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영웅
한편, 어제 들어온 신병 리처드는 새벽에 똥을 싸러 변소에 가고 있었다. 낮에 사람들이 보는 곳에서는 긴장되어서 똥이 잘 나오지 않았고, 오래 기다려야 했기 때문에 새벽에 가기로 했던 것 이다. 보초를 서던 한 고참이 리처드에게 물었다.
“너 어디 가냐?”
“화장실 갑니다!”
“꼭 영국놈들이 우리 똥 쌀 때 변소에 포격하니 조심해라.”
“네..넵! 알겠습니다!”
질퍽질퍽한 참호를 걷다 보니 이윽고 변소가 나왔다. 리처드는 마음 편히 바지를 내리고 똥을 누기 시작했다. 역시 사람이 없으니 잘 나왔다.
‘아이구 시원해..’
그런데, 갑자기 휘파람 소리가 들려왔다.
쉬이잇
‘무···무슨 소리지?’
순간, 변소 근처에 포탄이 떨어졌다.
쿠광!!콰과광!!
“아악!!으아악!!”
다행히도 변소에 정통으로 포탄이 떨어지지는 않았지만, 리처드는 겁에 질렸다.
“왜 하필 내가 똥 쌀 때 포격이야!”
그 순간, 변소의 뒤 쪽으로 포탄이 떨어졌고, 포탄 파편이 리처드의 엉덩이에 박혔다.
“아아악!! 사람 살려!!”
리처드는 그 상태로 변소 밖으로 뛰쳐나왔다. 다행히 포격이 계속되지는 않았다. 영국 놈들은 독일군이 새벽에 변소를 이용한다는 것을 알고, 일부러 새벽에 변소 쪽으로 포탄을 발사했던 것 이다. 그래서 고참들은 새벽에 변소에 가지 않고, 급하면 포탄 구덩이를 이용하곤 했었다. 하지만 신병 리처드는 이 사실을 몰랐던 것 이다.
이 시각, 한스는 에밀라가 보내준 기계공학 책을 읽으며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기계공학 책을 읽다 보니 한스의 정신 건강도 무척이나 좋아졌다. 공부를 하다 보면 화약 냄새, 죽음, 피 냄새 모두 먼 세상의 일로 여겨졌다.
한스는 에밀라가 보내 준 묵직한 담배들과 통조림을 전차병 동료들과 동부전선 출신 정예병들에게 하나씩 나누어주었다. 그 날은 식량이 배급되지 않아서 병사들이 일주일에 한 번씩 굶는 날이었기에, 병사들은 게걸스럽게 통조림을 싹싹 비워먹었다. 병사들은 통조림을 모아두고 비가 올 때를 대비해서 물을 받아두기로 하였다. 그도 그럴 것이, 물이 보급되지 않는 날에 포탄 구덩이에 고여 있는 물을 끓여서 먹다가 병에 걸리는 일이 흔했기 때문이다.
정예병 로버트가 투덜거렸다.
“내 아내는 또 지겨운 딸기잼을 보내줬어! 차라리 담배나 보내주지!”
브랜틀리가 화를 냈다.
“너는 운이 좋은 줄 알라고! 멍청한 자식..내 마누라는 지 죽은 남동생과 대화한다고 심령술사한테 내가 벌어서 보낸 돈을 갖다 바쳤어! 망할 여편네!”
필립이 말했다.
“아니, 심령술사한테 사기를 당했다고?”
브랜틀리가 말했다.
“나는 목숨 걸고 일하는데 이 망할 년이 말이야!”
칼로스가 말했다.
“그 정도는 봐줘. 내 마누라는 식료품 가게를 털다가 체포되었대.”
이 때, 한스는 동부전선 출신 정예병 오스카 바르크만 하사와 함께 전차 옆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한스가 물었다.
“혹시 동부전선의 토질은 어떠합니까? 전차가 그 곳에서도 기동이 가능할지 궁금합니다. 물론 겨울에는 전차가 쉽게 고장나니 운용이 힘들겠지만 말입니다.”
오스카 바르크만 하사가 웃으면서 말했다.
“차라리 겨울이 나을 겁니다. 겨울 동안 쌓인 눈이 녹아내리는 3월, 그리고 비가 오는 10월에는 완전히 늪지대로 변합니다. 만약 전차를 가지고 가면 윗부분 해치만 빼고는 모조리 가라앉을 겁니다. 그래도 트럭이나 오토바이보단 전차가 훨씬 낫겠죠. 확실한 것은 아무리 좋은 전차를 가지고 동부전선에 가도 시도 때도 없이 궤도가 고장 날 겁니다.”
“그 정도 입니까? 저는 겨울만 아니면 전차 운용이 쉬울 거라 생각했는데..”
