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숫자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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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그좋아
작품등록일 :
2019.04.01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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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19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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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8.09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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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8# 살아있는 이유(5)

DUMMY

121

**

최종 용의자.

1. 김동규(56): 검시조사관이 살해당하던 날, 알리바이가 확인되지 않았으며, 송용창의 말로는 팔에 기다란 상처를 입은 걸 그의 집에 찾아갔을 때 봤다고 증언했다.

2. 최가운(52): 청주 교도소로 형을 면회 갔다고 했지만, 기록지에는 전날에 간 것으로 밝혀졌으며, 그의 전 여자친구의 증언으로 하의 하단 부분에 피가 묻어 있었다고 증언했다.

3. 박진성(54): 당일 휴가를 낸 상황이었고, 가족들과 여행을 갔다는 증언 다르게, 그날 아들과 아내만 유학을 위해 외국으로 출국하고, 그는 일 때문에 한국에 남아 있었다.

**


다음날, 오전 열 시. 강서 경찰서 사무실.

김선애는 하품한 다음 늘어지는 목소리로 말한다.

“지방에 사는 피해자 지인에게 들어보니, 세 명 다 동기가 있었어요. 김동규와는 전부터 사건마다 부딪히다가, 손잡이가 없어졌을 때, 피해자가 증거물보관소에서 그를 목격했다고 신고했어요. 최가운은 피해자가 재조사한다는 명분으로 자신의 집에 찾아온 걸 보고 화를 엄청 크게 내며 내쫓았고, 그때 같이 있었던 박진성을 보고 과학수사대 내에서 그와 크게 싸웠다고 말했어요.”

이명환은 굳은 얼굴로 말했다.

“문제는 명확한 증거가 없다는 거야. 그리고 동기가 살인까지 가기에는 너무 약해서, 김동규야 남나휘의 신고로 조사한다는 명문이 있지만, 살인 혐의는 고사하고 나머지 두 사람은 영장 신청도 못 해.”

미간을 좁히고 서류를 뒤적이고 있던 이신후가 입을 열었다.

“억지로 최가운까지는 집어넣어도, 박진성은 깨끗한데, 그까지 알리바이 검사하라고 한 이유가 뭐지?”

그의 질문에 박수호가 서류 한 장을 그들에게 내밀었다.

“김선애가 저랑 같이 새벽에 천안까지 내려가서 받아온 거예요. 피해자는 물론이고 그때 당시 증거물보관소를 관리하던 분과도 친분이 있으셨는데, 그때 당시 사라진 물건들을 기록해놓은 거예요.”

서류를 보던 이신후가 이명환에게 건네주면서 말했다.

“박진성이 넘긴 물건 중에, 절반이 도난당했구나.”

“예. 그중 약품들을 제가 올라오면서 조사해보니, 심장이 좋지 않은 사람들은 절대로 섭취하면 안 되는 약물들이 있었습니다.”

박수호의 말에 이명환이 미간을 좁히며 말했다.

“네 말은 그 약물을 이용해서 죽였다는 거잖아.”

“그렇지, 유일한 목격자가 말한 왜소한 체구의 사내는 세 명 중 박진성이 제일 어울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우리에게 세 사건을 말해준 사람이잖아. 굳이 자신을 옥죄는 짓을 할까?”

“자신과 최대 라이벌의 자식에 대해서 누구보다도 더 잘 파악하고 있었을걸? 내가 과거 징계위원회에서 위기를 극복했던 것까지 들었다면 항상 내가 중요한 대화는 녹음한다는 걸 알고 있었을 거고, 그걸 빌미로 우리에게 증거를 요청하면 내가 건네준다는 것까지 알 거야. 다시 말해 그는 먼저 말하면서 미리 포석을 깔아 둔 거지.”

“하지만, 박진성이 아니라 증거물보관소를 들락날락하던 김동규가 훔친 걸 수도 있잖아요. 최가운도 의대에 있다가 자퇴를 했고, 비슷한 부작용이 있는 약을 지병 때문에 섭취 중이고요.”

