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숫자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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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그좋아
작품등록일 :
2019.04.01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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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19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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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9# 누군가에겐(5)

DUMMY

126

이명환이 그녀에게 상체를 기울인다.

“시장님이면 여기 의정부시 시장님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네.”

“혹시 그분과 어떤 사이인지...”

“제 사촌 오빠예요.”

“아. 그러시군요.”

그녀의 대답은 들은 이명환이 자세를 바로 세우자, 김오미는 피식 웃으며 한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한다.

“여러분들이 하는 일이 원래 이렇다는 건 잘 알고 있어요. 한 십분 앉아 있다가 가면 되는 거죠?”

말하는 그녀의 머리 위에 숫자가 초록색인 걸 확인한 박수호가 이마를 긁적인다.

“말씀을 들어보니, 전에 언제 여기 오신 적이 있으신 것 같습니다.”

“네. 제가 살던 아파트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어요.”

그녀의 말에 박수호의 눈동자가 반짝인다.

“비슷한 일이요? 어디서 말씀하시는 건지...”

“작년에 강남에 사랑 아파트에서 살았었거든요. 남편이 정년퇴직하고 나서 지병도 있어서 이곳으로 올해 이사했어요.”

“하지만 제가 알기로는 여기서 부녀회장을 계속해왔다고 들었습니다만.”

“아. 그거야 제가 여기 집주인이니까 그렇죠. 남편은 강남, 저는 여기, 여기는 제가 세 들어주고, 부녀회장은 집주인인 제가 맡아서 해왔어요.”

“그래도 되는 겁니까?”

“다른 곳도 저처럼 하는 분들 많아요. 저같이 나서주는 사람이 있어야, 관리비 문제도 해결하고 아파트 일이 순탄하게 돌아가거든요. 솔직히 강남에 있는 아파트도 관리하느라 정신없는데, 이런 촌구석 아파트도 관리해야 해서 제가 많이 힘드네요.”

말하고 나서, 자기 가방 안에 있는 생수를 꺼내 마시는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박수호가 입을 열었다.

“강남 아파트 집값 담합 문제는 어떻게 된 겁니까?”

“푸흡. 쿨럭. 쿨럭.”

이명환이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그녀에게 휴지를 내밀었다.

“괜찮으세요. 여기 휴지.”

“고마워요.”

이명환에게 웃음을 보낸 그녀가 박수호에게는 서늘한 눈빛을 보내며 날카로운 목소리를 낸다.

“수사 단계에서 끝난 일을 왜 갑자기 여기서 들먹이는 거죠? 그리고 이거 살인 미수 사건으로 제가 온 거 아닌가요? 설마 함정수사는 아니죠? 제가 알기로는 함정수사는-”

“그때쯤이었죠? 이지안씨라는 분이 그 아파트에서 자살했습니다. 기억하십니까?”

“아! 그 짜증 나는 사건.”

“짜증이요?”

“그거 때문에 집값이 이천 넘게 떨어졌거든요. 지금이야 회복됐지만, 주변 동은 더 높으니, 그곳 아파트 주민들도 지금도 그 여자에 대해 좋게 생각 안 하고 있어요. 죽으려면 산이나 가지, 하필이면 집에서 죽을 게 뭐람.”

구시렁거리는 소리를 듣고 이명환이 미간을 좁히자, 책상 밑으로 그의 팔을 붙잡은 박수호가 미미하게 고개를 흔들었다.

다시 얼굴을 편 이명환이 서류 한 장을 내밀었고, 그 서류를 본 박수호는 눈살을 찌푸렸다.

“여기 보시면, 그 당시 층간 소음 문제로 다퉜다는 기록이 있었습니다. 어떻게 된 겁니까?”

“한 층 더 위에 아기들이 사는 집이 낸 소리를 제가 오해해서 윗집 그 여성에게 뭐라 한 적이 있긴 해요. 하지만 오해를 풀고 나서는 잘 지냈다고요. 가만?! 서류까지 준비했으면, 내가 그곳에서 살았던 것까지 알고 있었던 거 아니에요?! 슬쩍 모르는 척하면서 대답 유도해서 뭘 얻고 싶어서 그러는 건지 모르겠지만 이제부터는 변호사 오기 전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겠어요.”

김오미는 팔짱을 낀 채 입을 굳게 다물었다.

