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쿠라스 2부 7화(561화)-마신(魔神)(1)
벤하르트가 만든 거대한 백색의 새는 엄청난 속도로 붕화 도시로 향했다. 그들은 사흘은 족히 걸릴 거리를 반나절도 안되서 붕화 도시의 근처에 도착할 수 있었다.
"후우."
기를 이용해 탈 수 있을 정도로 구현 시키는 것은 굉장한 양의 힘을 소모하는 일이었다. 벤하르트도 상당한 거리를 왔는지라 조금은 지쳤는지 이마에 맺힌 구슬 땀을 닦아 내었다.
"오 저게 붕화 도시인가본데?"
리스는 멀리 떨어진 도시를 가리키며 말했다. 벤하르트에게 조차 점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 것을 쉽게도 알아차리는 그녀의 괴물 같은 능력은 하도 많이 보아와서 이제는 따질 여력 조차 없었다.
"과연 친숙한 느낌일만 한 걸 그래?"
그녀는 느긋하게 도시쪽을 바라 보면서 중얼 거렸다.
"그건 무슨 뜻이야?"
"이 기운은 말야. 마계의 기운이야. 마계에서도 손을 꼽는 음지중의 음지의 기운이지."
"나도 마계는 몇번 갔다 왔잖냐. 하지만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데 말이지."
"네가 갔다 온건 빙산의 일각 정도 밖에 안될 테니까, 느껴지지 않아도 별 상관은 없지만, 확실해. 저 곳에는 분명 마계와 연관이 있는 무언가가 있어. 냄새가 풀풀 난단 말야."
"네가 그렇다면 각오를 다져야 겠구만"
벤하르트와 리스는 얼마 지나지 않아 붕화 도시의 문 앞에 도착했다. 먼 곳에서는 느껴지지 않았던 음습한 기운을 벤하르트도 느낄 수 있었다. 리스는 천부적인 감각으로 벤하르트는 기를 다루는 사람으로써 '기운'에는 민감할 수 밖에 없었는데, 붕화 도시는 들어가는게 불쾌할 정도로 숨이 푹푹 가라앉는 느낌을 줄 정도로 음습하기 짝이 없었다.
"이런거였나.. 리스 일단 도시를 들어가는건 몰래 들어가는게 좋을 것 같아."
"몰래? 어째서?"
"거 무츠 씨도 말했듯이 우린 도시의 입장에서 볼때는 적이나 다름 없으니까. 그리고 내 신원을 별로 밝히고 싶지 않아."
"뭔가 이유라도 있는거야? 난 레니아가 아니어서 생각을 읽지 않으면 모르겠는데.."
리스는 인형으로 같이 다닐때와는 달리 따로 벤하르트의 생각을 읽거나 하지 않았다. 어디까지나 순수하게 그와 함께 여행 하고 있었다.
"일단은 몰래 들어가도록 하자고, 정보를 모으고 나서 말해 줄게."
리스는 불만이라는 듯 미간에 인상을 쓰고는 팔을 한번 저었다. 붉은 안개가 벤하르트와 리스를 휘감아 서서히 도시의 성벽을 넘어 그들은 감쪽같이 도시의 안으로 잠입할 수 있었다.
"그러면, 일단은 그 무츠씨의 지인부터 찾아 보도록 할까?"
주소를 따라 걸어 그들은 어둡고 음침한 도시 내에서도 유달리 빈민층이 득시글 거리는 뒷골목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이따금씩 넋을 잃고 무기력하게 바닥에 누워 있는 사람들은 갑작스레 벤하르트와 리스에게 달려 들어 돈을 요구하곤 했다.
벤하르트는 필요 이상으로 경계했고 리스는 말보다 발을 움직여 걷어 차 버렸다.
"살살 하라고,"
"내 기준으로는 충분히 살살이야. 내가 감정에 솔직해서 진심이었으면 저녀석 양분 되었을걸?"
벤하르트가 리스와 여행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그녀의 '힘 조절'이었다. 레니아와 비슷한 성격의 리스는 자신을 모독하는 일이 있다면 쉽게 참지 못했는데, 그때마다 그녀가 사용하는 폭력은 간단한 움직임 하나하나에 잘못 맞으면 불구가 되거나 심하게는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공격들이었다.