“선애 말대로 다른 두 명 모두 가능해. 그러니, 다 염두에 두고 수사해야 하는 건 맞아. 문제는 김동규 하나만 우리 손에 있다는 거야, 뭔가 그들을 전부 불러 모을 만한 강력한 무언가가 있어야 하는데... 그게 없어.”

이명환이 어두운 얼굴로 한 말에 분위기가 가라앉자, 이신후가 손뼉을 치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단, 김동규를 다시 한 번 더 취조해보자고, 이번에 알아낸 새로운 동기로 압박하다 보면 뱉어내는 게 있겠지.”

그의 말에 김선애와 이명환이 자리에서 일어났는데, 박수호만 자신의 수첩을 보고 일어나지 않았다.

“너는 안 가?”

이명환의 말에 박수호가 수첩을 보며 말했다.

“생각할 게 좀 있어서, 두 사람이 좀 부탁해.”

그의 말에 두 사람이 이신후를 바라보았고, 이신후는 어깨를 으쓱하더니, 두 사람에게 손짓으로 따라오는 신호를 보냈다.

세 사람이 떠나고, 혼자 남은 박수호는 수첩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그가 볼펜으로 적은 글들...-

-단순 도박장에 왜 다시 간 걸까? 정말 혈흔 때문에?-

-그를 죽인 동기는 그것들뿐?-

-범인은 치밀한 범죄를 꾸며놓고, 어째서 주변 확인도 제대로 못할 정도로 서둘렀을까?-

-그리고 목격자를 죽이지 않는 이유가 뭐지?-


“그는 왜 살아있을까?”

검지로 책상을 두들기며 고심하던 그는 눈살을 찌푸린다.

“한 사람씩 따져봤지만 다 부합되지 않아. 증거가 부족- 잠깐, 한 사람씩?”

반짝이는 눈으로 수첩을 바라보던 그는 황급히 서류를 하나둘 들춰보더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

**


같은 날 오후 11시.

오래되어 보이는 건물 앞에 검은 외제 차 한 대가 멈춰 선다.

운전석에 내린 검은 장갑에 마스크를 착용하고 모자까지 쓴 남성이 눈살을 찌푸린다.

“겉으로 보기엔 멀쩡한 건물을 왜 철거하는 거야.”

투덜거리며 차 트렁크를 연 그가, 뒤로 이동해서 그의 머리통만한 큰 망치를 꺼내고 문을 닫은 다음, 뒷좌석에는 가방을 꺼냈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그는 차에 탑승했고, 외제 차는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잠시 뒤.

사내가 나타나더니,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스마트폰을 꺼낸다.

“어디야. 이미 도착했다고? 그래 알았어, 내려가지.”

망치와 가방을 두 손을 이용해 든 그가, 건물 안으로 들어간다.

한치 앞도 보이지 않자,

“에이씨. 가지가지 하네.”

가방을 망치 쥔 손으로 넘긴 그가, 스마트폰 화면 불빛을 앞에다 비추었다.

그는 벽면을 가로지르는 금과 실금들을 보며 중얼거린다.

“금이 많이 갔군. 정말 무너지는 거 아니겠지?”

조심스럽게 계단 아래로 내려간 그는, 닫힌 문으로 가서 발로 두드린다.

“문열어.”

끼이익.

“왔어?!”

열린 문틈 사이로, 그와 똑같은 검은색 복장에 마스크까지 착용한 남성의 반가움이 섞인 음성에, 그는 짜증을 냈다.

“비켜.”

“응. 비킬게.”

남성이 비기면서 내부가 드러났는데, 안은 피시방에서나 보던 의자와 탁상들과 망가진 인테리어 물품들로 가득했다.

사내는 바닥에 굴러다니는 조각 하나를 발로 차며 말했다.

“주인은 이런 거 안 치우고 뭐한 거야?”

“우리 아버지였으면 진즉에 없앴을 텐데, 건물 관리도 오죽 못했으면, 철거 대상까지 됐겠어.”

“그러니까 애초에 팔지 않았으면 이럴 필요 없잖아!”

