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과 재회한 한스
요제프에게 한 방 먹이고 걸어가는 한스를 바그너가 발견했다.
"여단장님! 이게 무슨!"
요제프가 비틀거리며 일어나면서 중얼거렸다.
"내가...잘못 키웠어.."
한스는 태연하게 호텔로 걸어가며 바그너에게 말했다.
"쓰레기 같은 제 아버지입니다."
바그너가 커다랗게 눈을 떴다.
"아..아무리 그래도 아버지에게..."
"이제 전쟁도 끝났는데 편하게 한스라고 하십시오."
바그너 또한 푸르 르 메리트 훈장까지 받았음에도 결국 군인을 그만두고 재단사가 되기로 했던 것 이다. 바그너가 뒤를 돌아보다가 한스에게 물었다.
"그래도 자네 가족 아닌가?"
"가족 같은거 필요 없습니다."
한스는 호텔로 들어가기 전 담배를 입에 물고는 말했다.
"전 이게 편합니다."
"그거 참 안타깝군."
바그너의 말에 한스는 의아해했다.
'뭐가 안타깝다는거지?'
바그너가 착잡한 표정으로 한스에게 말했다.
"빨리 집으로 가보아야 하는거 아닌가? 어머니와 아내가 기다리고 있을 것 아닌가?"
"의무는 다 할 겁니다."
호텔 근처에서는 50대 정도로 보이는 여자가 외치며 전단지를 나누어주고 있었다.
"프롤레티리아 남성 여성 노동자 동지들! 이제 부르주아 세상은 무너지고 사회주의 사회로 만들어야 합니다! 투쟁합시다!"
생각 외로 그 여자의 전단지를 받아가는 사람들은 꽤 있었다. 한스는 담배불을 끄면서 속으로 욕설을 퍼부었다.
'누군 몇 년간 죽을 고생했는데 저런 타령하다니 배가 불렀군...'
바그너도 헛웃음을 지으며 그 여자를 바라보았다. 한스가 말했다.
"저런 작자들은 일주일간 참호에 넣어두고 순무 빵만 먹여야 하는건데 말입니다."
"그러게 말일세."
한스가 호텔 방에 들어오니 전보가 두 통 와 있었다. 한스는 위에 있는 전보를 읽었다. 신문사에서 온 것 이었다.
"인터뷰 일정? 크라우제?"
그 전선 기자 크라우제는 티거와 그로스캄프바겐에 탑승하여 직접 취재한 기사 덕분에 승진했던 것 이다.
"기자가 이 녀석 밖에 없나? 도대체 왜 맨날 이 녀석만..."
한스는 진절머리 나는 표정으로 다음 전보를 꺼내어 읽었다.
"어?"
에밋, 거너, 헤이든, 루이스 등은 호텔로 돌아가기 전에 술집을 옮겨 2차를 하고 있었다. 영광스러운 개선식이 끝났는데도 썩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에밋이 말했다.
"일자리 구하는 것이 쉽지 않은가봐."
"할 줄 아는게 없잖아."
이들 모두 고등학교를 졸업하지도 못했고 그렇다고 사회 경험이 있는 것도 아닌채로 군대에 끌려왔던 것 이다. 거너가 투덜거렸다.
"전차 조종이랑 전술 같은건 이제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네."
루이스가 중얼거렸다.
"그래도 덕분에 살았잖아."
그 때 뒤에서 나이 든 영감들이 에밋 일행을 보고는 뒷담을 깠다.
"저 한심한 녀석들!!"
"군인들 먹이려고 다들 순무 이파리만 먹었는데 저 녀석들은 고작 파리까지 밖에 진격을 못 했냐!"
"전차인지 뭐시기도 있다면서 말일세! 빨리 남부까지 뚫어버리면 되는건데 말일세!"
"우리 때였다면 프랑스 남부까지도 1년 만에 차지했을 걸세!"
그 영감들은 분명 전차병들이 들으라고 일부러 크게 말하고 있었다. 루이스가 말했다.
"그냥 참자."
그 때, 술집에 한스가 들어와서 에밋 옆자리에 앉아서 술을 주문했다.
"맥주 한 잔 주시오!"
한스는 왠지 모르게 표정이 좋지 않아 보였고, 에밋이 말했다.
"아까 전에 몇 장교들이 말하던데 전차나 장갑차에 쓸 무전기 개발은 여전히 진행 중 이라고 합니다!"
"진작 좀 개발할 것 이지..."
"좁은 범위에서는 효과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루이스가 작은 목소리로 헤이든에게 쑥덕거렸다.
"근데 이제 와서 뭔 소용이야? 전쟁 다 끝났는데?"
거너가 투덜거렸다.
"전 직업 구하는 것이 가장 걱정입니다. 몇 년간 구르고 나니 지금 제가 할 수 있는건 전차 조종이랑 포탄 쏘는거 말고는 없습니다."
