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드 카운트
이번 임무는 시가지 밖으로 나가서 장거리를 행군해서 적 전차 부대가 이 쪽으로 접근하는지 정찰하고 오는 것 이었다. 랄 분대장이 지도를 보면서 선두에서 행군했고 지크프리트 4인조는 측면, 후면을 경계하며 조용히 분대장을 따라갔다. 발싸개를 제대로 맨 것이 다행이었다. 만약 그러지 않았다면 벌써 발에서 피가 났을 것이 분명했다.
지크프리트 4인조는 물집투성이인 자신들의 발을 마사지했다. 피가 고인 커다란 물집은 잘못 건드리면 피가 툭 터져나올 것 같았다.
랄 분대장이 조용히 말했다.
"여기서 잠시 휴식한다. 헤드 카운트! 실시!"
"하나!"
"둘!"
"셋!"
"넷!"
올라프가 잽싸게 수통을 꺼내서 물을 먹으려고 하자 랄 분대장이 말했다.
"조금만 마시게! 물을 보충하지 못할 수도 있다!"
크리스티안은 퉁퉁 부은 발에서 군화를 힘들게 벗으려고 했지만 잘 벗겨지지가 않았다.
"으으..."
랄 분대장이 말했다.
"벗지 말게! 지금 벗어두면 이따가 다시 못 신을 수도 있다!"
랄 분대장이 지도를 보며 말을 이었다.
"여태까지 오면서 적군이 지나간 흔적은 없었나?"
"어떤 흔적 말입니까?"
"풀잎이나 나뭇가지가 부자연스럽게 꺾였다거나 군화 자국이라던가 놈들이 지나간 자국 말일세!"
지크프리트 4인조는 랄 분대장의 말에 입을 다물었다.
'이 새끼들 아무도 안 보면서 걸었군!!'
잠시 뒤 지크프리트 4인조는 모두 머리를 얻어맞은 채로 주위를 살피면서 걸었다. 랄 분대장은 지도를 보며 두리번거렸다.
'제대로 오고 있었군!'
눈 앞에는 냇가가 랄 분대장과 지크프리트 4인조를 기다리고 있었다. 올라프의 표정이 하얗게 질렸다.
'이..이거 건너야 하는 건가?'
물을 건너는 것은 언제나 불알이 쫄리는 일 이었다. 랄 분대장이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내가 제일 먼저 갈테니 내가 간 길을 그대로 따라오게. 모두 막대기 챙겼나?"
"채..챙겼습니다!"
랄 분대장이 수면에 손을 넣어보고는 말했다.
"물결이 생각보다 거세다. 수심이 허리보다 깊어지면 급류에 휩쓸리니 주의하게! 이 막대기의 용도는 다들 알고 있겠지?"
"네!"
그렇게 랄 분대장, 올라프, 로베르트, 크리스티안, 호르스트 순서대로 막대기를 앞 쪽에 꽂아가며 천천히 물 속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어느덧 다섯 모두 골반까지 물 밑에 잠긴 상태였다. 발은 땅 위에서 살짝살짝 허우적대고 있었다. 올라프가 외쳤다.
"으..으아악!!"
랄 분대장이 외쳤다.
"중심을 잡는다!!!"
랄 분대장은 막대기를 앞에 꽂아보았다. 막대기는 점점 깊숙히 빠져들고 있었다. 한 걸음만 더 내딛었다간 허리까지 잠길 것이 분명했다.
크리스티안이 휘청거렸다.
"으아악!!"
"수평 유지!! 수평 유지!! 총 안 젖게 해!!"
"돌아가야 합니다!!"
랄 분대장이 외쳤다.
"날 따라라!!"
그리고 랄 분대장은 한 걸음 더 내딛었고, 허리까지 물 속에 잠겼다. 발을 움직일 때마다 바닥에 깔린 자갈와 모래는 휘적였고 제대로 중심을 잡을 수가 없었다. 이제 반쯤 건너온 상태였다. 랄 분대장은 막대기를 꽂고는 그 곳으로 한 걸음 발을 더 내딛었다.
다행히 수심이 더 깊어지지는 않았다. 뒤에서 호르스트가 외쳤다.
"못 갑니다!! 더 못 갑니다!!"
"따라와!!"
다행히 다시 수심은 얕아졌다. 랄 분대장이 뒤를 돌아보니 지크프리트 4인조는 이리저리 균형이 흔들리는 채로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수평 유지! 수평 유지!!"
"흐아악!!"
겨우겨우 랄 분대장과 지크프리트 4인조는 도하에 성공했다. 랄 분대장이 속으로 생각했다.
'젠장! 이런 곳은 매복 가능성이 있는데!!'
"수통에 물 뜨고 빨리 자리 뜬다!!"
지크프리트 4인조는 서둘러 수통을 물에 넣어 물을 뜨고는 랄 분대장과 함께 이동하고는 야영할 곳을 찾았다. 랄 분대장이 외쳤다.