“미안... 하지만, 그때 정말 좋은 위치의 부동산이 경매로 나와서 아버지가 갑자기 파신 거라, 말릴 틈도 없었어. 대신 그 덕분에 오십억은 넘게 벌었-”

“지금 밤새 돌아다녀야 하는 마당에, 네 아버지 업적 들을 시간 없다는 건 알고 하는 소리냐. 우선 저기부터 치우자.”

제일 구석진 부분에 물건들이 수북이 쌓인 곳을 가리켰고, 뒤에 있던 남성이 그를 따라 움직였다.

“가게 들어설 때마다 조마조마했었는데, 용케 안 걸렸다. 그치?”

“대신 인테리어 인부들에게 우리 돈 이천씩 날아간 거 생각해라.”

“우리 아버지가 그거 땜방하라고 준 돈이 열 배는 더-”

“아버지 이야기 그만하고 빨리 치워!”

“아. 알았어.”

두 사람은 피어나는 먼지에 손사래 치거나 눈살을 찌푸리며 치우던 와중에 사내가 땀을 닦으며, 외곽으로 가서 물건을 조심스럽게 내려놓는 남성을 바라보았다.

“너, 오늘따라 제대로 일한다.

”어? 뭐. 뭐가?“

”예전이면 돈 주고는 다 나한테 시켰잖아.“

”왜? 돈 필요해? 도박 또 한 거야?“

”도박은 너 도와주다가 생긴 빚이잖아!“

”아. 맞다! 미안 깜빡했어. 그리고 이건 내 실수 때문에 이렇게 된 거니까, 열심히 해야지.“

그의 말에 피식 웃은 사내가 물건 하나를 들며 투덜거린다.

”네 말대로 내가 닦아 놓으라는 피만 제대로 닦았어 봐. 그 까칠한 새끼까지 처리할 필요 없었잖아.“

”미안.“

사과하는 와중에도 남성은 물건을 치우고 있었고, 사내도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헉. 헉.“

”헉. 헉.“

두 사람 모두 호흡이 거칠어질 때가 돼서야, 삼 분의 이 정도 치우고 바닥이 보이기 시작했고, 두 사람 다리가 조금씩 떨릴 정도가 되고 나무판자 하나만 남게 됐다.

”피시방 탁잔가? 생각보다 큰 녀석인데. 게다가“

땅.땅.

”속도 꽉 찬 녀석이다.“

”아무래도 같이 들어서 옮겨야겠어.“

사내는 반대쪽으로 건너갔다.

”거기 살짝 들린 부분 잡아. 잡았어?“

”어.“

”셋 하면 드는 거다. 하나, 둘, 셋. 읏차.“

”읍!“

기합과 함께, 나무판자가 들렸고, 그것을 천천히 치우던 사내는 판자 아래를 살펴보다가,

”으허억!“

비명과 함께 주저앉았다.

맞은편에 있던 남성은 천천히 판자를 내려놓은 가운데, 사내가 바라보는 곳에는 텅 빈 공간과 함께 그 안에서 앉아있는 남성이 그들을 보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생각보다 물건을 잘 치우셔서 덕분에 살았습니다.“

”너. 너는! 바. 바. 바...“

”박수호입니다. 다시 만나 뵙게 돼서 반갑네요. 저를 꺼내주시느라 고생하셨으니, 제가 목적지까지 친절하게 바래다 드리겠습니다. 들어오세요!“

그의 우렁찬 목소리에 예전 비상구 표시가 있는 또 다른 문이 열리더니, 경찰들이 우수수 몰려 들어왔다. 그들 맨 앞에 있던 이신후가 굳은 얼굴로 사내에게 걸어갔다.

그리고.

철컥.

”당신을 살인 및, 시체 유기, 범죄 방조, 뇌물 수수...“

은빛 쇠고랑을 자신의 손목에 채워진 것을 본 사내의 몸이 날카로운 칼에 찔린 것처럼 부르르 떨렸다.


**

**


일주일 뒤 아침.

천사식당.

이미수의 아버지이자, 피해자 사건을 의뢰한 이국혼이 박수호와 마주 앉아 있었다.

