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혼환령검(鬼魂幻靈劍) - 화룡점정(畵龍點睛) <12>
그때 곁에서 무엇인가를 골똘히 생각하고 있던 허운이 이렇게 입을 열었다.
"만약 이번에도 백대협이 패한다면 우리 무사들의 사기를 생각할 때, 큰 낭패를 볼 것입니다. "
"그렇겠지요..."
"그런데 말입니다...백대협이 패하여 우리측 사기가 바닥을 쳤는데도 불구하고 고득련이 총공격을 미룬 채 계속해서 대적을 고집한다면 이는 저 전력이 전부라는 것을 뜻합니다."
순간 유원학의 얼굴이 묘하게 일그러졌다.
그리고는 마치 뭔가를 알아챘다는 어투로 독백하듯 말했다.
"고득련이 속임수를 쓰고 있었나...!"
"아직은 뭐라 단정지을 수 없습니다만, 초반부터 쭉 살펴보니 고득련이 의도적으로 시간을 끌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허운의 말에 유원학은 고개를 끄덕이며 이렇게 맞장구를 쳤다.
"어쩌면 우리가 너무 신중했던 것일지도 모르오. 솔직히 이하민이 총력을 기울인 곳은 협철곡 출구였지 않소? 그런 점에서 뜬금없이 이런 곳에 대대적인 무사들을 소집시켜 놓았을 리가 만무하단 말이오."
"그러나 신중해서 나쁠 것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하민은 완벽을 추구하는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일단 확신을 할 수 있을 때까지 좀더 지켜봐야겠습니다. 만약 의도적으로 지연을 시키고 있는 것이라면 그때 가서 정면돌파를 하면 될 일입니다."
"허나 이하민이 곧 추격을 해오지 않겠소?"
"추격 말입니까? 글쎄요..."
그러던 중 때마침 척후를 수행하던 무사들이 돌아왔다.
허운이 기다렸다는 듯이 급히 물었다.
"알아보았느냐?"
"네! 참모님의 예측이 맞았습니다. 저기 솟아오르는 검은 연기들은 협철곡 출구에서 시작되는 것이었습니다. 저희들이 좀 더 알아보기 위해 접근해보니 협철곡 출구에 큰 불길이 일어서 주위의 초목들을 맹렬히 태우고 있었습니다."
"그 곳이 불바다가 되어 있더란 말이냐?"
참지 못한 유원학이 허운 대신 물음을 재촉하였다.
"그렇습니다. 무슨 연유인지는 모르겠으나 협철곡 출구는 불바다가 되어 개미새끼 한 마리도 통과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이하민의 무사들은?"
"저희도 알 길이 없었습니다. 다만 확실한 것은 적들이 지금 추격을 해오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듣고 있던 허운의 얼굴엔 화색이 돌았다.
"예상대로 적진에 무슨 일이 터진 것이 틀림없습니다. 시간상으로 보면 이미 이하민의 추격무사대가 접근해야 마땅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일단 2가지 경우를 생각해 볼 수 있겠습니다. 계략의 실패로 인한 뒤탈이 생겨 추격자체를 포기했거나 아니면 길을 우회하여 추격해오고 있을 경우입니다."
유원학은 급히 품에 갈무리했던 지도를 다시 꺼내들었다.
"지도에 보면 우회를 위한 가장 가까운 길목은 딱 하나뿐이오. 허나 이 길을 택한다면 거리 상으로 우리들을 따라잡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소. 우리야 삼조곡만 지나게 되면 도망칠 길목이 수십 개도 넘으니, 그렇게 되면 아무리 이하민이라 하더라도 글러먹은 일이란 말이오."
"제가 이하민이라고 해도 우회로를 택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어쩌면....협철곡의 불길이 진압되기를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지요..."
허운은 고개를 들어 점점 어두워지는 검은 하늘을 바라보았다.
조만간 한바탕 퍼부을 조짐이었다.
"일단 이번 판만 더 두고 봅시다. 백대협의 승패여부와 고득련의 언행에 따라 총공격의 명을 내려야하니 말이오."
이렇게 말하는 유원학의 두 눈이 고득련과 백인검의 싸움에 모아지고 있었다.
그들이 벌이는 싸움의 양상은 더욱 무지막지해졌다.
한치도 양보하지 않고 일진일퇴를 거듭하는 통에 마교나 대천마교나 모두 손에 땀을 쥐고 관망하고 있었다.
