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숫자를 본다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추리

저그좋아
작품등록일 :
2019.04.01 10:01
최근연재일 :
2019.11.19 21:00
연재수 :
183 회
조회수 :
152,629
추천수 :
3,311
글자수 :
1,250,240

작성
19.09.09 21:15
조회
320
추천
11
글자
20쪽

파일12# 48시간 (1)

DUMMY

141

**

48시간(개미 3)

**


2019.02.17.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취조실.

수갑을 차고 있는 박수호가 혼자 앉아 있었는데, 문이 열리더니 굳은 얼굴의 이명환과 김성수가 안으로 들어와 책상 너머 의자에 앉았다.

날카로운 바닥 끌리는 소리에도 박수호는 무덤덤한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자기 오른쪽에 성인 팔뚝 높이로 서류들을 쌓아놓은 이명환이 제일 위에 있는 서류를 자신 앞에다 가져다 놓고 안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무거운 침묵이 이어진 가운데, 김성수도 서류를 높이 쌓아 놓고 살펴보았다.

그렇기 시간이 흘러가고 한 시간이 흘렀을 때, 제일 먼저 입을 연 건 박수호였다.

”목이 마르는데.“

”죄송하지만, 정수기가 고장이 나서 없습니다.“

짤막한 김성수의 대답에 박수호는 피식 웃었다.

”그렇다면 물을 줄 때까지 묵비권을 행사하겠다.“

그의 말에 김성수도 박수호처럼 피식 웃더니 비아냥거리며 말했다.

”그러시던가.“

다시 한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다시 한 시간이 흘렀을 때, 박수호의 입이 벌어졌다.

”사십 시간.“

그의 말에 김성수의 몸이 살짝 움찔했다.

다시 이어진 침묵은 이명환에 의해 깨어졌다.

”원래는 더 기다릴까 했지만, 어차피 그런다고 죄책감에 휩싸여 자수하지 않을 거 같으니, 옛 친구의 우정으로 참았지만, 이제는 그러지 않겠어.“

”자수라니 나는-“

”박수호씨는 지금 살인 사건 용의자로 체포되었습니다. 존중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만.“

단호한 그의 말에 박수호는 수갑 찬 양손을 들어 올리며 장난스럽게 말했다.

”알겠습니다. 검사 나으리.“

박수호의 행동에 김성수가 발끈했다.

”지금 검사님에게-“

”김성수 수사관 태블릿이나 주세요.“

”옙!“

큰 목소리로 대답한 그가 가방에서 태블릿을 꺼내 이명환에게 두 손으로 내밀었다.

”여기 있습니다.“

”고마워요.“

이명환은 태블릿의 전원을 넣으며 무덤덤한 목소리로 말하기 시작한다.

”박수호씨는 현재 총 여덟 건의 살인 혐의로 체포되셨습니다. 누군지는“

”김명인, 김명호, 김인술, 김우학, 최지한, 박경자, 박진성, 김화선.“

”잘 알고 계시는군요. 미리 알고 계셨던-“

”체포당할 때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만.“

”아. 맞다. 제가 말을 했었죠. 아무튼 그분들에게 대한 살인 혐의가 의심되어 체포된 건 알고 계시니, 첫 사건부터 우리 이야기해 봅시다. 이름 김명인...“


**

김명인 자살 사건.

2018.08.03.

오후 5시 서울 구치소 제 1 독방에서 수감 중이던 김명인이 목에 죄수복을 자른 천을 매고 죽은 걸 교도관(김우인.52)이 발견한다.

그와 원한 관계가 있는 게 밝혀진 교도관 김우인을 긴급체포해 취조했지만, 당시 작동되지 않았다고 여겼던 카메라가 사실은 전선 작업 실수로 다른 건물에 있는 통제실에 연결되었다는 걸 알게 되면서 풀려난다.

그 외에는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은 열쇠를 가진 소장과 그날 그와 독방에서 대면을 시도한 우희진 경정과 전국수사대에 파견 형식으로 나간 이명환 검사였다.

**


”우희진 경정과 이명환 검사가 의심스러운 사건 아닙니까.“

박수호의 말에 이명환은 피식 웃으며 태블릿을 내밀었다.

”이걸 보고 나서 말씀하시죠.“

그가 내민 태블릿에서 교도관과 박수호가 같이 이동 중인 장면이 재생되었다.

