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혼환령검(鬼魂幻靈劍) - 화룡점정(畵龍點睛)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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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교인들은 드디어 협철곡이라는 깊은 덫에서 빠져나갈 수가 있었다.
불지옥과 같은 곳에서 무사히 벗어나게 되었으니 마교 수장들과 무사들은 현실이 꿈 인양 믿어지지 않는 모양이었다.
"모두 힘을 내라! 조금만 더 가면 안전한 곳에 당도하게 된다!"
앞장서던 유원학이 검을 높이 들면서 큰 소리로 외쳤다.
우렁찬 함성이 뒤따르며 무사들의 사기가 하늘을 찔렀다.
"하하하! 이거 정말 운이 좋았소!"
달리는 와중에 유원학이 껄껄대고 있었다.
"그렇습니다. 정말 운이 좋았습니다!! 아마 이하민이 이번 참에 한가지 배웠을 것입니다. 계략을 세우는 것은 참모이나 그것을 실행시키는 것은 수하들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대천마교의 손실을 거의 내지 않기 위해 세운 이번 계략은 좋았으나 너무 복잡했습니다. 그러니 그 와중에 수하들이 실수를 하지 않을 리가 없지요."
허운의 설명에 이번엔 종덕휘가 맞장구를 쳤다.
"아무렴! 그나저나 그 오만한 이하민 놈의 일그러진 면상을 꼭 봤어야 하는 것인데!! 하하하"
그의 말에 모든 사람이 한바탕 웃어댔다.
그러나 그들은 모르고 있었다.
위현룡이 결정적인 순간에 움직이지 않았더라면 이하민의 이번 계략은 성공적인 작품이 될 수 있었다는 것을 말이다.
협철곡을 뒤로하고 전력으로 질주하던 그들은 앞서 가고 있던 소교주, 사검귀천과도 합류를 했다. 그들도 마교 무사들이 적은 피해만 보고 안전하게 빠져 나왔다는데 크게 기뻐한 것은 물론이었다.
유원학이 품에서 가죽에 그려진 지도를 꺼내 펴들었다.
"어디 봅시다...이쪽으로 오십 리(대략 20km)가량 가면 삼조곡이라는 곳이 나오는 군. 일단 삼조곡만 벗어나면 그 후에 수많은 길목들이 있으니 대천마교에서 우리가 어디로 도망쳤는지 쉽게 알아내지 못할 것이오."
그들은 이미 모든 시련이 다 지났다고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
허나 세상만사 그렇게 쉽게 되는 일이 어디 있겠는가.
"유대협! 전방에 적들이 출현했습니다!!"
앞서 갔던 척후대가 돌아와서 급히 보고를 해왔다.
뜻밖의 변고였다.
"뭐라!!! 모두 멈춰라!!!"
유원학의 긴급명령에 모든 이들의 움직임이 정지되었다.
"어디에 적들이 포진하고 있단 말이냐?"
유원학이 척후무사에게 더욱 자세한 정황을 알아볼 시도를 하였다.
"불과 몇 리 앞입니다. 저희들이 그 쪽을 지나던 중 적들의 기습을 받아 태반이 죽고 저희만 겨우 피해왔습니다."
"적들의 수는 얼마나 되느냐?"
"알 길이 없습니다만 그리 적은 수는 아닌 것 같습니다."
유원학의 안색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유대협! 어쩔 수가 없소이다. 돌파하지 않으면 뒤에서 이하민이 끌고 오는 대천마교 무사들에게 당하고 말 것이오."
굳이 종덕휘가 이런 말을 꺼내지 않더라도 그 예상을 하지 못할 사람은 없었다.
이젠 선택의 득실(得失)을 가릴 처지도 아니었다.
"어쩔 수 없다! 무조건 돌파한다!!!"
시간을 늦출수록 위험하다는 결론을 내린 유원학은 비장한 각오로 명을 내렸다.
어차피 방금 전 화공의 늪도 돌파한 터라, 그에 비하면 그리 두려울 것도 없었다.
유원학을 주축으로 한 마교 무사 700여명은 긴장을 늦추지 않은 채 정면돌파를 시도했다.