"이거...사검귀천의 무공이 보통이 아니구료."
"고대협도 대단하시오."
입으로는 서로간에 찬사를 해주면서도 휘두르는 검(劍)에는 살기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일단 객관적인 시각으로 봤을 때 두 사람의 실력은 호각지세인 것이 맞았다.
그러나 그것은 고득련이 최선을 다해 싸우고 있을 때에나 할 수 있는 말이었다.
고득련은 지금 후방에 있던 철혈삼마가 당도할 때까지 시간을 벌고 있었다.
사실 말이 후방이지 고득련은 이미 이하민의 계략이 다 끝난 것으로 판단하고는 회군(回軍)의 명을 내려놓았던 것이었다.
그렇기에 훨씬 상당한 시간을 벌어야만 했다.
더구나 마교 측에서 이런 사실을 눈치채지 않게 싸워야했기에 더욱 힘든 일이었다.
그때 사검귀천 백인검이 고득련이 잠시 허점을 보인 틈을 잡고 사정없이 몰아쳤다.
그의 검이 삼대요혈을 노리며 섬뜩하게 들어갔다.
깜짝 놀란 고득련은 뒤로 몇 발자국이나 물러나는 바람에 제복이 갈가리 찢어지는 낭패를 맛보았다.
고수들과의 격전에서 상대를 봐준다는 것은-특히 상대가 고수라면-자신의 목숨을 고스란히 내 받친 것이나 진배없었다.
고득련은 더 이상 봐주며 물러나다가는 오히려 패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어쩔 수가 없군...)
갑작스럽게 고득련의 전력이 급상승하면서 일진광풍이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백인검은 고득련이 내뿜는 괴이한 기운때문에 정순했던 내력이 심하게 요동치는 것을 느꼈다.
(이럴 수가....!!!)
고득련의 신법이 더욱 빨라지면서 전력이 두 배 이상 증폭되고 있자 백인검은 경악을 금지 못했다.
"뭘 그리 놀라시오?"
히쭉 웃고 있는 고득련의 얼굴이 흐릿해지면서 그가 휘두르는 검광이 서서히 붉은빛으로 물들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이 놈!!"
백인검이 두려움을 떨쳐버리려는 듯 과감한 승부수를 던졌다.
몸을 낮게 수그린 채 고득련의 하체를 노리고 전광석화처럼 들어갔다.
그러나 고득련은 백인검의 검공을 일거에 막아버리고는 연이어 일자로 검을 휘둘렀다.
붉은 선이 허공에 촉촉이 그어졌다.
사람들은 그 색채가 고득련의 검에서 발광한 것인지, 백인검의 몸뚱이에서 터져 나온 것인지 구별을 하지 못했다.
그러나 십 여초식 동안 계속되는 고득련의 검무에 흙바닥이 점차 붉게 물들어가자 군중들은 비로소 백인검의 신상에 큰 변고가 생겼음을 직감했다.
검(劒)의 소용돌이 속에 돌고 돌던 백인검은 마침내 피투성이가 되어 퉁겨져 나왔다.
그의 육신이 찢어진 종이조각처럼 힘없이 흙바닥에 미끄러져 나동그라졌다.
그리고 충혈 된 그의 두 눈동자는 깊은 한(恨)을 간직한 채 공허한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아..."
마교 사람들은 강한 충격으로 입을 다물지 못했다.
설마 백인검이 이렇게 쉽게 당할 줄 전혀 예상 못했기 때문이었다.
"하하하! 백대협은 그나마 노진보다는 낫군!"
고득련의 승리에 도취한 웃음이 사방팔방 울려 퍼지는 가운데 마교 인사들의 혈색은 하얗게 질리고 있었다. 수장들이 이러할 진데 그들의 무사들이라고 별 수 있겠는가.
마교 무사들도 핏기를 잃은 채 망연자실할 뿐이었다.
"고득련의 검법이 원래 저랬습니까?"
유원학이 신경질적인 음성으로 종덕휘에게 묻고 있었다.
"저 무공은 고득련의 것이 아니오. 과거 우리는 북마교 고수들과 치열하게 싸워왔고, 특히 고득련의 무공은 우리들이 잘 알고 있소이다."
"그럼 저 이상한 무공은 뭐란 말입니까?"