”시간을 보시면 그 전날, 당신은 김명인과 만났다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2018-08-02-17:21


”그건 김명호 사건 수사 결과를 제게서 직접 듣고 싶다면서 새롭게 전해줄 사실이 있다고 말해서 간 겁니다.“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이후로 교도관은 김명인의 목소리를 듣지 못했다고 증언했습니다.“

”그게 말이 됩니까? 아무리 점호 시간이 지난 뒤였다고 해도, 아침 점호도 있지 않습니까?“

”죄송하지만, 아침 점호는 개인 사정 때문에 하지 그가 하지 못했다고 진술했고, 그 일로 그는 일을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식사 시간이라도“

”이미 알고 계실 텐데요. 그가 점호를 제외한 나머지 시간에는 무응답으로 일관해도 일개 교도관인 그가 확인할 방법이 없다는 것을요. 그때 당시 김씨 일가는 다들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재력이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당신도 서울 구치소와 동부 구치소에서 어떻게 생활하고 있었는지 잘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교도관은 그저 위에서 하라는 대로 할 뿐입니다.“

”음... 그러니까, 제가 방문한 이후부터 죽음 이후까지 그의 생사를 장담할 수 없다는 뜻입니까? 하지만, 부검 당시 사망 시작은-“

”그곳엔 에어컨이 있었고, 에어컨을 켠다면 충분히 조작 가능하다는 게 새로 밝혀졌습니다. 다시 말해 조금 전 당신이 말한 대로 꼬박 하루 동안 그의 생사를 알 수 없었다는 말이 되죠.“

”그러면 당신들이 더-“

”잊으셨습니까? 저희는 그를 보지 못하고 교도관과 같이 나왔습니다. 저희는 그를 불러봤지만, 그는 응답하지 않았고, 결국 아무런 소득 없이 나올 수밖에 없었죠. 당신과 다르게 말이죠.“

”당신들이 다녀간 뒤 교도관이 따로 죽-“

”죄송하지만, 교도관은 저희와 함께 간 이후로 점호 때까지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확실히 제가 봐도 의심스러운 정황이 있군요.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미 지난 사건이고, 제가 증거를 인멸할 능력도 없는데, 긴급체포라니, 이건 좀 아니지 않습니까?“

”한 가지 사건만 그런 게 아니지 않습니까. 특히 김명호 사건은 당신이 사건의 문제점을 알았음에도, 상부에 보고하지 않았다는 건 어느 정도 관련이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김명호 사건의 문제점이 어디에-“

”이번에 동부구치소에서 근무하던 두 사람과 만났더군요. 그리고 그들에게서 개미라는 자의 단서를 찾았고요. 하지만, 당신은 그걸 보고하지 않았습니다. 이건 그들이 제게 진술한 내용입니다.“

툭.

박수호 앞으로 서류를 내던진 그가 말을 이어서 했다.

”그리고 이것뿐만이 아닙니다. 김우학과 김인술, 두 부자가 머무는 저택 근처 카페에서 그 당시 두 사람이 죽은 걸 발견한 도우미와 대화하는 장면이 이렇게 찍혀 있습니다. 그리고 그 도우미는 누군가에게 편지를 받아, 그들이 아들이 개발한 특허를 빼앗고, 아들을 몽골로 보내버려서 실종되게 만들었다는 사실을 알려줬다고 고백했죠. 그리고 편지에 적혀 있던 대로 연탄 자살로 꾸몄다고 자백했습니다.“

”저는 그 사실을 알기 위해 대화를 한 것이지 그녀에게 편지를 주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편지를 건네준 사람과 인상착의가 비슷하다는 도우미의 진술을 받아냈습니다.“

툭.

그 위로 서류가 또 날아와 쌓였다.

”흠... 결국 이것도 정황 증거입니다만. 정황만으로 저를 이렇게 긴급 체포를 하신 겁니까?“

”나머지 사건들 모두, 주변 관련인들이 당신과 만난 적이 있다고 증언했습니다.“

툭.

툭.

툭.

쌓여가는 것들 모두 진술서인 걸 확인한 박수호의 표정은 평온했다. 그의 표정을 본 이명환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주먹을 내리친다.

쾅.

”지금 당신이 범인이라는 정황 증거가 이렇게 쌓이고서도 그런 표정을 짓고 있는 겁니까?“

”전 그들을 죽일만한 동기가 없습니-“

”개미 아닙니까?“

의미심장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이명환에게 박수호는 난 전혀 모른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개미라고요?“

”어린 시절 당신은 극심한 따돌림과 괴롭힘을 받았습니다.“

이명환의 말에 박수호의 얼굴이 굳어진다.