박수호가 슬쩍 자신을 째려보자, 이명환이 입 모양으로 ‘미안’이라는 단어를 만들었다.

그녀 머리 위 숫자 색은 붉었다.


2


쓴웃음을 지은 박수호는 말없이 서류를 뒤적였고, 이명환도 가끔 시계를 보다가 서류를 뒤적이거나, 주변 물건을 만지며 시간을 보냈다.

벌컥.

“어이쿠. 눈이 와서 제가 많이 늦었군요.”

삼십 대의 인상 좋게 생긴 검은 정장 차림의 남성이 박수호에게 명함을 내밀었다.

“김오미님 담당 변호사 이남이라고 합니다.”

“사건을 맡은 박수호 경사입니다. 옆에 이분은 이명환 검사입니다.”

자리에 앉은 이남이 사람과 김오미를 번갈아 보더니,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한다.

“훈남들 두 분이 계셔서, 우리 의뢰인께서 잘 지내실 줄 알았는데, 제가 오기 전에 한바탕하셨나 봅니다.”

그의 말에 입을 굳게 다물고 있던 김오미가 콧소리가 잔뜩 들어간 하이톤의 목소리로 말했다.

“저를 마치 사람을 죽음으로 몰고 간 나쁜 사람으로 유도하더라고요.”

살짝 눈가나 이마에 주름을 만든 두 사람과 다르게, 이남은 표정 변화 하나도 없이 김오미를 바라보았다.

“어떤 부분에서요.”

“살인 사건 알리바이 물어보는 게 아니라, 전에 있었던 단순히 부녀자들끼리 돈 좀 벌어보겠다고 한 일이랑, 단순하게 싸운 거 가지고 저를 자살하게 만든 사람으로 몰아붙이려고 그랬어요.”

“이번 사건과 관계없는 일을 물어봤다는 거죠?”

“네.”

그녀의 말에 얼굴을 굳힌 이남이 두 사람에게 단호하게 말한다.

“죄송하지만, 소환에 명시된 사건이 아닌 다른 사건은 질문하는 건 옳지 않습니다. 그렇게 해서 얻은 진술 모두 법정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습니다.”

그의 말에 이명환도 딱딱하게 말했다.

“그건 저희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 사건은 이지안씨 자살 사건과도 연관이 있다고 판단했고, 그와 연관되어 조사하는 과정에서 생긴 여러 의문점을 김오미님에게 질문한 것뿐입니다.”

“판단하게 된 증거나 서류 좀 보여주실 수 있습니까?”

그의 말에 박수호가 말없이 서류를 하나 내밀었다.

이남은 서류를 보더니 살짝 눈살을 찌푸린다.

“이건 전부 정황이지 않습니까. 정황만으로 용의자로 취급해서 취조실로 부른 겁니까?”

“정황이 한번이 아닌 총 여섯 장소에, 열세 번을 걸쳐 일어났습니다. 정황도 반복이 되면 거기에 겹치는 인사들은 전부 용의자로 판단해야 정상 아니겠습니까.”

박수호의 말에 이남은 서류 밑 부분을 검지로 가리키며 말했다.

“두 아파트는 이해되지만, 다른 아파트와는 피해자가 부녀회장으로 활동하지 않았고, 연관 관계도 없지 않습니까?”

그의 말에 박수호는 싱긋 웃더니, 김오미를 바라보았다.

“아직 말씀 안 하셨군요.”

“뭐. 뭘요.”

“다른 곳들 전부 돌아가신 아버지나, 친척들 이름으로 집을 사셨다는 걸요.”

그의 말에 김오미의 머리 위 숫자가 파란색으로 변한 가운데, 박수호가 이명환을 손으로 가리켰다.

“검사님이 보기와 다르게 인맥이 넓어서 금융감독원 쪽에서 바로 보고서를 주더군요. 그곳에서 사건을 인지했으니 내일 연락이 갈 겁니다, 그리고 의정부를 비롯해 연관된 경찰서에서 전부 연락이 갈 거고요.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해지니, 김오미님은 잠시 부녀회장직을 내려놓으셔야 할 겁니다.”

박수호의 말을 듣는 김오미가 흘러내리는 식은땀을 닦을 때, 이남은 서류를 내려놓고 박수호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죄송하지만, 그건 이번 일과 다른 조세 관련 사건이지 않습니까. 살인 용의자까지-”

“그곳 모두 자살한 사람들이 있고, 이번 두 건의 연쇄 살인 미수 사건에 쓰인 물건을 택배로 받은 분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모두 한 회사의 다이어트 제품을 추천받고 시제품을 받았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그 회사는 이분 남편분이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설마 이것도 말씀 안 하신 겁니까?”

