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퀴벌레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스포츠

최지건
작품등록일 :
2014.07.20 23:57
최근연재일 :
2015.10.05 00:51
연재수 :
53 회
조회수 :
388,749
추천수 :
9,206
글자수 :
200,772

작성
14.09.30 21:08
조회
8,611
추천
204
글자
8쪽

6장 당신이 잠든 사이에 (4)

DUMMY

알빈은 꼬리아의 대답에 피식 웃으며 말했다.

“알고 싶으면 내 이력을 찾아보게. 행동의 원인은 언제나 과거에 존재하는 법이니 말이야.”

의미심장한 말에 꼬리아는 의문부호를 띄웠지만 더 이상 캐물을 수는 없었다.

알빈은 더 할 말 없다는 듯이 책상에 얼굴을 묻었고 눈치 없는 꼬리아도 그게 축객령이라는 건 알았는지 소파에서 엉덩이를 뗐다.

꼬리아는 사무실을 나와 화장실로 향했다.

밀담은 언제나 화장실에서 이루어진다.

그건 그렇게 정해져 있는 법칙이었다.



김홍준은 순간 자신이 일진이라도 된 듯한 기분에 휩싸였다.

그렇게 혐오해 마지않던 존재가 되다니 그 살 떨리는 죄악감 속에서 김홍준은 마음속으로 가슴에 손을 얹고 지금 이 순간을 속죄했다.

“알아봤어요?”

속죄는 속죄고 비즈니스는 비즈니스다.

김홍준은 꺼내든 스마트폰을 꼬리아의 눈앞에 흔들며 말했다.

꼬리아는 서른, 김홍준은 스물다섯.

다섯 살 차이가 나지만 김홍준은 이미 알고 있었다.

이 나라에는 장유유서가 없다는 걸.

그렇기에 스마트폰을 흔드는 김홍준의 손에 망설임은 없었고 오히려 알 듯 모를 듯한 경쾌한 리듬감마저 느껴졌다.

묘하게 흥이 오른 김홍준을 보며 음울한 눈빛의 꼬리아가 말했다.

“별건 없어.”

“뭐라도 이야기 해보세요. 내용에 따라 이 영상을 서포터 사이트에 올릴지 말지 결정 할 테니까.”

김홍준의 협박에 꼬리아는 기겁한 표정으로 만류했다. 지역을 기반으로 한 팬덤에서 배척 받는다면 꼬리아로서는 설 곳이 없어지는 거나 다름없었다.

화장실의 새하얀 타일에 부딪쳐 다각도로 울려오는 꼬리아의 목소리를 들으며 김홍준은 지난 3주간 이도미에게 받은 영어 과외가 무용지물이 아니었음을 느꼈다.

“좋게 좋게 가면 동영상 올라 갈 일 없으니까. 너무 그렇게 목소리 높이실 필요 없어요. 화장실인데 누가 듣겠습니다.”

김홍준의 말에 꼬리아의 입이 조개 닫히듯 닫혔다. 조용해진 화장실 안에서 김홍준은 휴대폰을 뒷주머니에 넣으며 속삭이듯 말했다.

“말 해봐요. 나한테 왜 그랬어요?”

인생의 달콤함을 음미하듯 들려오는 김홍준의 목소리에 꼬리아는 떨리는 입술로 말했다.

“행동의 이유는 과거에 존재한다고 했어.”

생뚱맞은 대답에 김홍준은 멍청한 표정이 되어 되물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꼬리아는 난처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행동의 원인은 과거에 있으니까. 자기 이력을 찾아 보라 하던데?”

“정말 그것만 말했어요?”

“그래, 정말이야. 믿어줘.”

김홍준은 절박한 목소리를 들으며 어제 꼬리아가 고백한 코어페슈크니크에 사건의 전모를 떠올렸다.

꼬리아의 감정은 이해한다.

자신의 영역이 침범 받는다는 느낌, 존중받지 못한다는 느낌을 김홍준이 어떻게 모를 수 있을까.

그게 소중한 것이라면 더 말 할 것도 없다.

