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숫자를 본다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추리

저그좋아
작품등록일 :
2019.04.01 10:01
최근연재일 :
2019.11.19 21:00
연재수 :
183 회
조회수 :
152,611
추천수 :
3,311
글자수 :
1,250,240

작성
19.08.17 21:28
조회
309
추천
13
글자
22쪽

파일9# 누군가에겐(6)

DUMMY

127

그의 말에 김보름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네?”

“보통 사람 목숨을 구해주면 말이다. 고맙습니다나 감사합니다를 말하지. 그러고 나서 사람마다, 편지나 꽃다발 등을 전해주고, 돈도 주시는 분이 있지만, 그건 법 때문에 거부하고 있어. 그런데, 너를 봐라. 최소한의 고마움의 표현마저 죽어도 하기 싫다고 하잖아. 그렇다는 건 단 하나.”

비릿한 미소를 그녀에게 보내며 박수호가 낮고 굵게 말했다.

“네가 자작극을 벌이고, 김지영을 죽였다는 거다.”

“아니에요! 저는-”

“미안하지만 네가 작년에 팔로우했던 인물 중에 같은 수법으로 자살한 사람들이 두 사람 끼어 있더구나. 자작극으로 인한 공무원집행방해 및 자살방조 두 혐의로 수사 진행할 수 있어.”

잠시 멍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던 그녀의 눈이 사나워진다.

“고작 감사 인사 안 했다고 범죄자 취급하는 거예요!”

“고작 감사 인사만 가지고 그랬을까? 네가 내게 한 말을 들려줄까? 김선애 경장 틀어주세요.”

박수호의 말이 들리고 잠시 뒤.

-구해주긴, 뭘 구해줘요... 젊은 여자애...-

“이건 명예훼손 및 모욕.”

-애써 괜찮은척 하시는 모습은 귀엽네요-

“이건 내가 모욕감을 느꼈으니까. 성희롱.”

-결국엔 돈 잘 버는 직업 가지고 있는 여자랑 결혼한다는 거네.-

“이것도 아까랑 같은 거고. 고마워요 김경장.”

-아닙니다.-

그녀의 대답에 이명환의 얼굴이 살짝 구겨진 가운데, 박수호가 비릿한 미소를 유지한 채 김보름을 바라보았다.

“이걸 일반인들에게 공개해서 물어보면 다들 어떤 말을 할까? 네가 옳다고 할까? 아니면 자작극이라고 의심할까? 둘 중 어느 말을 할까?”

질문했지만, 그녀가 대답하지 않았고, 박수호는 손을 책상에 올려놓고 검지로 두드리기 시작했다.

툭.

툭.

툭.

두드리던 그가,

쿵.

갑자기 주먹을 쥐고 내리치자, 모녀의 몸이 크게 움찔한 가운데, 박수호가 사나운 눈빛을 두 사람에게 보냈다.

그의 시선을 자연스럽게 피한 두 사람 중 김보름에게 집중한 박수호가 낮고 굵은 목소리로 말한다.

“더는 어린 투정 받아주지 않겠습니다. 존중할 때, 서로 존중하는 겁니다. 아시겠습니까?”

“...”

“대답.”

“네...”

“이제야 진행하겠군요. 이명환 검사님 사진부터 질문하시죠.”

박수호의 말을 듣자마자,

“네.”

살짝 흐트러져 있던 자세를 고쳐 잡은 이명환이 한 장의 사진을 내밀었다.

“여기 보시면 지금도 의식이 없는 김지영씨와 두 분이 다투고 있는 장면이 있습니다. 이날 두 분이 싸운 이유가 뭡니까?”

그의 질문에 김보름이 얼굴을 찡그리고 가만히 있자, 박수호의 입이 열렸다.

“대답!”

“조. 좋아하는 남자를 가로채. 챘어요.”

“좋아하는 남자면 고등학생?”

“아. 아니요. 하. 학교 선생님이요.”

“선생님이 제자랑 사귀고 있다는 겁니까?”

“그. 그게 아니라... 엄마.”

그녀의 애절한 목소리에 몸을 떨고만 있던 그녀의 어머니에게서 가녀린 목소리가 들려온다.

