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로 물든 센강
독일 측에서는 노트르담 대성당 화재에 대한 깊은 유감과 함께, 내부에 대량의 포탄이 보관되어 있었다고 입장을 표명했다. 그 쪽으로 포격을 하지도 폭격을 하지도 않았고 설령 실수로 작은 포탄 한 두 개가 폭발했을지언정 그것이 화재의 원인이 될 수는 없다고 주장한 것 이다.
센강 남쪽 오를레앙 철도역에 있는 거대한 호텔에는 각 층마다 프랑스군 저격수가 쫙 깔렸다. 감적수가 쌍안경으로 센강 북쪽을 바라보았다. 그 쪽에는 독일 깃발이 여기저기서 휘날리고 있었고, 확성기를 통해서 계속해서 한스 파이퍼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우리 기갑 부대의 전진은 계속될 것 이다!!”
감적수 로렁이 중얼거렸다.
“좆 같은 보슈 놈들..저래봤자 바람 방향만 알려주는 꼴이지..”
“건너오기만 하라고 해..대갈통에 구멍을 뚫어주겠어..”
그렇게 저격수 필리쁘는 허세를 떨면서 조준경을 바라보았다. 그 때 쌍안경을 들고 북쪽을 주시하던 로렁이 갑자기 중얼거렸다.
“어..어..저..저거??”
필리쁘가 겁에 질린 목소리로 소리를 지르며 조준경에서 눈을 땠다.
“뭐..뭐야 폭격기야??”
만약 독일군 항공대가 남쪽으로 공격하러 온다면, 이 호텔 건물이 첫번째 타겟이 될 것이 분명했기에 저격수들은 독일군 비행기가 온다는 소리만 들리면 벌벌 떨고는 했다. 로렁이 말했다.
“아니 잘못 봤네.”
“망할 놈!!”
한편 프랑스 공병들도 부들부들 떨고 있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크리스또프가 말했다.
“혹시 다리 폭파 명령이 내려오는 것은 아니겠지?”
“그랬다간 우린 다 죽은 목숨이지..”
스테판이 의구심을 품으며 말했다.
“너넨 독일군이 정말로 내려올 거라고 생각해?”
“내가 볼 땐 허풍이야. 그냥 종전 협상을 하고 싶은 거라고.”
“나..나도 그렇게 생각해!!저 놈들이 아무리 정신이 나갔어도 센강을 도하해서 내려오지는 않을 거야! 놈들은 자원이 한계에 다다랐다고 들었어!”
한편, 한스 파이퍼 통칭 강철 사냥꾼은 인터뷰를 통해 이렇게 말했다.
“프랑스의 전차 부대는 너무 용기가 없다. 3대의 프랑스 전차가 고작 1대의 독일 전차와 맞붙는 순간에도 그들은 모퉁이 뒤로 숨기만 하면서 싸울 줄은 모른다. 이들은 나라를 지키지 못하고 도망간 겁쟁이들이며, 전차를 탈 자격이 없다!!”
붉은 남작 리히트호펜 또한 인터뷰를 통해 말했다.
“프랑스의 조종사들은 자국을 수호하고자 하는 의지가 전혀 없어 보였다. 그들은 맞붙어 싸우기보다는 도망가는 것에 급급했다. 조만간 파리 남부를 차지하는 것은 시간 문제이다.”
이 시각 프랑스 육군 참모총장 필리프 페텡은 사령부에서 이 소식을 듣고 비웃었다.
“뻔한 수를 쓰는군. 파리를 공격할 것 처럼 시선을 끌어놓고 다른 곳에서 기습을 하겠지..”
페텡의 부관, 뒤봐 중령이 말했다.
“하..하지만 여론이 너무 좋지 않습니다.”
필리프 페텡이 지도를 보며 이마에 핏대를 세웠다.
‘루덴도르프, 과연 센강 어디서 네 장병들의 피를 쏟을 생각이냐!!’
현재 프랑스군은 파리 서쪽 낭테르에 길쭉한 돌출부를 형성하고 있었다. 독일군이 이 돌출부를 버터 자르듯이 잘라내고 포위하고, 조금만 더 진격한다면 베르사유에 있는 프랑스군 사령부까지 도달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필리프 페텡이 말했다.