얼마쯤 가다보니 전방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무리가 구름같이 몰려오고 있었다.
예상대로 적들이 출현한 것이 분명했다.
뽀얀 연기 주위로 드러나 보이는 머릿수는 예상치를 한참이나 상회하고 있었다.
"멈춰라!!"
종국에 가서는 양측에서 이런 명령 소리가 동시에 들려나왔다.
전력으로 달려오던 두 무리는 아무런 충돌을 벌이지 않고 대치를 벌였다.
그리고 서로의 군사 규모를 헤아려 본 후, 하나같이 놀람을 금지 못했다.
"이런...단순히 암습을 위한 복병치고는 수가 너무나도 많군..."
유원학의 입에서 이런 신음성이 터져 나왔다.
허나 이는 대천마교 측도 마찬가지였다.
"이게 어찌 된 일인가! 이하민 참모가 화공에서 빠져 나오는 적들의 뒷정리만 하면 된다고 하여 대략 수 십명 정도로 예상했거늘....지금 보니 적들의 수가 700명도 넘지 않은가!!"
이하민의 명을 받아 앞을 가로막고 있던 대천마교 무사들은 바로 대천마교 3대 최정예 무사군 중 하나인 북마천군으로, 무사수는 천 여명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허나 아쉽게도 현재의 북마천군은 두 패로 나뉘어 나머지 오백 여명은 후방에 남아 있는 상태였다.
마교의 무사수가 700여명을 넘는데 비해 잔당을 처리하겠다고 호기롭게 막아선 대천마교의 무사수는 겨우 500명이니 이거야말로 주객(主客)이 전도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빌어먹을..."
지금 북마천군을 지휘하고 있던 사람은 고득련이라는 고수였다.
이 사람은 과거 북마교의 핵심인사 중 한 명으로서, 그의 위명이 마교는 물론 새외 밖까지 쟁쟁할 정도로 무학에 있어서 최고의 반열에 올라가 있는 사람이었다.
또한 지모가 출중하고 수하들마저 잘 다뤄 그를 따르는 무리들도 꽤 많았다.
아무튼 수적으로 열세에 놓여 불리하다고 생각한 고득련은 뒤에 있던 심복에게 작은 목소리로 명을 하달하였다.
"너는 얼른 가서 후방에 있는 철혈삼마를 이끌고 오너라."
이렇게 은밀하게 명을 내려놓은 고득련은 짐짓 태평한 얼굴로 앞에 나섰다.
"거기 오는 자들이 누구인가?"
상대를 알아본 마교 인사들의 얼굴이 돌처럼 굳어졌다.
"고...고대협 아니시오?"
유원학이 떨리는 음성을 진정시키면서 한 발자국 앞으로 나섰다.
"하하하! 유대협 아니신가? 이거 오랜만이오."
고득련이 더욱 여유를 부리면서 또 다시 앞으로 두발자국을 내딛었다.
그의 태연한 모습을 보면서 마교 인사들은 어딘가 잠복해 있을 복병들을 떠올렸다.
(분명 저 병력이 다가 아닐 것이다...)
이런 생각들을 공통적으로 하고 있는 중 유원학이 기선을 제압 당하지 않기 위해 선수를 쳤다.
"이보시오! 고대협! 우리는 지옥보다 더한 사지(死地)를 용감히 뚫고 나온 사람들이오. 근데 이렇게 고대협이 앞을 가로막는다고 해서 우리들이 눈 하나 꿈쩍 할 것으로 보이시오?"
솔직히 마교 인사들이 수적 우세에도 불구하고 멈춘 것은 고득련 하나 때문이라는 이유가 맞는지도 몰랐다.
그가 어떤 인물이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에, 무턱대고 정면돌파를 하기가 꺼림직 했던 것이었다.
"거 유대협도 착각이 심하시오. 빠져 나온 그 곳은 사지로 보이고 이곳은 사지로 안 보이신단 말이오? 어쩌면 이곳이야말로 그대들의 무덤자리가 될 지도 모를 일이오."
고득련이 노련한 웃음을 띄우면서 약을 바짝 올리고 있었다.