그 때문에 벤하르트는 걷어 찼다는 것에 심했다 싶은 생각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무의식중에 찼는데도 제대로 힘 조절을 한 리스를 보니 자신이 지금껏 노력했던게 헛된 일이 아니어서 뿌듯하게 생각되었다.
도시의 외곽 딱 한채 덩그러니 놓여 있는 집 앞에서 벤하르트는 주소를 확인했다.
"여기인것 같은데?"
벤하르트는 집의 문을 두드렸다.
"계십니까?"
안은 묵묵 부답이었지만, 벤하르트와 리스의 청각을 피할 수는 없었다.
"저기 안에 계시면 대답좀 주십시오."
'그나저나 있는 것은 확실한데, 상당히 기척을 숨기려 하는 것 같군.'
"저기 말입니다... 후우.. 무츠씨에게서 듣고 찾아온 겁니다. 문좀 열어 주시면 안되겠습니까?"
무츠라는 말이 들리자 마자 집의 문은 살짝 열리기 시작했다.
"문은 열렸는데, 아무도 없군. 으음. 들어가도 되는건가?"
벤하르트의 질문에 집의 문이 파닥파닥 거렸다.
"이건 된다는 뜻일까? 아니면 오지 말라고 훠이훠이 손을 휘젓는 의미를 가지는 걸까?"
리스의 물음에 벤하르트는 살짝 미묘한 표정을 짓고 말했다.
"문을 열었다는건 들어와도 좋다는 의미겠지."
둘은 수상쩍었지만 집의 안으로 들어갔다.
우중충한 집에 들어 서자 마자 그는 오싹한 느낌을 받았다.
"으엇.. 이건."
벤하르트는 정신이 들썩이는 듯한 그 느낌은 여행 도중 몇번이고 겪었던 공간을 이동하는 듯한 느낌에 그는 혹시 모를 공격에 대비해서 검에 손을 가져갔다.
"음?"
"여긴..?"
집 안의 분위기는 달라져 있었다. 처음 들어와서 보았던 대로 사방 팔방에 어질러진 물건들과 어수선하고 우중충한 방은 들어올 때 그대로였지만, 느낌이 달랐다. 가슴을 꽉 죄여 숨을 푹푹 막히게 만드는 도시 전체에 퍼져 있는 기운이 이곳에서는 느껴지지 않았던 것이다.
"후암. 뭐야 무츠가 보내서 왔다고?"
허리까지 내려오는 양갈래로 대충대충 땋아서 부스스한 붉은 머리에 다소 노출도가 있어 보이는 속옷을 입은 상태로 졸린 듯한 눈으로 벤하르트를 보는 여인이 그곳에 있었다. 부시시한 것을 빼면 상당한 미녀였는데, 온갖 헝크러진 머리카락에 꾀쬐쬐하기 짝이 없어서 순간 벤하르트는 어떤 반응을 해야 할지 몰라 머뭇 거렸다.
"그래 무츠가 어떤 용무로 당신들을 보낸거지?"
"아니 딱히 무츠씨의 용무로 온 것은 아닌데,"
"하긴 뭐 그렇겠군. 나보다 훨씬 강한 너희들이 그녀석의 무슨 용무 따윌 들어주는 일을 할리가 없지."
"아니 용무가 아예 없는 것도 아니고,,"
여인은 약간 짜증이 치민 듯이 머릿결을 마구잡이로 헝클어 트리더니 순간 눈을 번쩍 뜨며 벤하르트와 리스를 무시하고 어디론가 달려갔다. 벤하르트와 리스는 서로를 한번 흘끗 보고는 조심스레 그녀를 따라 들어가려 했다.
하지만 여인이 문을 열고 지나간 장소를 그들은 지나갈 수가 없었다. 물렁한 무언가의 벽이 그들이 들어오는 것을 막고 있었다.
"이건.."
"마법이네. 인간치고는 제법이야."
한참을 지나 여인은 술에라도 취한듯 배시시 웃는 듯한 얼굴로 다시 문을 열고 거실로 나왔다.
"아 무슨 일이었었지?"