“이 돌출부 양쪽으로 독일 놈들이 도하할 수 있으니 기관총, 이동식 포 등으로 철저히 대비하도록 하게. 혹시 모르니 베르사유까지 종심 깊게 방어를 준비하도록. 놈들은 시간이 없으니 늦어도 일주일 내에는 공격해올 걸세. 더 알아낸 것은 없나?”
뒤봐 중령이 식은 땀을 흘리며 말했다.
“독일군이 계속 암호를 바꾸고 있지만 조금 있으면 해독할 수 있다고 들었습니다!”
잠시 뒤 전령이 급히 달려왔다.
“도..독일군의 암호를 해독했습니다! 그..그리고 오베흐빌리에 쪽에서 대규모의 독일 전차 부대가 지나가고 있는 흔적을 항공 정찰로 발견했습니다!”
필리프 페텡은 프랑스군 정찰기들이 촬영한 흑백 사진을 바라보았다. 오베흐빌리에에서 촬영된 그 사진에는 수 많은 궤도 자국들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파리에서 도하를 할 것이라는 녀석들의 허풍이 사실인가? 아니면..’
페텡의 눈이 불로뉴 비양크르로 향했다. 만약 그 쪽에서 독일군이 도하를 한다면 동쪽에 파리 남부를 포위할 수도 있었고, 좌측에 있는 거대한 프랑스군의 돌출부를 포위할 수도 있었다.
“우리가 파리 남부를 방어하는 동안 놈들은 서쪽에 낭테르 돌출부를 공격할 생각이다. 놈들의 공격에 맞서 방어를 준비하고, 파리 쪽에서는 센강을 도하한다.”
뒤봐 중령이 사색이 되었다.
“하..하지만 도하는 너무 위험이 큽니다!”
“놈들이 다른 쪽으로 눈을 돌리고 있는 지금이 파리 북부를 차지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일세!!놈들은 불로뉴 비양쿠르에서 낭테르 돌출부를 공격하기 위해 도하를 시도할 때, 우리가 파리 남서쪽에서 도하에 성공한다면 놈들은 완전히 고립되고 포위되는 걸세!”
“마···만약 실패하면 우리 쪽 사상자가..”
뒤봐 중령은 페텡의 눈빛에서 뿜어져 나오는 살기에 흠칫했다.
“여태까지 내가 몇 명의 프랑스 군인들의 피를 흘렸던가?”
페텡은 지도에서 현재 독일군이 점령한 파리 북부를 쳐다보며 중얼거렸다.
“이번에 흘리는 피는 이번 전쟁에서 가장 가치 있는 희생이 될 걸세. 그것을 결정하는 것이 나의 임무일세.”
그 날 밤, 프랑스군이 대규모로 센강을 건너오기 시작했다. 검은 하늘 위에서 수많은 조명탄이 붉게 타올랐다. 슈네데르, 르노, 생샤몽 전차가 강을 타고 건너오기 시작했고 대규모의 병력들이 보트를 타고 강을 건너기 시작했다. 겁에 질린 독일 포병들이 다리를 향해 포를 직사로 조준했다.
"발사!!"
"다리를 그냥 끊어버려!!"
퍼엉!!
포병들은 귀를 막지도 못하고 포를 발사했다. 두개골이 울리고 코에서는 코피가 쏟아졌다.
"계속 쏴!!!"
퍼엉!
슈웃
퍼엉!!
쉬이잇
붉은 조명탄이 검은 하늘 위에서 작렬하였고 포병들은 뿌연 포연 속을 뚫고 오는 프랑스 군의 막강한 전차 부대를 보았다. 그리고 수 많은 보병들이 시꺼먼 센강을 건너오고 있었다. 하늘 위에 뜬 붉은 조명탄이 센강의 물결을 따라 흔들렸다.
한 포병이 외쳤다.
"다리에 쏘지 말고 전차를 향해서 발사해!! 몇 대 격파되면 놈들은 못 건너온다!!"
포병들은 위험을 무릎쓰고 이동식 포를 움직였다.
"빨리!! 빨리 굴려!!"
"장전!!"
"발사!!"
퍼엉! 쉬잇 쿠과광!!콰광!!!
그 때, 센강으로부터 포가 날라오는 소리가 들렸다.
쉬이잇
"숙여!!!"
쿠과광!!콰광!!!
포병 카찬스키는 피투성이가 된 채로 박살난 포와 산산조각난 동료들의 시체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하늘 위로는 계속해서 조명탄이 쏘아올려지고 있었고, 계속해서 여기저기서 포탄이 폭발했지만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어...어..."