”그 괴롭힘에 견디지 못한 당신은 제일 처음 선생님에게 말했죠. 하지만 그 결과는 오히려 당신을 문제아라며 체벌을 주었습니다. 다음으로 당신은 부모님에게 말했습니다. 그러나, 김명호의 할아버지에게서 돈을 받고 있던 아버지는 당신의 간청을 무시했죠. 심지어 전학도 보내주지 않았습니다. 국회의원 공천에 혹시 누가 될지도 몰라 그랬겠지만, 아들인 당신에겐 절망이었겠죠. 그래서 당신은 모아놓은 용돈으로 녹음기를 사서, 자신을 괴롭히는 내용을 녹음했고, 경찰에게 전해줍니다. 동시에 언론사에도 보냈죠. 그렇게 잠깐이나마 김명호에 악행이 세상에 드러나면서 당신은 평온해지나 싶었습니다. 하지만 어떻게 됐습니까.“

이명환이 박수호에게 몸을 기울였고, 조명 아래까지 고개를 내밀면서, 늘어난 음영에 의해 검게 얼룩진 이명환이 조용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김명호와 같은 고등학교에 배정되지 않았습니까. 심지어, 그가 괴롭혀도 신고할 지구대나 파출소도 세 시간 넘게 떨어진 기숙사 고등학교에 말입니다. 그때 당신의 기분은 어땠습니까?“

그의 질문에 박수호는 입을 굳게 다물고 그를 바라보기만 했다.

잠시 기다리던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아버지가 버티고 있던 가정, 선생님이 있던 학교이자 사회, 그리고 경찰이 있던 국가. 전부가 당신을 배신했다는 사실 속에서 절망과 배신감에 몸서리쳤을 겁니다. 그리고!“

갑자기 목소리를 높이더니 그가 사진 한 장을 던졌다.

그 안에는 자신감 넘치는 미소를 지은 김명호의 사진이 있었다.

”그가 도망치는 당신을 발로 찼고, 당신은 땅을 굴러떨어집니다. 천운으로 트럭이 없었다면 당신은 죽은 다음, 땅에 묻혀서 실종 처리 됐을 겁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습니다.“

분노가 느껴지는 박수호의 대답에 이명환은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예! 트럭에 타고 있던 부부가 당신을 구했고, 맞은 흔적을 발견한 경찰이 검사에 신고했으며, 때마침 같은 재벌가이자, 학업을 목적으로 같은 학교에서 공부 중이었던 아이에 증언 때문에, 김명호는 꼼짝없이 살인 미수범이 되었습니다. 그래서요? 그 결과는 어땠죠? 그에게 처벌이 내려졌나요?“

”음...“

박수호에게 대답이 들려오지 않자, 이명환은 서류첩에서 다른 사진을 하나 더 던졌다.

이명환은 사진 속에서 자애로운 미소를 짓고 있는 노인의 얼굴로 검지를 내리꽂았다.

콱.

”김우학. 김명호의 할아버지인 그가 당신의 아버지에게 거래를 제시했고, 당신의 아버지는 그 거래를 받아들입니다.“

”그 이야기가 지금 사건과 상관이-“

”상관이 아주 깊죠. 아닙니까? 당신이 정민기에게 전해준 말처럼, 두 번이나 김명호는 새롭게 기회를 얻었지만, 당신을 뒤통수를 치지 않았습니까? 그것도 인생의 제일 중요한 수능을 앞두고 말이죠. 그때 당신은 깨달은 겁니다. 나쁜 놈은 끝까지 나쁜 놈이구나. 아무리 기회가 주어져도, 그들은 변하지 않는구나. 그러니 그들을 고쳐야해. 아 참! 고치는 건 불가능하지? 죽여야-“

”이봐. 이명환씨 당신 그 내용을 착각하고 있나 본데, 그 안에는 나쁜 놈만 죽이라는 말은 없었다. 그들을 고쳐야 한다면서 다 죽여야 한다고 말하고 있었다. 내가 보기엔 그자는 남들을 자기 아래로 보고-“

”그랬다면 어째서 그는 피해자인 당신을 살려줬을까요? 김명호라는 나쁜 놈을 심폐소생술로 되살리고 김명인도 권총으로 쏠 기회가 있었음에도 자백을 받고 살려줬지 않았습니까? 만약 그가 모든 사람을 다 죽여야 한다고 생각했다면, 그들을 살려줄 정도로 착해빠진 당신마저 죽이려고 들었을 겁니다. 다른 이들보다 제일 먼저 말이죠.“

이명환의 말에 박수호는 답답하다는 듯이 말했다.