"이 쪽이다!!"
랄 분대장은 깡통에 돌맹이를 넣어두고, 실을 연결해서 경보기를 만들고는 야영지 근처에 설치해두고는 생각했다.
'이제 해가 질테니 불 피우는 것은 글렀군...'
지크프리트 4인조는 겨우 힘들게 군화를 벗고는 퉁퉁 부은 발을 확인했다. 올라프가 자신의 발을 확인하고는 말했다.
"그래도 피는 안 났네."
젖은 군복과 군화와 발싸개는 바위 위에 올려놓고 건조시켰다.
크리스티안이 벌벌 떨며 말했다.
"나..나중에 다시 건너야 하는 거야?"
"돌아갈 때 물에 빠져 뒤지는거 아냐?"
랄 분대장이 주변을 정찰하고 와서는 말했다.
"밥 먹을 때가 가장 적에게 취약하다! 가능하면 빨리 식사를 마친다!!"
통조림을 통째로 먹는 것은 참고로 엄청나게 맛이 없다. 그나마 물에다가 당근이나 양파, 조미료를 첨가하고 반합에 끓여서 먹어야 몸도 뜨뜻해지고 먹은 느낌이 난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요리 시간은 생각보다 오래 걸리고, 지금은 불을 필 수도 없는 노릇이라 랄 분대장과 지크프리트 4인조는 차가운 통조림을 먹어야 했다.
로베르트가 투덜거렸다.
"뜨뜻한 커피 먹고 싶은데..."
몸은 다 젖고 행군하느라 피곤하고 발에서는 피가 나고 배 속에는 차가운 통조림이 들어간 터라 다들 탈진하기 직전이었다. 랄 분대장이 피곤한 상태로 말했다.
"헤드 카운트 실시!"
"하나!"
"둘!"
"셋!"
"넷!"
올라프가 속으로 생각했다.
'아무리 우리가 멍청해도 이 정도 인원이면 없어지면 금방 알텐데 굳이 헤드 카운트 할 필요가 있나?'
랄 분대장이 말했다.
"이제 해가 저물고 있으니 여기서 자야 한다. 올라프, 로베르트, 크리스티안, 호르스트 순서대로 엎드리고 올라프는 북쪽, 로베르트는 남쪽, 크리스티안은 북쪽, 호르스트는 남쪽 이렇게 교대로 엎드린 상태에서 번갈아가며 수면을 취하며 주변의 움직임을 정찰한다."
이렇게 번갈아서 엎드려 있으면 두 명이 자고 있어도 나머지 두 명은 제각기 양쪽을 정찰할 수 있기에 효율적이었다. 문제는 내 대가리 옆에 다른 분대원의 발이 놓인다는 점 이었다.
크리스티안이 물었다.
"그러면 발냄새 나지 않습니까?"
잠시 뒤, 크리스티안은 랄 분대장에게 머리를 얻어맞고는 자리에 엎드린 상태로 주변을 정찰했다. 몸이 여전히 젖었고 해도 저물어서 여름이라고는 해도 서늘하게 느껴졌다. 아까 물에 빠진 이후로 몸살에 걸린 호르스트가 쉰 목소리로 말했다.
"그..그래도 참호에 있는 것 보단 재밌습니다!"
랄 분대장이 말했다.
"이건 장난이 아니다!"
로베르트가 손을 들고는 말했다.
"똥 싸고 오겠습니다."
"길 잃지 않도록 주의하게!"
로베르트는 똥을 싸러 간다고 하고는 주머니 속에 있는 초코바를 혼자 먹고는 돌아왔다. 그런데 급하게 먹다보니 딸꾹질이 나기 시작했다.
"꺽! 꺼억!!"
로베르트가 돌아오고 크리스티안이 열받은 표정으로 물었다.
"너 혼자 뭐 먹었냐?"
로베르트는 급하게 수통을 들고 물을 마시고는 말했다.
"아닐세! 안 먹었네! 꺼억!"
"치사한 새끼!"
랄 분대장이 소총을 점검하며 분대원들의 사기를 북돋아주기 위해 말했다.
"파이퍼 여단장님은 이등병 시절부터 정찰, 수색 등 모든 위험한 임무에 자원해서 나섰다고 들었다."
호르스트가 속으로 생각했다.
'에이..설마...'
크리스티안이 말했다.
"전 군대에서는 무조건 뒤로 빼는 것이 좋다고 들었..악!!"
랄 분대장이 크리스티안의 대가리를 치고는 말했다.
"파이퍼 여단장님께서 지금 그렇게 승리를 거듭하는 것도, 이등병 시절부터 많은 경험을 쌓았기 때문이다. 현재도 최전선에서 위험을 무릎쓰고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며 직접 정찰을 하시지 않나."
올라프가 말했다.