“첫사랑이에요. 우리 딸애가 고백까지 했다고 하더라고요. 지금은 두 사람 모두... 그 뭐지? 하. 하.”

“합의요?”

“네. 합의요. 서로 그냥 흘려보내기로 합의까지 했어요. 그 뒤로 우리 딸애에게 좋은 남자 있으면 소개해 주기로 약속하고, 요즘엔 친해져서 같이 다니며 쇼핑도 한걸요. 가출하려고 하면 같이 말려주기도 하고, 그녀 집에 자기까지 했어요.”

그녀의 대답이 끝나자마자 이번엔 박수호가 서류 한 장을 내밀었다.

“김보름양의 에스엔에스를 보니, 작년에 자살한 사람들과 친분이 꽤 있었습니다. 여기 어머니께서 대화 내용을 봐보십시오.”

박수호의 말에 김보름이 고개를 퍼뜩 그쪽으로 돌리더니, 손을 뻗어 가로채려고 했다.

하지만.

“어머니라고 했습니다. 김보름양.”

박수호의 으름장에 김보름의 손은 다시 그녀 무릎 위로 돌아갔고, 박수호가 내민 서류를 살펴보는 어머니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삼 분 정도 흘렀을까.

“남편이 그런 짓을 한 줄... 왜 말 안 했어! 왜! 왜!”

울면서 자신을 때리는 어머니의 모습에 김보름도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어. 엄마가 그 사람 없으면 죽... 겠다고 했잖아. 나는 그래서 나만... 사라지면...”

“바보야! 네가 없으면 나도 못 살아! 네가 더 소중하다고! 이 못난아!”

“엄마!”

서로 부둥켜안고 우는 모습에 이명환도 눈시울을 붉히며 눈가를 훔치는 동안, 무표정한 얼굴의 박수호는 자기 앞에 있는 두 여성의 머리 위가 붉은색에서 푸른색으로 변한 숫자로 보고는 다시 서류를 뒤적이기 시작했다.

두 모녀가 진정됐을 무렵, 박수호는 김보름을 바라보았다.

“김보름양, 이번에도 아버지의 성추행 때문에 자살하려고 그런 겁니까?”

“아니요. 올해 일월 칠일에 허벅지를 만진 그 새끼에게 제가 칼로 위협한 이후로는 저를 집에서는 괴롭히지 않았거든요. 물론, 그 음흉한 눈초리는 여전했지만, 그 뒤로 가출도 하니까, 건드리지 않았어요.”

“다른 이유라도-”

“아니요. 정말 자작극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저를 죽이려고 한 거예요. 그것 때문에 약도 먹고 있어요. 진짜예요.”

“그럼 이경천을 지목했다가 취소한 이유는 뭐죠?”

“지금도 이경천 할아버지라고 생각이 들긴 하는데... 사실, 이경천 할아버지가, 제 엉덩이를 만진 그 새끼를 보고 역정을 내시고, 그 뒤에도 밤에 그 새끼가 옥상으로 저를 데려가려고 할 때, 순찰하던 할아버지가 와서 넘어간 적도 있었어요. 그때 할아버지가 바로 주먹을 날려서 그 새끼 턱주가리에 주먹 날렸을 때, 많이 통쾌했거든요. 감사해서 음료수까지 드렸고, 그분도 언제든 부르라고 하셔서... 그런 분이 저를 죽이려고 들진 않을 거 같아 취소했어요.”

“얼굴은 보지 못했다면서요.”

“말투가 완전히 똑같았어요. 두 분은 모르겠지만, 틱틱 거리고 무뚝뚝한 게 그 아저씨 말투거든요. 키도 비슷하고, 외투 안쪽으로 경비복도 봤어요.”

“흠... 평소와 다른 점은 없었습니까?”

이명환의 질문에 김보름이 허공을 바라보다가 다시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아! 다리를 끌었어요.”

“다리를요? 한쪽 다리를 끌었다는 겁니까?”

“그게 아니라, 슬리퍼 신고 다닐 때 끄는 것처럼 신발이 바닥에 끌리는 소리가 났어요. 뭐... 한여름에 땡볕에 분리수거하시고 나서 힘드셨는지 그때도 비슷한 소리를 내며 간 적이 있었으니까... 솔직히 이경천 할아버지가 맞는 거 같기도 하고...”