”고작 갖다 붙이는 논리가 쓰레기들을 살려준 저를 죽이지 않았다고 개미라고 하는 겁니까? 이런 억지 주장이-“

이명환은 태블릿을 조작하더니, 파일 목록을 보여줬다.

”설마 저와 한 대화 내용까지 부인하시는 겁니까? 제가 직접 들은 것도 있고, 그중에는 녹음한 것도 있습니다. 이 안에는 당신이 개미가 주장한 것과 비슷한 내용을 말한 게 많이 담겨 있습니다. 또한, 당신에게 그런 소리를 들은 이들은 한둘이 아니었습니다. 남혜미, 박상아, 우희진, 명훈, 김선애 등 당신과 원한을 맺거나 친분이 있는 자들 전부 당신이 비슷한 이야기를 한 걸 들은 적이 있다고 진술했습니다.“

”녹음한 내용을 들어도-“

”이건 구속영장 심사할 때 내놓을 거니 걱정하지 마시고 지금이라도-“

”죄송하지만, 그 녹음 내용을 듣지 않으면 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을 겁니다.“

박수호의 엄포에도 이명환은 파일을 재생하지 않고 태블릿을 자신의 자리 앞에다 놓고는 팔짱을 끼며 말했다.

”이건 한번 듣는 순간 변명을 생각할 수 있어서, 죄송하지만 공개할 수 없습니다.“

”결국, 정황 증거만 늘어놓으면서 제게 자신들에게 맞는 말을 하라고 강요하시는 거군요. 이제부터 묵비권 행사하겠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가기 시작했다.

이명환이 먼저 눈을 붙인다는 명목으로 나간 사이, 김성수와 박수호만 남았을 때, 바깥에 나갔다가 들어온 김성수가 그에게 물 한잔을 내밀었다.

”먹어.“

”죄송하지만, 저는 제가 직접 뜬 물이 아니면 먹지 않습니다.“

그의 말에 김상수는 멋쩍은 미소로 잔을 거두었다.

”고집은 여전하네.“

자리로 돌아간 김성수는 스트레칭을 한 뒤, 하품을 길게 하고 나서 박수호에게 말했다.

”신후가 왔다 갔다.“

그의 말에 무표정한 박수호의 얼굴에 금이 갔다.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어떻게 이럴 수 있냐면서 이명환 검사님 멱살을 잡고 흔들다가 쫓겨나셨어.“

”음...“

”예전 같으면 달려든 경비원들을 바닥으로 메쳤을 텐데, 속절없이 끌려나가는 모습을 보니 나나 녀석이나 나이를 많이 먹은 거 같아.“

여전히 입을 굳게 다물고 있는 박수호를 서글픈 눈으로 바라보며 김상수는 말을 계속했다.

”정황 증거가 너무 많아. 내게도 공개 안 한 녹음파일을 들은 경찰청장님도 포기하셨는지, 내게 적극적으로 협조하라는 말을 하시더라. 구속은 기정사실인 거 같은데... 그냥 말하는 게 서로 편하고 좋지 않을까?“

박수호가 눈을 감았고, 그의 모습에 김상수의 얼굴이 살짝 굳어진다.

”내일 아침이 되면 다시 이신후님이 오실 건데, 그때 또 깽판 치면 경찰직도 위험해. 이미 언론에서 그 모습 찍힌 상태인데, 또 그러면 진짜 불명예 퇴직까지 간다고, 그리고 언론에 퍼지면 자칫 정우아씨나, 이미수, 그리고 이지수 등 지인들에게까지 안 좋은 영향을 준다니까.“

달래듯이 말해봐도 박수호는 답이 없었고, 김상수가 미간을 좁히더니, 살짝 목소리를 높였다.

”네가 이낭자씨를 죽였다는 의심도 사고 있어.“

박수호의 눈썹이 살짝 일그러지자, 그가 빠르게 말을 이었다.