순경으로 근무하며 김홍준은 그렇게 촉발된 감정싸움을 수없이 맞닥뜨려 왔다.

거기서 욕 한마디만 안 했으면 철창 신세지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거기서 조금만 마음의 여유를 가졌으면 그렇게 돈 깨질 일도 없었을 텐데.

그런 가정들을 김홍준은 경찰 생활 내내 피해자와 가해자들을 보며 떠올려왔다.

물론 형이라고 믿었던 인간을 줘 팼던 인간이 할 말은 아니지만.

김홍준은 쓴웃음을 지으며 꼬리아를 쳐다봤다. 아시아인 같은 외모 때문에 동네 옆집 형처럼 보이기도 했다. 어제 자식과 놀아주던 모습을 떠올리니 그냥 한국인 아저씨처럼 보이기도 했다.

뒷주머니로 손을 뻗은 김홍준은 꼬리아를 보며 말했다.

“아들, 몇 살이에요?”

“어?”

“몇 살이냐구요.”

“아, 7살이야. 7살.”

김홍준은 뒷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꼬리아에게 내밀며 말했다.

“귀엽게 나왔는데 동영상 가질 생각 없어요?”

피식 웃으며 하는 김홍준의 말에 꼬리아는 멍하니 눈을 껌벅였다.

일이 일단락되고 화장실을 나선 김홍준은 곧장 숙소로 향했다.

숙소로 향하는 길목 내내 김홍준은 감독의 의중을 생각했다.

축구 선수로 자리 잡는 일은 단순히 재능만으로 되는 일이 아니다.

인생에 수많은 험로가 존재하고 그로인해 하나같았던 길이 갈래로 나뉘며 예정과는 전혀 다른 인생을 살게 되는 경우는 많다.

김홍준의 인생이 그랬다.

고교 시절 축구선수로 마감 할 것 같던 인생에 경찰 지구대가 끼어들지 누가 알았을까.

순경으로 지겨운 취객들을 상대 할 때도 김홍준은 그렇게 살다 정년을 맞고 순례와 인생을 마감 할 거라 생각했다.

인생은 알 수 없다.

그렇기에 생각을 하는 것이다.

김홍준은 이제는 익숙해진 길목 길목을 걸어 낡아빠진 숙소에 도착했다.

계단을 올라 방으로 들어가서 김홍준은 곧장 컴퓨터를 켰다.

냉각기 돌아가는 소리를 들으며 김홍준은 책상을 손가락으로 두들겼다.

창문을 지나 바다로 뛰어들었다.

검색창에 ‘알빈 반 브링크’를 쳤다.

선수 시절 그의 사진과 오래된 기사만이 인터넷을 가득 채웠다.

“아... 영어로 쳐야지.”

한글로 적은 감독의 이름을 지우고 김홍준은 다시 검색어를 적어 넣었다.

이번에는 영어였다.

영어의 쓰나미가 몰려왔다.

잠시 현기증을 느낀 김홍준은 숨을 가다듬고 다시 바다로 뛰어들었다.

직독직해의 나라 한국에서 온 8년 영어 공력의 나를 우습게 보지마라.

김홍준은 자신을 다독이며 알빈에 관한 기사를 읽어 내려갔다.

장장 8시간에 걸친 장구한 모험 끝에 김홍준은 의자에 몸을 기댈 수 있었다.

한숨을 내쉬며 창밖을 보자 벌써 밤이었다.

주린 배를 움켜쥐고 자리에서 일어난 김홍준은 냉장고를 향해 걸어갔다.

“향수병은 분명 영어 때문에 생기는 거야.”

김홍준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냉장고를 열었다. 물을 꺼내고 어제 먹다 남은 샌드위치를 꺼내들었다.

음식을 우물거리며 의자에 앉은 김홍준은 모니터를 쳐다봤다.

그곳에는 알빈이 맡았던 이전 팀에 관한 기사가 띄워져 있었다.

모니터 화면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김홍준은 물을 마셨다.