“아마 기름 보급도 힘들 겁니다. 더군다나 진흙 속에서 허우적거리다가 놈들의 기습 공격이라도 받으면 끝장이죠.”
한스가 생각에 잠겼다.
‘혹시 동부전선에서 사용될 전차를 만든다면 궤도가 넓은 것이 좋겠어···전차병들도 수리하기 쉽도록 최대한 단순하게..동부전선에서 사용될 전차는 돈을 많이 들여 고품질의 전차를 만드는 것 보다는 대량 생산해서 망가지더라도 쉽게 갈아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좋겠어..나야 물론 명품 전차가 좋지만..’
오스카 바르크만 하사가 말했다.
“제 생각엔 러시아 놈들하고는 30년 내로 한 번에 전쟁이 더 있을 것이 분명합니다.”
오스카 바르크만 하사의 예측에 한스도 전부터 직감하고 있던 것을 말했다.
“영국놈들은 이 쪽으로 병력을 집중투입하고 공격할 것이 분명합니다. 매우 빠른 시일 내에 놈들은 그렇게 공격해 올 것 같습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한스가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우리가 조만간 대규모 공세를 실시한다는 것은 아마 적군도 눈치채고 있을 겁니다. 하지만 만약 놈들이 대규모 공세 전에 이 능선을 차지한다면, 주변을 관측하기 용이해집니다. 그렇기에 놈들은 반드시 이 능선을 차지하려고 병력을 집중할 것이 분명합니다.”
오스카 바르크만 하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영국놈들은 비행기구를 띄우고 정찰하기 때문에 야포로 정밀한 사격이 가능합니다. 혹시 이에 대한 대비책은 없습니까?”
한스가 말했다.
“육군항공대가 놈들의 비행기구를 격추시켜줄 거라고 믿어야죠. 요새 뛰어난 에이스들이 많이 배출된다고 하더군요.”
한스는 아까 봤던 전선 신문을 떠올렸다. 그 전선 신문에는 미하엘의 사진이 ‘하늘의 사신’ 이라는 별명과 함께 대문짝만하게 적혀 있었다.
‘적들에게 진정한 공포가 무엇인지 알려주는 독일의 젊은 영웅, 하늘의 사신 미하엘. 이런 잔혹한 영웅이 이끄는 편대는 하늘의 주인이 독일이라는 것을 놈들에게 확실히 알려줄 것 이다!모두 그가 편대장을 넘어 조만간 대대장이 될 수 있으리라 예측한다.’
그 신문에 나온 사진에서 미하엘은 왠지 억지로 웃는 것 같았지만, 한스와 전차병들은 그 기사를 보며 희망을 품었다.
‘미하엘인가 뭔가 그 녀석이 잘 해주기를 빌어야지!’
그 날 윗선의 명령에 의해, 프란츠가 전차들 사이에서 메시지를 전하는 전령 역할을 하기로 결정되었다. 한스는 프란츠를 보고 걱정이 되었다.
‘전령은 위험한 데다가 중요한 역할이라 정예병이 했으면 좋겠는데 이 애송이가 잘 할 수 있을까..로버트나 브랜틀리나 칼로스 중에 한 명을 뽑아야 하는 것 아닌가..’
오스카 바르크만 하사가 말했다.
“이 놈이 영국군 장교를 포로로 잡았다고 하더군요. 실력이 있는 놈이죠.”
프란츠는 칭찬을 받아서 더 의기양양하게 이빨이 보이도록 미소를 지었다. 한스가 물었다.
“이 일은 무척이나 위험하네. 적군은 전령을 우선적으로 사살하는 것을 알고 있나?”
프란츠가 대답했다.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총알에 맞지 않을 겁니다!”
한스가 속으로 생각했다.
‘하긴 요 놈도 이리저리 포탄 구덩이로 잘 피해 다니겠지?’
“그런가? 왜 자네가 총알을 맞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나?”
“우리 독일은 선량하고 정의롭기 때문입니다!”
프란츠의 허리띠에는 ‘신은 우리 편이다’ 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한스는 여태까지 수많은 신병들이 총알이 자신만을 빗겨갈 거라고 생각하며 무인지대를 달리다가 죽던 모습을 떠올리고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멍청한 자식..신은 누구의 편도 들지 않는데..’
프란츠는 새로운 임무를 맡게 된 것이 자랑스러웠고, 적군을 죽이는 것 보다는 전령이 되어서 소식을 전하는 임무가 더 편할 것 이라고 생각했다.
‘이제 나도 어엿한 병사야! 운이 좋으면 철십자 훈장을 받을 수 있을지도 몰라!’
그런데 저 쪽에서 동부전선 출신 고참 병사들이 포로를 둘러싸고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
‘뭣 하는 거지?’