”네가 재산을 노리고 이낭자를 죽였는지 수사까지 들어가면, 네가 믿고 있을 재산도 동결되고, 그리되면 변호사 선임도 힘들어질 거야. 무엇보다, 문수영이 너랑 같이 짜고 죽였다고 의심도 하고 있어서, 그 아이 미래에도 큰 영향을 줄지도 몰라.“

”그러니까, 제가 자백을 하지 않으면 그리된다는 겁니까?“

”그렇다니까. 이미 네가 개미라서 어차피 죄인이 될 거면, 순순히 되어서, 납작 엎드리란 말이야. 그러면 윗분들이 네가 주는 거래 조건에 따라서 봐주거나-“

”김상수씨.“

”으. 응?“

”지금 당신의 발언 전부 함정수사이길 바랍니다.“

”어?“

갑자기 눈을 뜬 박수호가 당황한 얼굴의 김상수를 노려보았다.

”사실이면 내가 나중에 청탁으로 바로 잡아넣을 거니까 알아서 하라고.“

”지금 나를 협박-“

”협박은 지금 당신이 하고 있잖아.“

”내가 언제-“

”내가 하지도 않은 일을 인정하라고 말하면서, 주변 인물들을 건드리는데, 그게 협박이 아니고 뭐지? 내 입을 열 만한 카드 없으면 그냥 입 다물고 있어. 나중에 역풍 맞지 말고.“

싸늘한 박수호의 말에 김상수는 얼굴을 일그러뜨렸지만,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서른 시간.“

”뭐?“

”서른 시간 남았다고.“

그의 말에 반사적으로 스마트폰을 꺼낸 김상수의 눈이 동그래졌다.

”귀신같은 새끼. 가만! 너 자꾸 내게 반말을-“

”존대 듣고 싶으면 협박이 아닌 수사를 하지.“

말을 마친 박수호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자, 반사적으로 몸을 뒤로 젖힌 김상수가 두려운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다. 다가오면-“

”화장실 가고 싶다.“

”안-“

”안 된다고 하면 바로 이 자리에서 싸도 되나?“

말을 마치고 지긋이 자신을 바라보는 박수호의 무표정한 얼굴을 바라본 김상수의 팔에 소름이 돋아났다.

”아. 알았어! 지금 바로 데려다줄게. 수갑은-“

”이미 앞에 있으니 풀어줄 필요는 없다.“

그의 말에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난 김상수는 전기 충격기를 꺼내 그를 겨누었다.

”조금이라도 이상한 짓을 하면 바로 쏘겠어. 두 손 머리에 얹어.“

박수호가 시키는 대로 손을 머리 위로 얹자. 다가온 그가 박수호의 손을 유심히 바라보며 다리와 의자를 연결한 수갑을 푼다.

”앞으로 가서 문을 열어.“

”매뉴얼대로라면 문을 잠가-“

”잔말 말고 열라면 열어.“

”알았다.“

천천히 앞으로 걸어간 박수호는 손을 뻗지 않고 손등을 이용해 문고리를 아래로 내렸다.

”왜 안 잡고-“

”깍지 낀 대로 잡혀 있는데, 손으로 어떻게 한다는 거지?“

박수호의 말에 김상수는 짜증 어린 눈빛으로 손을 휘저었다.

”알았으니까, 나가자마자 오른쪽으로 꺾어.“

복도에 들어선 박수호는 오른쪽으로 틀었고, 화장실 푯말이 보이는 것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화장실로 들어선 박수호는 자기 옆에 붙은 김상수를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변태.“

”뭐. 뭐가!“

”안에 아무도 없는데, 감시하고 있잖아. 남의 성기 보는 취미 없으면 떨어지지.“

”난 또 뭐라고,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빨리 나와.“

”알았다.“

”반말은- 어우. 내가 참아야지...“

중얼거리며 그가 나갔다.

쏴아아악.

엄청난 양의 물을 쏟아낸 박수호는 지퍼를 올리고 세면대로 걸어갔다. 손을 씻고 있는 사이, 경비원 복장의 사내가 들어와 그를 스쳐 지나갔다.

다시 한 번 더 비누로 묻힌 박수호.

조금 뒤.

벌컥벌컥.

세면대 물을 마신 박수호가 입을 닦으며 나갔다.

”다 끝났어?“

”그렇다.“

”그럼 가자.“

대화가 멀어지고, 세면대에 서 있던 칠십 대 경비원은 거울을 바라보고 있었다.


-조선에서 가장 현명한 아이.