카찬스키가 뒤를 돌아보니, 들것을 든 두 담가병이 그에게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하지만 잠시 뒤 담가병들이 오던 쪽에서 포탄이 폭발했다. 먼지가 가라앉자 달려오던 담가병들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카찬스키는 고개를 내려보니, 자신의 허벅지에 커다란 파편이 박혀있는 것을 발견했다.
독일군 기관총 사수 데터링은 건물 안에서 엄폐한 상태로 시커먼 센강을 향해서 기관총을 긁어댔다
드르륵 드르르르륵 드르륵
'젠장..제대로 쏘고 있는지 알 수가 있어야..'
그 때 다리 위에서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쿠광!!콰과광!!
전차 한 대가 연쇄 폭발을 일으키며 시뻘건 불길이 하늘 위로 용솟음쳤다. 그리고 시꺼먼 센강이 검붉은 핏빛으로 변한 것을 볼 수 있었다. 어떤 프랑스 병사들은 총알을 피하기 위해서 물 속으로 뛰어들어갔다가 강에 휩쓸려가고 있었다.
솜 전투 등 온갖 굵직한 전투에서 살아남아온 한 고참 병사가 이걸보고 중얼거렸다.
"이렇게 참혹할 수가"
한 프랑스 병사는 기관총 총알을 피하기 위해 보트 밑으로 내려가서 숨을 참았음에도 총알은 물 속까지 뚫고 들어와서 허벅지를 뚫었고 물 속에서 피가 번져 나갔다. 데터링도 포탄 파편을 맞고 다리에서 피가 줄줄 흘렀음에도 기관총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드르륵 드르르르륵
위생병이 달려와서 데터링에게 진통제를 주사해주었다.
"조금 있으면 효과가 들걸세!!"
데터링은 진통제를 맞자마자 숨을 돌릴 겨를도 없이 계속해서 센강을 향해 기관총을 긁어댔다.
드륵 드르르륵
한편, 켈러 중위는 벌벌 떨며 자신의 소대원들에게 외치고 있었다.
"적 전차에 들키지 않도록 은밀하게 전차에 접근해서 이 대전차 수류탄을 던진다!!"
2분대장 베르팅크가 외쳤다.
"네! 건물 안에서 대기하겠습니다!!"
켈러 중위가 외쳤다.
"그게 무슨 소리인가!! 지금 다리로 달려가서 이걸 던지고 온다!! 어느 분대가 앞장서겠나!!"
"중대장님!! 그것은 무리입니다!!"
"명령이다!!"
하지만 켈러 중위는 이런 상황에서 잘못했다간 뒤통수에 총을 맞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작전을 변경하기로 했다.
"그러면 다리를 건너지는 말고 놈들이 다리를 다 건너왔을 때 기습해서 이 대전차수류탄을 던질 수 있도록 근처에 매복한다!! 1분대가 먼저 간다!!"
베르팅크가 외쳤다.
"그러면 저희가 엄호 사격을 해주겠습니다!!"
베르팅크의 2분대가 엄호 사격을 하고, 시선을 끄는 동안 1분대는 다리 근처에 있는 엄폐용 모래 주머니 근처로 이동했다. 힘멜슈토스 1분대장이 거울로 전차가 오는 모습을 확인하고는 자신의 분대원들에게 소리질렀다.
"이따가 신호 보내면 모두 한 번에 던진다!!"
1분대원들은 겁에 질려서 똥오줌을 지리고 질질 짜며 입을 크게 벌리고 대전차용 수류탄을 든 채로 대기했다.
'으흑흑..이건 척탄조가 해야 하는 건데..'
'저것도 못 맞추다니 망할 포병 녀석들..'
쿠과광!! 콰광!!
힘멜슈토스 분대장이 식은 땀을 흘리며 거울을 통해서 다리를 건너는 전차들을 바라보았다.
'빌어먹을!!'
그 때 엄호 사격을 해주던 2분대장 베르팅크가 외쳤다.
"소대장님!! 적 전차들이 계속 몰려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켈러 중위는 보이질 않았다. 베르팅크가 다른 병사들에게 외쳤다.
"소대장님 어디 가셨나!!"
"아까부터 보이지 않습니다!!"
켈러 중위는 자신의 소대원들을 내버려두고 도망간 것 이었다.
"빨리 찾아와!!!"
쿠과광!! 콰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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