-늑대 무리의 파멸은 예정된 수순?-

자극적인 헤드라인 아래로 기사가 이어졌다.

-알빈 반 브링크는 네덜란드 국가대표 팀에서 과거 뛰어난 리더쉽을 발휘 했지만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감독이 된 이후 그가 맡은 팀은 시즌 내내 내분에 시달렸고 우두머리 늑대는 사분오열된 팀을 조율하지 못했다.

시즌 시작 전 유럽 무대를 노린다며 호기롭게 출발한 알빈 반 브링크호는 시즌이 끝난 지금 처참하게 침몰했고 무리에서 쫓겨난 늑대는 외롭게 축구계를 떠도는 중이다.

축구계의 저명한 한 인사는 팀의 실패는 알빈 반 브링크의 부족한 경험에 기인한 것이며 팀 케미스트리를 끌어올리지 못한 게 강등의 원인으로 짐작된다고 진단했다.

향후 알빈 반 브링크의 행보는...-

기사를 읽는 동안 샌드위치를 모두 먹어 치운 김홍준은 뺨을 긁적이며 아래로 이어지는 기사들을 계속해서 클릭했다.

팀 분열의 원인과 감독의 실패에 대한 기사들이 줄줄이 이어졌다.

기사를 살핀 후 김홍준은 의자에 몸을 기대어 천장을 올려다봤다.

감독이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김홍준의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작가의말

 연참대전을 마쳤습니다.

 모두 독자분들의 호응 덕분이라 생각합니다.

 보는 분이 있고 반응을 해주는 분이 있기에 저도 힘을 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아무쪼록 부족한 글에 관심을 보여주신 것에 감사드리며 저도 분발 하도록 하겠습니다.


 오타 및 오류 지적 환영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6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바퀴벌레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 6장 당신이 잠든 사이에 (4) +6 14.09.30 8,612 204 8쪽
24 6장 당신이 잠든 사이에 (3) +7 14.09.29 8,422 202 7쪽
23 6장 당신이 잠든 사이에 (2) +8 14.09.27 9,147 211 7쪽
22 6장 당신이 잠든 사이에 (1) +14 14.09.26 8,752 237 8쪽
21 5장 장유유서는 없다. (6) +12 14.09.25 8,941 228 8쪽
20 5장 장유유서는 없다. (5) +22 14.09.24 9,736 235 8쪽
19 5장 장유유서는 없다. (4) +10 14.09.23 9,913 218 7쪽
18 5장 장유유서는 없다. (3) +10 14.09.22 9,806 248 10쪽
17 5장 장유유서는 없다. (2) +6 14.09.20 8,983 208 8쪽
16 5장 장유유서는 없다. (1) +6 14.09.19 11,621 290 7쪽
15 4장 내 축구를 소개합니다. (4) +7 14.09.18 11,474 308 11쪽
14 4장 내 축구를 소개합니다. (3) +5 14.09.17 10,131 260 9쪽
13 4장 내 축구를 소개합니다. (2) +5 14.09.16 10,168 260 9쪽
12 4장 내 축구를 소개합니다. (1) +7 14.09.15 10,211 256 9쪽
11 3장 어디에나 항구는 있다. (5) +9 14.09.14 9,145 232 7쪽
10 3장 어디에나 항구는 있다. (4) +5 14.09.13 9,274 241 7쪽
9 3장 어디에나 항구는 있다. (3) +4 14.09.12 9,871 223 9쪽
8 3장 어디에나 항구는 있다. (2) +5 14.09.11 10,271 250 8쪽
7 3장 어디에나 항구는 있다. (1) +8 14.09.10 9,784 228 8쪽
6 2장 lul (4) +13 14.09.09 10,413 253 11쪽
5 2장 lul (3) +6 14.09.08 12,133 276 10쪽
4 2장 lul (2) +8 14.09.07 11,866 262 7쪽
3 2장 lul (1) +7 14.09.06 12,395 276 6쪽
2 1장 사연 +16 14.09.06 13,157 292 16쪽
1 서장 +11 14.09.06 13,815 297 4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