”이건 또 무슨 소리여.“

경비원의 가슴에는 이경천이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

”아무튼 빨리 지우자.“

그가 손을 휘저어 거울에 적힌 내용을 지우자마자, 김성수가 들어왔다. 이경천이 거울을 닦은 자세 그대로 얼어붙은 가운데, 날카로운 눈으로 이곳저곳을 돌아본 그의 마지막 시선엔 이경천이 있었다.

”여기서 뭐하십니까?“

”어? 어...“

천천히 거울을 문지르며 이경천이 말했다.

”거울이 더러워서 말이여.“

”아주머니는요.“

”이 시간에 아주머니가 있는가.“

”내일 그냥 넘기시지 그러셨어요.“

”에이. 그럼 쓰남. 내가 실수로 튄 물인데, 내가 닦아야지.“

그의 말에 김성수도 실없이 웃으며 옆에서 손을 씨기 시작했다.

”아주머니 좋아하시는구나.“

”에끼! 이 사람이 그게 아니라-“

”안 그럼, 여길 왜 닦아요. 여기 아주머니 솔로니까 파이팅 하십쇼. 그럼 가보겠습니다.“

”아니라니까...“

슬쩍 고개를 내밀어 완전히 그가 나간 걸 확인한 이경천이 가슴을 문지르며 말했다.

”나도 많이 늙었나... 고작 이 정도에 두근거릴 정도면... 일단 다시 찾아올지 모르니까.“

깨끗하게 거울을 닦은 이경천이 휴지로 물기를 완전히 없앤 손으로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다.

”됐다.“

다시 넣은 그가 바깥으로 나가고 잠시 뒤.

김상수가 슬쩍 안으로 들어왔다.

그는 굳은 얼굴로 화장실 이곳저곳을 돌아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거울을 뚫어지게 바라보기 시작했다.

일 분.

이 분.

삼 분.

...

오 분 넘게 바라보던 그는 머리를 긁적였다.

”거짓말인 줄 알았는데, 사실이었나? 나중에 음료수라도 드려야겠어.“

중얼거리며 그는 화장실 바깥으로 나갔다.


작가의말

늦었네요. 허허.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2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나는 숫자를 본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54 파일13# 1/2 (5) +2 19.09.24 228 12 16쪽
153 파일13# 1/2 (4) +1 19.09.23 227 11 17쪽
152 파일13# 1/2 (3) +1 19.09.22 223 10 14쪽
151 파일13# 1/2 (2) +1 19.09.19 255 10 14쪽
150 파일13# 1/2 (1) +1 19.09.18 218 10 13쪽
149 파일12# 48시간 (5) +3 19.09.17 220 12 15쪽
148 파일12# 48시간 (4) +1 19.09.16 213 10 16쪽
147 파일12# 48시간 (3) +1 19.09.11 212 9 16쪽
146 파일12# 48시간 (2) +2 19.09.10 218 12 11쪽
» 파일12# 48시간 (1) +2 19.09.09 321 11 20쪽
144 파일11# 개미 2 (8) +3 19.09.06 328 12 17쪽
143 파일11# 개미 2 (7) +3 19.09.05 217 10 14쪽
142 파일11# 개미 2 (6) +1 19.09.04 243 9 17쪽
141 파일11# 개미 2 (5) +1 19.09.03 261 8 14쪽
140 파일11# 개미 2 (4) +2 19.09.02 263 13 15쪽
139 파일11# 개미 2 (3) +3 19.08.29 274 10 11쪽
138 파일11# 개미 2 (2) +1 19.08.28 269 12 11쪽
137 파일11# 개미 2 (1) +1 19.08.27 273 8 18쪽
136 파일10# 개미(5) +2 19.08.25 267 7 17쪽
135 파일10# 개미(4) +1 19.08.24 296 9 20쪽
134 파일10# 개미(3) +1 19.08.23 276 12 13쪽
133 파일10# 개미(2) +1 19.08.22 307 11 16쪽
132 파일10# 개미(1) +2 19.08.21 311 9 12쪽
131 파일9# 누군가에겐(6) +2 19.08.17 310 13 22쪽
130 파일9# 누군가에겐(5) +3 19.08.16 294 10 21쪽
129 파일9# 누군가에겐(4) +1 19.08.15 293 11 15쪽
128 파일9# 누군가에겐(3) +2 19.08.14 322 8 14쪽
127 파일9# 누군가에겐(2) +2 19.08.13 317 10 16쪽
126 파일9# 누군가에겐(1) +1 19.08.12 345 10 17쪽
125 파일8# 살아있는 이유(5) +2 19.08.09 331 14 20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