순간 분을 참지 못한 노진이 성난 음성으로 버럭 소리질렀다.
"고득련! 네 이놈!! 교주께서 너를 아껴주셨거늘 은혜도 모르는 금수처럼 날뛰다니!! 네 놈을 절대로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고득련의 눈꼬리가 위로 바짝 치켜 떠졌다.
"난 또 누구라고...다 늙어빠진 여우 한 마리가 뭐라 소리쳐대는 것인가!!! 노진! 네 놈 따위가 감히 나에게 도전이라도 해보겠다는 것이냐!!"
"뭐라!! 내가 네 놈을 무서워할 것 같으냐!!"
"흥! 용기가 있으면 한번 나와 보던지...아니면 그냥 그렇게 뒤에서 입만 나불대고 있던지 알아서 하시구료!"
두 사람이 입씨름이 시작되는가 싶더니 어느새 분노한 노진이 검을 뽑아들어 나서고 있었다.
"노대협! 그만 진정하십시오!"
안되겠다 싶은 유원학이 급구 만류를 하였다.
어차피 고득련이 도전을 해 온만큼 거절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노진은 아니었다.
물론 노진도 고수의 반열에 올라가 있긴 했지만, 나이가 많아 기력이 쇄한 노진이 고득련을 꺾기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웠다.
괜히 노진을 내세웠다가 지기라도 한다면 전체적인 사기에 미치는 영향이 최악일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 아니겠는가.
하지만 고득련이 노리는 바는 그것뿐이 아니었다.
후방에 있던 철혈삼마가 당도할 때까지 일단 시간을 벌고, 그 전에 미리 적의 수장을 꺾어 기선을 제압해 놓는 것이 여러모로 유리하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어이! 노진대협. 왜 안 나오시오? 내가 무섭기라도 한 것이오?"
"뭣이!!"
노진의 입가에서 분노한 신음이 새어나오자 유원학을 비롯한 여러 사람이 앞을 막고 그를 진정시키려 애썼다.
그러자 그 모습을 본 고득련이 하는 말이 가관이었다.
"보아하니 저들도 당신이 나에게 패해 사기가 꺾일까봐 매우 걱정스런 모양이오! 하하하."
못 이기는 척 뒤로 물러날까 생각했던 노진은 그 말에 피가 거꾸로 치솟는 기분이었다.
뒤에 후배들이 즐비한 상황에서 공개적으로 망신을 당한 노진은 앞뒤 가릴 것 없이 다짜고짜 검을 뽑아들고 달려나갔다.
많은 사람들이 말리려 했으나 노진의 격한 성격을 막지는 못했다.
"죽어라!! 이 놈!!"
뜨거운 고함소리와 함께 노진의 칼이 고득련의 목덜미를 노리고 반원으로 휘둘러졌다.
그러나 이미 준비하고 있었던 고득련은 허리에서 검을 뽑아 틀어막으면서 곧장 밀고 들어갔다.
그 신속함과 완력에 놀란 노진은 정신이 번쩍 나면서 방어초식으로 고득련의 폭풍 같은 공세를 막아냈다.
"왜 그리 움츠러드시오?"
빈정거리던 고득련은 기합과 함께 약 오십여 초식동안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였다.
마교 군중들은 술렁거렸다.
노진이 누구던가. 아무리 늙었다고는 하지만 한때 마교에서 한 마리의 범으로 불리던 절세고수가 아니었던가.
하지만 가는 세월과 함께 무학도 꽃처럼 시들어 버리는 법이었다.
관망하던 유원학과 종덕휘의 얼굴은 점차 침울하게 변해갔다.
"안 본 사이에 고득련의 무공이 고강해졌군."
유원학의 중얼거림에 종덕휘가 대꾸했다.
"과거 북마교 때부터 무서운 고수로 성장했던 사람이오. 차마 인정하긴 싫지만 노진대협이 버티기는 어려울 것 같소이다."
고득련은 내력의 10할을 끌어 올려서 사용하며 노진을 수세에 빠트렸다.
그의 입장에서는 단시간 내에 싸움을 종결시켜야만 했다.