그 뒤로 몇 가지 질문을 더 했고, 조사를 마치고 나가는 두 모녀 중 김보름이 몸을 돌려 박수호를 바라보았다.

박수호가 그녀 머리 위에 초록색 숫자를 보았을 때, 그녀 약간 날이 선 목소리가 취조실에 울려 퍼졌다.

“저 성추행 당한 거 알고 계셨으면서 왜 그러신 거예요?”

“뭐를?”

“부드럽기보다는 강하게-”

“그거야 네가 말을 들을 상태가 아니었으니까 그런 거잖아. 그때 내가 그 말했어봐라. 경찰이 이차 성추행했느니 하면서 난리 피웠을 거 아니냐.”

“그 정도로 막돼먹지는-”

“말 심한 건 사실이야. 위험한 발언이니까, 다음부터는 조심하고, 힘들다고 죄 없는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것만큼 바보 같은 짓은 없다. 다시는 멍청한 생각하지 말고, 억울한 일 있거나, 그 새끼 말 안 들으면 내게 와. 알았어?”

그의 무뚝뚝한 말이 끝나고서도 물끄러미 그를 바라만 보고 있자, 그가 인상을 찌푸린다.

“또. 왜.”

“그냥. 돌아가신 아버지가 왠지 그런 말 했을 거 같아서요. 고맙습니다.”

상체를 깊게 숙이고는 황급히 바깥으로 뛰쳐나갔고, 그녀 어머니가 작게 웃으며 박수호에게 인사하고는 따라 나갔다.

박수호는 자신의 턱을 손으로 쓸어내렸다.

“턱수염도 없는데... 내 얼굴이 그렇게 늙어 보이냐?”

그의 질문에 이명환이 짓궂은 미소를 지었다.

“나는 아버지 소리 좋기만 한데?”

“아무래도 너 때문인 거 같아.”

“나는 왜.”

“네 얼굴이 좀 늙어 보이잖아. 너 때문에 나도 사십 대로 보이는 거 같아.”

“내가 아니라 네게 아버지라고 했다. 흐흐.”

“크흠. 분위기가 그렇다는 거겠지.”

“그거야 당사자만 아는 거고, 일단 다 끝났으니 정리하자.”

“그래.”

두 사람이 정리하는 와중에 이명환이 가방에 서류를 넣고 있는 박수호를 바라보았다.

“아직 누군지 모르는 거지?”

박수호는 굳은 얼굴로 말한다.

“다 의심스럽다. 네 생각에 제일 의심스러운 사람이 누구지?”

“나는, 지금도 소식이 없는 이경천씨가 제일 의심스러워. 김보름양 아버지와 마찰도 있었고, 그녀 어머니랑도 싸운 적도 있는 데다가, 김지영씨 아버지와도 사이가 좋지 않았으니까. 동기는 어느 정도 있는데다가, 언제 깨어날지 모르는 김지영씨 때문에 숨었다고 생각할 수 있잖아. 너는 누가 제일 의심스럽냐?”

박수호는 그의 질문에 답하는 대신, 취조실로 들어와 서류 정리를 도와주기 시작한 김선애에게 말했다.

“김선애는 누가 의심스럽지?”

김선애는 용의자들이 놓고 간 휴지나 쓰레기들을 손으로 집으며 말했다.

“저는 김오미요. 남편 회사 물품을 제일 쉽게 구할 수 있고, 돈도 이백 정도는 쉽게 쓸 수 있잖아요. 거기에 최근 난방비 문제로 김지영씨와 김보름 부모님과 마찰을 빚었고, 다른 사람들도 여러 문제로 싸운 사람들이었으니, 동기까지 완벽하죠.”

“나는 지난웅 같은데.”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모두 고개를 움직였고, 문에는 이신후와 신명이 서 있었다.

이신후는 굳은 얼굴로 걸어오면서 말을 이었다.

“그자가 제일 의심을 사지 않고 아파트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전에 근무했던 지역 돌아보는 거라고도 말할 수 있고, 각 아파트 경비복도 전부 가지고 있는 사람인 데다가, 사람들 뒷담을 들어서 한 이간질이 전부 성공할 정도로 머리에 언변까지 있으니, 내가 보기엔 그자가 딱이야.”

