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화
28화
[작가님 무협 쓰실 때 필요하실 자료들 좀 메일로 보냈습니다.]
김신욱 과장의 연락이었다.
‘자료라고?’
현우는 곧바로 메일함에 들어가 봤다.
메일함에는 김신욱 과장이 방금 보낸 메일이 도착해 있었다.
잠시 후, 메일 안에 들어 있던 자료들을 살펴본 현우의 입이 벌어졌다.
메일 안에는 중국의 지리 자료부터, 사자성어, 별호, 화폐, 그 외 각종 용어 등 다양한 정보들이 들어 있었다.
“이것만 공부해도 기본적인 건 다 떼겠는데?”
고민으로 어두워졌던 현우의 얼굴이 환하게 피었다.
현우는 김신욱 과장의 꼼꼼함에 다시 한 번 감동받았다.
그는 곧바로 김신욱 과장에게 답장을 보냈다.
[감사합니다. 덕분에 한시름 놓고서 열심히 쓰는 데에만 집중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잘 쓰겠습니다!]
현우는 답장을 마친 뒤, 김신욱 과장이 보내 준 자료를 먼저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날 이후, 현우는 본격적으로 수험생 모드로 돌입했다.
매일 수 권 치의 무협 소설을 읽으며, 동시에 김신욱 과장이 준 자료들을 섭렵했다.
그 작업을 반복하다 보니 조금씩 현우는 자신에게 감각이 생기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감각을 놓치지 않기 위해, 현우는 조금씩 습작도 병행했다.
*
한 달 뒤.
현우는 모니터를 바라보며 고민에 잠겼다.
“흐음.”
현우는 찬찬히 자신이 쓴 글을 뜯어 봤다.
현우가 쓰고 있는 글은 이전에 비해서는 비약적으로 발전해 있었다.
그리고 만약 시장에 내놓는다면, 나쁘지 않은 성과를 낼 것 같았다.
그러나 현우는 습작으로 쓴 글들이 만족스럽지 못했다.
‘이게 아니야.’
그는 자신이 쓴 글들이 어딘가가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어딘가가 정확히 어느 지점인지 정확하게 감을 잡지 못하고 있었다.
‘이런 글이면 아버지나, 진짜 무협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취향을 저격하긴 힘들어.’
현우가 생각하기에, 지금 자신의 글은 무협 본연의 매력을 제대로 담아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고민은 다른 무협 소설들을 더 읽어 보고, 습작을 더 해 봐도 쉽사리 해결이 되지 않았다. 생전 처음 써 보는 장르에 도전한 작가의 한계였다.
‘시간이 해결해 줄 문제인가······.’
그러나 현우는 이 문제를 빠르게 해결하고 싶었다.
시간 외에 방법이 딱 하나가 더 존재하긴 했다.
바로 사람이었다.
“후우······.”
‘뭔가 무협 작가랑 대화를 나눠 보면 뚫릴 것 같기도 한데······.’
그러나 현우는 주변에 아는 무협 작가가 전혀 없었다.
애초에 그는 아는 작가 자체가 거의 없다시피 했다.
그렇다고 해서 모르는 사람들에게 연락을 하자니, 그건 또 꺼려지는 부분이 있었다.
현우가 못 나가던 시절, 다른 작가들에게 당한 무시가 그의 기억 속에 박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지금, 현우는 조심스럽게 그 마음이 움직이고 있었다.
‘······연락해 볼까.’
더 이상 그때의 자신이 아니라는 것과, 그렇기에 그런 푸대접을 받을 일도 없다는 것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잠시 후, 자신의 원고를 읽으면서 고민을 이어 나가던 현우가 결심을 했다.
‘연락해 보자.’
결정을 내린 현우는 곧바로 누구에게 연락을 할 것인지 고민을 시작했다.
현우는 지난 한 달 동안 재미있게 읽은 무협지들을 떠올렸다.
그리고 마침내, 세 작품이 추려졌다.
그중엔 잘 팔리는 작품도 존재했고, 그저 그렇게 팔린 작품들도 존재했다.
그러나 한 가지 공통점은, 하나같이 현우가 인상 깊게 읽은 작품들이라는 점이었다.
현우는 용기를 내서 세 명의 작가들에게 쪽지를 보냈다.
며칠 뒤.