"제가 듣기로 파이퍼 여단장님과 같이 있으면 계속 전투에 엮여서 멀리 떨어지는게 좋다고 들었는..악!!"
랄 분대장이 말했다.
"일단 크리스티안, 올라프는 자고 있게. 한 시간씩 번갈아가며 불침번선다."
호르스트는 로베르트와 함께 불침번을 섰는데 졸려서 뒤질 것 같았다. 호르스트가 중얼거렸다.
"여단 임시사령부에 유령 나온다는 소문 있대!"
"그런 소문은 어딜가나 있었잖아."
"아냐! 이건 진짜야! 검은 머리의 동양인처럼 생긴 여자 유령이랑 수녀 유령이 여단 임시 사령부에서 나온다는 소문이 있네!"
로베르트가 얼굴을 찌푸리고는 말했다.
"거짓말! 여단장님께 여쭤볼거야!"
"물어보던지!"
그렇게 지크프리트 4인조와 랄 분대장은 다음 날, 야영을 마치고는 목표했던 위치로 도착해서 쌍안경으로 정찰을 시작했다. 올라프, 로베르트가 돌아와서 보고했다.
"도로에 전차 궤도 자국은 없습니다!"
"샅샅이 확인했는데 확실히 없었습니다! 궤도자국을 지웠어도 대충 흔적이 남았을텐데데 수 백 미터를 확인해도 전혀 자국이 없었습니다!"
랄 분대장은 임무를 절반 완수했다는 생각에 뿌듯해하며 외쳤다.
"좋았어!! 네 놈들도 이젠 제법 하는군!!"
칭찬 받고 올라프, 로베르트는 좋다고 실실거렸다. 잠시 뒤 모두 모인 다음 랄 분대장이 외쳤다.
"헤드 카운트 실시!"
"하나!"
"둘!"
"셋!"
"넷!"
"다섯!"
그렇게 정찰을 마치고 랄 분대장은 지크프리트 4인조와 한스의 임시 사령부로 가서 보고했다. 한스가 말했다.
"모두 수고했네."
한스는 조만간 휴전 협정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소식에 기분이 아주 좋았다. 근데 로베르트가 잠시 머뭇거리자 한스가 책상에 있던 술병을 건네 주었다.
"가서 좀 쉬게."
로베르트가 머뭇거리다가 외쳤다.
"구..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물어보게."
"임시 사령부에 유령이 나온다는 소문이 사실인지 궁금합니다!"
"풉!"
윙거, 라인하르트 부여단장, 퀴힐러 작전 참모가 웃음을 참았다. 랄 분대장이 말했다.
"죄..죄송합니다!"
한스가 말했다.
"아니, 괜찮네! 계속 말해보게! 이 근처에서 유령을 봤다는 소문이라도 있었나?"
호르스트가 자신있게 대답했다.
"네!"
라인하르트 부여단장이 외쳤다.
"어떤 유령이었나? 예전에 내가 있던 곳에서는 목 없는 유령이 나온다는 소문이 있었네!"
퀴힐러 작전 참모 또한 웃음을 참으며 말했다.
"솜 쪽에 있을 때는 아무도 없는데 기관총이 발사된다는 소문도 있었지!"
호르스트가 외쳤다.
"동양인 여자 유령과 수녀 유령이 임시 사령부를 떠돈다는 소문이 있었습니다!!"
퀴힐러가 외쳤다.
"우하하!! 혈기 왕성한 나이 때라 그런 꿈을 꾸나보군!"
라인하르트가 초코바가 들어있는 상자를 지크프리트 4인조에게 던져주고는 외쳤다.
"이거 먹고 가서 쉬게!"
지크프리트 4인조는 입에 찢어지게 웃고는 경례를 하고 랄 분대장과 임시 사령부 밖으로 나왔다. 퀴힐러 작전 참모가 물었다.
"항공 정찰에서도 별다른 움직임은 없었다고 보고가 들어왔습니다."
"남은 구역 공세는 내일 11시에.."
잠시 뒤 한스는 밧줄을 타고 2층으로 올라가서 자신의 방으로 향해서 기계 공학 책을 읽었다. 뭔가 등 뒤에서 시선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
뒤를 돌아보니 벽에 빛바랜 부위가 묘하게 사람처럼 형상을 하고 있었다. 한스는 다시 책으로 눈을 돌렸지만 도무지 집중이 되지 않았다. 멍청하게도 손에서는 식은 땀이 흘러서 책장이 조금씩 젖었다. 그 때 1층에서 누군가 외쳤다.
"여단장님!!"
한스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무슨 일인가!!"
한스는 밧줄을 타고 내려간 다음 전화기를 받았다.
"네. 알겠습니다."
한스는 천천히 전화기를 내려놓았다. 라인하르트 부여단장과 퀴힐러가 한스를 바라보았다. 한스가 입을 열었다.
"휴전 협정이 체결되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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