이번엔 신명이 입을 열었다.

“음... 저는 김보름양도 의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동반 자살한 사람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때 쓰인 물건들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 그녀입니다. 그리고 성적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고등학교 일 학년 때는 일등을 할 정도로 머리도 좋은 아이입니다. 그래서 연막에 연막을 치는 생각은 충분히 할 수 있습니다. 살짝 택배 보낼 당시의 쓰인 이백이라는 돈이 걸리긴 하지만, 그녀를 배제해선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의 말이 끝나고, 모든 물건을 챙기고 가방을 등에 멘 박수호가 입을 열었다.

“이경천씨가 붙잡히기 전까지는 전부 염두에 두고 있죠. 마침 의심하는 사람들이 다 다르니까, 각자 의심하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증거를 더 찾아보는 것도 괜찮을 거 같네요.”

말하면서 나가려는 박수호의 앞을 이명환이 가로막았다.

“야. 치사하게 너만 말 안 하고 나가려는 건 아니지?”

“나 속단하는 거 싫어하는 거 알잖아.”

“속단이 아니라, 첫인상이 어떠냐는 거잖아. 추리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먼저 추리하는 장면도 보여주고 그러는데, 너도 좀 그래라.”

“애들 장난도 아니고-”

갑자기 뚱뚱한 몸을 이끌고 땀을 흘리며 뛰어 들어온 의정부 형사 이광식이 큰 목소리로 말했다.

“이경천이 붙잡, 아니, 자수했습니다!”

“자수요? 어디 있었습니까?”

이신후의 질문에 이광식이 자신의 땀을 손으로 쓸어내리며 말했다.

“거의 헐벗은 상태로 일 동 제일 꼭대기 층으로 침범해서 자수했습니다. 그 외에는 잘 모르겠습니다.”

“꼭대기 층?”

이신후가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이, 박수호가 다급하게 말한다.

“그래서 이경천은 오고 있답니까?”

“예. 지구대 사람들에게 연행되어서 오고 있습니다.”

“두 사람은 싸놓은 짐 풀고 나머지 사람들은 혹시 또 다른 증거 없나 찾으러 갑시다.”

이신후의 말에 모두 고개를 끄덕이거나 작게 대답하며 흩어졌고,

“으... 다 쌌는데, 또 풀다니. 왜 자꾸 이러는지. 박수호 너도.”

다시 짐을 풀기 시작한 이명환가 박수호의 입가에 맺힌 미소를 보고 눈이 가늘어진다.

“너. 누군지 알았지.”

“뭐가?”

“너 범인이 누군지 지금 알고 있잖아.”

그의 말에 박수호는 대답 대신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

**


오전 영 시.

고요한 회색빛 복도로 검은 그림자 하나가 조심스럽게 걷고 있었다. 그림자는 병실 문에 붙은 이름에 작은 손전등으로 비추어 하나하나 확인해 가며 이동했다.

그리고 마침내.


-김지영-


한 사람이 이름을 비추던 불빛이 사라지고, 그 옆에 있는 문이 소리 없이 옆으로 밀려나기 시작한다.

스스스.

워낙 천천히 밀어서 희미하게 들려오던 소음은 안에서 흘러나오는 기계음에 묻혔고, 기계들로 둘러싸인 환자를 슬쩍 확인한 그림자가 다시 조심스럽게 문을 닫는다.

탁.

“후...”

한숨과 함께 환자에게 걸어간 그자는 어둠 속에 누워있는 환자 얼굴을 향해 손전등을 들어 올렸다.

“혹시 모르니 확인을 해봐야지.”

딸깍.

손전등으로 밝혀진 환자는 하얀 얼굴에 고운 눈매와 앵두 같은 입술을 가진 여성이었지만, 두 부분을 제외한 나머지는 붕대로 감겨 있었다.

“연탄불에 화상을 입었다는 경찰들의 말이 사실이었나 보군.”

중얼거리며 오른손으로 주머니에서 주머니를 꺼낸 그림자는,

“공기만 집어넣어도 죽는다고 그랬지.”

손전등으로 링거줄을 비추고 그곳에 주사기를 천천히 가져다 댔다. 그리고 그곳에 꽂는 순간.

덥석.