한스가 말했다.
"학교를 다시 가는 것은 어떤가? 일단 공부도 하고 그래야 직업도 갖고 나중에 자식도 갖겠지."
한스가 맥주를 한 모금 마시고는 중얼거렸다.
"난 앞으로 자식들을 부양해야 하네."
"헉!"
전차병 일동이 서로의 눈치를 보았다.
"축하드립니다!!"
"와아!! 진짜 축하합니다!!"
"아버지가 되시면 어떤 기분입니까?"
"아들입니까 딸입니까?"
에밋이 수근거렸다.
"딸이 좋지! 아들이면 전쟁 터지면 군대가야하는데.."
"아들이네."
헤이든이 에밋을 쿡 찌르고는 말했다.
"하하! 뭐 어쨋든 축하드립니다!"
에밋이 말했다.
"자식은 하나만 생겨도 부담 생긴다던데...악!"
헤이든이 에밋의 허리를 쿡 찔렀다. 한스가 천천히 말을 내뱉었다.
"하나 아닐세. 둘이네."
전차병들이 술을 추가 주문하며 한스를 축하하는 와중에 한스는 멍한 표정으로 앞에 놓인 맥주병들만 바라보았다.
얼마 뒤, 한스는 착잡한 표정으로 전선 기자 크라우제와 기자들과 함께 차량을 타고 베를린에 있는 에밀라의 집으로 향했다. 어느덧 점점 차량은 뮐러씨의 자택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한스는 점점 두근거리기 입 안이 바싹바싹 마르기 시작했다.
'다들 잘 있겠지?'
크라우제와 기자들은 신나게 떠들면서 차에서 내렸다.
"이번에도 특종이다!!"
"여기 주차해두고 걸어갑시다!"
한스는 전투 때와는 또 다른 방식으로 떨리기 시작했다. 한스는 한숨을 크게 쉬고는 심호흡을 했다.
'별거 아니다..전투 나가는 것도 아닌데...'
그 때, 어디선가 시선이 느껴졌다. 한스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한스?"
"엄마?"
엠마는 천천히 한스에게로 걸어왔다. 엠마는 놀란 표정으로 믿을 수 없다는 듯이 한스에게 천천히 걸어왔다.
"세상에...한스..."
엠마는 한스에게로 다가와서 이곳저곳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한스 얼굴 여기저기에는 상처가 나 있었고 엠마는 안타깝게 한스의 얼굴을 살펴보았다.
한스는 사람들이 쳐다보는데 이러는 것이 쪽팔리기 시작했다.
'난 여단장인데 쪽팔리게!! 팔다리 날아간 녀석들도 많은데!'
"전 괜찮습니다. 일단 들어가서.."
엠마는 한스의 없어져버린 귓볼을 보고는 울음을 터트렸다.
"으흑...으흐흑..."
엠마는 한스를 안고는 울음을 터트렸다.
"오 세상에...내 아들...내 새끼..."
크라우제 새끼는 이 광경을 사진으로 찍었다.
퍼엉!
한스는 애써 목에 힘을 주고는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사람들 앞에서 더군다나 어머니 앞에서 눈물을 흘릴 수는 없었다.
"저는...괜찮습니다."
"흑흑...왜 이제 돌아왔어..."
한스는 어머니의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예전에 기억했던 것 보다 엠마는 훨씬 말라있었다. 한스는 엠마를 진정시키기 위해 속삭였다.
"어머니, 으깬 감자 요리 해주세요. 그거 먹고 싶었습니다."
"그래..해줄게..흑흑..."
그렇게 한스는 엠마와 함께 에밀라가 기다리는 저택으로 크라우제, 기자들과 함께 걸어갔다. 크라우제가 수첩에 메모했다.
[독일의 이상적인 어머니, 강철 사냥꾼의 어머니, 파이퍼 부인!]
한스가 물었다.
"에밀라는 잘 있습니까? 몸은.."
"아주 건강하단다. 며칠 전부터 너만 찾았어."
한스는 에밀라의 곁을 지켜주지 못한 것에 죄책감이 들기 시작했다.
'젠장!! 옆에 있어주지도 못했는데..'
뮐러 씨와 뮐러 부인이 한스를 반겼다.
"안녕하십니까?"
뮐러 씨가 한스와 악수를 하며 말했다.
"이런 날은 울어도 좋네."
"네..넵?"
'무슨 말이지?'
크라우제가 외쳤다.
"강철 사냥꾼이 부인과 아이들을 처음 보는 장면을 촬영하고 싶습니다!"
뮐러 씨가 기자들과 악수를 하며 말했다.
"좋은 샴페인이 있습니다! 한잔들 하시죠!"
크라우제는 계속해서 나불거렸다.