”여기 녹차랑 커피믹스요.“

”고맙다.“

”고마워.“

두 사람의 말에 갈색 니트 상의와 검은색 바지를 입은 이미수가 싱긋 웃더니, 이국환 옆에 앉았다.

”큰외삼촌 사건 해결해줬다며?“

”그래. 오늘 자 뉴스에도 나왔지만, 범인들은 자신들이 숨겨놓은 돈과 시체가 걸릴까 봐, 한 명이 계획을 세우고, 한 명이 약을 훔치고, 사람을 죽여 본 놈이 외삼촌을 해친 사건이었다.“

이국환이 녹차를 한모금 마시고 잔을 내려놓았다.

”목격자 때문에 재조사가 진행된 건데, 그동안 그를 죽이지 않은 이유가 뭐지?“

”그들도 처음엔 목격자인 노숙자를 죽이려고 하다가, 오히려 노숙자의 진술로 공범이 아닌 혼자 한 짓이라고 판단하는 근거가 되자, 살려주기로 결정합니다. 하지만, 결국 그의 일관된 진술 때문에 의구심을 품은 가족들은 재수사를 요청했고, 세 사람 모두 교도소에 들어가게 된 거죠.“

”그럼 세 명이 한 짓이야?“

”그렇지, 그중 두 사람은 경찰이었다.“

그의 말에 이미수의 얼굴이 굳어진다.

”뉴스에서는 그런 말 없었는데.“

”박진성이 그때 당시 경찰이었다는 사실을 강조했다간 그 신문사는 다시는 경찰서에 발 못 붙이니까 그런 거다.“

”그런데 정확한 동기가 뭐야?“

”너... 뉴스도 안 보고 사니?“

”보긴 보는데... 스마트폰만 봐서...“

이미수가 말을 흐리고 혀를 내밀자, 박수호는 한숨을 길게 내쉰 다음 말했다.

”박진성과 최가운은 어릴 때부터 성매매나 성폭행 성희롱을 같이해온 친구들이었다. 처음에는 간단한 치마 들추기로 시작해서 성매매, 현재 성폭행까지 진행되었고, 물뽕, 다른 말로 마약을 이용해서 사람들을 성폭행하게 되었다. 문제는 둘이 마지막으로 한 성폭행 대상자가 다른 이들과 다르게 금방 깨어났고, 반항을 심하게 하다가 위협용으로 가져온 칼에 찔리게 된 거다. 살해 장소는 아시다시피 그곳 지하에 있던 불법 도박장이었지. 그때 당시엔 단속 때문에 쉬고 있었던 거고, 문제는 뒤처리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서 남은 혈흔을 도박장 주변을 수색 중이던 검시관이 찾아내게 된 거다. 그래서 검시관은 박진성이 범행을 계획했고, 김동규가 실행에 옮긴 거다.“

”아무리 그래도 얼굴을 맞대고 결혼식까지 서로 찾아간 동료인데...“

”그들도 사람이다. 김도훈도, 김명호도, 그리고 나도, 너도, 다 같은 사람이야. 그들도 누군가에게는 좋은 사람이었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악마였다. 다른 사람들처럼...“

그의 말에 분위기는 가라앉았다.

그사이, 뒤에서 겨울이라고 생각하지도 못할, 배꼽이 훤히 드러난 갈색 니트 티에, 짧은 검은 치마를 입고 있는 임선애가 양손에 과일과 과자가 담긴 접시를 들고 나타났다.

”우울한 이야기는 그만하고 여기 맛있는 음식 먹고, 즐거운 이야기 하세요.“

그녀가 내려놓으며 박수호 옆에 앉으면서 말했다.

”아무튼 제자 큰외삼촌 누명은 벗겨졌다는 말이지?“

”예.“

환하게 웃으며 그녀가 이미수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럼 우리 미수 방송 출연할 수 있겠다. 마침 수지가 음식 프로그램 엠씨 맡고 있잖아. 그곳에 나가서 광고하면, 여기 매출이-“

”선생님. 지금 그 이야기를 여기서 하면-“

이미수가 눈치를 보고 있는 박수호에게 고개를 돌린 임선아가 또박또박 말한다.