"무츠씨의 소개로 이곳에 찾아 왔는데,"
"그렇다는건 나에게 뭔가 부탁이 있다거나 뭐 그런건가? 나는 그런건 딱 질색인데 말이지."
여인은 하품을 하면서 말했다.
"흐음 그쪽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만,"
"아 그렇지. 아무리 그래도 타인의 집에 왔으면 통성명 정도는 하는게 예의 아닌가?"
"그렇군. 내 이름은 벤하르트 하르크 그리고 이 쪽은 리스 라고 한다."
"벤하르트에 리스라.. 음음 그렇구나."
여인은 그대로 슬쩍 웃고는 손가락의 깍지를 꼈다가 양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읏!!"
벤하르트는 순간 몸이 자유롭지 않아지는 것을 느꼈다. 팔 머리 다리는 물론이고 발가락이나 손가락 하나 조차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일단 미안하지만 혹시 몰라서 말이지."
"으그그...극"
"어... 어어?"
여인이 놀란 얼굴을 짓기도 전에 벤하르트는 자신에게 걸린 주박을 풀고 검에 손을 가져 갔다. 리스도 주변에 붉은 기운이 나타나는가 싶더니 언제 그랬냐는듯 양팔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었다.
"이게 무슨 짓이지?"
벤하르트는 자세를 취하고 물었다.
"그건 이쪽이 묻고 싶은 대사라고, 도대체 어떻게 방금전에 내 마법을 깬거지? 내 공방과 이름까지 얻어서 구속 시켰는데도 그걸 풀다니 어떻게 된 노릇이람?"
여인은 벤하르트를 가까운 곳에서 빤히 응시 하고는 말했다.
"뭐 조금 강한 인간 정도로 생각했는데, 아니었나? 얼굴은 평범하고 음음 몸은 좀 좋은 편이고,"
"저기 말야.."
그녀는 벤하르트를 제지하며 말했다.
"가만 가만, 으음 오호오 이건 소름 끼칠 정도로 아름다운데?"
벤하르트의 말은 들은 척도 않고 여인은 무릎을 꿇어 벤하르트의 검을 슬쩍 뽑아 보고 약간 황홀해 하는 듯한 얼굴로 말했다.
"....."
얼마나 검을 보았을까 여인은 벤하르트를 슬쩍 올려다 보면서 물었다.
"이 검 나한테 팔지 않을래?"
"팔겠냐?"
이렇게 평정심을 유지 하지 못한 것은 실로 오랜만의 일이어서 그는 심호흡을 한번 하고 말했다. 무츠와 만나고 나서 조금은 자신을 잃었던 그였지만, 방약무인한 여인 앞에서 그는 다시 이전의 차가운 모습을 찾을 수 있었다.
"내가 이곳에 온 것은 이 도시에 대한 여러가지 이야기를 조금 듣고 싶었던 것이고 무츠씨에게 소개를 받아서 온 것 뿐. 그 밖에 다른 이유로 온 것은 아니다. 물론 무츠씨가 가능하면 당신을 지켜 달라고 부탁을 했기 때문에 그쪽이 아무런 관련이 없는건 아니지만,"
"하여간 그녀석은 예전부터 참견쟁이라니까, 그런 참견은 내게는 저언혀 필요 없는데도,"
그녀는 쓸쓸한 눈을 해보이고는 벤하르트와 리스에게 말했다.
"그녀석이 지명한 이상 꽁지 빼고 도망칠수도 없는 노릇이겠고, 이 도시에 뭔가를 해줄 생각으로 온 것일테니까, 들어와. 이 도시에 대해서 알려줄테니,"
"그 전에 한가지 들어 둬야 될게 있지 않나?"
벤하르트는 고의적으로 말을 놓으면서 퉁명스레 묻자 여인은 싱긋 웃으며 말했다.
"내 이름은 구아나 필로스키야."
- 작가의말
아 음.. L에일리님! 여기까지 보고 와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댓글 하나 하나를 보면서 오랜만에 웃을수 있었네요.
하나하나 댓글 다는게 절대 쉬운 일이 아닐텐데,, 오늘 들어와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한주가 시작되었는데 다들 좋은 일들이 있으시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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