아볼 시도를 하고자 했던 허혜린은 궁벽이 노리는 공격이 너무 광범위한데다가 그 기세가 대단하여 막기가 여의치 않음을 깨달았다.
어물거리는 동안 도(刀)에서 뿜어져 나왔던 백색 광채는 허혜린의 전신을 뒤덮고 있었다.
“죄송하게 되었습니다. 소교주...”
끝을 볼 요량인지 궁벽은 대도를 타고 흐르는 내력에 더욱 박차를 가하려했다.
그런데 그 순간 무엇인가가 공중으로 솟구쳐 허혜린에게 빠르게 접근하는 것을 포착되었다.
궁벽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것은 자신이 펼친 패도적인 공격을 막아보겠다고 무모하게 뛰어든 한 사람이었다.
“위대협!!”
허혜린은 절체절명의 순간에 앞을 막아선 위현룡을 보게 되자 깜짝 놀라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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