그때 갑자기 고득련의 기고만장해진 목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백대협의 목숨이 아직 끊어지지 않은 모양이오. 지금 데려다가 잘하면 살릴 수도 있을 것 같은데....어서 데려가시고, 다음 도전자 나와보시오!!"
마교 인사들은 순간 멈칫했다.
누가 감히 그 앞으로 나가서 백인검을 데리고 나올 것인가...
고득련의 음흉함을 잘 알고 있는 그들이었다.
백인검을 데리고 오다가 어떤 암습 형태로 일격을 받을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자 세 명의 사검귀천 중 한 명이 앞에 나섰다.
"제가 백대협을 데리고 나오고 저 자와 한번 붙어 보겠습니다!!"
분노가 극에 달한 사검귀천의 눈에는 핏발이 서있었다.
"잠시 기다려보시오!"
허운은 그들을 급히 만류하면서 유원학에게 확신에 찬 어조로 말했다.
"복병은 없숩니다!!! 고득련이 시간을 벌고 있는 것입니다!!"
"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원학은 선뜻 공격명령을 내릴 수가 없었다.
현재 적들과 아군의 무사 수는 크게 차이가 없었기에, 이럴 경우 사기가 충만한 측이 압도적으로 우세하게 되어 있었다.
이미 고득련에게 두 번을 연달아 패한 상태라 아군의 사기는 언급할 수 없을 정도로 엉망진창이었다.
(지금 총공격을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차라리 누군가 한번만이라도 고득련과 박빙으로 싸워준다면 어느 정도 사기가 오르련만...)
이런 상황에서 총공격에 나서게 되면 득(得)보다는 실(失)이 많음을 유원학이 모를 리가 없었다.
허운도 그의 심중을 간파하고는 나직한 한숨을 쉬었다.
"유대협! 이번엔 제가 나가겠습니다! 저를 내보내 주십시오!!"
그러는 와중에도 사검귀천 중 남은 세 명이 서로 나가겠다고 계속 아우성치고 있었다.
유원학은 번민에 휩싸여버렸다.
더 이상 고득련에게 죽음을 당한다면 사태는 돌이킬 수 없을 지경이 될 것이었다.
그때 뒤에 포진되어 있던 마교 무사들 틈바구니에서 누군가가 걸어나왔다.
전신의 제복은 찢어져 흙과 피로 뒤범벅이 되어 지저분했고, 머리털은 산발이 되어 바람결에 흩어 날리고 있었다.
위현룡.
그는 바로 이철의 화공을 저지하고 이곳으로 바람처럼 달려 온 위현룡이었다.
"위대협!!!"
가장 먼저 알아보게 된 허혜린은 너무나 기쁜 나머지 하마터면 그를 끌어안을 뻔했다.
때마침 허운이 끼어 들지 않았으면 말이다.
"무사히 돌아오셨군요!"
허운이 반가운 음색으로 그의 어깨를 붙잡고 외쳤지만 위현룡은 허혜린에게나 허운에게나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아무튼 그의 뜻밖의 출현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유원학은 온통 고득련에게 정신팔려 있었다.
어떻게 하면 이 난국을 헤쳐나갈지 고심을 거듭하고 있었던 것이다.
"단대인은 어찌 되셨어요?"
허혜린이 위현룡의 뒤에서 묻자 그제야 유원학의 신경이 위현룡에게 돌아갔다.
"돌아가셨습니다."
그의 비통한 한마디는 허혜린과 허운을 비롯하여 사검귀천과 종덕휘의 마음까지 아프게 헤집었다.
연이은 부고(訃告)였다.
단중에 이어 노진까지...그리고 사검귀천 백인검은 생사의 갈림길에서 헤매고 있었다.
위현룡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뚜벅뚜벅 고득련쪽으로 다가갔다.
그리고는 쓰러져있는 백인검의 상태를 살폈다.
"뭐야 이건..."
고득련은 일개 마교 무사가 나와 겁을 상실한 행동을 하자 어이가 없었다.
사실 원래 계획은 마교 인사 중 쟁쟁한 놈이 백인검을 부축하기 위해 나오면 암습을 가해 단칼에 죽여버리고, 적들의 혼란을 틈타 총공세를 펼칠 참이었다.
그런데 별볼일 없는 무명의 무사가, 더군다나 검도 뽑지 않은 상태로 나왔으니 이럴 때엔 그냥 뒷짐지고 서서 대인의 풍모를 보이는 것이 상책이었다.