현우가 약간은 초조한 심정으로 답장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 사람에게서는 답장이 왔으면 좋겠는데.’
쪽지를 보낸 세 명 중, 한 명에게서는 읽씹을 당했다. 그리고 또 다른 한 명에게서는 어젯밤 정중한 거절 답장을 받은 참이었다.
남은 것은 아직 쪽지를 확인하지 않은 한 명뿐이었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그가 세 명 중 현우가 가장 보고 싶었던 사람이라는 점이었다.
그렇기에 현우는 기대감을 품고서 작품을 수정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날 저녁.
현우가 저녁 식사를 하고 있을 때였다.
[띠링]
컴퓨터의 스피커에서 쪽지가 도착했다는 알림음이 울렸다.
현우가 젓가락을 내려놓고서 후다닥 컴퓨터 앞에 앉았다.
“왔다!”
[제목 : 반갑습니다. 양월입니다.]
쪽지를 보낸 사람은 현우가 그토록 기다리고 기다렸던 양월 작가였다.
*
경기도 수원의 한적한 카페.
“철민이라고 합니다. 본명은 박현우입니다.”
“양월입니다. 본명은 정명훈입니다.”
두 사람이 악수를 나눴다.
“나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저도 한 번 만나 뵙고 싶었어요.”
반갑게 인사를 나누며 두 사람이 자리에 앉았다.
정명훈은 현우보다 열다섯 살은 더 많아 보였다.
명훈이 먼저 현우에게 말을 꺼냈다.
“쪽지에 답장이 늦어서 죄송합니다. 쪽지를 잘 확인을 안 하는 편이라서요.”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호칭을 어떻게 하면 될까요?”
“편하게 본명으로 불러 주세요.”
현우는 자신이 철민으로 불리는 것이 어색했다.
“네, 알겠습니다. 그럼 저도 본명으로 불러 주시면 됩니다.”
“네. 그러죠.”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박현우 작가님께서 연락을 주신 걸 보고서 많이 놀랐어요.”
“왜 그랬나요?”
“뭐, 요즘 시대에 무협에 관심이 있다는 게 의외이기도 했고, 또.”
정명훈이 머쓱한 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솔직히 제가 잘나가는 작가는 아니니까요.”
“요즘 시대에 무협이라니, 무협 작가분께서 그런 말씀을 하시니까 조금 의외라는 생각이 드네요.”
“사실은 사실이니까요. 뭐 저야 할 줄 아는 게 이거뿐이라 이걸 쓰는 입장이기도 하고.”
현우는 그의 솔직함에 살짝 놀랐다.
‘이런 성격인가 보군.’
명훈은 돌려 말하는 경우 없이, 직진을 좋아하는 타입인 듯했다.
그렇기에 현우는 그에게 솔직하게 말하기로 했다.
“저는 작가님의 글을 개인적으로 좋아합니다.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만, 작가님만의 진한 재미가 담겨 있다고 생각해요. 무협만이 줄 수 있는 재미가요. 그래서 작가님에게 무협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 보고 싶었어요.”
현우가 느끼는 명훈의 글은 호불호가 갈리는 지점도 있었고, 장르문학적인 재미를 챙기지 못하는 부분도 있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현우가 다른 작가들보다 그를 가장 보고 싶어 했던 이유는, 명훈의 글에서 진한 무협의 향취를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현우는 자신의 말에 조금의 아첨도 섞지 않았고, 현우의 태도에서는 한 치의 가식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것이 명훈에게도 전해진 것인지, 그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그려졌다.
명훈이 현우에게 물었다.
“혹시 습작하신 건 가져오셨나요?”
“아. 네. 가져왔어요.”
현우는 곧바로 명훈의 스마트폰으로 자신의 습작을 전송했다.
명훈은 그 자리에서 현우의 습작을 읽기 시작했다.
그는 줄곧 진지한 표정으로 현우의 글을 읽어 나갔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기를 한참.
뜨거웠던 커피가 미지근해질 즈음이 되어서야 명훈은 스마트폰에서 시선을 뗐다.
“잘 읽었습니다.”
현우가 긴장한 목소리로 그에게 물었다.
“어떻습니까?”
“재미는 있습니다만······ 이 글은 무타지군요.”
“무타지요?”