갑자기 손전등 불빛 앞으로 굳은살이 박인 손이 나타나 그의 오른손을 붙잡았다.

“으아아악!”

뒤늦게 반응한 그가 손전등을 들고 있는 왼손을 움직이려고 해보지만,

덥석.

이번엔 하얀 피부의 손이 손전등을 든 왼손을 붙잡았다.

그리고 그 반동으로 움직인 손전등에 붕대 감은 여성이 자신을 노려보는 눈동자를 보는 순간.

“귀. 귀신!”

눈을 뒤집어 까더니 기절한다.

딸깍!

불이 밝혀지자, 병실 안에 웅크리고 있던 남성들이 쓰러진 자를 향해 뛰어왔다.

“호흡은!”

이신후의 질문에 박수호는 무덤덤하게 답했다.

“괜찮습니다. 기절만 했습니다.”

“후... 다행이다.”

“그러게 분칠 좀 지우자고 했잖아.”

이명환의 타박에, 자신의 얼굴을 손거울로 바라보던 김선애가 눈살을 찌푸린다.

“이거 화장 안 한 거라고요!”

“안 하긴 뭘 안 해. 딱 봐도 떡칠을 했구만.”

“지금 제게 그런 소리를...”

싸우기 시작한 두 사람의 목소리가 병실에 울러 퍼지는 가운데, 사나운 기운을 내뿜으며 싸우는 바람에 말리지도 못하고 지켜보던 주변 사람들은, 이신후의 신호와 함께 붙잡은 사람을 데리고 조용히 바깥으로 나왔다.

“내가 그렇게 꾸미지 않아도 똑같이 하얗다고 말했잖아! 사람 죽었으면 여기 형사들 다 징계 먹는 거 알면서 그렇게 꾸며!”

“저도 피부 하얗거든요. 얼굴만 타서 그런 거지, 저도 하얘요 이 팔에 있는 피부-”

탁.

문을 닫자마자 조용해졌고, 이신후는 어색한 미소를 주변을 바라보며 말했다.

“하하. 저희 팀원들이 저를 제외하고 동갑내기 같은 동네에 살던 얘들입니다. 이해 부탁드립니다.”

“그건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하하. 저는 보기 좋은걸요.”

대화하는 사이, 박수호는 회색 수갑을 꺼내 들고 있었다.

그리고.

“지난웅씨. 깨어난 거 알고 있습니다.”

그의 말에 주변 사람들 모두 침묵한다.

“일어나시라고요. 어차피 카메라도 없는데, 발로 찰까요.”

지난웅이 슬그머니 눈을 뜨자, 박수호는 잔혹한 미소를 지으며 그의 오른 손목에 회색 수갑을 채운다.

“당신을 김지영씨와 김보름양, 연쇄 살인 미수 혐의, 이번 병원에서의 살인 미수 혐의, 일곱 건의 난방비 관련 협박 및 방조, 여덟 건의 명예훼손과 모욕, 다섯 건의 성추행, 네 건의 성희롱, 한 건의 납치, 한 건의 감금, 네 건의 주거침입, 여덟 건의 공무집행방해, 열 건의 무고, 열 한 건의 허위진술 등의 혐의로 긴급체포합니다. 당신은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으며, 변호사를 선임할 수 있습니다...”

모든 고지를 마친 박수호가 그를 강제로 일으켜 세웠다.

지난웅이 떨리는 눈동자로 박수호를 바라본다.

“박형사, 나, 나는 그냥-”

“다 찍혔습니다.”

박수호가 자신의 어깨를 툭 건드렸고, 그곳에 카메라를 확인한 지난웅은 눈을 질끈 감았다.

“어떻게 안 거지.”

“이경천이 탈출했습니다.”

“경천이가? 어떻게. 나는 분명-”

“그가 특수부대 출신에 정보원 시절도 있었다는 건 듣지 못했군요.”

“정보원?”

“추위로 잘 움직여지지 않은 몸으로 정해진 탈출 방법으로 묵은 줄을 풀고, 옷을 찢어 아래층으로 탈출했습니다. 동상으로 고생하고 있지만, 생명에는 지장이 없으니 고마워하세요. 김오미가 모든 걸 자백하고 다른 사람들 이름까지 대면서 혐의가 많아지셨는데, 물고 있다가 물린 심정은 어떻습니까?”