이남은 박수호의 질문에 답하는 대신 김오미를 바라보며 질문했다.

“이게 전부 사실입니까?”

“그게... 저는 단순히 남편 사업을 도와주려고-”

“시장님 얼굴에 먹칠하는 걸 제가 얼마나 싫어하시는지 아시잖아요.”

“알아. 그래서 이번 일 좀 도와달라고-”

“죄송하지만, 이번 일은 제가 도와드릴 수 없겠습니다.”

“어?”

다시 자신의 물건을 챙긴 이남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김오미가 그의 팔을 붙잡는다.

“내가 거짓말한 건 미안해. 하지만, 네 고모잖니. 나 이러면 죽어. 그러니까-”

팔을 뿌리친 이남이 그녀를 서늘한 눈으로 내려다보며 말했다.

“죽으려면 혼자 죽으세요. 제 아버지 이름에 누가 된다면 제가 직접 고소장을 경찰에게 전달할 겁니다.”

“이남아...”

그가 두 사람을 보며 고개를 숙였다.

“시간 낭비하게 한 점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저와 시장님은 그녀의 행동을 알지 못했으며, 단순히 친척으로서 그녀가 살인 용의자가 된 점을 변호하려 한 점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만약 증언이나 다른 질문이 필요하시다면 언제든지 협조해 드릴 겁니다. 연락처는 시장실이 아닌 제 명함에 적힌 번호로 해주시면 언제든지 받겠습니다. 그럼, 이만.”

벌컥. 쾅.

그가 나간 곳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그녀였고, 박수호는 작은 한숨과 함께 책상을 왼손으로 두드렸다.

쿵쿵.

큰 소리에 흠칫한 그녀가 자신을 보자, 박수호가 그녀에게 서류 한 장을 내밀었다.

“알고 보니, 그곳에 세 놓은 사람들이 문제를 일으키거나, 관리비 미납 문제로 다퉜더군요. 그것도 이번에 죽을 뻔한 김지영씨까지 말입니다.”

그의 질문에도 김오미는 말하지 않고 가만히 고개만 푹 숙이고 있었다.

그 뒤로도 여러 차례 물었지만, 그녀가 답하지 않자, 결국 박수호는 김선애를 부르게 된다.

“이번에 묵비권을 행사한 거 분명 후회하실 겁니다. 데려가.”

“네.”

박수호의 마지막 말을 끝으로 혼이 나간 표정의 김오미가 김선애에 의해 일으켜져 문으로 걸어갔다.

그러다가 문을 열고 나가기 직전.

“지난웅 그자 조사해보세요.”

라는 말을 남기고는 떠나갔다.

두 사람이 나가자 이명환이 기지개를 켠다.

“으하함. 난 반항하면 장부에서 누락된 비용 목록 다 읊으면서 합산한 다음 윽박지르려고 했는데...”

“훗. 원래 세상일 생각대로 되는 건 아니잖아. 다음 기회를 노리라고.”

“나는 그 사람이 용의자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이명환의 말에 박수호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다.”

“선애 부를까? 아니면 이신후 님이라도-”

“아니, 내가 한다.”

“지구대 사람들 이야기로는 두 사람 죽이 잘 맞았다면서.”

“걱정하지 마. 그걸로 현혹될 일은 없을 거니까.”

박수호의 단호한 말에 이명환이 굳은 얼굴로 말한다.

“현혹이 문제가 아니라, 네 맘이 걱정돼서 그런 거다.”

-들어갑니다.-

김선애의 목소리와 함께, 취조실 문이 열리더니, 우울한 표정을 짓고 있는 지난웅이 터벅터벅 안으로 걸어 들어온다.

슬퍼 보이는 그의 눈빛에 이명환이 움찔한 것과 다르게, 박수호는 무표정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는데, 그의 눈동자가 살짝 위로 올라가 노란색의 숫자를 보고는 다시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박수호는 손을 뻗어 의자를 가리킨다.

“저기 앉으시죠.”

“그려. 아니... 예...”

힘없이 걸어가 자리에 앉은 그에게 박수호는 서류 한 장을 살펴보며 말했다.