“무협의 탈을 쓴 판타지라는 뜻이에요.”
“아······!”
현우는 순간적으로 머릿속에 무언가가 쾅 하고 치는 느낌이었다.
자신이 느낀 ‘이건 아닌데.’라는 감각. 명훈은 그것을 한 단어로 표현하고 있었다.
“그래도 무협을 쓰려고 노력하신 느낌은 보여요. 혹시 무협 습작은 하신 지 얼마나 되셨나요?”
“부끄럽지만, 이제 한 달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 말을 들은 명훈이 깜짝 놀랐다.
“······한 달이요?”
명훈은 현우의 글을 보면서 그가 아무리 짧게 잡아도 반년은 무협을 건드렸을 거라고 생각했다.
한 달은 그가 전혀 짐작해 보지 못한 기간이었다.
명훈은 순간 현우가 천재가 아닐까란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이 들자, 자연스레 명훈은 욕심이 따라왔다. 이런 작가가 진짜 사람 냄새가 나는 무협을 쓸 수 있게 도와주면 어떻게 될까 하는 욕심이었다.
그때 현우가 명훈에게 물었다.
“염치가 없지만, 제가 어떻게 고민해야 할지, 조언을 조금 주실 수 있으신가요.”
현우의 질문에 명훈은 잠시 고민하는 듯했다.
그리고 잠시 후, 그가 입을 열었다.
“제가 별 대단한 걸 알고 있지는 않지만, 도움이 되신다면 알려 드릴 수 있는 건 알려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현우가 고개를 꾸벅 숙였다.
싱긋 웃은 명훈은 곧바로 설명을 시작했다.
“무협은 굳셀 무에 의기로울 협자를 씁니다. 이 두 글자가 장르의 기본이라고 보면 되죠. 결국 이 두 글자를 다채롭게 표현하는 것이 중요한 포인트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명훈의 강의가 시작됐다.
현우는 온 신경을 집중해서 그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두 사람의 이야기는 카페를 떠나 저녁 식사 겸 술자리까지 이어졌다.
현우는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자신이 작가 양월의 소설을 제대로 봤다는 것을 깨달았다.
명훈은 글에 대한, 그리고 무협에 대한 확고한 주관이 있었다.
그날 하루, 현우는 정말 많은 것을 얻어 갈 수 있었다.
다음 날 아침.
현우는 믹스 커피를 한 잔 타고서 컴퓨터 앞에 앉았다.
그런데 컴퓨터 앞에 앉은 현우가 인터넷으로 들어간 사이트는 노블 큐브가 아니었다.
현우가 들어간 곳은 드라마/영화 스트리밍 플랫폼이었다.
‘드라마적인 요소라······.’
현우는 어젯밤 명훈이 한 말이 떠올랐다.
‘연배가 있으신 분들이 무협을 읽는 이유는 무협에 타 장르보다 드라마적인 요소가 더 많이 들어 있기 때문이에요. 현우 씨의 이야기에는 그게 부족해요.’
현우는 그의 조언을 밤새 곱씹었다.
그리고 그에 대한 대비책을 떠올리려고 노력했다.
이번에도 해답은 USB에 있었다.
그러나 현우가 떠올린 해답은 당연하게도 USB 속에 무협 소설을 정리하자는 게 아니었다.
‘그치. 생각해 보면 굳이 소설만 정리하라는 법은 어디에도 없었어.’
현우는 곧바로 스트리밍 사이트의 결제를 마친 뒤, 장르물 드라마를 선택해서 시청하기 시작했다.
그러는 동안에도, 모니터 한 편에는 빈 문서창이 떠 있었다.
잠시 후, 드라마를 보고 있던 현우가 빈 문서창에 무언가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일주일 뒤.
현우의 USB에는 수 편의 드라마와 영화들에 대한 분석 자료들이 추가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즈음, 현우는 자신의 실험이 성공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게 맞아.’
드라마적인 요소에 대해서 공부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현우는 장르문학에 비해 훨씬 더 인물들 사이의 밀도가 높은 드라마와 영화를 공부해 봐야겠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지금, 현우는 일주일 새 인간관계를 표현하는 방법에 대해서 많은 것을 연구하고 생각할 수 있었다.
확신을 얻은 현우는 그날 이후로도 꾸준히 작업을 이어 갔다.
Comment '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