”박수호 설마 지금도 감정 가지고 있는 거 아니지?“

그녀의 질문에 박수호는 난처한 미소만 짓자, 그녀의 눈이 동그래진다.

”너, 지금도 그래? 결혼할 여인도 있는 녀석이 왜 이리 빡빡하게 굴어, 이제 좀 용서할 때도 됐잖아. 걔가 일부러 너를 버린 것도 아니고, 주변 상황이 그렇게 강요한 거잖아. 설마, 네가 계속 몸이 안 좋은 상태에서도 네 곁에 있기를 바란 건 아니겠지? 지금이야 멀쩡하지만, 그때, 네 상태는 누가 봐도 회복 불가였어. 그건 너도 잘 알잖아. 그런 너를 간호하며 평생 고통 속에 산다고 생각하면-“

”죄송하지만, 남의 속사정을 다 알지 못하면서 훈계하지 마시죠.“

싸늘한 여성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오자, 네 사람의 목이 동시에 움직였다.

그곳엔 검은 코트에 팔에 걸고, 검은 원피스 복장을 한 도도한 표정의 이십 대 중반으로 보이는 여인이 서 있었다.

그녀를 보고 박수호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우아! 네가 여긴-“

”네가 보고 싶어서.“

싸늘한 말투였지만, 박수호는 피식 웃으며 그녀에게 걸어갔다. 그리고 두 팔을 벌렸다.

”보고 싶으면 안겨야지. 뭐 해. 안 오고.“

”지금-“

”전에는 내가 안겼잖아. 이번엔 네 차례야. 빨리 와, 추워.“

그의 재촉에 그녀는 한숨과 함께 그에게 다가가 안겼다.

”팔.“

그의 말에 두 번째 한숨과 함께 그를 팔로 감싸자. 박수호가 그녀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포갠다.

”요즘 젊은이들은 저래서 좋다니까.“

둘의 모습에 이국환이 웃는 가운데, 나머지 두 여인의 얼굴은 살짝 굳어졌다가 펴졌다.

”네, 정말 좋아요.“

”그 그래...“

그사이, 서로 떨어진 두 사람은 박수호가 앉았던 자리에 앉았고, 잠시 일어서 비켜준 임선아가 자연스럽게 이미수 곁으로 이동한 가운데, 박수호가 정우아를 바라보며 부드럽게 말했다.

”내가 여기 있는 건 어떻게 알았어.“

”신후 아저씨가 알려주셨어.“

”의뢰 때문에 온 거야?“

그의 질문에 정우아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네가 보고 싶어서.“

”아버님은.“

”어머니랑 같이 여행가셨어.“

”그 몸으로?“

”괜찮다고 하시니까, 말릴 수 없었어.“

”그래서 어디로 가셨는데.“

”파리로 가셨어. 의사 선생님 가족이랑 같이 가셨으니, 괜찮을 거야.“

”그러면 다행이고.“

”너는 나 안 보고 싶었어?“

”당연히 보고 싶었지.“

”거짓말. 사건 생각만 하고 있었을 거잖아. 그래서 실마리는 잡은 거야?“

그녀의 말에 박수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직. 감만 오고 명확한 뭔가가 없어.“

그의 말에 정우아가 박수호의 손을 매만지며 말했다.

”그래서. 나 계속 미국에 놔둘 거야?“

”내 예상이 맞으면 내 가족까지 건드릴-“

”각오하고 있어.“

그녀의 담담한 말에 물끄러미 그녀를 바라보던 박수호가 피식 웃었다.

”왜 웃어.“

”거짓말. 속으로 벌벌 떨고 있잖아.“

그의 말에 살짝 얼굴이 굳어진 그녀가 자신의 머리 위를 휘저었다.

”내가 보지 말랬지.“

”그냥 표정만 봐도 알겠는 걸.“

”진짜?“

”그래. 진짜.“

그의 말에 잠시 스마트폰으로 자신의 얼굴을 보며 정우아가 말했다.

”분명 연습까지 했는데.“

딱.