“서류를 보니 공교롭게도 근무한 아파트 중 여섯 곳에서 자살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자살한 뒤 정확히 한 달 뒤에 그곳 근무를 그만두셨고요. 무엇보다 이력서에 그 여섯 곳을 제외한 나머지 아파트의 근무 연차를 늘려서 쓰셨더군요.”

“기억력도 달리기도 하고, 환경이 좋은 신규 아파트 같은 곳은 과거 지나온 아파트가 좋은 곳인지 아닌지 인터넷으로 검색해 본다는 소문도 있어서...요.”

말을 끝으로 고개를 숙인 그가 아닌 서류를 바라보던 박수호가 입을 열었다.

“서울 출신이라고요.”

“네.”

“전에는 사투리 말도 섞어가며 하셨는데, 지금은 안 그러시네요.”

“그거야, 친한 사람들에게는 친근하게... 대하려고 하다 보니...”

“전에 근무하시던 곳을 다 추려보니, 신기하게도 김오미씨가 보유한 아파트 동과 겹치는 곳이 많더군요.”

박수호의 말에 지난웅의 눈이 동그래진다.

“네? 그게 진짭니까?”

“네.”

“이상하다. 저는 사랑이랑 미소 아파트 빼고는 본적이 없어요.”

“그리고 신기하게도, 그곳 전부 난방비 문제로 한바탕 소란들이 일어난 곳이었습니다.”

“글쎄요. 저는 그런 일은 잘 모르는 경비원이라서요. 그리고 사랑은 담합인가 뭐시기로 난리 났지, 난방비 문제는-”

“그게 몇 년 전에 불거진 사건이고, 조용히 묻히는 바람에 그리된 거였습니다.”

“아. 그래요?”

“그리고.”

박수호는 여전히 노란색으로 반짝이고 있는 숫자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곳 전부 같은 수법으로 자살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의 말에 멈칫했던 지난웅이 피식 웃는다.

“저는 또 뭐라고. 저도 같이 근무했던 사람들이랑 친해서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번에 여러분들이 조사했다는 것도 들었고요. 죄송하지만, 저는 작년 저녁에 주민들이 서로 싸우는 거 말리느라 저녁 내내 지구대 사람들과 함께 있었습니다.”

“그냥 한번한 질문을 예민하게 반응하시는군요.”

그의 말에 지난웅이 얼굴을 굳히고 강한 어조로 말한다.

“아니, 취조실에서 형사 입으로 나온 말에 예민하게 반응하지 않으면 그게 더 이상하지 않습니까?!”

박수호는 숫자가 여전히 노란색인 것을 확인한다.

“기분이 좋지 않으셨다면 사죄드립니다.”

“젊은 사람이 버릇이 없어.”

헛기침하며 상체를 슬쩍 옆으로 틀어버린 그에게, 박수호가 손으로 밑으로 내려 신호를 주자, 이명환이 서류 한 장을 천천히 앞으로 내밀며 말했다.

“주민들이 싸운 이유 중 하나가 지난웅씨가 그들의 뒷담화를 서로에게 전해주면서 생겼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그게.”

여러 장의 서류를 하나씩 위에 겹쳐 놓기 시작하자, 지난웅의 얼굴이 눈에 띄게 굳어져 간다.

“처음 근무지를 제외한 모든 곳에서 발견됐습니다. 지난웅씨는 사람 싸움 붙이는 걸 좋아하시나 봅니다. 아니면,”

다른 서류에는 숫자가 빼곡하게 쓰여 있었는데, 이명환이 숫자들을 검지로 가리켰다.

“협박하셨습니까?”

“협박이라니! 제가 무슨 협박을-”

“금융기록을 보니, 월급 외로 가끔 돈을 많이 받으실 때가 있었습니다. 다른 곳으로 가기 전 근무했던 주민들에게 돈을 뭐 때문에 받으신 겁니까? 그리고 현재 같은 동 부녀회장이신 김오미 님에게는 어우야 이천 넘게 받으셨네요. 잘 아시겠지만, 경제팀에 저희가 연락하기 전에 미리 말씀하셔야 자수로 인정받습니다.”

그의 말에 지난웅은 입술을 깨물기 시작했고, 박수호는 그의 머리 위 숫자가 푸른색으로 변한 걸 보며 손을 밑으로 빼 주먹을 내밀었다.

툭.