"한스 파이퍼 여단장이 부인과 아이를 처음 보는 모습을 촬영하면 분명 특종이 될 것 입니다!"
뮐러 씨가 샴페인을 따며 속으로 생각했다.
'저 기자는 사람 열받게 하는데 재주가 있군..'
그렇게 뮐러 씨가 기자들을 붙들어 준 덕분에 한스는 천천히 에밀라와 아이들이 기다리고 있는 방으로 걸어갈 수 있었다. 한스는 손에서 식은 땀이 나기 시작했다.
'온갖 전투를 경험했는데 고작 이런걸로!!별거 아니다! 이따가 인터뷰 끝나면 교본 마무리 하고 기계 공학 책이나 봐야!!'
천천히 문이 열렸다. 그리고 침대에 누워서 아이들을 돌보고 있는 에밀라가 천천히 한스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에밀라의 푸른 눈이 한스와 마주쳤다.
'에밀라?'
여태까지 느껴보지 못했던 설레이는 감정과 뜨거운 열정이 한스의 마음 속에서 샘솟기 시작했다. 에밀라는 촉촉한 눈으로 한스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한스?"
그 동안 에밀라와 수 많은 편지를 주고 받았지만 그 편지들조차 지금 한스와 에밀라가 서로에게 느끼는 감정 앞에서는 아무 의미가 없었다. 한스는 차마 앞으로 발을 떌 수조차 없었고, 에밀라는 그저 한스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에밀라의 눈빛에는 오래도록 기다려온 애틋함과 기다림, 행복이 담겨 있었다.
그리고 두려움에 차마 말로 할 수 없었던 그 한 마디 단어조차도 실제 감정 앞에서는 의미를 잃었다. 처음 마주쳤을 때, 그리고 처음으로 같이 동침했을 때, 그 이후로 계속해서 편지를 주고 받으면서 커져 있던 감정은 전쟁터에 있을 때도 심장은 이어주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에밀라와 다시 얼굴을 본 순간, 그 감정은 심장 속에서 터질 것 같았다.
언어가 없는 동물들도 서로의 감정을 알듯이 한스와 에밀라도 굳이 그 단어를 말하지 않고서도 서로의 마음을 알 수 있었다. 잠시 그들은 눈도 깜빡이지 않고 서로를 바라보았다.
이미 여러 차례 키스도 했었고 그보다 더한 것도 했었지만 천천히 발걸음을 내딛는 것조차 용기가 필요했다.
저벅 저벅
심장에서 파도처럼 감정이 울렁거렸다.
에밀라의 눈에서 눈물이 반짝였지만 한스를 보며 웃고 있었다. 한스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몸은 괜찮아?"
"응!"
에밀라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지며 몸을 일으켰다. 한스는 조심스럽게 에밀라의 어깨를 안아주었다.
"미안해. 일찍 못 와서."
에밀라는 한스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그렇게 한참을 포옹했다. 한스는 에밀라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키스하고 싶지만 차마 용기가 나지를 않았다. 그 때 에밀라의 옆에서 자고 있는 두 아기가 한스의 눈에 띄었다. 1917년 12월, 눈이 수북히 내렸던 날, 잠시 뒤 전쟁터로 돌아가야 하는 한스와 에밀라의 동침이 결국 이런 결과를 만들어낸 것 이었다.
에밀라가 웃으며 말했다.
"우리 아이들이야."
그 중에서 한 아기는 입을 오물거리고 있었다. 에밀라가 행복하게 미소지으며 아이들을 바라보다가 말했다.
"한스?"
"미..미안..."
목구멍에서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울음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으윽...미...미안.."
얼굴에서 굵고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잠시 뒤, 한스는 오토와 카를과 함께 마당에서 기자들 앞에서 포즈를 취해야 했다.
펑! 펑!
사진을 찍고, 크라우제가 한스에게 인터뷰를 했다.
"전쟁이 끝났는데, 앞으로 계획은 어떻게 되십니까?"
한스가 오토와 카를을 보며 말했다.
"앞으로는 가족과 시간을 더 보내고 싶습니다."
크라우제는 수첩에 이렇게 적었다.
[제 아이들을 자랑스러운 독일의 군인으로 키우고 싶습니다!]
크라우제는 신이 나서 속으로 생각했다.
'이제 젊은이들보고 빨리 출산율을 올리라고 해야지!'
뮐러 씨는 크라우제의 뒤를 지나가다가 우연히 수첩 내용을 보았다.
'아니?'
열 받은 뮐러 씨를 뒤로 하고 크라우제는 신이 났다. 한스는 결국 대학을 다니며 군에 남기로 결심했다.
한스는 계속해서 행복한 날이 지속될거라고 믿었으나, 얼마 되지 않아서 독일 내부가 시끄러워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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