”아얏! 왜 때려.“

”그런 거 연습할 시간에, 공부하던가, 내 사진이나 봐. 아, 지금은 내 얼굴이지.“

”계속 그러고 있거든요.“

달콤한 두 사람의 대화에 흐뭇한 미소로 바라보던 이국환이 헛기침을 한다.

”흠흠. 미안하지만, 여기 있는 사람들 배려 좀 해주라고.“

그제야 서로 달라붙어 있던 두 사람이 갈라졌고, 박수호가 미소와 함께 정우아를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아저씨는 처음 보시겠네요. 여기 제 약혼녀 정우아에요. 국내는 물론이고 외국에서도 변호사 자격증을 따서 활약 중이죠. 여기 아저씨는 이미수 아버님, 나와 같은 경찰이셔.“

”안녕하세요. 정우아라고 합니다. 미수씨가 미인이라서 예상은 했지만, 잘생기셨어요.“

그녀의 말에 이국환이 크게 웃었다.

”그래, 하긴, 내 얼굴로 우리 미수 와이프를 꼬셨지. 지금도 내 얼굴만 보면 넋을 놓는다니까.“

”아빠도 참, 어머니에게 반해서 따라다니셨다고 했잖아요.“

”아니, 내가 언제 그런 말을 했어! 나는...“

그렇게 대화의 물꼬를 터지자, 자연스럽게 여러 이야기들을 하게 되었고, 박수호와 연관된 사건들까지 말이 오갔다.

한바탕 이야기보따리를 풀고 웃으며 떠들다가, 집으로 가려고 자리에 일어선 이국환을 따라 이미수와 박수호가 식당 바깥으로 나가자, 임선아가 조용히 앉아서 박수호의 잔에 있는 커피를 마시는 정우아를 바라보았다.

”다시 미국으로 가실 건가요?“

”아무래도 맡은 일이 있어서요.“

”그런데 갑자기 여기로 오신 이유는 뭔가요?“

그녀의 질문에 물끄러미 그녀를 바라보던 정우아가 입을 열었다.

”제가 한국으로 오면 안 되는 이유가 있나요?“

”그게 아니라, 연락도 없이 찾아오셨잖아요. 박수호도 많이 당황한 눈치던데-“

”그도 갑자기 미국에 찾아와서 하루 묶다 가는 경우도 있어요. 그리고 이 질문을 하고 싶어서 입을 여신 건 아니잖아요.“

정우아의 딱딱한 말에 잠시 흠칫한 임선아의 입가에 쓴웃음이 맺혔다.

”누가 박수호 여친이 아니랄까봐, 사람 마음 읽을 줄 아시네요.“

”그리고 그처럼 저도 바로 말하는 스타일이에요. 아무래도 수지라는 제자에 관해서 할 말이 많으신 거 같은데, 죄송하지만 자세한 사정은 말할 수 없어요.“

”어째서죠?“

”그가 원치 않으니까요. 관련된 어떠한 대답도 해줄 수 없어요. 그가 먼저 입을 열지 않으면 저는 말하지 않을 거예요. 설사 우리 둘이 헤어진다고 해도, 저는 절대 입을 열지 않을 거예요.“

”그렇게까지 말을 옮기지 않는 이유가-“

”그래야 박수호가 제게 계속 속마음을 털어놓을 거 아니에요. 저는 그거면 족해요.“

말을 마치고 다시 커피를 마신 그녀가 소리 없이 잔을 내려놓을 때까지 물끄러미 바라보던 임선아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수호 걱정은 덜겠네요. 대신...“

입구에서 박수호와 함께 들어오는 이미수를 바라보며 그녀가 중얼거렸다.

”다른 애가 걱정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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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9 파일9# 누군가에겐(4) +1 19.08.15 293 11 15쪽
128 파일9# 누군가에겐(3) +2 19.08.14 321 8 14쪽
127 파일9# 누군가에겐(2) +2 19.08.13 317 10 16쪽
126 파일9# 누군가에겐(1) +1 19.08.12 344 10 17쪽
» 파일8# 살아있는 이유(5) +2 19.08.09 331 14 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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