“젠장... 그랬으면 차라리 다 죽였어야-”

갑자기 지난웅의 몸이 옆으로 회전하면서 벽에 부딪혔다.

쿵.

얼굴까지 부딪히는 바람에 지난웅이 고통스러운 표정과 함께 버럭 소리 지른다.

“이게 뭐하는 짓이야!”

쿵.

“지금 고문-”

쿵.

“큭. 나중에-”

쿵.

쿵.

쿵.

“으... 잘못했다고...”

그의 중얼거림에 박수호는 피식 웃더니 굳은 얼굴로 자신을 보는 형사들에게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한다.

“분명 저는 손에 힘을 주지 않았는데, 스스로 자해를 하는데, 나중에 증언 좀 부탁드려요 될까요?”

“자해라니, 나는 분명-”

쿵.

쿵.

연달아 큰 충격을 받은 그에게 박수호가 카메라를 떼서 이신후에게 넘긴 다음 속삭였다.

“범죄인이면 죄인답게 굴어. 이 새끼야. 알아들었어?”

“알았다.”

“알았다?”

“아닙니다. 알아들었습니다.”

“지금 이건 자해한 거다. 알았지?”

“옙! 자해한 겁니다.”

다시 이신후에게서 카메라를 받은 박수호가 싱긋 웃었다.

“그럼 자해한 거 증언 부탁드립니다.”

그의 말에 나머지 사람들 모두 말없이 고개만 끄덕인다.

박수호는 지난웅에게 다시 고개를 돌렸다.

“두 사람을 죽이려고 한 이유가 뭐야. 협박하던 사람도 아니고, 그냥 주민 관계잖아. 왜 그들을 자살로 위장해 죽이려고 했어?”

“나를 무시했다.”

“무시했다고?”

“젊은 놈들이 자기 다리나 가슴을 봐도 뭐라 안 그러면서, 내가 한번 본 거 가지고 경멸스러운 눈동자로 나를 보더군. 그래서 전에 자살한 그년들처럼 보내주려고 한 거다.”

“이경천씨는?”

“내가 한풀이 하니까, 그자도 나를 무시했지. 오히려 그 이후로 나를 의심스러운 눈으로 보면서 참견질하는 게 얼마나 짜증 났는지 알아!”

“조용하지.”

그가 입을 다물자, 박수호가 이관식을 바라보였다.

“이광식님이 관할 형사시니 인계합니다. 여기 카메라도 가져가시고요.”

“제가요? 그래도 되겠습니까?”

“같이 공을 세웠지 않습니까. 저희 서울수사지원팀은 결코 공을 독점하지 않습니다. 물론 죄를 지은 분들이라면 모르겠지만, 혹시 비리라도...”

그의 말에 이광식이 고개를 크게 저었다.

“아닙니다. 절대 없습니다.”

“그러면 같이 공을 공유해도 되죠. 이신후 팀장님이 서장님과 지청장님에게 잘 말씀드릴 테니까. 공평하게 분배되게만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당연히 그래야죠.”

“그럼. 데려가세요.”

“예. 이따가 뵙겠습니다.”

“살펴 가세요.”

그가 지난웅을 데리고 파트어 형사와 함께 사라지자, 신명이 걸어오면서 걱정스러운 얼굴로 그를 바라본다.

“분명 폭행했다고 말을 바꿀 겁니다. 그러면 아무리 여러 형사가 증언하더라도 문제가 생길 거고, 최소한 공이나 승진이 깎일지도-”

“정말 저는 손에 힘을 주지 않았습니다. 그자가 스스로 부딪힌 겁니다.”

“수호님...”

“그분에게 갈 보상금 누가 빼돌리고 있는 건 아니겠죠?”

얼굴이 확 굳어진 신명에게 박수호가 다가갔다.

“생각보다 금융 기록 보니 돈이 아는 것보다 적게 들어와서요. 독립운동가 후손이자, 국가유공자이신 이경천님 좀 잘 대우해 주세요. 그래야 지난웅 같은 쓰레기에게 험한 꼴 안 당하지 않겠습니까. 아무튼 도움 정말 감사드립니다.”

신명은 물끄러미 자신에게 손을 내민 박수호를 바라보다가, 그의 손을 맞잡으며 말했다.