두 사람이 주먹을 마주친 사이, 계속해서 입술을 깨물며 고심하던 그가 다시 박수호 쪽으로 몸을 돌린다.

“난방비 비리 문제로 돈은 받은 건 인정합니다. 하지만, 저는 착복한 사람이 아니라 협박한 사람입니다. 제가 왜 김지영이나 김보름을 죽이려고 할 이유가 뭐가 있겠습니까.”

그의 말에 박수호는 흩어진 서류들을 정리하며 말했다.

“그럼 당신이 생각하는 가장 유력한 범인은 누구입니까?”

“저는... 김보름입니다.”

그의 말에 이명환이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그에게 상체를 기울였다.

“이보세요. 그녀는 피해자입니다.”

“김보름입니다. 그녀가 자작극으로 자살 소동을 벌이고, 김지영까지 같이 죽이려고 한 겁니다.”

박수호가 이명환에게 정리한 서류를 건네줬고, 그걸 받아 이명환이 자기 앞에다 놓았다. 그리고 이명환이 다른 서류를 박수호에게 건네주었다.

“이보세요. 제 말 못 들었습니까?”

지난웅의 말을 듣고서야 박수호가 그에게 시선을 돌렸다.

“잘 듣고 있습니다. 계속해보세요.”

“계속이라뇨?”

“확신하는 이유까지 말해야 저희가 반응할 거 아니에요.”

지난웅의 침을 삼키고는 입을 연다.

“제가 귀가 좋아서 사람들 말을 잘 듣는데, 그 두 사람이 같은 학교에 근무하는 남자 선생님을 좋아해서 다투는 걸 들은 적 있습니다.”

“같은 남자 선생님을 좋아했다?”

“그렇다니까요. 그러다가 그 남자 선생님이 김지영이랑 연애 시작하고 바래다주고 그러니까, 김보름이 그것이 어찌나 사납게 눈을 치켜뜨고 째려보는지, 두 사람은 물론이고 저나 주민들 모두 저러다 사달 나는 거 아닌가 싶어서 걱정했다니까요.”

“혹시 싸움 붙이려고 거짓말을-”

“아유. 저는 말을 전해도 거짓말은 안 합니다. 사실 싸움이 벌어진 것도, 양쪽 모두 그 말을 다른 사람들에게 조금씩 들은 상황에서 제 말을 듣고 싸운 거지, 제가 싸움 붙인 게 아니에요. 생각해 보세요. 난방비 뜯어먹고 있는 사람 뜯어먹는 사람이 괜히 주민들 눈에 벗어날 짓을 왜 합니까. 계속 뜯어먹을 수 있을 때까지 근무해야 하는데, 안 그래요?”

말하는 그의 머리 위 숫자는 노란색으로 돌아와 있었고, 박수호는 팔짱을 끼며 말했다.

“그러면 이경천님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이유라도 있습니까?”

“화나면 말이 나가고, 그다음에야 주먹을 뻗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 사람을 왜 죽입니까. 절대 아닙니다.”

단호하게 말하고는 입을 굳게 다문 지난웅이었다.

“흠... 알겠습니다. 일단 추가 조사를 해서 사실 확인되면 풀어드리든지 할 테니 경찰 안내에 따라 움직여 주세요.”

“예.”

잠시 뒤, 문이 열리고, 김선애가 지난웅을 데리고 바깥으로 걸어 나가자, 이명환이 여전히 팔짱을 끼고 있는 박수호에게 몸을 기울였다.

“저 말 사실일까?”

“모르지.”

“에이. 너 감 좋잖아. 살짝만 말해줘 봐.”

“너는 어떤데.”

“나는... 음... 솔직히 모르겠어. 용의자 다-”

“저기...”

열린 문 사이로, 앳돼 보이는 여자와 사십 대 여성, 김보름과 그녀의 어머니가 서 있는 걸 발견한 이명환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의자를 가리켰다.

“이곳에 앉으시면 됩니다. 의자는 저기 하나 더 있네요.”

황급히 구석으로 이동해 간이의자를 가져와 의자 옆에 놓자,

“고맙습니다.”

어머니가 자식인 김보름을 중앙 의자에 앉히고 간이 의자에 앉았다.

그사이, 이명환도 자기 자리에 돌아왔고, 박수호는 창백해 보이는 두 여성을 번갈아 바라보다가 어머니에게 부드럽게 말한다.