앞으로 몇 번의 대적이 이뤄질 것이지만, 특히 초반에는 단숨에 적의 기세를 꺾어야 다음에 대적할 자(者)가 심리적 부담을 느끼게 되기 때문이었다.
이것이 그가 모든 전력을 끌어올렸던 이유였다.
"이 놈! 내가 질 줄 아느냐!!!"
노진이 발악하듯 이를 갈면서 반격을 펼쳤지만, 아쉽게도 그저 발악에 불과했다.
순간 상대의 허점을 본 고득련은 전광석화처럼 검풍을 앞세워 밀고 들어갔다.
"허억!!"
겨드랑이 사이로 시큰한 통증이 짜릿하게 느껴지나 싶더니 어느새 고득련의 검이 노진의 몸뚱이를 헤집고 지나가고 있었다.
사방에 피가 분수처럼 튀어 올랐다.
순간 마교쪽에서 비명과 소란이 불길처럼 일어났다.
그리고 그 혼란소리를 장송곡 삼아 노진은 싸늘한 주검이 되어 바닥에 꼬꾸라졌다.
"노대협!!!!!"
애처로운 눈빛으로 마교 인사들이 노진을 불렀지만, 득의 만연한 고득련의 발아래 처박혀 있는 노진에게 선뜻 달려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왜냐하면 그들이 느낀 것이라곤 노진의 죽음에 대한 슬픔보다 고득련의 무공에 대한 경외감과 두려움이 더 컸기 때문이었다.
"이거야...원...싱거워서...노진대협이 어디 병이라도 걸린 것이오? 겨우 백여 초만에 이리 되실 게 뭐란 말이오...참으로 안타깝소...마교에 이렇게 사람이 없었다니..."
고득련의 냉랭한 한마디에 마교측은 그야말로 초상집이 되어버렸다.
"큰일이군..."
돌아가는 사정을 본 허운이 짧은 절망을 내뱉었다.
"아직 끝난 것은 아닙니다! 제가 나서보겠습니다."
사검귀천이 검을 뽑아들고 앞으로 나서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고득련이 인상을 찌푸렸다.
"설마 명성이 자자한 사검귀천이 치사하게 네 명 한꺼번에 덤벼보겠다는 것이오? 뭐 그렇다고 해도 상관은 없소만...마교에 그리 사람이 없으니 어쩌겠소...떼거지로라도 덤벼봐야지..."
이는 정말로 사검귀천이 한꺼번에 달려들까 걱정되어서 고득련이 미리 수를 써본 것에 불과했다. 아무리 고득련이 고수라 할지라도 개개인이 고수의 반열에 올라있는 사검귀천을 상대로 한꺼번에 싸운다는 것은 여러모로 위험이 뒤따랐던 것이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예상대로 사검귀천 중 한 명이 대표로 앞에 나섰다.
이 사람의 이름은 백인검이라 하는데 사검귀천중 나이가 제일 많아 은연중에 맏형 역할을 하고 있는 사람이었다.
백인검이 앞으로 나서자 유원학이 곁에서 기운을 북돋아 주었다.
"잘 하시오! 노진대협이야 무학이 쇠퇴의 기로에 접어들었기에 쉽게 당한 것이오. 백대협이라면 고득련의 기고만장함을 꺾을 수가 있을 것이오!!"
"사검귀천! 잘 해야 해요!"
허혜린도 듬직한 그를 보면서 따뜻하게 한마디 응원을 보내고 있었다.
백인검은 깊숙이 고개를 한번 숙인 후에 고득련의 정면에서 당당하게 검을 들었다.
"오...사검귀천 중 가장 무공이 뛰어나다는 백대협이 나오시니 이 사람이 긴장을 늦출 수가 없을 지경이오."
"어디 한번 고대협의 실력이나 견식 해 봅시다."
싸늘하게 한마디씩 주고받은 그들은 드디어 무섭게 격돌했다.
양측 모두 마음속으로는 고득련의 우세를 인정하였지만 의외로 초반 시작부터 약 200여초식 동안이나 백중지세가 유지되는 이변이 일어났다.
"어쩌면 쉽게 패하지도 않을지도..."
유원학의 음성에서 조심스런 희망이 묻어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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