[음...너무 큰 상처를 입었군...숨이 거의 멎으려 하고 있구나..이미 늦었다.]
홍후인이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면서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자마자 백인검의 고개가 힘없이 아래로 떨궈졌다. 때마침 숨을 거둔 것이었다.
그 모습을 본 마교 인사들은 마치 자신들의 숨이 멎는 것처럼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위현룡은 안타까운 한숨을 내쉬었다가 묵묵히 백인검의 주검을 안고 걸어 나왔다.
유원학은 자신의 곁을 지나치는 위현룡에게 무뚝뚝한 한마디를 던졌다.
"단대인이 이미 죽을 것을 알기에 너에게 무사들을 내주지 않았던 것이다!"
마음에 담고 있었던 것을 보니 그 역시 괴로웠던 모양이었다.
위현룡의 입술이 뜨거운 마음을 참지 못하고 실룩거렸다.
"만일 제게 무사들을 내어주셨다면 단대인을 살릴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유원학은 화를 누르고 있는 위현룡 앞에서 애써 냉담함을 보였다.
"만일이라고? 그 만일이라는 불확실성 단어를 앞에 붙인 이유가 무엇이냐? 너 역시 단대인을 살릴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하지 못했다는 뜻이 아니더냐? 난 수많은 무사들을 이끄는 수장이다. 확신도 없이 유약한 판단으로 전 무사들을 죽음에 몰아넣을 수는 없는 것이다. 알겠느냐! 난 단대인 한 명보다 수백의 무사가 더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유원학의 차가운 대꾸에 위현룡은 울분이 치밀어 올랐다.
[현룡아...참아라...솔직히 말하자면 저 자의 생각이 틀린 바는 없지 않느냐...너무 냉정한 것이 흠이긴 하다만, 현재 마교에서 저런 자가 통솔하고 있다는 건 그나마 다행으로 봐야한다.]
홍후인의 위로에 위현룡은 눈물을 글썽하여 고개를 푹 숙이고야 말았다.
그 누구를 원망하겠는가...이 모든 것은 단중을 제대로 구해내지 못한 자신의 책임이 가장 크다고 자책할 뿐이었다.
"자자! 이제 어서 나오시구료! 이번엔 유원학대협이 직접 나오시는게 어떻겠소?"
승냥이와 같은 흉폭한 눈빛이 고득련의 눈동자에 비쳤다가 금방 사라졌다.
유원학만 어떻게든 죽여 없애면 모든 싸움이 끝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유원학이 거절하면 곤란하다 생각했는지 얼른 이런 말을 뒤에 덧붙였다.
"이것 보시오...마교에 얼마나 쓸만한 인재가 없는지...그러고 보면 허석문교주도 참 불쌍한 사람이오. 주위에 쓰레기 같은 수하들만 즐비하게 늘어놓고 마교의 미래를 운운했으니 말이오...하마터면 허석문같은 무능한 작자가 마교를 다 말아먹을 뻔했소이다."
그의 말을 듣고 있던 마교 인사들은 노여운 얼굴로 고득련을 노려보았다.
고득련은 따가운 눈빛을 한몸에 받으면서도 오히려 여유 만만한 미소를 보였다.
순간 허혜린이 분을 참지 못하여 눈물을 뚝뚝 흘리기 시작했다.
반역도들에게 죽음을 당한 것도 분한 일인데 고득련이 군중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욕까지 보이자 북받치는 마음을 가눌 길이 없었던 것이다.
백발이 성성한 종덕휘가 검을 뽑아들었다.
"이 사람이 죽던 살던 저 놈과 일전을 벌여보겠소."
"아닙니다! 제가 나가겠습니다!!"
사검귀천이 일제히 검을 뽑으며 앞에 나서려고 했다.
그때 위현룡이 엄숙한 얼굴로 그들의 앞을 막아섰다.
그리고 비장한 목소리로 짧게 말했다.
"저를 내보내주십시오."
유원학은 위현룡이 제 주제도 모른 채 난데없이 끼어 들자 콧방귀를 껴버렸다.
"네 놈이 어느 안전이라고 자꾸 끼어 드는 것이냐! 소교주가 네 놈 사정을 좀 봐준다고 해서 아주 뵈는 것이 없구나!!"