“변호사는 데려오지 않으셨군요.”

“국선을 요청하긴 했지만, 순번이 밀려서...”

“그게 아니라 쓰레기 딸년에게 쓸 돈도 아까워서 그런 거잖아.”

툭 하고 내뱉은 김보름의 말에 어머니의 얼굴에 깊은 주름이 생긴다.

“죄송해요. 저희가 맞벌이하느라 자식 버릇을-”

“맨날 그 소리. 지긋지긋하지도 않아. 그냥 내가 나가서 살겠다고 했잖아. 굳이 같이 데리고 살려고 억지로 데려와서 서로 싸우기만 하고-”

“김보름양, 자살 시도를 한 이유가 그겁니까?”

“자살 시도 아니거든요.”

“보름아! 구해주신 분에게 말버릇이-”

김보름은 박수호를 바라보며 이죽거린다.

“구해주긴, 뭘 구해줘요. 나 살리려고 구해준 게 아니라, 자기 공 세우려고 한 거지, 그나저나 아쉽겠네요. 젊은 여자애 가슴 만질 기회였는데, 인공호흡만 하게 돼서.”

“너!”

이명환이 고함을 지르는 순간, 그에게 손을 뻗어 어깨를 잡은 박수호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괜찮으니까, 진정해.”

자식의 말에 놀랐는지, 얼어붙어 있는 어머니를 흘깃 바라본 박수호가 김보름을 바라보았다.

“애써 괜찮은척 하시는 모습은 귀엽네요.”

“김보름양. 저 결혼할 사람이 있는 남성입니다.”

“그래서요?”

“역으로 바꿔 생각해보세요. 이제 곧 결혼할 배우자가 있는 사람이, 자살을 시도한 사람을 구하기 위해 입을 맞춘다? 그것도 에이즈와 비슷한 질병을 가졌는지 모르는 사람과?”

“경찰이라서 돈도 잘 못벌잖아요. 돈이라도-”

“참고로 그녀는 인성이 무엇보다 좋지만, 얼굴 몸매 그리고 머리도 똑똑해서 변호사 출신이랍니다.”

김보름이 마지막 부분에서 얼굴을 일그러뜨린다.

“결국엔 돈 잘 버는 직업 가지고 있는 여자랑 결혼한다는 거네.”

“돈 잘 버는 여자 맞아요. 하지만 그렇게 따지면 돈 못 버는 경찰인 제게 그녀가 왜 올까요?”

“그거야.”

잠시 박수호의 얼굴을 힐끔거린 김보름이 입술을 삐죽거렸다.

“자기 자랑하는 거고.”

“감사합니다라고 해보세요.”

박수호의 말에 김보름이 눈살을 찌푸렸다.

“뭐래.”

“이미 알고 있잖아요. 내가 그런 위험 무릅쓰고 당신 구하려고 애썼다는 거.”

“기사로 포상금까지 받는 거 알거든요. 나 때문에 승진에 포상금까지 받을 거면서-”

“그럼, 정말 감사합니다. 안 할 거예요?”

“받은 건 사실이잖아요. 그거면 된 거 아닌가.”

그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러면,”

박수호의 부드러운 미소가 맺혀 있던 얼굴에 싸늘한 기운이 맴돌기 시작했다.

“자작극이 맞는구나.”


작가의말

항상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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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7 파일11# 개미 2 (1) +1 19.08.27 273 8 18쪽
136 파일10# 개미(5) +2 19.08.25 267 7 17쪽
135 파일10# 개미(4) +1 19.08.24 296 9 20쪽
134 파일10# 개미(3) +1 19.08.23 277 12 13쪽
133 파일10# 개미(2) +1 19.08.22 308 11 16쪽
132 파일10# 개미(1) +2 19.08.21 311 9 12쪽
131 파일9# 누군가에겐(6) +2 19.08.17 311 13 22쪽
» 파일9# 누군가에겐(5) +3 19.08.16 295 10 21쪽
129 파일9# 누군가에겐(4) +1 19.08.15 293 11 15쪽
128 파일9# 누군가에겐(3) +2 19.08.14 323 8 14쪽
127 파일9# 누군가에겐(2) +2 19.08.13 317 10 16쪽
126 파일9# 누군가에겐(1) +1 19.08.12 345 10 17쪽
125 파일8# 살아있는 이유(5) +2 19.08.09 331 14 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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