필립은 영국인 포로의 바지 뒷 주머니에 수류탄을 집어넣고 있었다. 영국인 포로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바지에 오줌을 지리고 괴상한 소리를 내고 있었다.
“으헉···으허억..살려주세요..”
동부전선 출신 고참들은 먼 곳에서 이걸 먼 곳에서 낄낄거리며 지켜보고 있었다.
“난 저 새끼 궁둥이 날라간다에 담배 세 개피!”
프란츠가 소리쳤다.
“아니, 지금 뭐 하는 겁니까!”
필립이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
“하나, 둘, 셋!”
그 다음 필립은 영국 포로 뒷 주머니에 있는 수류탄의 핀을 뽑고는 후다닥 달아났다. 영국 포로가 미친듯이 괴성을 지르며 뒷 주머니에 있는 수류탄을 빼내기 시작했다.
“아악!!으아악!!”
그 포로는 수류탄을 잽싸게 빼낸 다음에 근처에 있는 포탄구덩이 안에 던져 넣었다. 그 다음 순간
콰광!!쿠과광!!
포탄구덩이 속에서 흙먼지가 사방으로 흩날렸다. 영국 포로는 바지에 흥건하게 똥오줌을 지린 상태로 주저 앉았다.
“흐아악!”
“우하하! 저 새끼 똥 오줌 지린 거 봐!”
“내가 이겼어!”
“멍청해 보였는데 제법 빠른데? 저 새낀 다음에 또 써먹자!”
“망할! 니 새끼 때문에 담배 뜯겼잖아!”
프란츠는 입을 크게 벌리고 이 광경을 바라보았다. 그토록 사람 좋아 보이던 동부 전선 고참들이 이런 짓을 한다는 것이 믿기지가 않았다.
‘이..이럴 리 없어! 저 새끼가 뭔가 나쁜 짓을 했을 거야! 우리 독일은 정의의 편이라고!’
멍하니 서 있는 프란츠를 보고 칼로스가 말했다.
“뭘 그리 놀라? 어디서나 늘 있는 일이야!”
프란츠는 식은 땀을 흘리며 빨리 자리를 떠야겠다고 생각했다.
‘뭔가 이유가 있을 거야! 아무 이유도 없이 독일군이 이럴 리가 없어!’
그 때, 브랜틀리가 말했다.
“야, 사격 연습이나 해보자. 다른 새끼 가져와 봐.”
브랜틀리의 말에, 칼로스는 다른 포로를 붙들고 왔다. 그 포로는 붙들려 오면서 바지에 오줌을 지리고있었다. 브랜틀리가 말했다.
“누가 나랑 대결해볼래?”
로버트가 자신의 소총을 챙기며 말했다.
“내가 하지!”
프란츠는 부들부들 떨며 이 광경을 지켜보았다.
‘뭐..뭘 한다는 거지?’
칼로스가 소총으로 포로의 등을 쿡쿡 찌르며 영어로 말했다.
“너 저기 있는 나무까지 지그재그로 달려갔다 오면 살려줄게. 잘 달리는 것이 좋을 거다!”
그 때, 누군가 외쳤다.
“야! 장교 온다!”
“빌어먹을!”
칼로스는 재빨리 포로를 원래 자리로 끌고 갔다. 곧이어 호프만 중위가 찾아왔다.
“용감한 정예병들이 여기 있군! 별 일은 없는가?”
로버트가 말했다.
“아무 문제 없습니다!”
호프만 중위는 주위를 둘러보다가 영국 포로들이 겁에 질려서 질질 짜면서 바지에 똥오줌을 지린 것을 보았다. 하지만 그는 모른 척하고 다른 곳으로 향했다. 프란츠는 이 광경에 충격을 받았다.
‘이..이럴 리 없어! 저 포로 새끼들이 뭔가 고약한 짓을 했을 거야!’
칼로스가 프란츠에게 말했다.
“프란츠! 대피호 가서 신병들 교육 좀 시켜줘!”
“네..네! 알겠습니다!”
프란츠는 서둘러 대피호로 갔다. 그런데 대피호로 가던 도중에 얼마 전에 들어온 신병, 리처드가 의무병한테 엉덩이를 치료받고 있는 광경을 보았다.
“아니, 자네 어떻게 된 일인가?”
리처드가 질질 짜면서 말했다.
“새벽에 변소에 갔을 때 놈들이 변소에 포탄을 쏘았습니다!”
프란츠가 화가 나서 말했다.
“고약한 영국 놈들! 새벽에 변소를 이용하는 녀석들이 많기 때문에 영국놈들은 가끔가다가 새벽에 변소 쪽으로 포탄을 발사한다네! 앞으로는 그냥 포탄 구덩이에 싸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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