유원학의 호통소리가 쩌렁쩌렁 울리는 가운데 위현룡보다 오히려 홍후인의 혈압이 쫙 올랐다.
[저 작자가 어따 대고 함부로 말하는 거야!! 현룡아! 어서 쫙 말해줘라! 우리가 얼마나 대단한 행동을 하여 이 놈들의 목숨을 구했는지!! 빨리 소상히 설명하란 말이다!]
그러나 닦달하는 홍후인과는 반대로 위현룡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그대로 물러났다.
설명을 한들 믿어준다는 보장도 없지 않는가.
지금은 조금이라도 단결을 해야 할 시기였다.
괜히 수장인 유원학과 맞서서 분란을 조장하게 되면 적에게만 유리한 이득을 안겨줄 뿐이었다.
홍후인은 목에 핏대를 세우면서 더욱 언성을 높였다.
[왜 말하지 않는거냐!! 우리가 아니었으면 이 놈들은 모두 죽은목숨이었다는 걸 말이다. 어서 말하거라! 이런 놈들 따위에게 네가 무시당할 이유가 없다!]
위현룡은 홍후인이 토해내는 격한 음성을 들으면서 한쪽으로 힘없이 물러났다.
[빌어먹을! 마교 놈들!! 어디 두고봐라!! 언젠간 네 놈들이 현룡이에게 도와달라고 바지가랑이를 붙잡고 매달릴 때가 올 테니까!! 그때 가서 절대로 도와주지 말아라! 절대로!!]
분이 안 풀린 홍후인이 계속해서 마교를 향해 저주를 퍼붓고 있었다.
그때 잠자코 있던 허혜린이 유원학에게 조용히 물었다.
"유대협! 지금에 와서 어떤 대안이 있으신가요?"
"대안이라니요?"
"고득련을 꺾고 이곳을 벗어날 대안 말이에요."
"마땅한 대안은 없습니다."
"그럼 제가 이 난국을 해결할 실질적인 대안을 하나 언급해도 될까요?"
허혜린의 말에 유원학을 비롯한 허운, 종덕휘, 그리고 사검귀천의 두 귀가 번쩍 떠졌다.
"소교주!! 좋은 방도가 생각나셨습니까?"
그들은 희망에 찬 눈빛으로 허혜린이 조금이라도 빨리 입을 열기만을 학수고대하였다.
그런데 뜻밖에도 허혜린은 그들에게 몸을 돌려 천천히 위현룡 앞으로 다가갔다.
마교 수장들이 무슨 일인가 싶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는 사이, 허혜린이 위현룡에게 정중히 고개를 숙이면서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위대협! 제가 이렇게 부탁드리겠어요. 위대협께서 마교를 위해 나서 주실 수 있으시겠어오? 저희는 위대협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해요."
주위는 여기저기 터져 나오는 비명과 같은 경악성으로 가득 찼다.
마교인들은 허혜린이 위현룡에게 하는 행동을 믿을 수 없다는 듯, 재차 눈을 비비고 또 비볐다. 소교주의 신분인 그녀가 어떻게 일개 무사에게 고개를 숙일 수가 있단 말인가.
"소...소...소교주..."
참모 허운이 너무 어이가 없어서 말까지 더듬거리고 있었다.
종덕휘와 사검귀천은 차마 못 볼일이라 그만 고개를 돌려버렸다.
궁지에 몰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대단치도 않은 자(者)에게까지 고개를 숙이고 있는 허혜린의 다급한 마음을 어찌 모르겠는가.
[빌어먹을...그래도 현룡이의 진정한 능력을 아는 사람은 마교 계집애뿐이군. 어쩌겠느냐? 비록 고득련이 보통내기가 아니지만 네 무학으로 상대 못할 존재는 아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마교 놈들을 절대로 도와서는 안 된다고 욕설을 퍼붓던 홍후인의 태도가 은근슬쩍 돌변하고 있었다.
소교주의 신분인 허혜린이 직접 위현룡에게 고개를 숙이자 기분이 풀어진 탓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이 참에 실력을 보여 마교 놈들의 높은 콧대를 한방에 뭉개버리겠다는 생각도 들었던 것이다.
위현룡은 그녀가 설마 이런 행동까지 취할 줄 몰랐으므로 당황하며 얼른 마주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믿음직하게 그녀의 요청을 받아들였다.
"제가 미력하나마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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