“원만하게 넘어가서 저희도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그럴 거고요. 그럼 저도 이만 가보겠습니다.”

“수고하세요.”

박수호의 인사와 함께 신명까지 떠나갔고, 이신후가 그에게 다가와 슬쩍 배를 쳤다.

“적당히 좀 하지.”

“아시잖아요. 아저씨 밑에서 배워서, 범죄자 주제에 뻔뻔한 놈 가만두고 못 보는 거.”

“욘석이 슬슬 기어오르네.”

자신을 때리려고 하는 그에게서 한 걸음 물러난 그가 웃으며 말했다.

“기어오르다뇨. 전 이미 고등학생부터 큰걸요.”

“키는 예전부터 큰 거고. 짜샤.”

“윽.”

다시 배를 맞은 박수호가 아픈 척을 하자, 피식 웃은 그가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가는 지난웅을 보며 말했다.

“고작 무시했다는 이유로 죽이다니.”

“음... 남을 괴롭히는 놈들에겐 고작 오락일지 몰라도, 당하는 입장에서는 고작이 아닌 생명이 달린 경우도 많잖아요. 그로 인해 자살하는 사람도 있고, 저렇게 죽이려는 사람이 있죠. 물론, 저자가 나쁜 놈이 아니라는 건 아니지만요.”

“그렇지... 그나저나.”

이신후가 병실 쪽을 바라보며 박수호만 들을 정도로 속삭였다.

“서류 가져간 사람이 둘 중 누군지 모르냐?”

“정말 동영상이 지워진 흔적은 없는 거죠?”

“그래.”

“둘 다일 수도 있으니, 조심하세요.”

“알았다.”

“그리고 사실, 지금 행동이...”


작가의말

늦어서 죄송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2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나는 숫자를 본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54 파일13# 1/2 (5) +2 19.09.24 228 12 16쪽
153 파일13# 1/2 (4) +1 19.09.23 227 11 17쪽
152 파일13# 1/2 (3) +1 19.09.22 222 10 14쪽
151 파일13# 1/2 (2) +1 19.09.19 255 10 14쪽
150 파일13# 1/2 (1) +1 19.09.18 218 10 13쪽
149 파일12# 48시간 (5) +3 19.09.17 220 12 15쪽
148 파일12# 48시간 (4) +1 19.09.16 213 10 16쪽
147 파일12# 48시간 (3) +1 19.09.11 211 9 16쪽
146 파일12# 48시간 (2) +2 19.09.10 218 12 11쪽
145 파일12# 48시간 (1) +2 19.09.09 320 11 20쪽
144 파일11# 개미 2 (8) +3 19.09.06 327 12 17쪽
143 파일11# 개미 2 (7) +3 19.09.05 217 10 14쪽
142 파일11# 개미 2 (6) +1 19.09.04 243 9 17쪽
141 파일11# 개미 2 (5) +1 19.09.03 260 8 14쪽
140 파일11# 개미 2 (4) +2 19.09.02 262 13 15쪽
139 파일11# 개미 2 (3) +3 19.08.29 274 10 11쪽
138 파일11# 개미 2 (2) +1 19.08.28 268 12 11쪽
137 파일11# 개미 2 (1) +1 19.08.27 273 8 18쪽
136 파일10# 개미(5) +2 19.08.25 267 7 17쪽
135 파일10# 개미(4) +1 19.08.24 296 9 20쪽
134 파일10# 개미(3) +1 19.08.23 275 12 13쪽
133 파일10# 개미(2) +1 19.08.22 306 11 16쪽
132 파일10# 개미(1) +2 19.08.21 310 9 12쪽
» 파일9# 누군가에겐(6) +2 19.08.17 310 13 22쪽
130 파일9# 누군가에겐(5) +3 19.08.16 294 10 21쪽
129 파일9# 누군가에겐(4) +1 19.08.15 293 11 15쪽
128 파일9# 누군가에겐(3) +2 19.08.14 321 8 14쪽
127 파일9# 누군가에겐(2) +2 19.08.13 316 10 16쪽
126 파일9# 누군가에겐(1) +1 19.08.12 344 10 17쪽
125 파일8# 살아있는 이유(5) +2 19.08.09 330 14 20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